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사랑

장지락은 김성숙과 두군혜의 사랑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마땅했다. 장지락이 생각하기로는 사랑이란 혁명운동을 하는 데 장애물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어느 날 장지락은 김성숙을 주강으로 불러냈다. 그는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는 돌려서 하는 법이 없었다. 직설적인 화법을 좋아했다.

“성숙 형, 요즘 투쟁의지가 약화된 것 같습니다.”

“그리 보이나?”

“두군혜 양에게 빠진 거 아니오? 토론회에서 형 얼굴을 보기 힘들어요.”

“예전처럼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북경에서도 제가 말했어요. 제 생각은 분명합니다. 사랑과 혁명은 양립할 수 없어요. 그러니 형은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럴까? 오히려 사랑의 에너지가 투쟁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다고 보는데.”

장지락은 이미 북경 시절부터 여자와 연애하거나 결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연애나 결혼은 평화의 시대에는 중요한 일이지만 투쟁의 시대에는 장애물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혼하면 아무래도 남자가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연애하게 되면 사랑과 육체적 욕망에 빠져 여자에게 묶여버린다고 보았던 것이다.

“혁명을 하려면 강해야 해요. 자기의 육체적 본능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강한 자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제 의지로 본능을 다스릴 수 있다고 봐요. 그러니 본능대로 움직이는 동물과 다른 거지요.”

“내가 북경에서도 말했지만 자네는 중보다도 지독해. 자네는 지독한 금욕주의자야.”

“성숙 형도 들어보았지요, 남자는 역사적이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해요! 저는 혁명을 위해 투쟁하면서 살 겁니다. 여자나 돌보면서 살 수는 없어요.”

이는 장지락이 오래 전부터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조선의열단원은 절대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항상 단호하게 주장했다. 장지락은 의열단 동지들이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고자 홍등가로 가는 것도 “영혼을 파는 짓, 의지가 약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성숙 형, 다시 한 번 더 말할게요. 사랑이란 행동과 희생이 필요한 혁명의 시기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거예요.”

주강의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늦가을의 밤과 낮은 일교차가 심했다. 한두 시간 강변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강물이 출렁이는 소리마저 차가웠다. 밤배가 그들이 앉아 있는 강변 가까운 곳까지 왔다가 정탐하듯 스쳐지나갔다. 밤배의 불빛이 반딧불처럼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김성숙은 장지락의 순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현실적으로 반반 존재하고 있지. 그러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아야 하고 혁명동지가 되어 함께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네. 자네가 정말로 순수한 금욕주의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금강산 꼭대기로나 올라가게!”

김성숙은 장지락에게 대못을 박듯이 말하고는 돌아서버렸다. 주강에서 기숙사로 걸어오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도 뇌리를 스쳤다. 두군혜를 만나면서 스스럼없이 장지락을 불러 함께 식사할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장지락이 두군혜를 짝사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었다. 두군혜에게는 모성애랄까, 장지락을 안개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호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지락이 두군혜를 짝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지락은 누구보다도 김성숙을 혁명동지로서 아끼고 존경하기 때문에 주강으로 불러냈을 것이었다. 또한 김성숙은 여전히 장지락을 혁명동지이자 의형제라고 믿었다. 연애나 결혼을 혁명의 장애물로 보는 장지락이 두군혜를 짝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장지락은 사랑에 빠진 김성숙에게 더 이상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소임을 자각하겠지 하고 물러섰다.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면 김성숙보다 용감하고 헌신적인 의열단원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러시아에서 돌아온 의열단원인 오성륜이 김성숙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장지락은 오성륜과 자주 어울렸다. 오성륜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황포군관학교 러시아어 통역 및 교관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오성륜 역시 유일하게 장지락에게만 자신의 지난 얘기를 했다.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는 그는 성격상 비밀을 좋아했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편이었다.

오성륜은 장지락에게 테러리스트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담을 다 얘기해주었다. 장지락은 김성숙의 이론보다 오성륜의 행동을 더 좋아했다. 오성륜은 말보다 오직 행동만을 믿는 사람이었다. 오성륜이 상해 황포탄 부두에서 다나카 대장을 저격했다가 실패한 뒤 붙잡히어 일본영사관 감옥에 수감됐다가 탈출한 이야기는 무용담과 흡사했다.

