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붓다의 하루 일과
붓다는 몸을 아끼지 않고 중생들에게 깨달아 성취한 진리를 가르쳤다. 수면이나 휴식 등 육체적인 피로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시간외에는 오로지 중생을 교화하는 활동으로 하루를 보냈다. 붓다의 하루 일과는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내적으로는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서 열반을 체험하고, 외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도덕적 향상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가장 먼저 깨달은 스승으로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개척한 길을 걸어감으로써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하게 해방되도록 도와주는 데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붓다의 하루 일과는 오전, 오후, 저녁, 밤, 새벽 등 크게 5가지로 구분되었다. 오전, 즉 이른 아침 시간인 6시가 되면 붓다는 가사를 걸치고 제자들과 함께 천안(天眼)으로 살펴 찾아낸 도와줄 사람을 향해 길을 나섰다. 정신적인 도움이 필요하거나 성자의 흐름에 들기 직전 줄탁동시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설사 초대받지 않았더라도 직접 발로 걸어가거나 신통으로 날아가서 그 사람을 올바른 길, 성자의 길로 인도했다. 붓다는 대체적으로 사악하고 청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교화를 했고, 반면 청정하고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처소에서 맞아 가르침을 내렸다. 특별한 원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악하고 청정하지 못한 사람이 붓다를 찾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관행 같은 것이었다.
재가자들의 공양 초대가 없는 날이면 붓다는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탁발을 나섰다.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나가기도 했고 때로는 홀로 나가기도 했다. 정오 이전에 공양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와서는 설법을 듣기 위해 법당에 모여 가르침을 청하는 수행자들, 즉 비구들을 지도했다. 이때 비구들이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해 질문하면 붓다는 자세히 설법을 해 의문을 풀어주었으며, 각각의 근기에 맞는 수행주제를 내려주기도 했다. 붓다 스스로 깨닫고 체계화한 진리를 전하는 데 붓다처럼 정성과 최선을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간혹 비구로 출가할 사람이 있을 때면 이 시간에 수계의식을 거행해 상가의 일원으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공양 후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붓다는 다시 처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때때로 피로를 느낄 때면 오른 쩍으로 누워 위빠사나 수행을 하며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휴식에서 깨어나는 즉시 대자비 삼매에 들어서 천안으로 살핀 후에 필요한 곳을 찾아가 자비를 베풀었다. 특히 수행을 위해 홀로 외딴 곳에 있는 비구나 정신적인 향상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 도움을 주는데 주력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먼 거리에 있으면 신통으로 즉시 가서 향상시켜 주고 곧바로 처소로 돌아왔다.
재가자로부터 공양요청을 받은 날이면 그들의 집으로 가 공양을 받는 것으로 복전(福田)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공양을 마친 후에는 그들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설법을 해, 그들이 삼보에 귀의하도록 인도하였다. 이때에는 반드시 5계를 준수하도록 지도했다. 살아가면서 가능한 선업을 짓게 하려는 대자비의 발로에 다름 아니었다. 만약 수행이 향상된 사람이 있으면 성자의 반열로 오르는 도과(道果)로 나아가도록 성심껏 도왔다.
저녁 무렵(오후 4~6시)에는 주로 설법을 들으러 수행처를 찾아온 일반 재가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들의 수준과 근기를 불안(佛眼)으로 파악한 후 약 한 시간 안팎의 설법을 했다. 모여든 대중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붓다의 설법은 법문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제각각 특별하게 들렸다. 이 또한 붓다가 발휘한 불가사의한 신통 가운데 하나였다.
대체로 붓다는 설법을 할 때 우화와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청중들이 쉽고 명료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붓다의 배려였다. 붓다의 설법에는 청중의 근기에 따라 주제와 수준을 맞추는 일정한 원칙이 있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관용과 베풂[布施]의 공덕, 건전한 삶[持戒]의 유익함, 하늘세계[天上]의 축복에 대해 설법했다. 이 원칙은 일반 사람들이 붓다의 교법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몸과 마음가짐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수행이 제법 진척되거나 향상된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쾌락의 해독과 놓아버림(무집착)의 이익에 대해 설법했다. 비구 등 수행에 큰 진보를 이룬 사람에게는 붓다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사성제 등 핵심 교설을 설했다.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했지만 꼭 필요할 경우에 아주 제한적으로 이적을 방편으로 보이기도 했다.
