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열사능원 안에 있는 중조인민혈의정의 모습



승려인 차응준, 김규하, 윤종묵도 조선인 임시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양달부가 장지락을 큰소리로 찾았다. 중국의 혁명병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서였다. 양달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장발규 포병부대의 대포를 분해해서 봉기군의 지휘부로 넘겼다. 탄약고의 탄약은 지휘부와 공안국 전투 현장으로 분배했다. 또한 포로들은 봉기군에 편입한 50명만 남겨놓고 모두 지휘부로 압송했다.

한편, 지휘관 엽용은 노동자적위대를 이끌고 공안국을 공격하였다. 공안국은 장발규의 1천여 명의 병사들이 장갑차를 앞세워 겹겹이 방어하고 있었다. 공안국 감옥에는 좌파 혁명가들이 2천여 명이나 수감된 까닭에 1천여 명의 우파병력이 공안국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안국을 공격하는 동안 엽용은 기관총을 잘 다루는 조선인 이용을 참모로 삼았다. 이용은 국민혁명군 산두 포병대장을 역임한 유능한 기관총 사수였던 것이다.

이용은 부사수와 탄약수를 거느리고 다니며 기관총으로 활약했다. 상관인 엽용의 지시를 따랐다. 엽용은 공안국의 장갑차가 봉기군을 향해 달려오자 이용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이용은 즉시 장갑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기관총 사격으로 장갑차의 진로를 저지했다. 장갑차에 불이 붙자 노동자적위대는 즉시 공안국으로 들이닥쳐 1천여 명을 포로로 잡은 뒤 감옥을 부수고 2천명의 혁명가들을 구했다. 공안국 전투에서도 질풍노도와 같은 봉기군은 30분 만에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 이로써 광주는 공산당이 장악한 형국이 되었다.

다음날.

정오가 되자, 광주 외각에서는 여전히 작은 공방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는 군중집회가 서과원(西瓜園)에서 열렸다. 노동자와 농민, 학생, 혁명군 병사 대표들이 1만여 명이나 모였다. 조선인 투사들은 군중집회의 호위를 책임졌다. 김성숙과 장지락 등 7, 8명은 조선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군중집회 중앙에는 붉은 천에 광동공농병대표대회(廣東工農兵代表大會)라는 검은 글씨의 대형현수막이 걸렸다. 광장은 각계의 대표들이 각종 깃발을 들고 있었다. 앞자리는 노동자들이, 그 다음은 무장한 수백 명의 농민들이, 그리고 여성들과 상인들,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김성숙과 장지락은 조선해방이 곧 다가올 것처럼 맨 뒤쪽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갑자기 비가 내렸지만 군중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서과원 광장을 지켰다.

이윽고 온몸에 탄띠를 두른 장태뢰가 연단에 나섰다. 1만여 명의 대표자들이 그의 등장을 박수로 환호했다. 조선 대표들도 손바닥이 아플 정도도 크게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는 사회자가 혁명의 경과보고를 하는 동안에도 간간이 이어졌다. 장태뢰가 대표대회 강령을 선언할 때는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

“모든 정권은 노동자, 농민, 병사 대표대회에 귀속된다. 반동군벌을 타도하고 노동인민의 권리를 수호한다. 모든 토지를 국유로 한다. 모든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한다.”

장태뢰가 강령을 선언하고 난 뒤에는 각 대표들이 연단으로 올라와 구호제창을 했다. 행사가 모두 끝나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전투현장으로 되돌아갔다. 광주 시가지는 봉기군이 대부분 장악하여 조용했지만 변두리 쪽에서는 아직도 교전인 중인지 이따금 총소리가 났던 것이다.

봉기군 지휘부로 돌아온 김성숙은 찬비를 맞은 탓인지 기침을 했다. 지휘부에서 노동자들에게 총을 나눠준 장지락도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고 도리질했다. 그러나 비는 멈추지 않을 듯 세차게 내렸다.

“성숙 형, 비가 혁명하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소.”

“기쁜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다니 나도 마음이 심란해지네.”

“장태뢰 동지가 놈들한테 저격당한 데다 비까지 음산하게 내릴 게 뭡니까?”

서과원 집회를 마치고 봉기군 지휘부로 돌아가던 장태뢰가 저격을 당해 죽었는데, 그의 죽음은 봉기군의 사기를 저하시킬 것이었으므로 비밀에 붙여졌지만 양달부가 장지락에게 슬쩍 알려주었던 것이다.

“도망친 장발규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아닌지 나도 불길한 생각이 드네.”

“하늘이 혁명하는 봉기군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주강 이남으로 도망친 장발규에게 반격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그게 찜찜하다니까.”

그런데도 하늘은 봉기군을 도와주지 않았다. 비는 기습작전을 펴온 봉기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트렸고, 반면에 장발규에게는 시간을 벌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장발규는 광주 인근의 3개 사단 병력을 끌어 모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성숙과 장지락의 우려는 현실로 바뀌어버렸다.

장발규의 3개 사단은 광주를 포위했다.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제국주의에서 파견한 고문단은 장발규에게 반격전술을 조언했다. 이윽고 관음산 산자락으로도 넘어온 장발규 부대는 봉기군을 향해 진격했다. 화력이 막강한 장발규 주력부대의 대반격이었다. 동부의 시가지를 거침없이 지나친 장발규 사단 규모의 병력은 12일 밤을 기해 봉기군 지휘부가 있는 백운산 기슭의 사하진을 공격해왔다. 밤새 피아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13일 아침이 되자 봉기군의 탄약은 바닥이 났다. 봉기군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국 봉기군은 사하진의 진지를 버리고 철수하라는 지휘부의 명령을 받았다. 육박전을 벌였지만 더 이상 방어하지 못했다. 봉기군 지휘부의 명령체계도 무너졌다. 조선인 임시부대원들은 시가지로 후퇴하여 장발규 부대와 맞서 싸웠지만 무모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2백 명 중에서 150여 명이 전사했다. 봉기군 지휘부에서 해륙풍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렸지만 조선인 임시부대원들은 대부분 전달받지 못했던 것이다.

전투상황을 모른 채 아직도 공안국을 지키고 있는 몇몇 조선인 청년들도 있었다. 봉기군이 공안국을 먼저 접수했듯 장발규도 공안국을 장악하기 위해 이미 선발대를 보낸 상황이었다. 공안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지휘했던 섭영진은 공안국을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장발규의 선발대는 이미 공안국 앞의 공원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섭영진은 뒤로 물러서지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 돼버렸다. 그때 조선인 청년이 기관총을 들고 왔다.

“지휘관 동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그대는 누군가?”

“조선인이오. 엄호해주겠으니 어서 공원을 떠나시오.”

“나를 엄호해주겠다니 그 이유가 뭔가?”

“조선을 잊지 마시오.”

“그대 소원은 뭔가?”

“오직 조선이 해방되는 것뿐이오.”

섭영진은 그가 장발규 선발대를 향해 기관총으로 사격하는 사이에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잠시 후 기관총 소리는 멈추고 말았다. 쓰러진 그의 손은 기관총을 끝까지 움켜잡고 있었다. 그의 손과 기관총은 목에 두른 댕기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섭영진은 조선인 청년이 기관총으로 자신을 엄호해주었던 사실을 잊지 못했다. 훗날 중국인민군 원수가 되어 광주에 올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며 고마워했다. 그 조선인 기관총 사수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은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