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붓다가 까삘라왓투를 떠나고 난 다음, 많은 사끼야 족 젊은이들이 실의에 빠졌다. 그들 중에는 붓다의 제자가 되고자 출가하려고 했지만 부모들에 의해 제지당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난다를 비롯하여 아누룻다, 밧디야, 바구, 데와닷따, 그리고 낌빌라 등 사끼야 족의 왕자들도 출가에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어릴 적부터 싯다르타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여섯 명의 사끼야 족 왕자들은 마치 동산으로 나들이를 가듯, 무리를 지어 까삘라왓투를 출발했다. 국경에 이르자 그들은 자신들이 까삘라왓투를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 이발사 우빨리와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휘장과 보석 등을 떼어 한데 묶어서 우빨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우빨리, 이쯤에서 너는 까삘아왓투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네가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한 재산이 여기 있다. 우리의 탈출을 도와주어서 고맙구나. 너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
“네…,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이별을 하고 까삘라왓투로 되돌아가는 길에 우빨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끼야 족들은 태생적으로 난폭하다. 그들은 크샤트리야 자제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 나에게 분노하고, 나를 처벌할지도 모른다. 많은 재산과 세력을 가진 저 사끼야 크샤트리야들이 가정을 버리고 붓다의 제자가 되기 위해 떠나고 있다. 그들에 비해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더구나 천민 출신인 나는 어떤가? 나는 가진 것도, 버릴 것도 없다. 나야 말로 출가를 결심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나도 저 왕자님들을 따라 거룩한 스승, 붓다의 제자가 되어 수행자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붓다의 상가는 바라문이나 크샤트리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 그 분은 출신 계급이나 이전에 신봉했던 교의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는다고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우빨리는 사끼야 족 젊은이들이 준 꾸러미를 풀어 값진 물건들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혼잣말로 말했다.
‘누구든 가져갈 만한 사람이 가져가겠지!’
그는 다시 발길을 돌려 사끼야 족 크샤트리야들에게 되돌아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다시 돌아온 이발사 우빨리를 보고 그들이 물었다.

 

“아니, 우빨리. 어찌 된 건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왕자님들, 저는 까삘라왓투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돌아가면 당신들의 출가를 도왔다는 이유로 틀림없이 제게 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텐가?” 데와닷따가 물었다.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던 왕자님들도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이렇게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와 같은 미천한 신분의 사람이 뭐가 아쉬워 출가를 망설이겠습니까? 저도 왕자님들을 따라 세존의 상가에 들어가 비구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들께서 허락한다면 붓다를 친견하고 저도 제자로 받아주실 것을 간청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사실 사끼야 족들은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고 모질고 난폭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야. 출가하는 우리를 도왔다는 것을 알면, 자네 목숨이 위태로울 걸세. 좋네. 우리와 함께 가세!” 아난다가 말했다.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 덕에 그들은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말라 족이 사는 아누삐야의 망고 숲에서 머물고 있는 붓다의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붓다는 이발사 우빨리와 동행하고 있는 사끼야 왕실의 청년들을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그들이 크샤트리야의 복장을 벗어버린 것으로 보아 출가할 마음으로 자신을 좇아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왕자들은 붓다의 발아래 경배하고 물러나 앉았다. 이어 아난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출가할 기회를 찾고 있을 때, 세존께서는 서둘러 까삘라왓투를 떠나셨습니다. 저희는 이발사 우빨리의 도움으로 까삘라왓투를 빠져 나왔습니다. 저희 모두 세존의 출가제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들은 이어 가장 먼저 우빨리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민출신 우빨리가 왕자들의 선임자가 되고, 그들은 천민 출신인 우빨리에게 손윗사람의 예를 올림으로써 사끼야 족의 오만함과 지나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붓다는 사끼야 족 왕실 청년들의 이런 태도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다. 사끼야 족 젊은 크샤트리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오만을 극복하고 출신과 지위를 문제 삼지 않는 승가의 일원이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하였으니, 흐뭇하기도 했다. 붓다는 왕자들의 결심을 손윗사람을 공경하는 좋은 일로 여기고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양모 고따미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해냈던 것이다. 붓다가 사끼야 족 왕자들에게 말했다.