오성륜 김익상 등이 다나카를 저격했던 당시의 상해 황포탄 부두의 모습


일본영사관 3층은 감옥이었다. 감옥의 구조는 출입문과 쇠창살이 부착된 창이 하나 있었다. 감옥에는 일인 5명이 수감돼 있었는데 모두가 사형당할 처지에 있는 오성륜의 탈출을 도와주거나 방조했다. 일인 소녀는 쇠칼을 구해주었고, 목수 출신 일인은 쇠칼로 자물쇠 둘레에 구멍을 내도록 가르쳐주었다. 마침내 오성륜은 구멍을 뚫은 뒤 자물쇠를 들어내고 나서는 일인 무정부주의자 한 명과 함께 붉은 죄수복을 입은 채 영사관 담을 뛰어넘었다. 남은 일인 수감자들은 형기가 짧아 도망치려하지 않았다. 오성륜의 탈출은 상해의 일본영사관과 일본경찰을 경악케 했다. 즉시 체포령이 떨어졌고 현상금을 5만 달러나 내걸었다.

그러나 오성륜은 광동으로 탈출하여 여권을 위조해 독일로 도망쳤다. 독일에서 독일 아가씨를 만나 그녀의 가족과 1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1925년에 러시아영사 도움으로 모스크바로 갔다. 모스크바는 테러리스트 오성륜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동방노력자대학에서 마르크스 이론과 대중투쟁의 전술을 교육을 받고 자신의 사상을 바꾸었던 것이다.

1926년이 되자, 오성륜은 공부보다는 혁명운동을 하고 싶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배를 타고 상해로 가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오성륜은 상해로 왔지만 일본경찰이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비상경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방에 짐을 놓아둔 채 급히 광동으로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은 모스크바에서부터 들고 온 것이었다.

오성륜은 장지락보다 키가 작았지만 거인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있었다. 힘이 느껴지는 몸집을 보면 운동선수 같았다. 그런데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광대뼈가 많이 튀어나왔고 이마가 넓었으며 머리카락은 숱이 많았고 검었다. 그는 상해에서 짐을 놔두고 온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왜놈한텐 빼앗긴 짐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

“무엇이 들어 있었수?”

“독일 애인 사진.”

“오 동지도 여자를 좋아하오?”

“혁명가에게 결혼은 불편한 거지만 여자까지 싫어할 건 없잖소.”

“독일 여자에게 신세를 졌으니 그러는 거겠지요.”

“장 동지도 여자가 무엇인지 배워야 해요. 한 1년 동거해 봐요. 그러면 여자를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여자에게도 혁명의 힘이 남자 못지않게 있소.”

“짐 속에 독일 애인 사진 한 장뿐이었소?”

“난 조선을 떠날 때 고향에서 학교 선생 노릇을 좀 한 적이 있소. 그때 문학과 미술을 좋아했소. 그때의 향수를 달래주는 것들이 짐 속에 있었소.”

“혹시 톨스토이 전집이 들어 있었소?”

“톨스토이는 내가 무정부주의자일 때 좋아했소. 그게 아니라 소설보다 더 실감나는 레닌 전집 한 질과 아름다운 현대명화 복사본 한 권이 들어 있었소. 모스크바에서 어렵게 구한 책들인데 왜놈들한테 압수당한 것을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분하오.”

1927년이 되어서야 김성숙은 조선인 기숙사의 토요일밤 토론회에 다시 나타났다. 기숙사에 어떤 신선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새바람을 끌고 온 사람은 광주에서 가장 뛰어난 조선인 혁명가라고 할 수 있는 박진(朴鎭)이었다. 박진은 광주에서 박영(朴英)으로 불렸다. 토요일 밤마다 기숙사에는 김성숙, 두군혜, 장지락, 오성륜 등이 모였다. 황포군관학교 교도대에 복무하게 된 박진은 아내를 데리고 장지도에서 오기 때문에 늘 맨 나중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진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러시아인의 피가 섞인 듯 풍채가 좋았다. 어깨가 떡 벌어졌고 무술인처럼 체구가 단단했다. 그가 문을 여는 순간 동토에서 불어오는 시베리아바람처럼 차갑고 강력한 기운이 기숙사 방 안에 뿌려졌다. 어떤 날은 박진 부부는 물론이고 황포군관학교 생도인 그의 두 동생까지 함께 들어왔다. 박진은 나이도 김성숙보다 9살 위였으며 항일투쟁 경력도 대단하였기 때문에 늦게 들어와도 항상 모인 사람들 중심에 앉았다. 한 번은 장지락이 토론의 주제와 상관없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박 선생님 가족 네 분은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투쟁에 오셨는데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조선혁명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런 편안함도 내게는 고통이 될 수밖에 없소. 내 삶은 투쟁일 뿐이오. 투쟁하지 않는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나는 투쟁을 좋아하는 것이오.”

