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빨라 나무아래 길상초를 깔고…
최후의 승부! 싯다르타는 문득 벼랑 끝 승부를 떠올렸다. 그로서는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최후의 승부를 거는 것밖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거듭 마음을 다잡았다. 출가한지 6년이 지나도록 얻고자 하는 길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부담도 없지 않았다.
비장한 결심을 굳힌 싯다르타는 마지막 승부를 걸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한참을 살피던 싯다르타의 시야에 둥게스와리를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자락(前正覺山)을 들어왔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높은 언덕이라고 해도 좋을 크기였다. 싯다르타는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향해 걸어갔다. 산 입구에 도착해 산을 올려다 본 싯다르타는 곧 정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산 중턱쯤에 작은 굴이 있었다. 굴 주위를 둘러본 싯다르타는 굴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대낮인데도 굴 안은 어둠컴컴했다. 제법 깊은 굴이어서 햇볕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굴 안은 비바람을 피하는 데는 아주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정진을 하는데 불편할 정도로 비좁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색과 사려와 통찰을 갖추기 위한 수행의 장소로는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어둡고, 갇힌 장소는 고행이나 대상에 몰두하는 집중에는 적합할 수도 있겠으나 통찰의 지혜를 발현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장애가 많을 것이다. 이곳은 아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싯다르타는 먼동이 트자 지체 없이 굴에서 나와 산을 내려왔다.
산 기스락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가를 향해 걸어갔다. 강 건너 서쪽 동산에 쾌적해 보이는 장소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동산의 한 복판에는 가지를 늘어뜨린 장엄한 아자빨라 나무가 짙은 잎사귀를 드리우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제법 넓적한 이파리들은 산뜻한 공기와 충분한 그늘을 제공할 것이었다. 아름답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즐겁게 날아다니며 제각각의 목청으로 지저귀고 있었다. 지난밤에 머물렀던 동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한 기운과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또한 우루벨라 까싸빠가 이끄는 불 숭배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장소로부터도 제법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이기도 했다.
‘저곳이 좋겠다.’ 그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가로질러 건널 만했기 때문이다. 강물이 제법 세차게 흐르고 있었지만 강바닥의 모래는 부드러웠다.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로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는 모래들이 그의 두 발을 간지럽게 했다. 강물의 중간쯤에 멈춰선 싯다르타는 발바닥에 힘을 모아서 곧바로 선 채 생각했다.
‘생명 없는 바리때와 다르게 나는 의지를 가지고 이 강을 건너간다. 시류나 관습에 따라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더 가치가 클 것이다. 그렇다. 떠내려가지 않고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삶, 그런 삶이야말로 바로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바리때를 그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것이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바리때와 같은 삶, 이것이 바로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다.’
강을 건넌 싯다르타는 아자빨라 나무가 있는 동산의 숲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숲으로 향하는 길에 싯다르타는 솟티야라는 이름의 소년 목동과 마주쳤다. 쏫티야는 고행을 끝낸 후 핍빨라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든 싯다르타의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이미 마음속으로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던 소년 목동이었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쏫티야는 향긋하고 싱싱한 길상초를 한 다발 베어와 싯다르타에게 건넸다.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 앉아서 수행할 때 깔개로 사용해달라는 의미였다. 솟티야을 향해 밝은 미소로 고마움을 전한 싯다르타는 아자빨라 나무 아래로 다가가 길상초를 깔고 나무를 등진 채 동쪽을 향해 앉았다.
싯다르타는 먼저 가정과 조국을 버리고 까삘라왓투를 떠난 뒤 6년 동안 이어왔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나에게 선정수행을 가르쳐 준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가르침은 염오, 탐욕의 빛바램,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의 일곱 가지 증득의 법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네 가지 도[사성제]에 대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을 실현하는 것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이것은 6만겁의 수명을 가진 무소유처에 태어나 그 만큼만 살고 그 이상은 살 수 없다. 그 기간이 다하면 그곳에서 죽어 더 낮은 세계로 돌아온다. 그가 이르는 그곳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염라대왕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이어 웃다까 라마뿟따 선인에게서 수행했던 때를 떠올렸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혜의 달인이 아니면서도 지혜의 달인이라고 말하고, 일체승자가 아니면서도 일체승자라고 말하고, 종기의 뿌리를 파내지 못했으면서도 종기의 뿌리를 파내었다고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를 체득한 나를 스승의 위치에 올려놓고 공경하며 함께 하자고 권하였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법은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싯다르타는 다시 고행을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과거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어떠한 격렬하고 괴롭고 혹독하고 사무치고 호된 느낌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가장 지독한 것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미래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어떠한 격렬하고 괴롭고 혹독하고 사무치고 호된 느낌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가장 지독한 것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극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지 못했다.’
