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훌라, 수행자에게 거짓말이란?”
7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사리뿟따를 스승으로 출가한 라훌라는, 붓다의 아들이라고 해서 일체의 특혜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상가에서는 어린 라훌라를 예뻐했고 사랑스럽게 대했다. 사실 어린 라훌라는 자신이 원해서 출가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을 것이 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상가에 들어온 것이어서 다른 출가자와는 그 동기가 달랐다. 그러므로 아직 부모님 품에서 재롱을 떨 나이인 그가 대부분의 비구들이 선정에 들어 있거나 걸식, 법문을 하고 있는 환경에서 지루하고 따분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라훌라가 가졌던 유일한 재미꺼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처음 거짓말을 시작할 때에는 사소한 거짓말이었지만 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대중 전체에게 피해가 될 정도로 대담한 거짓말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붓다의 아들로서 주목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었다.
붓다가 마가다 국을 방문할 때는 주로 라자가하의 깃자꾸따(영축산)와 죽림정사가 있는 벨루라와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깃자꾸따와 죽림정사 중간쯤에도 암발랏티카라는 비구들의 수행처가 있었다. 이곳은 집중적으로 가행정진을 하시는 수행자들이 머문 곳이라 붓다는 특히 이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들을 칭찬했다.
라훌라는 붓다가 아들이라고 눈길 한 번 더 주시는 것도 아니어서,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관심을 끌고, 칭찬을 받고 싶어 공부에 뜻이 없으면서도 이 중간처소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 이곳의 대중들이 붓다의 아들 라훌라에게 붓다가 어디에 계시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라훌라는 장난기가 발동해 깃자꾸따에 계시면 죽림정사에 계신다고 말하고, 죽림정사에 계시면 깃자꾸따에 계신다고 말해 골탕을 먹이는 일이 있었다. 라훌라의 거짓말로 불거진 소동 소식을 들은 붓다의 귀에도 들어갔다. 붓다는 평소 ‘라훌라가 출생, 성씨, 가문, 계급의 화려암 등으로 교만하고 수다스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마주칠 때마다 경계의 말을 들려주곤 했다.
날란다에 머물던 곳을 떠나 붓다 일행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 다람쥐 동산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붓다는 암발랏티까로 라훌라를 직접 찾아갔다. 아직 어린 라훌라를 위해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라훌라는 앉을 의자와 대야에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라훌라가 절하고 자리에 앉을 때 붓다는 라훌라를 바라보았다. 붓다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고, 라훌라는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붓다는 의자에 앉아 대야에 담긴 물로 자신의 발을 씻었다.
“라훌라,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느냐?” 붓다가 물었다.
“예, 스승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제게 무척 친절하시고, 계속 제게 교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라훌라가 대답했다.
“너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이 생활이 즐거우냐?” 붓다가 물었다.
라훌라는 침묵했다. 그러자 붓다는 물 대야에 물을 조금 남기고, 물이 약간 담긴 대야를 가리키며 라훌라에게 물었다.
“라훌라야, 너는 이 대야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가 대답했다.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라는 것도 이와 같이 조금 남은 보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서 붓다는 그 조금 남은 물을 쏟아 버리고 대야를 내려놓으며 라훌라에게 물었다.
“라훌라야, 너는 조금 남아있던 물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쌓은 정신적 성취를 이처럼 쏟아 내버리고 있는 것이니라.”
붓다가 다시 물었다.
“라훌라야, 너는 이 대야가 이제 비어 있는 게 보이느냐? 거짓말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의 정신적 성취도 이와 똑같이 비어 있느니라.”
붓다는 그 대야를 뒤집어 놓으면서 다시 말했다.
“라훌라야, 이 대야가 뒤집어져 있는 것이 보이느냐? 이와 똑같이 고의로 거짓말하는 자는 자신의 정신적 성취를 뒤집어놓기 때문에 향상할 수 없게 되느니라.”
그리고 붓다는 뒤집어 놓은 대야를 다시 바로 세워놓고 라훌라에 물었다.