박진의 ‘내 삶은 투쟁일 뿐이오.’라는 말에 모두가 감동했다. 두군혜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녀는 조그만 반도의 조선이 왜 대국인 중국의 속국이 되지 않고 독립된 나라로 자존심을 지키며 역사를 이어왔는지 박진의 패기를 보고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광동성 산두(山頭)의 혁명군포대 대장인 이영(李瑛)이 내 친구라오. 그 친구가 편지로 광동에서 불고 있는 혁명운동에 함께 하자고 권유해서 이곳에 온 것이오.”

이영의 본명은 이용(李鏞)이었다. 고종 황제가 보낸 헤이그 밀사 중 한 사람이었던 이준(李儁)의 장남으로 일찍이 청산리전투에 참가했고, 이후 소련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고 산두에서 포병 대장을 맡고 있다가 현재는 황포군관학교의 소련군사 고문 자격으로 광주에 와 있었다.

자신의 삶은 투쟁이었다고 술회한 박진의 말은 하나도 과장이 아니었다.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에서 1887년에 출생한 그의 본명은 박근성(朴根星)이었다. 그는 19살 때부터 항일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1906년에 고향에서 일제에 대항하는 사포대(私炮隊)가 조직되자 가담하였으며 1908년에는 경흥군의 일본수비대 두 거점을 공격하여 타격을 가했다. 체포령이 내려지자 1910년에 중국 길림성 화룡으로 가족 모두가 이사했고, 잠시 일본 동경으로 갔다가 다시 화룡으로 돌아와 학교를 세우고 계몽운동을 했다. 1919년에는 최명록(崔明彔)을 도와 반일무장단체인 독군부(督軍府)를 창설하여 참모장을 맡았다. 1920년 박진은 독군부 대원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조선내 온성, 무산 등을 비롯한 각지의 일본경찰서를 습격하였다. 그해 6월에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과 함께 봉오동전투에서 큰 승리를 하는데 일조하였고, 이어서 청산리전투에 참전한 뒤 러시아로 철수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소련 홍군부대에 가담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공략하는 7차례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부상을 당했다. 이후, 그러니까 1926년에 그는 아내와 두 동생을 데리고 광주로 와 황포군관학교의 전투부대인 교도대로 편입했던 것이다.

김성숙과 관계가 다시 원만해진 장지락은 두군혜를 몰래 만났다. 그래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두군혜는 장지락을 통해서 자신의 여동생 두군서를 오성륜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소개는 연인을 맺어주는 차원은 아니었다. 오성륜이 장지도에서 광주로 나왔을 때 길잡이로서의 도움을 주라는 것뿐이었다.

“군혜 씨. 제가 만나자고 한 것은 두 분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숙 형이 혁명운동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냉각기를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두군혜는 의외로 장지락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잠시 일본으로 유학가 있을까요? 성숙 씨가 일본에 가면 공부할 것이 많다고 한 적이 있어요.”

장지락은 두군혜의 시원시원한 답변에 놀랐다. 더구나 두군혜는 혁명동지인 김성숙과 장지락의 관계까지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본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는데 잘 됐지 뭐예요. 성숙 씨에게는 저 혼자 결정한 것으로 얘기하겠어요.”

장지락을 만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한 두군혜는 기어코 1927년 우기가 시작되기 전 김성숙을 마지막으로 만나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그녀가 일본으로 간 지 한두 달은 아무 일 없이 광주는 조용했다.

그러나 4월 들어 장개석이 상해에서 공산당을 척결하는 반공쿠데타를 일으키자 광주는 요동쳤다. 장개석을 추종하는 우파와 중국공산당 간에 내전이 일어나자, 황포군관학교의 조선인 교수나 생도들은 장개석에게 실망한 채 군관학교를 떠났다. 김성숙과 두군혜 사이에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김성숙이 의열단 차원에서 내전을 치르고 있는 무한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광주를 잠시 떠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자 두군혜는 초조했다. 김성숙의 신상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두군혜는 일본으로 떠난 지 석 달 만에 광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김성숙은 아직도 광주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두군혜는 장지락을 찾아가 그의 소재를 물었다.

“지락 씨. 성숙 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성숙 형은 지금 무한에 가 있습니다. 곧 돌아올 것이니 비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김성숙의 소재를 알려주어서는 안 되지만 장지락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두군혜의 큰 눈을 보는 순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장지락은 난생 처음으로 두군혜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사랑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도리질을 했다. 장지락은 김성숙을 향한 두군혜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가는 투쟁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지만 여자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