그때 문득 싯다르타에게 늘 마음속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랐다. 그러자 까삘라왓투를 떠나올 때 룸비니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다짐했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다시금 그의 얼굴에 강한 신념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릴 적 농경제 의식이 거행될 때 나는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했던 그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 이제 이 자리에서 나의 육체가 소멸되어도 좋다. 어느 시대 그 누구도 얻지 못했고, 지극히 얻기 어려운 완전한 지혜(一切智)를 얻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실로 웅대한 결심이요, 엄청난 시도였다. 길상초를 깔고 아자빨라 나무를 등지고 자리에 앉은 그의 전신이 마치 지진에 흔들리는 대지처럼 부들부들 전율하고 있었다.
대각(大覺)
싯다르타는 먼저 집중력과 통찰력을 향상시켜야 했다. 인간의 생사를 둘러싸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헤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집중력이 뒷받침된 통찰의 지혜가 갖춰져야 하고, 그럴 때 비로소 해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내 깊은 사색에 잠겼다.
싯다르타는 의도적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들과 해로운 법들을 떨쳐 냈다. 그리고는 들숨날숨의 호흡을 관찰하면서(아나빠나싸띠 수행) 일어나는 사유(Vitakka)와 지속적인 생각, 즉 숙고(Vicara)와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심일경성(삼매)을 성취했고, 그러자 모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떨어져나가면서 희열(Piti)과 육체적 즐거움(Sukkha)이 뚜렷하게 나타난 초선(初禪)에 머물렀다. 싯다르타는 곧 초선정에서 나와(출정),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 보면서 몸과 마음의 모든 대상들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생멸]의 현상을 보며 무상(無常)과 고를 보았고, 무아를 보았다. 이러한 희열과 즐거움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싯다르타의 마음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호흡이 미세해지고 호흡이 끊어지기 직전의 단계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사실상 사라진 상태에 이르면서 사유와 숙고를 가라앉힌 싯다르타는 다시 마음을 관찰하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사유)과 지속적 고찰(숙고)은 없고 삼매(심일경성)에서 생겨난 희열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싯다르타는 곧 제2선정에서 나와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아주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무상, 고, 무아를 보았고, 염오와 이욕의 마음을 냈다. 이러한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싯다르타의 마음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싯다르타는 제2선에서 느꼈던 희열의 상태를 떠나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 正知],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며 동시에 바른 삼매가 있는 제3선을 구족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싯다르타는 곧 제3선정에서 나와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무상, 고, 무아, 염오와 이욕를 보았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과 바른 삼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싯다르타의 마음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싯다르타는 즐거움과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Upekkha)으로 인해 알아차림이 선명하여 바른 삼매가 확연한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물렀다. 싯다르타는 곧 제4선정에서 나와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무상, 고, 무아를 보았고, 염오와 이욕의 경지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에게 이러한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싯다르타의 마음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싯다르타가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서 체험한 4가지의 선[4種禪]은 각각의 성향과 지향에 따라 삼매를 성취하기 위한 심일경성이 되고, 통찰지를 이루기 위한 위빠사나의 기초가 되며, 신통지의 기초 및 상수멸(멸진정)에 들어가 소멸을 이루기 위한 기초가 되며,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려는 등 존재의 승격을 위한 토대였다.
날은 저물어 주위에 어둠이 드리워질 무렵(초야), 출정해서 마음을 관찰하던 싯다르타는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숙명통(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냈다. 스스로의 전생을 꿰뚫어 아는 명지(明知)를 증득한 것이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싯다르타에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다.
이윽고 중야(中夜)에 이르렀을 때, 싯다르타는 다시 마음이 집중하여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일체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천안통(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에 가고 나쁜 곳(악처)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원인과 결과의 엄중한 법칙을 꿰뚫어 알았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아주 나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악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선처],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싯다르타는 천안통을 통해 이처럼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알았다. 이것이 싯다르타가 중야에 증득한 두 번째 명지였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싯다르타에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다.