“라훌라, 너는 이 움푹 꺼지고 텅 빈 물 대야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문의 덕성은 이와 같이 움푹 꺼지고 텅 빈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는 그러므로 농담으로도 고의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라훌라를 훈계했다.
이어 붓다는 거짓말에 관하여 설법했다. 아들을 위한 혼신의 설법이었다.
“거짓말을 삼가지 않는 사람은 악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동, 말, 모든 생각을 할 때마다 행동과 말과 생각을 올바르게 하도록 숙고해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점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릇된 행위는 고통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심화시킨다. 이렇게 숙고하여 그릇된 행동, 그릇된 말, 그릇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중지해야 하겠지. 그러나 숙고 결과 해로움은 없고 좋은 점만 있다면 실행해도 좋을 것이다. 우애심을 길러 악의를 소멸시키고 자비심을 길러 번뇌를 소멸시켜라. 타인의 행복에서 느끼는 기쁨을 깊게 하여 반감을 소멸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굳게 하여 혐오감을 소멸시키고, 육체적 타락 여부를 잘 관찰하여 정욕을 소멸시켜라. 사물의 무상함을 잘 인식하여 자신의 오만을 다스려야 한다.”
붓다가 또 물었다.
“발 씻은 물을 버린 그 대야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이 더러운 대야에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훌라가 대답했다.
붓다가 다시 말했다.
“라훌라야, 너도 이와 같다. 대야라는 그릇은 있지만 더러운 물이 담겨져 있던 까닭에 음식을 담을 수 없듯이, 너는 사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진실이 없고 마음으로 진리를 닦는데 열심이지 않으니 진리를 담을 수 가 없는 것이다.”
호된 꾸지람을 받은 라훌라는 크게 뉘우쳤다.
그러나 붓다의 훈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붓다가 대야를 발로 차 데굴데굴 굴린 후 물었다.
“라훌라야, 너는 내가 대야를 찼을 때 저 대야가 깨질까 봐 걱정을 하였느냐?”
“아닙니다, 저것은 값싼 물건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라훌라야, 사문이 되어서 몸과 입과 뜻을 함부로 하여, 나쁜 말로 장난을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고, 자비심 많고 지혜로운 분들로부터 가르침을 배울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괴로움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붓다가 다시 라훌라에게 말했다.
“라훌라야. 엄니 상아가 전차의 장대만큼 길고, 키가 완전히 자라고, 품종이 좋고, 전투에 익숙하고, 그렁 엄니를 가진 왕의 코끼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아라. 전투에서 그 코끼리는 앞발과 뒷발, 앞몸과 뒷몸, 머리와 귀, 엄니 상아와 꼬리를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코는 숨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코끼리를 탄 기수는 생각할 것이다. ‘이 코끼리가 자신의 코는 숨기려고 한다. 이 코끼리는 아직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코끼리가 자신의 코를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 그 코끼리를 탄 기수는 생각할 것이다. ‘이 코끼리는 자신의 코마저도 이용해서 전투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 코끼리는 자신의 목숨도 포기하였다. 이제 이 엄니를 가진 왕의 코끼리가 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훌라야,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피하려고 하는 불선한 악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야. 너는 이와 같이 단련해야 한다. ‘나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된 말을 뱉지 않을 것이다.’라고.”
붓다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물었다.
“라훌라야. 이 거울은 어디에 소용되는 것이냐?.”
“자기 얼굴을 비춰 보기 위한 것입니다.” 라훌라가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라훌라. 어떤 신체적인 행위를 할 때, 너는 마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듯 그 행위가 너 자신이나 타인, 그리고 자타 모두를 해치는 것이 아닌지 깊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아 만일 그것이 네 자신이나 타인, 그리고 자타 모두를 해치는 것임을 알면, 그런 행위는 악행이며 괴로움을 일으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과 마음으로 하는 행위도 또한 그와 같다. 그러나 라훌라, 육체적인 행위 혹은 입이나 마음으로 행하는 어떤 행위가 네 자신이나 타인, 그리고 자타 모두를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선행,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여겨 더욱 연마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닦고 늘려가는 것이다. 라훌라.”
