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추가 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Home 지난연재 정찬주 장편소설 <금강산 붉은 승려>
“너희들을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끝

금강산 붉은 승려 꿈 김성숙은 방바닥을 짚고 가까스로 일어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런 뒤 보름 전에 약국에서 지어온 진통제 세 알을 삼켰다. 약봉지에 든 마지막 진통제였다. 잠시 후, 터져 나오려던 기침은 멎었지만 정신은 몽롱해졌다. 멀리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흐릿한 의식을 쪼는 듯했다. 간밤에 꾼 꿈은 기쁘고…
美군정 참여한 臨政서 탈퇴하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32

금강산 붉은 승려 폭설 쌀가루 같은 눈이 새벽부터 내리고 있었다. 2월이 되자마자 퍼붓는 폭설이었다. 김성숙은 통합야당인 신민당(新民黨)에 제출할 이력서를 쓰다 말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김성숙은 이미 신한당 운영위원과 지도위원으로 내락을 받은 터였다. 그에게 눈은 서설(瑞雪)이 아니었다. 22년 전 중국 …
“내가 빨갱이면 충칭에 남았겠소?”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31

금강산 붉은 승려31 해방 전후 광복군 제 2지대 대원 김준엽(金俊燁)은 약도만 들고 김성숙의 집을 찾아갔다. 김성숙이 세 들어 사는 집은 충칭 남안구의 언덕빼기 달동네 뒷골목에 있었다. 김준엽은 언덕빼기를 다 오른 뒤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약도를 다시 꺼내 보니 마주보이는 엉성한 대나무집이 김성숙…
“아버진 어른, 우린 아기 개구리”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30

‘금강산 붉은 승려’ 연날리기와 수영 충칭(重慶) 시가지는 양쯔강(長江)과 자링강(嘉陵江)이 합수해서 흘러가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었다. 김성숙 부부는 서민들이 밀집해 사는 장강 이남의 남안구에 살았다. 특히 남안구는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른바 조선촌도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촌…
“조선의 동지들 잊지 못할 것이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9

금강산 붉은 승려 연극 중일전쟁이 치열해지자 중국내 조선의 민족주의 우파와 좌파는 각각 진용을 정비했다. 민족주의 우파는 여러 단체를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민족주의 좌파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1937년 11월 한구(漢口)에서 김원봉을 따르는 조선민족혁명당, 김성숙이 주도하…
“지금 나의 중도는 조국해방이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8

금강산 붉은 승려 민족, 그리고 민족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좌익작가동맹에 김성숙 부부도 참여했다. 노신, 모순(茅盾), 정령(丁玲) 등이 1930년에 창립한 단체였다. 김성숙은 연맹의 기관지 와 의 편집을 맡았다. 상해사변 직후 김성숙은 광서성사범대학에서 1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다가 상해로 다시 돌아왔다. 노신…
“내가 먼저 가 기다리겠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7

금강산 붉은 승려 이별 나청은 남경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현무호 호숫가의 한 어부 집에 은둔하면서 밤낮으로 낚시질하며 소일했다. 공산당원으로서 중책을 맡지 못한 나청은 당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나청을 자주 찾아오는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인 장지락이었다. 나청은…
“인민혁명 위한 선율 꼭 이루겠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6

금강산 붉은 승려 젊은 손님 김성숙 부부가 사는 월세 방은 프랑스인 거주지역의 오래 된 중국인집 이층에 있었다. 손님이 찾아 올라오면 나무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부터 크게 들렸다. 굳이 이층의 창이 있는 방을 구했던 까닭은 의열단 단원으로써 바깥의 동정을 쉽게 살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의 늦은 햇…
“영성한 결혼식임에도 행복했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5

금강산 붉은 승려 결혼 비바람이 거칠수록 나무들은 스스로 뿌리를 깊이 뻗어 살아남는 법이었다. 김성숙과 두군혜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생사를 넘나드는 광주봉기 동안 그들의 사랑은 더욱더 깊어졌다. 향항으로 피신한 그들은 상해로 거처를 옮기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거한 지 1년 만에 조촐한 결…
“스님께 키스 한번 해줄 수 없소”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4