밤이 깊어 막바지[후야(後夜)]에 이르렀을 때, 싯다르타는 마음을 집중하여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누진통(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그때 싯다르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또한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이 때 싯다르타는 염오와 이욕의 마음을 내었고, 해탈을 이루면서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싯다르타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여기에서 싯다르타는 사다함의 경지를 이루어냈다. 이어 싯다르타는 탐하는 마음, 분노의 마음을 다 떨쳐버림으로써 아나함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밤의 삼경(三更)에 이와 같은 경지를 증득한 싯다르타는 방일하지 않고 더 치열하게 스스로를 독려했다. 마치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듯이, 그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었다.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신묘한 능력을 통해 싯다르타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성향을 결정짓는가를 보았다. 그러한 성향에 따라 선택되고 형성된 것들은 결국 불만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마침내 인간들을 실망과 괴로움, 좌절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한 어떻게 하면 이들 좋은 것과 싫은 것, 즉 갈망과 증오심을 제거하고, 성향의 평정, 곧 완전한 해탈로 향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이런 것들을 명료하게 꿰뚫어 봄으로써 그는 자신의 성향을 평정할 굳은 결의를 다졌다. 탐욕과 증오와 무지가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이 생겨나자 거의 자동적으로 모든 번뇌가 싯다르타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무명(無明)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길 없는 삶과 죽음의 간극을 뛰어넘었다. 싯다르타는 여기에서 알아차림의 밀도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더욱 세밀하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꿰뚫어 반조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미세한 어리석음까지 모두 다 극복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궁극의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이다.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자 존재에 기인한 번뇌[유루(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이렇게 마음의 해탈을 이루었을 때, 그에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게 되었다. 드디어 무명과 집착과 혐오와 미혹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이생에서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해탈임을 알았다. 다른 식의 해탈이란 단지 바람이거나 구체적인 것이 아니었음이 명징하게 드러났다. 일체의 탐욕이 사라졌음으로 내생의 원인 또한 제거되었다. 고통의 수레바퀴와 같은 삶의 순환은 완전하게 멈췄다. 싯다르타는 수행의 궁극에 도달했으며 더 이상 찾아야 될 것이 없음을 알았다.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며 떠나왔고, 조국을 등지면서까지 찾아 나선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까빨라왓투를 떠나온 지 6년만의 일이었으며, 생사를 걸고 아자빨라 나무 아래 앉은 지 꼭 18시간이 지난 뒤였다. 동트기 전, 어둠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가만히 눈을 떠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동쪽 하늘에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룬 뒤에도 싯다르타는 몇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스스로 이룬 최상의 지혜와 해탈을 이뤄냈다는 법열(法悅)을 한껏 누리는 중이었다. 법열은 그의 몸 전체에 스미어 마치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상서로운 기운을 발산했다.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은 야생화들의 달콤한 향기와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그리고 새 생명과 어우러지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일깨우고 있었다.
고따마 싯다르타! 그가 드디어 ‘붓다’가 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깨달음을 완성한 싯다르타, 아니 붓다는 드디어 위대한 승리의 게송을 읊었다. 그가 해탈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삼라만상은 제각각 온몸을 흔들며 환희 충만한 찬탄을 보냈다.
집(個體, 몸) 짓는 이(갈애)를 찾아내려고,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태어남과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
너의 모든 서까래(번뇌)는 부서지고
마룻대(上梁, 무지) 또한 부러졌도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지 않은 것(열반)을 이루었네.
온갖 갈애 다 끝내어 버렸네.
해탈의 즐거움, 그리고…
붓다는 깨달음을 성취한 후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 그대로 앉아 열반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의 해탈을 도운 나무의 이름은 더 이상 아자빨라가 아니었다. 붓다의 위대한 깨달음을 돕고 지켜본 위대한 나무, 그 이름은 이제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菩提樹)가 되었다.
무상법열을 누린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초저녁에 그는 오로지 한 자세로 앉아 깊은 선정에 들어 연기(緣起)를 발생하는 대로 명료하게 살폈다. 둑카(dukkha), 즉 괴로움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한 사유와 숙고였다. 그는 고통이 오염된 견해에 바탕을 둔 기질적 경향과 즐거움을 최대한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탐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보았다. 즉 존재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견해가 곧 고통의 원인이며 감각적 욕망이 곧 고통의 뿌리임을 깨달았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성향을 결정짓는지를 명백히 보았다. 그러한 성향에 따라 선택되고 형성된 것들은 결국 불만족이요 불안일 수밖에 없으며, 마침내 실망, 괴로움, 빈곤, 좌절로 귀결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붓다는 깊은 사유 끝에 존재의 생명 순환을 열두 가지 연결고리로 정리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생김과 더불어 저것이 생긴다. 즉, 무지(無明)가 있음을 조건으로 하여 의지에 의한 형성 작용(업 지음, 行)이 일어나고, 이 의지에 의한 형성 작용을 조건으로 재생식(識)이 일어나고, 식을 조건으로 몸과 마음의 결합(名色)이 일어나고, 몸과 마음의 결합을 조건으로 눈‧귀‧코‧혀‧몸‧마음 등 여섯 개의 감각기관(六入, 육처)이 생겨나고,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조건으로 접촉(觸)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일어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다시 태어나 존재하고자 하는 본능적 경향성(有)이 일어나고, 이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일어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老死)가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고의 무더기(苦蘊) 전부가 생겨난다.’