신체적인 행위에 대해 설법한 붓다는 이어 말과 마음의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비유를 들어 상세히 설명했다.
붓다는 또한 라훌라에 대해 출가생활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경책해야 할 조목을 수시로 일러주었다.
“라훌라야, 늘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어진 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냐? 사람들을 위해 횃불을 비추는 님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늘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어진 이를 무시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횃불을 비추는 님을 저는 항상 존경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집을 떠났다면, 사랑스럽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을 버리고, 괴로움을 증식시키는 사람이 되라. 선한 친구와 사귀어라. 인적 없이 외딴 곳,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의복과 얻은 음식과 필수의약과 침구와 깔개, 이런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계율의 항목을 지키고 다섯 감관을 지켜, 그대의 몸에 대한 새김을 확립하라.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 탐욕에 물들어 아름다워 보이는 인상을 회피하라.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을 닦되,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라. 인상이 없는 경지(無相)를 닦아라. 교만의 잠재적 성향을 버려라. 그리하여 교만을 그치면, 너는 고요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라훌라를 향한 붓다의 마음은 비록 표시를 내지는 않았지만 늘 사랑과 연민 그 자체였다. 아들의 출가는 보통의 경우와는 아주 달랐으므로 붓다는 특별히 갈애를 거두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정과 갈구를 버릴 것이며, 착한 벗을 가까이 할 것을 누누이 당부했다.
라훌라는 아버지 붓다의 이 가르침을 성실히 받들어 지키며 닦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왕비 케마의 출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6년. 붓다가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붓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귀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이어지자 붓다와 그 제자들에 대한 라자가하 사람들의 찬사와 공경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특히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의 신심은 더욱 깊어졌다. 코살라 국에서 왕비 말라까가 왕과 친족들을 불법으로 이끌었다면 마가다 국에서는 그 반대였다. 붓다를 만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며 빔비사라 왕은 틈이 날 때마다 친족과 대신들을 거느리고 죽림정사를 찾았다. 왕비와 왕자들에게도 붓다에게 귀의할 것을 늘 권했다.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에게는 세 명의 왕비가 있었다. 첫째 왕비는 마하코살라의 딸이자 빠세나디 왕의 누이인 위데히였다. 빔비사라 왕과 위데히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아자따삿뚜였다. 둘째 왕비는 웨살리를 중심으로 한 왓지 연맹 릿차위 족의 쩨따까 왕비의 딸 쩰라나였고, 셋째 왕비는 맛다국 사갈라의 공주 케마였다. 그 외에도 빔비사라 왕 주위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았다. 특히 빠두마와띠는 아완띠의 수도 웃제니의 기녀였는데, 절세미인이었던 그녀의 소문을 듣고 빔비사라 왕이 라자가하로 데려왔다. 그녀와 빔비사라 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바야 왕자였기 때문에 그녀는 아바야의 어머니로도 불렸다. 또 웨살리의 유명한 기녀 암바빨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위말라꼰단냐라는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끊임없는 왕의 권유에도 죽림정사를 찾지 않는 왕비가 있었다. 그는 황금빛 피부를 가진 셋째 케마였다. 빼어난 미모만큼이나 교만하기도 했던 케마는 사랑스런 아내를 버려두고 출가를 했고, 더구나 아리따운 여인을 더러운 종기나 피고름 덩어리에 비유하곤 하는 붓다를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것이 주변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케마에게 인생은 즐겁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케마였지만 어느 화려한 봄날 죽림정사를 다녀온 어린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마음이 동했다.
어서 가보셔요 대나무 숲으로
나무도 아름다운 대왕의 동산
상큼하고 부드러운 것 좋아하는 당신
대숲 꽃동산에 지금 빨리 가보셔요.
가지가지 꽃송이에 기묘한 나무들
아름답게 수를 놓고 조화를 이룬 곳
다음에 가보리라 미루지 마셔요.