금강산 붉은 승려 하지 못한 키스 조선인으로 구성된 200명의 혁명군 임시부대는 사하진 전투에서 와해되고 말았다. 150명이 전사하고 50명만 남았는데 분대 규모로 시가전에 돌입하거나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의 전사들은 후퇴하는 혁명군을 따라서 공산당원의 활동이 자유로운 해륙풍이나 향항으로 …
“조선을 잊지 마시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3

금강산 붉은 승려 조선인 전사들 마침내 광주봉기가 1927년 12월 11일 동쪽하늘이 기지개를 켜는 새벽 3시 30분에 터졌다. 혁명병사,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목에 붉은 댕기를 두르고 나섰다. 봉기를 알리는 신호는 컴컴한 새벽하늘에 쏘아 올리는 세 번의 대포소리였다. 봉기군의 전술은 일시에 일본과 영국, 프…
“민중은 강물 같은 것이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2

금강산 붉은 승려 이육사의 첫 시 보슬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김성숙은 광주에서 3년째의 봄을 보내고 있었다. 광주의 봄은 조선의 봄과 달랐다. 비가 내리면 주강은 금세 흙탕물로 변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광주의 강이나 시냇물은 맑지 못했다. 이를 빗대어 장지락은 가끔씩 농담 삼아서 조선 사람들은 …
“세상에는 남녀가 반반씩 존재”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1

금강산 붉은 승려 혁명과 사랑 늦가을이 되면서 김성숙과 장지락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김성숙이 토요일 밤마다 조선인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토론회에 자주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장지락은 김성숙이 조선혁명청년연맹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기관지인 도…
김성숙 두근혜, 사랑에 빠지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20

금강산 붉은 승려20 생무 가을이 왔지만 광주의 한낮은 여전히 더웠다. 섭씨 30도를 넘어서는 날이 많았다. 걷다가도 땀이 나면 그늘에서 식혀야 했다. 다만 비 오는 날이 봄여름보다는 줄어들어 습도는 낮았다. 석양 무렵에야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김성숙과 두군혜도 수업이…
“순간 두군혜가 엘레나로 보였다”
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19

금강산 붉은 승려 중산대학 인연 중산대학은 조선인 청년들에게 학비 전액면제와 기숙사를 제공했다.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1926년도 조선인 입학생은 50여 명이나 되었다. 김성숙, 장지락도 북경에서 공부했던 자신의 전공과목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광주로 온 조선의열단원들 중에는 황포군관학교로 간 사람…
 1  2  3  
지난연재
홍승균의 성보읽기
도이법사의 위빠사나 수행기
발초참현
이학종의 스리랑카 순례
일본불교의 뿌리를 찾아
렛츠 코레일 Templestay
윤재환의 新부여팔경
마음기행
마애불이야기
우리곁의 작은 중생들
불교상담소
북한의 사찰
황평우의 문화재이야기
이우상의 앙코르순례
김치중의 취재현장
코레일-미붓 공동기획
대명리조트-미붓 공동기획
정찬주의 불교 이야기
불교 오뜨르망
시조로 읽는 법구경
교토통신
내 인생을 바꾼 중국선기행
김정빈 시인의 감꽃마을
혜민스님의 Beyond Horizon
NDSL 과학의 향기
명품선시 100선
지운스님 \
미소짓는 스님이 되리라
박호석법사 벼랑끝 군포교현장
금강스님의 茶談禪談
김정빈의 명상이야기
미디어 속 불교캐릭터
정찬주 장편소설 <금강산 붉은 승려>
곳곳佛 때때佛
우리민속 우리문화
정준영교수의 남방의 選佛場
김상현의 에세이삼국유사
윤청광 지혜의 편지
정찬주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
정법당간을 세우자
견해
김영국의 눈
윤남진 칼럼
하춘생 칼럼
김태형의 부석사이야기
김주덕의 힐링가든
위빳사나 법문
정서경의 견월재 다신
홍창성 교수의 철학에세이
하도겸의 문화 이야기
김진호 순례기
배희정이 만난 사람
박호석 법사
최승천 기자의 현장 속으로
빤냐와로 삼장법사의 테라와다 이야기
유정길의 사대강 생명 살림 수행기
김태형의 영주지역 문화유산 답사기
정찬주 연재소설 따뜻한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