 

“손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수행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다툼을 막고 화목하게 한다. 내가 어릴 때 양모께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히말라야 어딘가에 세 친구가 살고 있었다. 메추라기, 원숭이, 그리고 코끼리였다. 그들은 한 그루 보리수 밑에 살고 있었는데, 서로 몹시 무례하고 불경스러웠으며 남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다투기를 일삼았다. 어느 날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어른인지 알게 되면, 그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그의 충고를 따르며 싸우지 않고 살 수 텐데….’ 먼저 메추라기와 원숭이가 코끼리에게 물었다. ‘그대는 얼마나 오래 전 일까지 기억할 수 있는가?’ ‘내가 어렸을 때, 내가 가랑이 사이로 이 나무를 넘어가면 나무 꼭대기가 내 배를 스쳤지.’ 이어 메추라기와 코끼리가 원숭이에게 똑같이 물었다. 원숭이는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땅바닥에 앉아 이 보리수 꼭대기의 새싹을 갉아먹곤 했지.’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메추라기에게 물었다. ‘어느 골짜기에 커다란 보리수가 있었지. 나는 거기서 씨 하나를 먹고 바로 이 자리에 배설했는데, 바로 그 씨에서 이 나무가 나온 거라네.’ 그러자 원숭이와 코끼리가 메추라기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 중에서 가장 어른이십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당신을 어른으로 모시고 존중하며, 당신의 충고를 따르겠습니다.’ 그 뒤 그들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끼야 족 왕자들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붓다가 계속했다.

 

“그러나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도덕적인 행위(戒)와 집중력(定), 지혜(慧)를 갖춘 자라면 그가 손위거나 손아래거나 상위 카스트 출신이거나, 천민 출신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상관없이 마땅히 그를 존경해야 한다.”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스승이시여!” 아난다가 말했다.

 

우빨리에 이어 사끼야 족의 여섯 크샤트리야가 차례로 상가에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붓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수행에 전념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깨달음을 성취한 비구는 밧디야였다. 출가 전 연로한 숫도다나 왕을 대리하여 사끼야 족의 통치 실무를 맡았던 그는 친형인 마하나마에게 사끼야 족의 통치를 맡기고, 절친했던 아누룻다와 의기투합해 출가를 결심한 높은 신분의 왕자였다. 아누룻다의 어머니가 아들의 출가를 말리다가 밧디야가 출가한다면 허락하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밧디야가 출가를 결심하면서 아니룻다도 출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밧디야는 높은 신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부족함 없이 살아왔기 때문인지 출가 비구로 살아가면서도 여유가 넘쳤다. 아무런 염려나 근심도 없었으며, 탁발한 음식과 넝마를 기워 만든 가사를 걸치고 숲 속에서 살아가는 새 삶이 예전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었지만, 그의 생활은 안일해보일 정도로 태평했다. 그러나 근심 걱정 없는 안일한 생활은 그로 하여금 빨리 수행의 궁극적 목표에 이르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생으로부터 큰 공덕을 지은 그였기에 머지않아 점점 그런 감흥이 사라졌고, 곧 생사의 굴레를 벗고 대자유, 해탈을 성취할 수 있었다. 열반의 기쁨을 만끽한 밧디야가 어느 날 숲속 외진 곳에서 홀로 선정에 잠겨 있다가 숲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좋구나! 아, 좋구나!”

 

그러자 함께 정진하던 비구들이 밧디야가 예전의 쾌락에 넘친 생활을 잊지 못하고, 그 때를 회상하며 소리를 치고 있다고 보고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붓다가 밧디야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날 겹겹이 둘러쳐진 높은 성벽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도 편히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인적 없는 나무 아래, 깊은 밤 홀로 있어도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지금의 제가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좋구나, 좋구나 소리쳤던 것입니다.”

 

밧디야의 대답을 들은 붓다는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아라한이 된 밧다야의 성취를 같이 기뻐했다.

 

“그렇다. 밧디야. 나의 법은 실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다. 열반은 실로 안온한 것이다.” 