때가 지나면 다시 기회 있을까요?
사랑스런 케마 당신 혼자 남았네요.
하늘나라 동산처럼 아름다운 그곳
지금 빨리 가보셔요 대나무 숲으로
그곳에 가면 천녀처럼 즐거우리.
천상에서 꽃놀이하던 아리따운 천녀들도
향기 좇아 내려오는 인간의 동산
어서 가보셔요 그 대숲으로
기쁨에 취해 돌아올 줄 모르리.
이 노래를 들으면서 케마는 슬그머니 죽림정사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꾀를 낸 케마는 상가의 대중이 모두 걸식을 나간 아침 시간에 조용히 왕궁을 빠져나와 몰래 대나무 동산을 찾아갔다. 꽃과 과일나무, 연꽃과 풀들이 조화를 이룬 죽림정사는 평화로웠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와 새들의 지저귐에 취해 정사 깊숙이 들어갔을 때였다. 케마는 뜻밖의 장면에 깜짝 놀랐다. 라자가하의 거리로 걸식을 나갔으리라 여겼던 붓다가 정사 한 가운데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인의 몸을 종기와 피고름 주머니로 생각한다는 그런 분의 발밑에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예배하고 있었다. 케마는 넋이 나간 채 붓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여인은 케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붓다에게 다가가 공손히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날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케마였지만 그녀 앞에 서자 자신은 늙은 원숭이에 불과했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같은 여자였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진짜 놀란 만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차름 중년의 여인으로 변해가더니, 이어 노년의 여인으로 순식간에 변해갔다. 중년이 된 여인은 나름대로 미녀의 품격을 갖추었지만 거칠어지진 살결과 주름을 감추지는 못했다. 노년의 여인은 허리도 굽었고 늙은 원숭이 피부처럼 볼 살이 늘어지고 머리카락은 돼지의 털처럼 뻣뻣했으며, 이도 빠지고 성글성글한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늙음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애써 아름답게 보이려 애쓰는 중년의 여인, 그 모든 노력마저 통하지 않아 보기에도 안타까울 만큼 늙어버린 여인이 동시에 한 자리에 나란히 지켜보며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케마를 향해 붓다가 입을 열었다.
“왕비여, 자세히 보십시오. 케마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지혜의 눈이 없는 장님 같은 이들은 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아끼고 찬탄하지만, 자 보십시오. 이 몸은 쉽게 늙고 병들어 무너집니다. 화려한 옷과 향기로운 분으로 덮고 가리지만 아홉 개의 구멍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왕비여 돌아보십시오. 무너지지 말라고 아무리 애써도 그것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것의 본성은 아름답지 않은 것입니다. 그와 나의 육체를 사랑해 보듬지만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대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는 빳빳이 목을 세우고 왕궁을 거닐던 케마였다. 그러나 한편 그녀 역시 늘어가는 속살의 주름이 늘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비여, 그곳에 휴식은 없습니다. 케마여, 이곳에서 쉬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아 육체에 대한 집착과 갈애를 버릴 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케마는 일어나 붓다의 두 발에 예배했다.
“어리석은 저는 붓다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가엾이 여겨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붓다가 말했다.
“왕비여, 벗어날 길을 찾으십시오. 케마여, 지혜를 닦으십시오. 당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 거기에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건 것은 원래 없습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치고 자세히 보십시오. ‘나’와 ‘너’가 실재하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됩니다. ‘나’와 ‘너’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그로 인해 교만심을 일으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행동과 말씨와 마음가짐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예의를 갖추십시오. 공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마음속 교만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고요하고 편안한 열반에 곧바로 도달할 것입니다.”
케마는 자신의 교만을 참회하고 붉은 연꽃 같은 붓다의 두 발에 진심으로 머리를 숙였다. 죽림정사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평화로웠다. 왕궁으로 돌아온 케마는 낯선 집을 찾은 손님의 발걸음으로 조심조심 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대왕이여, 대왕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붓다의 교단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고 싶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놀란 빔비사라 왕은 왕좌에서 내려와 왕비의 손을 잡았다. 철부지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대신들 앞에서도 언성을 높이던 케마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가 하녀처럼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빔비사라 왕은 걱정이 앞섰다.