싯다르타는 또한 역(逆)으로 연기를 명료하게 살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있게 되지 않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즉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 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 작용이 멸하면 재생식이 멸하고, 재생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처가 멸하고, 육처가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존재하고자 하는 성향이 멸하고,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죽음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모든 고의 무더기 전부가 멸하게 된다.’
싯다르타는 그날 새벽녘에 다시 연기를 순(順)과 역(逆) 양면으로 살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게 된다. 이것이 생기면 더불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있게 되지 않는다. 이것의 멸함과 더불어 저것이 멸한다. 즉 무지를 조건으로 하여 의지의 형성 작용이 있고, 이 의지의 형성 작용을 조건으로 하여 식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하여 육처가 있고, 육처를 조건으로 하여 접촉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집착이 있고, 집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죽음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있게 된다. 이리하여 고의 무더기 전부가 생겨난다.’
‘무지의 완전한 멸과 더불어 의지의 형성 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 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처가 멸하고, 육처가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멸하고, 존재하고자 하는 성향이 멸하면 태어남도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죽음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 전부가 멸한다.’
이제 그는 과거의 크샤트리야 출신 싯다르타가 아니었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의 세계는 어둡고 부조화된 세계가 아니라 밝고 조화로운 완전한 세계, 그 자체였다! 붓다의 얼굴에 커다란 광명이 나타났다. 그 빛은 광대무변하게 방사되어 하늘도, 땅도, 산천도, 초목도, 사람도, 금수도, 귀신도 새로운 기쁨으로 탄생시키는 듯했다.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 붓다로의 재탄생이었다.
해탈의 기쁨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그곳에서 7일 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은 사마디(삼매)에 들어 해탈의 기쁨을 누렸다. 마지막 밤이 끝날 무렵, 붓다는 고통의 원인인 의존적 발생의 원리, 즉 연기를 다시 복습했다.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 또한 존재한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 또한 생긴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 또한 소멸한다.
모든 편견을 지워버린 그의 눈에는 삼라만상은 서로 기대고 의존하며 생멸하는, 명확하게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유기적 관계였다.
첫 일주일이 지난 후, 붓다는 염소지기의 반얀나무 아래로 옮겨 다시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며 사마디에 잠겼다. 그때 한 교만한 바라문이 <베다>의 시구를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길을 가다가 붓다를 보더니 안부를 물은 후 물었다.
“사문이여, 그대는 어떻게 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시오? 어떤 수행을 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시오?”
붓다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혼잣말로 대답했다.
“바라문은 죄악을 멀리하고, 마음이 교만하지 않다. 때가 없이 자제하고, <베다>에 정통하며 청정한 수행을 완성한다. 바라문이란 그런 사람들 두고 하는 말이니, 그에게 세상 어디엔들 교만함이 있겠는가?”
붓다는 모든 것을 비웃는 버릇이 있는 이 바라문에 진정한 바라문의 모습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꾸짖음을 대신했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은 “흥!”하고 코웃음을 친 뒤 떠나갔다.
붓다는 이번에는 무짜린다 반얀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며 사마디(선정)에 잠겼다. 하루는 철도 아닌데 기온이 내려가 바람이 불고 큰 구름이 일면서 이레 동안 비가 계속 내렸다. 그때 나무에 의지해 살던 무짜린다 코브라가 나타나 붓다의 몸을 일곱 번 감고 커다란 머리를 쳐들어 말하길 “결코 추위, 더위, 모기, 전갈, 바람, 열기, 뱀도 붓다를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붓다는 물로 입을 헹구고 얼굴을 씻은 후, 다시 자리를 옮겨 7일 동안 염소지기의 반얀나무 아래 앉았다. 그때 욱깔라촌에서 온 뿟까리왓띠 출신의 상인 따뿟사와 발리까 두 사람이 소 수레에 물건을 싣고 근처를 지나다가 숲속 나무 아래 햇빛처럼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 성자를 보았다. 두 상인은 양식으로 준비한 곡물가루와 꿀을 존경의 뜻으로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저희가 올리는 공양물을 받으소서.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저희 형제를 당신의 신도로 받아주소서.”
붓다가 이를 허락하니 이들이 붓다(佛)와 가르침(法)의 두 보배에 귀의한 최초의 재가자가 되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