저녁시간, 즉 오후 6시부터 10시 사이의 시간에는 가르침의 대상을 출가자, 즉 비구만으로 한정했다. 이 시간 동안 비구들은 자유롭게 붓다에게 찾아와 수행주제를 받거나 수행을 하면서 생겨난 의문이나 궁금한 점을 물었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붓다는 하늘세계에 살고 있는 천인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설했다. 오전 2시부터 6시까지의 새벽 시간은 다시 4단계로 나누어졌다. 첫 번째 새벽시간인 2시부터 3시까지는 경행, 즉 천천히 걸으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두 번째 단계인 3시부터 4시 사이에는 위빠사나 선정에 들어 마음을 집중하면서 오른 쪽으로 누워 숙면을 취했다. 세 번째 단계인 4시부터 5시 사이에는 아라한의 삼매에 들어 적멸의 상태로 지냈다. 네 번째 단계인 5시부터 6시 사이에는 적멸의 삼매에서 빠져나와 모든 중생들에게 한없는 자비를 보내면서 천안으로 오늘(이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폈다.
붓다의 하루 일과는 이처럼 하루 두 시간 숙면과 휴식, 적멸의 삼매에 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중생을 향한 자애, 즉 설법과 지도에 맞춰져 있었다.
웨살리의 재앙을 퇴치하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지 4년.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죽림정사)에서 머물 때였다. 화려한 저택과 동산이 즐비한 왓지 연맹의 수도 웨살리에 재앙이 찾아들었다. 웨살리 지역에 가뭄이 계속되더니, 우기가 됐는데도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파종한 씨앗들은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말라죽었고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구걸할 기력조차 잃어버렸고, 역병까지 창궐해 썩어가는 시체들이 거리를 메웠다. 웨살리 사람들은 악취에 시달리며 갑자기 찾아온 병마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웨살리를 수호하던 신들이 떠나가고, 악귀가 도시를 점령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자 점차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공의를 중시하던 웨살리의 릿차위 족 사람들은 어느 날 공회당에 모여 대대적인 회의를 열었다.
“기근과 질병으로 백성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릿차위 족을 이끄는 왓지 연맹의 왕이 대중에게 묻자 많은 이들이 제각각 의견을 제시했다. 바라문의 전통에 따라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공의는 지혜와 권능을 가진 성자를 초빙해 그분의 힘으로 재앙을 극복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많은 이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대중들은 혜성처럼 나타나 신성한 가르침으로 마가다 국 등을 휩쓸고 있는 사끼야 족 출신의 젊은 성자 붓다에게 기대를 걸었다. 마침내 회의를 주재하던 왕이 말했다.
“사끼야 족의 태자 출신인 붓다께서는 6년 고행을 마치고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실 때 모든 마라들에게 항복을 받았다고 들었소. 일체의 지혜를 꿰뚫어 아신 붓다라면 우리 웨살리를 휩쓸고 있는 가뭄과 역병, 그리고 잡신들의 창궐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우리 모두 붓다께 찾아가 도움을 청해봅시다.”
붓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의견을 모은 릿차위 족 사람들은 젊은 시절 탁카실라에서 유학한 국사의 아들 마할리를 대표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왕실의 바라문과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해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파견했다. 마할리는 코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은 물론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과도 돈독한 교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거수일투족에서 학덕이 우러나고, 지혜로운 풍모를 갖춘 마할리는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여 라자가하의 빔비사라 왕을 찾아갔다.
“대왕이시여, 우리 웨살리가 큰 재난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병들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위대한 성자의 감화가 아니면 이 재앙은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땅에 머물고 계시는 붓다를 웨살리로 보내주소서.”
빔비사라 왕은 내심 붓다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적국이나 다름없던 왓지 연맹의 수도 웨살리의 재앙은 그에게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격식을 갖추고 찾아와 간청하는 오랜 친구의 얼굴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마할리여, 붓다는 나의 신하가 아닙니다. 웨살리로 가고, 가지 않고는 그분께서 직접 결정할 일입니다.”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빔비사라를 대하는 마할리는 내심 불쾌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다. 그만큼 웨살리의 사정은 급박했다. 그는 빔비사라 왕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왕궁에서 빠져나와 붓다가 머물고 있는 죽림정사로 향했다. 붓다를 만난 마할리가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세존이시여, 성인께서는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풍요롭던 웨살리가 지금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역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시체들을 치우지 못해 화려하고 향기롭던 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악귀들이 몰려와 도시 전체가 황폐화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악귀가 점령하여 폐허로 변해가는 웨살리를 당신의 힘으로 구해주소서.”
잠시 침묵하던 붓다가 말했다.
“마할리여, 나는 지금 빔비사라 왕의 초대로 라자가하에 머물고 있습니다. 빔비사라 왕께서 허락한다면 웨살리로 가겠습니다.”
마할리는 다시 빔비사라 왕을 찾아가 붓다의 뜻을 전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빔비사라 왕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빔비사라 왕은 라자가하에서 강가(갠지스)까지 이르는 닷새 동안의 여정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웨살리를 향해 떠나는 붓다와 오백 명의 비구들을 강기슭까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배웅하였다.