“무슨 일이 있었소?”
왕비 케마는 죽림정사를 찾았던 일을 왕에게 자세히 말했다. 그런 뒤 재차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대왕께서는 저의 주인이십니다. 주인님이 허락하시면 저는 붓다의 교단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고 싶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왕좌로 돌아가 말없이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빔비사라 왕은 대왕의 위엄을 갖추고 말했다.
“케마여, 당신의 출가를 허락합니다. 당신이 비구니가 되는 일을 내가 준비하겠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사랑하고 아끼던 케마 왕비를 황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우고 음악을 연주하며 라자가하 거리를 돌았다. 꽃과 향을 뿌리며 환호하는 백성들의 축복 속에 케마 왕비는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정사로 찾아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비구 승단을 찾아가 출가를 허락받았다. 영특했던 그녀는 붓다의 가르침을 빨리 성취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지혜를 지닌 케마를 붓다는 ‘비구니 제자 가운데 제일가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며 대중 앞에서 칭찬했다. 케마는 붓다의 지도로 자신이 성취한 경계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병들고 파괴되고
부패되는 육신에
나는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는 제거되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창칼과 같고,
존재의 다발은 그 형틀과 같다.
감각적 욕망의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
이제 나에게는 불쾌한 것이다.
모든 곳에서 환락은 파괴되고
어둠의 다발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이와 같이 알라.
사신(死神)이여, 그대는 패배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별자리에 예경하고 숲속에서 화신을 섬기며,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청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올바른 님,
사람 가운데 위없는 님께 귀의하여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스승의 교법이 참으로 실현되었다.
담마딘나, 설법제일 비구니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마가다 국의 왕비가 비구니가 됨으로써 붓다 교단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또한 그녀의 출가로 라자가하 여인들의 출가가 잇따르게 되었다. 담마딘나는 라자가하의 부호 위사카의 아내였다. 그녀는 붓다가 탄생할 무렵 라자가하의 한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 성년이 되자 위사카에게 시집을 갔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남편에게 감화되어 담마딘나는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고, 위사카는 그런 아내를 위해 케마가 출가할 때 사용한 가마를 빔비사라 왕에게 빌려왔다.
남편의 배려로 여성수행자의 처소로 들어간 담마딘나는 출가 이후 명상주제를 붙잡고 며칠간 그곳에서 지내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 위해 허락을 얻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담마딘나는 그곳에 살면서 과거의 형성들을 부수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거룩한 경지를 성취하고 나서 ‘나의 마음은 최상의 상태에 이르렀다.
궁극을 지향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정신적으로 충만하여야 하리.
감각적 욕망에 마음이 묶이지 않는 님이
흐름을 거슬러가는 님이라 불리는 법.
‘내가 여기서 지내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자가하 시로 가서 스승께 예경하고 많은 나의 친지들을 위하여 공덕을 짓겟다’고 결심하고 수행녀들과 함께 라자가하로 돌아갔다.
라자가하로 돌아온 담마딘나의 소식을 들은 옛 남편 위사카는 담마딘나가 얻은 바를 시험하면서 다섯 가지의 존재의 다발 등의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담마딘나는 그 질문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칼로 연꽃을 잘라내듯, 모든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했다.
위사카가 이런 사실을 붓다를 찾아가 보고하자, 붓다는 ‘담마딘나는 슬기롭다’고 칭찬하고 ‘가르침을 설하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고 명명했다.
어려운 법문을 쉽게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법사가 되어 돌아온 담마딘나에게 수많은 라자가하 사람들이 법문을 들으러 몰려들었고, 옛 남편 위사카 장자도 그 자리를 채웠다. 담마딘나 비구니는 꿀벌처럼 부지런히 진리의 꿀과 향기를 날랐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