 

그러나 함께 출가한 왕자들 모두가 밧디야처럼 빠르게 가르침을 이해하고 열반의 기쁨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유독 곱게 자란 아누룻다는 게으르고 나태하기까지 했다. 부유한 그의 부모님은 아누룻다에게 ‘없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만큼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그런 아누룻다에게 숲속 생활은 불결하고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에 태만하고 법문을 듣는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는 아누룻다를 경책하기 위해 붓다는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호되게 꾸짖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아누룻다는 자신의 게으름을 자책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그러나 걱정스러울 만큼 독하게 정진을 이어나갔다. 얼마나 지독하게 수행을 했는지 붓다도 ‘지나친 정진을 삼가라’며 만류했을 정도로 아누룻다의 잠을 자지 않는 정진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극심한 피로와 수면부족으로 아누룻다는 눈에 이상이 생겨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아누룻다는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천인의 눈(天眼)을 얻었으며, 마침내 아라한이 되어 열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어느 날, 떨어진 가사를 손질하던 아누룻다가 벗들에게 외쳤다.

 

“어디 공덕을 짓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어느 분이 저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주시겠습니까?”

 

이 때 말없이 다가와 그 바늘과 실을 받아든 이가 있었다. 붓다였다. 바늘에 실을 꿰어준 사람이 붓다라는 것을 안 아누룻다가 몸 둘 바를 몰라 하자 다정스러운 음성으로 붓다가 말했다.

 

“아누룻다여, 공덕을 짓는데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바로 나이니라.”

 

아누룻다가 아라한과를 성취한 이후 바구와 낌발라도 곧 뒤를 이어 깨달음을 얻었다. 다만 데와닷따와 아난다는 그 뒤에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비구로 남아 있었다. 데와닷따는 붓다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가를 주로 보았다. 그는 붓다를 몹시 좋아했고 어린 시절의 절친한 동무요 사촌이었음에도,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질시의 감정을 버리지 못했고, 그 시기심이 자신의 해탈을 위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방해했다. 아난다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인생고를 벗어나는 수행에 전념하기보다는 붓다의 설법에 매료되어 좀 더 자주 법문을 듣기 위해 줄곧 붓다 곁에 가까이 머물고자 했다. 그는 붓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갔다. 붓다의 법문을 놓치지 않고 경청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왕자 출신 비구들과 함께 출가한 우빨리도 오래지 않아 깨달음을 성취했다. 우빨리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지극한 신심과 자신의 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키워나갔다. 매우 진중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우빨리는 모든 비구들의 모범이 될 만큼 계율을 칼날처럼 지켰다. 거기에 깊은 사려까지 갖춘 그는 계율로 인한 논란이나 마찰이 생겼을 때, 계율을 제정하신 붓다의 뜻을 면밀히 살펴 현명하게 판단해주는 역할을 맡곤 했다. 붓다는 우빨리를 상가의 규율을 제일 잘 알고, 제일 잘 지키는 비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수많은 사끼야 왕실의 젊은 크샤트리야들이 출가할 때 홀로 남아 나라를 책임져야 했던, 아누룻다의 형 마하나마는 숫도다나 왕이 타계한 후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되었고, 붓다와 붓다의 상가에 대한 열렬한 신심으로 까삘라왓투를 방문하는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수행 뒷바라지를 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특히 병든 비구들은 언제든 찾아와 약재를 가져가도록 허용할 만큼 상가를 극진히 공경하고 봉양했다.

 

이교도들을 교화하다
 

붓다가 라자가하에 돌아왔을 때, 그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과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붓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죽림정사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수많은 새로운 출가자들을 받아들였다. 바라문교 지도자들은 마가다 전역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에 당면한 자기네 종교의 운명에 점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자누쏘니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그는 코살라의 유명한 바라문 마을이었던 잇차낭깔라라는 곳 출신이었다. 빠세나디 왕의 궁중제관이었던 덕에 많은 재산을 가진 재가바라문이었다. 그는 늘 그 이전이나 동시대 사람들처럼 그 역사 만물의 본질에 관한 문제에 부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지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누쏘니는 거기에 대한 붓다의 견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붓다가 까삘라왓투에서 돌아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붓다를 찾아와 물었다.

 

“벗이여, 수행자들과 바라문들이 만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물에 대한 그대의 견해는 어떤 것입니까?”