강 건너에서는 릿차위 족 사람들이 붓다와 그 제자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 기다렸다. 강을 건넌 붓다께서 막 왓지 연맹의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천둥 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간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탄성을 자아내며 붓다와 그 일행을 향해 절을 올렸다. 붓다의 일행이 강가에서 웨살리까지 이르는 사흘 동안에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고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왓지 국의 대지에는 파란 싹들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단비에 기운을 차린 백성들은 거리에 쌓인 시체들을 치웠고, 숲의 나무들도 이내 새순을 틔우며 성자를 맞이하는 듯했다. 웨살리의 성문에 도착한 붓다는 아난다에게 발우를 건네주며 왓지 국의 왕자들과 함께 깨끗한 물을 담아 성 주변은 물론 거리마다 뿌리며 라따나(Ratana, 보배)의 게송을 외우도록 했다.
땅 위에 터를 잡고 살거나
허공을 오가는 천신이거나
여기에 모인 모든 이들이여,
모두 다 보배 중의 보배를 갖게 되었으니
흔연히 기뻐하라. 그리고 모두 주의 깊게 들으라.
모쪼록 모든 천신들은 정성을 다하라.
인간과 모든 존재들을 향해
자애(慈愛)를 베풀어라.
밤낮으로 공양을 올리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그들을
성심 성의껏 잘 보호하라.
이 세상의 재물이든 저 세상의 재신이든
또는 천상의 배어난 보배이든,
따타가따(Tathāgata, 여래)와 더불어 견줄만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다네.
이것이 붓다께 있는 빼어난 보배라,
바로 이 진실과 함께 행복 있을 지어다.
집중 삼매의 개발로 사끼야 족 성자께서는
탐진치를 소멸하고 욕망에서 벗어나
죽음 없는 그 자리, 최상의 경지를 얻으셨도다.
이 세상 그 어떤 가르침도 이와 견줄 수 없나니,
이것이 담마에 있는 빼어난 보배라,
바로 이 진실과 함께 행복 있을 지어다.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에 만족하면서
부독의 결심으로 염심히 법대로 수행하는 이들은
얻을 것을 다 얻어 ‘죽음 없는 곳’까지 이르러
증득한 묘락으로 ‘완전한 꺼짐’, 열반을 즐기도다.
이 또한 상가에 있는 빼어난 보배라,
바로 이 진실과 함께 행복 있을 지어다.
아난다와 5백 비구, 왓지 연맹의 왕자들과 대신들이 라따나 게송을 읖으며 웨살리의 거리를 돌자 웨살리의 시민들도 줄지어 그 뒤를 따르며 게송을 염송했다. 이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라따나 게송을 염송하는 소리가 웨살리 도시 전체에 가득했다. 이렇게 칠 일 동안을 계속하자 질병으로 곧 죽는 사람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골목골목을 메웠던 악취와 질병의 기운도 씻은 듯 가셨다. 붓다의 신통과 감화에 감복한 릿차위 족 사람들은 세존과 비구들을 공회당에 모시고 공양을 올리며 극진히 대접했다. 또한 붓다의 은혜에 보은하는 뜻으로 웨살리 근교의 큰 숲에 이층 강당 꾸따가라살라(중각강당)를 건립해 붓다의 상가에 기증했다. 붓다의 위신력에 힘입어 웨살리 시는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붓다가 보여준 위신력과 탁월한 설법에 감동한 수많은 니간타 나따뿟따를 따르는 신자들의 개종이 잇따랐다.
시하 장군의 개종
웨살리는 자이냐교의 창시자 니간타 나따뿟따의 본향인 만큼 수많은 왕족과 백성들이 니간타 나따뿟따의 교도들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위신력으로 가뭄과 역병을 해결한 사건을 계기로 웨살리를 비롯한 왓지 연맹의 땅에 붓다의 가르침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런 영향으로 수많은 니간타 나따뿟따의 교도들이 다투어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웨살리의 총사령관 시하(Siha) 대장군이었다.
붓다가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무르던 때의 어느 날이었다. 수많은 릿차위 족 사람들이 한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붓다를 칭송하고, 붓다의 가르침과 붓다를 따르는 상가를 한 목소리로 칭송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왓지 연맹의 실력자 시하 대장군도 앉아 있었다. 시하 대장군은 붓다를 칭송하는 릿차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붓다께서는 아라한이고, 정등각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잘 알려진 릿차위 사람들이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해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을 친견해봐야겠다.’
결심을 굳힌 시하 대장군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러 가고자 합니다.”
