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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지난연재 김상현의 에세이삼국유사
골품제의 그 견고한 굴레조차도
부처님 법력 앞에는 무릎 꿇었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도로 규제되고 있었다. 큰 재주가 있고 뛰어난 공이 있어도 골품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출세간의 종교인 불교에는 이러한 한계가 없었다. 일찍이 인도에서 이미 그랬듯이, 신라에서도 신분이 출가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진골귀족으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녀의 구별도 없이…
아들의 출가를 재촉한 어머니
"나는 이미 하늘에 환생했다"

의상법사에 의해 태백산에 부석사가 창건된 것은 문무왕 16년(676). 이로부터 태백산은 화엄의 빛으로 밝아지고, 화엄이라는 온갖 꽃, 즉 잡화(雜花)로 장엄되었다. 법사가 부석사에서 화엄대교(華嚴大敎)를 천명하고 있다는 소문이 신라 사회에 두루 퍼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의 명성은 자자했다. 이 때문에 부르지 않아…
국왕의 政敎가 밝지 못하면
長城으로도 재앙 막지 못하리

의상이 태백산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것은 문무왕 16년(676)이었다. 부석사는 의상이 화엄대교(華嚴大敎)를 전할 복된 터전을 찾아 산천을 두루 편력한 뒤에 자리 잡은 중요한 터전이었다. 궁벽한 산속에 밝힌 법등(法燈), 그 등불은 무진등(無盡燈)으로 빛났다. 의상이 켜든 화엄의 불빛은 곧 신라사회로 퍼졌고, 그…
황룡은 또다시 올 것인가
절들은 별처럼 벌여 있고(寺寺星張), 탑들은 기러기 행렬인양 연이어 서 있다(塔塔雁行). 이처럼 신라 왕경 서라벌에는 사찰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황룡사는 더욱 크고 중요한 절이었다. 와 에 이 절에 관련 기록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에는 가섭불연좌석, 황룡사장육존상, 황룡사구층탑, 황룡사종 등의 항목…
소문은 바람결에 퍼지고
신라 헌안왕(憲安王) 4년(860) 9월 어느 날. 안압지에 있는 임해전(臨海殿)에서 궁중의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왕족이자 화랑인 응렴(膺廉)도 참석했다. 응렴의 아버지 김계명(金啓明)은 당시에 시중(侍中)이었고 어머니 광화부인(光和夫人)은 신무왕(神武王)의 딸이었으며 그도 희강왕의 손자였으니, 분명 그는 왕족이…
佛法이 어려울 때를 당하면
그대마냥 몸 아끼지 않으리

법흥왕 14년(527) 음력 8월 5일, 이 날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했다. 불법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버렸던 것이다. 일연(一然)은 이차돈의 순교를 이렇게 찬(讚)했다. 의를 쫓아 죽음도 놀라운 일인데, 循義輕生已足驚 천화와 흰 젖 더욱 다정하여라. 天花白乳更多情 이윽고 단칼에 몸을 마친 뒤로는, 俄然一…
황룡사 구층탑의 추억
신라는 선덕여왕 11년(642)에 7월에는 의자왕이 이끄는 백제군의 침략을 받아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이 함락되고, 8월에는 대야성(大耶城)이 무너짐으로서 서쪽의 대백제 방어선을 지금의 경산인 압량까지 후퇴해야 했다. 대야성이 무너지던 8월에 백제는 고구려와 모의하여 당나라로 통하는 길목인 당항성…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
6세기 후반 신라 사량부(沙梁部)에 뛰어난 한 미인이 있었다. 그는 평민이었지만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 주색에 빠져 음란하기로 이름난 진지왕(眞智王: 576~579)이 소문을 들었다.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심을 채우고자 했다. 이에 여인은 말했다. “여…
타오르는 원한의 불길
“반역한 신하[逆臣] 모척(毛尺)의 가족을 절로 몰입(沒入)시켜 노비로 삼았다.” 이것은 원종흥법염촉멸신조(原宗興法厭髑滅身條)의 주(註)에 보이는 매우 단편적인 기록이다. 간단한 이 기록만으로는 모척이 어느 때 어떤 인물인지, 그는 어떻게 반역을 시도했으며 또 왜 실패하여 가족…
좋은 음식으로 봉양한다고 효도라 하겠는가?
일연(一然)은 목암(睦庵)이라고 자호(自號)했다.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 도명(道明 :780-877)의 효성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진존숙의 속성은 진(陳)씨. 도명은 휘(諱)다. 목주는 지금 절강성(浙江省) 건덕현(建德縣)으로 진존숙이 살았던 곳. 황벽희운(黃檗希運)의 제자로 목주 용흥사(龍興寺)에서 문풍(門風)을 떨…
법장(法藏)이 의상(義相)에게 보낸 편지
천 삼백 년을 전해오는 편지 한 통이 있다. 험한 바다 건너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해졌던, 지금까지도 원본이 전하는 이 편지는 법장이 의상에게 보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우정 어린 내용은 더욱 향기롭다.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 가까이에 종남산(終南山)이 있었다. 의상(義相 : 625-702)이 종남산 지상사…
근심의 병 웃음이라는 약
경흥(憬興 : ~681~)은 7세기 후반의 대표적 고승이다. 그의 아름다운 덕행과 남긴 사적이 석현본(釋玄本)이 지은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에 자세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단편적인 기록만이 에 전한다. 경흥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에 의하면, 신문왕(681-692) 때의 경흥 대덕(大德)은 성이 수(水)씨며 웅천주(熊川州…
슬픔의 강 공덕의 다리
양지(良志)는 7세기 중엽에 활동했던 신라의 고승이다. 대개 그의 행적은 선덕여왕(632-646) 때로부터 문무왕(661-680)때에 간간이 보이지만, 구체적인 전기 자료는 전하는 것이 없다. 양지는 주로 석장사(錫杖寺)에서 살았다. 이 절의 남쪽으로 신라 왕경(王京)이 내려나 보이기는 해도, 시내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조…
두 부처를 낳은 처녀
백월산(白月山)은 창원시 북면에 있다. 8세기 전반 경 이 산 동북쪽 선천촌(仙川村)에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 살았다. 부득의 아버지는 월장(月藏), 어머니는 미승(味勝). 박박의 아버지는 수범(修梵),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 (에는 미래에 하생할 미륵의 아버지는 수범마(…
짐승으로 보이는 사람들
고대인들에게 사냥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유목민은 말할 것도 없지만, 농경사회에서도 수렵은 흔한 일이었다. 신라시대에는 매사냥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진평왕(579-632) 때 천진공(天眞公)의 집에서 고용살이하던 우조(憂助)가 주인을 위해 매를 길렀고, 천진공의 아우는 지방관으로 부임하면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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