 

붓다는 지난날 친구들과 스승들, 그 밖에 다른 사람들과 벌였던 열띤 토론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최초의 물질, 또는 영원한 자아처럼 ‘어떤 실재’라는 말로 만물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을 상기했다. 붓다는 그것이 경험에 근거할 수 없는 사변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누쏘니 역시 쉽사리 빠져 나올 수 없는 형이상학적 사변의 함정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누쏘니여, 나에게 만물이란 눈과 형상,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피부와 접촉대상, 그리고 두뇌와 개념처럼 감각기관과 거기에 대응하는 감각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그와 같은 경험을 근거로 생각하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눈, 귀, 코, 혀, 그리고 피부에 의존하지 않고 인지하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누쏘니가 물었다.
“어떤 사람은 오감 혹은 육감과 관계없이 인식하고 알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관과 객관의 이원성이 사라진 곳에서 특수한 형태의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식으로 인지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만물의 본질에 관한 그들의 어떤 견해에도 동감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그와 같은 본질이란 경험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벗이여, 이들 수행자와 바라문들은 요가수행의 최고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 그런 식의 인식과 투시 능력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자누쏘니가 따지듯이 말했다.
“자누쏘니, 나는 명상을 통하여 평정된 마음의 최고 단계인 수상멸처(受想滅處), 즉 모든 인식과 감각이 완전히 소멸되는 단계에 이릅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만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보거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그런 식의 인식능력을 주장할 수도 있고, 혹자는 그것을 강하게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어떤 경험도 없는 나로서는 어떤 단정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에 나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세상이 나와 다투기를 원한다고 해도 나는 침묵으로써 세상과 다투지 않습니다.”

 

자누쏘니는 붓다로부터 더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죽림정사를 떠났다. 붓다와 자누쏘니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까짜야나라는 제자가 붓다 앞으로 나아가 질문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만물의 본질에 관한 자누쏘니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견해일까요?”
“이 세상 사람들은 세계에 관한 두 가지 견해, 즉 존재(常, 絶對有)와 무(斷, 絶對無)의 견해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주장하거나 부정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와 암시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그것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을 의미한다. 둘째,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셋째로 그것은 실체 혹은 본질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까짜야나. 이 의미들은 동일한 것인가, 혹은 다른 것인가?”
“그것들은 각기 다릅니다. 스승이시여.” 까짜야나가 대답했다.
“첫 번째 의미로 사용된 존재라는 말을 설명하는 예를 들어볼 수 있겠는가?”
“예, 세존이시여. 눈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눈이라는 시각 대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각대상으로서의 눈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경험에 주어진 사실을 가리켜 존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두 번째로 쓰인 존재라는 말을 설명할 예를 들어보라.”
“그것은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까짜야나가 말했다.
“그렇다. 까짜야나. 그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 경우 철학자들이 하고 있는 것은 존재한다고 단정된 어떤 사물로부터 존재를 추상하는 것이다. 그들은 추상명사 ‘존재’라는 것은 동사 ‘존재한다’로 표현된 어떤 사물을 초월하여 선행하는 ‘실재’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까짜야나, 그대는 사물로부터 ‘존재’를 분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존재라는 것이 존재하는 사물로부터 독립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물로부터 존재를 분리할 수 없고, 존재 그 자체가 언급될 수 없다면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역 혹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말은 완벽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것의 존재가 존재한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 까짜야나. 이것이 곧 옛적 베다 전통의 쁘라자빠띠 빠라메스띤과 같은 성자가 ‘존재가 존재한다’ 또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위의 단언을 거부한 까닭이다. 빠라메스띤이 그렇게 양자택일의 단언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래의 웃달라까 아루니 같은 사람은 ‘존재가 존재한다’고 고집했다. 불행하게도 빠라메스띤은 처음에 그가 피하고자 했던 함정에 빠졌다. 그는 물(水)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두 번째 존재에 관한 언급을 피했지만, 세 번째 존재, 즉 만물의 근원, 실체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위의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까짜야나가 물었다.
“그렇다. 누군가 추상적 의미의 존재를 믿을 때, 그것은 ‘만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가지 모두 영구불멸의 믿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누군가 추상적 의미의 무(無)를 믿을 때도 ‘만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두 절멸의 믿음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원불멸과 절대무의 양극단에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생겨나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물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무를 믿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또한 사물이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불멸을 믿는 것도 잘못이다. 발생하는 사물에 대한 이해는 절대적인 무의 믿음을 물리치고, 사물의 소멸은 영원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지운다. 내가 가르치는 의존적 발생의 원리, 즉 연기의 원리는 이 양극단을 벗어난 중도인 것이다. 까짜야나,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세계에 관한 올바른 견해다.”