“시하여, 그대는 업 지음을 말하는 자(도덕긍정론자)인데 왜 업 지음 없음[無爲]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인 사문 고따마를 보러가고자 하는가? 시하여,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을 듣자 붓다를 친견하려는 시하대장군의 의도는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붓다와 그분의 가르침,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을 칭송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시하 대장군은 다시금 붓다를 친견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 또 한 번 니간타 나따뿟따를 찾아갔다. 그러나 두 번째 찾아가서도 똑 같은 말을 듣고 붓다를 친견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또 다시 붓다와 진리와 붓다의 상가를 칭송하는 릿차위 사람들을 만났고 다시금 붓다를 친견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켰다. 시하 대장군은 세 번째인 이번에는 니간타에게 허락을 청하지 않고 세존을 찾아가기로 했다.
시하 대장군은 붓다를 친견하기 위해 한낮에 오백 대의 마차를 준비하여 웨살리를 나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후 걸어서 큰 숲으로 들어갔다. 세존에게 다가간 그가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소문은 사실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한 것입니까? 저는 세존을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같은 이유로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단멸론자)라서 단멸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사문 고따마는 혐오를 느끼는 자라서 혐오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폐지론자라서 폐지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고 제자들을 인도한다, 고행자라서 고행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서 모태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편안한 자라서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붓다는 자신의 말에 깊이 집중하고 있는 시하 대장군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시하여, 나는 없 지음 없음을 가르칩니다. 나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에게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짓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시하여, 마찬가지로 나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말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짓는 자에게 여러 가지 선법들을 지을 것을 가르칩니다. 시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단멸을 가르칩니다. 시하여,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혐오하고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혐오합니다. 시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폐지하기 위해서 법을 설합니다. 또한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말합니다. 고행을 통해서 나쁜 불선법들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고행자라고 말합니다. 시하여,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하여, 나는 편안한 자여서 최고의 편안함으로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고 이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합니다. 시하여.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을 가르치고, 단멸의 법을 설하고 혐오의 법을 설하고, 폐지론자라고 말하고, 고행의 법을 설하고, 모태에 들지 않기 위한 법을 설하고,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는 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붓다의 세간의 소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시하 대장군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그러나 붓다는 간청하는 시하 장군에게 조용히 만류했다.
“시하 대장군이여,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오. 그대처럼 명망 있는 사람은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상치 않은 붓다의 충고에 시하 장군은 놀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깃발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종 사실을 선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붓다는 오히려 자신의 개종을 말리고 있지 않은가. 붓다의 만류는 그에게서 붓다에 대한 더 신뢰를 더 크게 만들었다. 붓다에게서 이기심과 교만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하 장군은 더욱 깊이 머리 숙이며 맹세했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저는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에게만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시하 장군의 그 다짐마저 만류했다.
“그 말씀은 거두십시오. 그대의 가문은 오랫동안 니간타 나따뿟따와 그 추종자들에게 공양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우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도 평등하게 공양해야 합니다.”
이어 붓다는 시하 대장군에게 시주(施主)의 다섯 가지 공덕에 대해 설법했다.
“시주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첫째 명예가 널리 퍼지고, 둘째 누구를 만나도 두렵지 않으며, 셋째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넷째 기쁨을 누리며, 다섯째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납니다.”
붓다는 다시 게송으로 시주의 공덕에 대해 강조했다.
베풂은 중생을 위한 복의 그릇이요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이니
누구라도 보시의 공덕을 생각하거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내라.
베풂은 널리 공평하게 하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아야만
베푸는 마음속에서
구제받는 인연을 만나리라.
선과 악은 늘 제 과보를 받는 법
과보는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행한 바를 알려거든
지금 받는 과보로서 알 수 있나니
선행에는 선의 과보가
악행에는 악의 과보가 따르는 법
씨앗을 뿌려 그 열매를 거두듯이
선악의 결과도 그 자신이 거두리라.
즐거운 마음으로 널리 베풀면
뭇 사람의 사랑과 칭찬이 따른다.
어디를 가든 두려울 것이 없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의 베풂은
온갖 나쁜 생각을 멀리 떨쳐 버리고
태어나는 곳곳마다 좋은 곳이리니
모든 하늘이 칭찬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베풂을 하려거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마음을
결코 일으키지 말아야 하리.
붓다는 시하 대장군의 세 번에 걸친 귀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가르침을 받아들일 마음이 갖춰진 것을 꿰뚫어 본 후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했다. 먼저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고 이어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에 대한 공덕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붓다는 마침내 시하 대장군의 마음이 준비가 되었고, 부드러워져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무되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음을 확인한 후, 직접 깨달아 성취한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그것을 끊어내는 길[道]에 대한 가르침을 설했다. 그러자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바르게 잘 염색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든 그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集法卽滅法]’이라는 태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시하 대장군에게 생겼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