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나치다보면 종종 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되는 모습을 마주치곤 한다.
원래는 경복궁에서 먼저 시작했던 이 교대식은 불타기전 숭례문에서도 거행되다가 지금은 아쉽게도 복원공사로 인해 중단되고 이제는 경복궁과 대한문 앞에서만 펼쳐지고 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장중한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하게 마련이다.
교대의식이 진행됨과 동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마치 이 교대식을 보기위해 모여든 관광객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관객 가운데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상당수가 보인다.
일본인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국적을 알 수 없는 백인들, 피부 검으스름한 동남아인들,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관광객들까지 인종을 망라하고 찾아와 교대식 광경을 함께 즐긴다. 이제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교대의식이고 국제적인 역사관광 현장이 된듯해 내심 뿌듯하다.
덕수궁 돌담을 따라 수문장이 수문군과 취타대인 취라척을 거느리고 대한문 앞으로 나타난다. 먼저 들어서는 늠름한 수문장 일행과 기수단, 기골이 장대한 장수들의 모습이 의연하다. 그리고 뒤이어 전통악대인 취라척이 따라 들어온다. 진노란 의복이 시선을 잡아끈다.
뿐만 아니라 연주되는 흥겨운 우리전통 음악에 귀까지 한껏 즐겁게 해준다. 날라리 소리며 나발과 태평소와 북소리 그리고 운라가 어우러진 흥겨운 우리의 소리가 교대의식의 빛을 더욱 발하게 한다.
그렇게 나타난 궁궐 수문군사들은 대한문 앞에 오와 열을 맞춘 후 본격적인 교대의식에 들어간다.
궁궐정문 열쇠를 감독하는 붉은 관복을 입은 무관인 액정서사약과 교대의식을 감독하는 녹색관복을 입은 문관인 승정원주서 앞으로 전후임 교대 수문장과 참하가 마주선다. 문무관이 함께 배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교대의식이 이루어진다. 엄고수는 대북을 쳐서 식순을 알리는 병사를 말한다.
두 사람의 문무관 관리의 감독 아래 궁궐 정문의 열쇠가 들어있는 약시함을 인수인계하고 엄고수가 북을 울리면 교대의식은 끝난다. 그리고 전임 수문군들이 빠져나가면 교대의식의 전체 과정이 마무리된다.
취타대 취라척이 관심을 끌었다면, 다섯 가지 방위를 나타내는 기수들의 모습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동서남북과 중앙을 알리는 오방기, 즉 동 청룡, 서 백호, 북 현무, 남 주작, 중앙을 나타내는 노란색 깃발이다.
옛날 군사의 진영을 나타내는 깃발로도 쓰였으며 이 안에 그려진 그림들이 특히 눈에 띈다. 마치 민화의 그림들에서 본듯한 청룡과 백호의 해학적인 모습도 그렇고 특히 머리와 다리가 셋인 주작을 나타내는 그림은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를 연상케해 왠지 모를 아련한 대륙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불러 일으켜진다.
조선의 궁궐 수문장 교대식의 깃발에서 대륙을 꿈꾸던 대륙민족의 기상까지 담겼을까 하는 의구심은 생기지만 그래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울 수가 없다.
교대의식이 전부 끝나니 관람을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수문장과 병사들 앞으로 몰려간다.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동서양을 막론한 관광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장면이다.
저들이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고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내력들을 전부 알리야 있겠냐마는.
이렇게 찍어간 사진들이 그들의 이웃과 친척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다시 우리나라는 호기심과 관심으로 그들의 발길을 불러 모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가 세상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왠지 한 가지가 찜찜하게 마음에 걸린다. 다름 아닌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 역사 과목이 선택과목이 된 점이다.
어찌해서 역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2외국에도 밀리는 과목으로 전락한 것은 씁쓸하기만 하다. 홀대받은 우리의 역사교육으로 인해 훗날 민족성 정체성까지 훼손돼버릴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등으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