 

무리 속에 있던 다른 제자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어떻게 조건에 의지해 발생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으며, 무엇이 우리 지식의 근원입니까?”
“비구들이여, 여기 두 가지 지식이 있다. 경험을 통한 지식과 추론을 통한 지식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 여겨 봄으로써 우리는 발생하는 사물과 그것이 지속되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것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 무언가 생겨날 때, 우리는 주변의 다양한 조건과 영향에 따라 다른 결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소멸도 이와 같다. 이것이 바로 현상에 관한 지식, 경험에 의한 지식이다. 이 세상에 붓다가 태어났건 말았건, 이 사물의 존재양식, 인과의 질서, 이 상호 의존은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 의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희미한 과거와 미래에 관한 추론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비구들이여,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 즉 연기법은 상호 의존해 발생한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누군가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를 이야기할 때, 그는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한 사물로부터 의존적 발생의 원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는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추상적 의미의 존재나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까짜야나에 대한 내 충고는 모순이 되는 것이다.”

 

 

라자가하 부근에 있는 깃자꾸따 산의 기슭에는 바라문들만이 모여 사는 70여 가구 규모의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이들을 귀의시키기 위해서 이 마을을 방문한 붓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위엄이 풍겼고, 눈부신 광채가 풍기고 있었다. 이런 상서로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붓다 주위로 몰려들었다. 붓다는 그들에게 이곳 산중에서 얼마나 살아왔으며, 직업은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지난 30세대 동안 소를 기르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라고 그들이 대답했다. 붓다가 그들의 종교를 묻자 그들은 계절에 따라서 변하는 해와 달, 비와 불을 숭배하고 공희를 바친다고 대답했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함께 모여 망자가 브라흐마의 천국에서 태어남으로써 윤회를 면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설명했다.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무익한 것입니다. 올바른 길은 나를 따르고 진실한 금욕주의자가 되어 니르바나(열반)를 얻기 위한 완전한 자기평정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붓다가 말했다.
“진실을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단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진정한 종교적 전진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것을 진실로 알고 부정(不正)한 것을 부정으로 생각하는 자세야말로 완벽한 올바름이며 진정한 공덕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인생 도처에 죽음이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은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생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한다면, 종교적 진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붓다로부터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들은 칠십 명의 바라문들은 즉석에서 사문(沙門), 즉 붓다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붓다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은 즉시 머리를 깎고 제자의 모습으로 붓다 앞에 다시 섰다. 이들은 붓다의 정사를 향해 출발했다. 길을 가는 그들은 집에 남아 있는 처자들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데다가 장대 같은 비가 갈 길을 막자 더욱 더 심란해졌다. 마침 길가에 십여 채의 집이 있어 그들은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한 집에 들어갔는데, 천정에서 빗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붓다는 이를 두고 새롭게 제자가 된 70명의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붕이 튼실하지 못하면 빗물이 새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주의 깊게 억제하지 않으면, 정욕이 우리의 모든 좋은 결심에 구멍을 뚫는 법이다. 그러나 지붕이 튼실하면 빗물이 새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 그런 욕망이 생기지도 않고 번뇌에 빠지지도 않는다.”
붓다의 말씀을 들은 칠십 명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집착을 힐책해야 한다고 확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길을 걸었다.
도중에 길가에서 냄새나는 꾸러미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자 붓다가 일행의 주의를 환기시킨 뒤에 꾸러미 속을 살펴보고 생선 내장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마디 했다.  
“저급하고 열등한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악취 나는 물건을 취급해야 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에 나쁜 냄새가 밴다. 나쁜 것만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은 마지막에는 이유도 모른 채 파멸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어진 것을 가까이 하는 현자는 향기 나는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의 몸에 달콤한 향기가 배어드는 것처럼 어진 성질을 가지게 된다. 지혜를 넓히고 덕을 쌓는 사람은 완성의 길로 나아가면서 만족을 얻게 된다.”
붓다의 말씀을 들은 칠십 명의 바라문들은 집과 쾌락에 대한 미련은 오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고 계속 길을 걸어 붓다의 상가에 도착했고, 이후 정진을 거듭해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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