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시민 참가 침통한 분위기 속 범국민장 엄수

1월 9일 12시 서울역광장에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이 엄수됐다.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발인식을 끝내고 서울역광장으로 들어서는 다섯 대의 트럭과 다섯 대의 운구차. 트럭 마다 고인들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운구차가 조를 이뤄 따라 들어선다.

고 이상림 영가, 고 양희성 영가, 고 한 대성 영가, 고 이성수 영가, 고 윤용헌 영가의 순으로 영결식장으로 들어서고, 운구차에서 관이 내려질 때 마다 분위기는 더욱 침통해진다. 이날 국민장에는 시민 4,000여명(경찰추산 2,500명)이 함께 모여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범국민장 식장을 돌아보니 드문드문 스님들이 보인다.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과 그 뒤로 불교인권위 진관스님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그 뒤로 통일법당 주지 효암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도 장례위원석에 위원자격으로 앉아 있다. 또 다수의 야당 국회위원들이 참석하여 355일 만에 떠나는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예상대로 한나라당의 의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백기완 소장 “용산참사가 아니라 용산학살”

김태연 장례위원회 상임진행위원장의 사회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민중의례를 마치고 상임장례위원장의 ‘여기 사람이 있다!’로 시작해 ‘이 정부는 살인적인 재개발을 멈춰달라’는 촉구의 내용으로 개식사가 끝나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단상 위로 올라와 조사를 했다. 백기완 소장은 “이명박 정부가 고인들을 폭도로 몰았다”며 “용산참사가 아니라 용산학살”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이명박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와 유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우렁찼다.

이어 조시가 헌시되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대표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조사가 끝나고 진혼무 펼쳐졌다. 한손에 쥐여진 펄럭거리는 흰 천이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유가족 대표 “테러범 낙인 씻겨지길, 구속가족 석방되길”

이어 유가족 대표로 올라 온 고 이상림 씨의 미망인 전재숙씨의 인사가 시작됐다.

“국민 여러분의 격려와 지지가 없었으면 저희는 이 자리에 설 수 조차 없었습니다”로 인사말을 시작한 전재숙씨는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르기까지 지난 1년 동안 회한을 토로했다. 그는 고인들이 ‘도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혔던 아픈 기억들, 심지어 테러범에 살인범으로까지 여론몰이를 해 땅바닥까지 떨어진 고인들의 명예, 또 어디서 다시 있을지 모를 건설업체들의 이 같은 만행이 두렵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고인들과 감옥에 있는 가족, 동료들의 명예회복을, 그리고 무죄석방을 간곡히 요청했다.

유가족 대표의 인사에 이어 가수 안치환 씨가 ‘꽃상여 타고’를 불렀다.

“큰 눈물 땅에 뿌리고 그대 잘가라 꽃상여 타고”

애절한 안치환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이 눈에 띤다. 호상인사와 분화 및 헌화로 장례식 절차는 모두 끝나고, 참사가 빚어졌던 용산 남일당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도로 위로 만장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을 한다.

경찰들이 혹시나 있을 시위를 대비해서 수백 명이 진을 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경찰 한 간부가 기자를 불러 세우며 호통을 친다. ‘어디 함부러 사진을 찍느냐. 공무원들 사진을 누구 맘대로 그렇게 찍고 있냐?’는 것이다. 황당하다. 도공무원들이라니! 전투경찰 수백 명 모여 있는 것이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여기 공무원들이 어디 있으며 취재 중 사진 찍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냐고 따지며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기자의 사진촬영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장례식에 대해 경찰도 썩 마음이 편치는 않은 듯하다. 기자에게 사진을 함부로 찍는다며 호통을 치는 상황을 당하다 보니 이 나라가 경찰국가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사실로 다가온다.

노제 위해 만장행렬 늘어서자 하늘에서 꽃눈이…

12시에 시작된 서울역 장례식은 오후 2시 20분 경에 끝나고, 노제를 위해 영구차와 만장이 행렬이 도로변에 늘어설 즈음 하늘에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얀 눈발이 마치 봄날 아카시 꽃잎처럼 나풀거린다.

불보살님께서 망자을 극락으로 인도하시며 뿌려주시는 흰 꽃가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노제 행렬이 긴 줄을 만들기 시작을 한다. 지금부터는 서울역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용산역 앞 남일당까지 3km를 걸어서 가게 된다.

만장 앞에 확성기 차량에서 구성진 가락의 상여소리가 도로 위를 퍼져 흐른다.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억울해서 못 가겄네. 서러워서 못 가겄네.”

‘용산참사 진실규명’이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든 시민들이 만장의 행렬 뒤를 따라 붙는다. 장례식장에서는 2,000여명이던 시민들이 어느새 두 배가 훨씬 넘는 숫자로 불어나 있다.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을 애도하기 위해 늦게나마 장례식에 참석한 시민들로 숫자가 불어난 것이다.

참가 스님들도 희생자 극락왕생 간절히 기원

성글게 내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지면서 유족의 검은 상복 위를 허옇게 덮는다. 삼각지를 거쳐 행렬이 이윽고 참사현장인 남일당 건문 앞으로 들어섰다.

마지막 노제를 위해 준비된 무대차량에서 노제의 개식선언이 시작된다. 정체된 도로사정으로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예정대로 노제는 이어진다.

조사와 조가, 조시가 낭송이 되고 진혼굿과 유가족인사로 저녁 6시 20분경 노제는 서서히 끝을 맺었다.

추운 날씨에도 장례식에 참석한 스님들도 끝까지 고인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시며 다시는 이 같은 죽음이 없기를 기원했다.

<효암스님 기고>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며’ “다시는 이 땅에서 억울한 희생 사라지길” 오늘 용산 남일당 망루에서 돌아가신 다섯 분 영가의 영결식이 있었다. 각계 인사들과 불교, 천주교, 기독교 종교계 사람들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문하였다. 어제 입관식에서 느낀 슬픔과 안타까움 이상은 아니었다. 그 분들이 생활의 터전에서 쫓겨나 남일당에 들어간 것은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분들의 착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게 공권력을 무지막지하게 사용하지는 않으리라는 일말의 기대였는지 모른다. 2008년 12월 19일 망루에 올라간 지 하루 만에 공권력은 무자비하게 실행되었다. 그 망루에는 하늘로 오를 사다리도 마지막 비상구도 없었다. 그렇게 몰려서 올라가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거드름을 피우는 탐욕이 아니었다. 넉넉한 보상금에다 플러스알파를 노리고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몇 억을 들려서 투자한 자신들의 생활터전이 단 돈 몇 백만 원 받고 물러나야 한다는 참담한 현실이, 폭압적인 재개발 정책이 원망스럽고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잘못된 뉴타운 정책은 용산에서만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곳곳에서 이익에 눈이 벌건 개발업자의 손에 의해 짓밟히고 있으니 어찌 서울시장과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박정희 시대의 주택개량사업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개발이 아닐까 한다. 이제 자본의 폐해마저 폐지해야 한다고 나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정권퇴진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정부는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마구잡이의 개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승려의 한 사람으로 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제 더 이상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이 땅에 처참한 현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 남은 유가족들의 건강과 평안을 진심으로 바라며 두 손 모아 합장 기도합니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통일법당 주지 효암 합장

<용산철거 현장 지금은…, 그리고 일년 전의 회상> 흉물스런 철근 드러난 건물구석에 ‘땅 가지고 장난 마!’ 노제 중간 용산의 철거현장을 둘러보았다. 반쯤 부수어진 건물에는 철근들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다. 급하게 짐을 꾸려 떠난 철거민들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세간살이들도 뒹굴어 다닌다. 회색 철판으로 가려진 철판 앞으로 흰 눈이 나부끼고 있다. 그 회색 철판에 페인트로 쓰인 낙서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땅 가지고 장난하지마!!’ 1년 전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이던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길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 “사실 그날 경찰이 무조건 잘못한 겁니다. 제가 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다보니 바로 길 건너편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침까지 눈앞에서 다 봤어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지나가는 시민들 차에 일부러 화염병 던지고 벽돌 던지고 그렇게 안했어요. 용역 애들 하고 특공대하고 강압적인 분위기 조성하면서 몰려들면 그걸 방어 한다고 그랬지요. 그러다가 보니 무고한 차량에 피해가 간 것도 조금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들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용역하고 특공대가 건물로 진입하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 폭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이미 망루에는 살수차가 계속해서 물을 뿌려대고 있어서 아마 안에 있던 사람들 저항할 기운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크레인에 달려있던 콘테이너가 망루에 부딪히는 순간 망루가 휘청하더니 갑자기 불길이 활활 치솟아 오르더라구요. 이번에 죽은 철거민들 전부 경찰이 죽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사실 그런 진압이 어딨어요? 이미 살수차로 물벼락을 맞아서 대응할 기운조차도 없을텐 데 그냥 좀 떨어져서 대치하며 타협했으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이틀만 내버려둬도 이 엄동설한에 거기서 어떻게 버티겠어요?” 당시 상황을 지켜보았던 포장마차 주인의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전하던 포장마차의 주인의 얼굴에 분노가 스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 포장마차 주인 살던 곳이 용산은 아니라고 했으니 아마도 같은 소시민으로써 갖는 분노가 아닌가 싶다. 우여곡절 끝에 355일 만에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장례가 치러졌다. 고인이 된 다섯 명의 철거민도 또 희생된 경찰관 한명도 모두 안타까운 죽음이다. 살기 위해서 망루로 올라간 철거민도 명령에 의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경찰관도 이 시대의 아픈 현실이다. 노제를 지내는 동안 어둠이 찾아든다. 불 꺼진 남일당 참사현장 뒤로 도심의 마천루 초고층 아파트들에도 불이 켜지기 시작을 한다. 이렇게 철거된 땅 위로 다시 초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리라. 들어오는 사람들도 쫓겨난 사람들도 모두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은 요원한 일일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자비하는 마음이 세상에 가득해지길 간절히 발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