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
결혼 후 싯다르타와 까삘라와의 만남은 현저하게 뜸해졌다. 까삘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를 쉽게 만날 수 없게 된 것이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까삘라는 싯다르타와 나누었던 지적인 대화의 시간이 그리웠다. 나라닷따도 있었지만 그는 유물론자였다. 왠지 그와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통할 친구를 찾던 까삘라에게 야즈냐발캬의 영향을 받은 샨딜리아라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샨딜리아는 남부에서 공부했으므로 일찍이 야즈냐발캬의 사상과 접할 수 있었다. 샨딜리아의 관심은 무엇보다 야즈냐발캬가 열정을 가지고 제창한 개아(個我, 아트만)과 우주아(宇宙我, 브라흐만)의 합일 문제였다. 샨딜리아는 지적 욕구에 만족하지 않고, 나와 우주가 하나로 합일되는 경지를 직접 체험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는 까삘라왓투와 인접한 숲 속에 작은 초암을 짓고, 그곳에서 명상하며 여러 달을 보냈다.
오래지 않아 까삘라는 샨딜리아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과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궁극적인 실재’에 관한 문제에서 심각한 대립을 보였다. 까삘라는 탁카실라에 있을 때 배운 상캬의 이원론을 체계적인 철학으로 전개해왔다. 그러나 샨딜리아는 지적 완전성보다는 요가수련에 더 몰두했다. 그는 명상과 요가수행을 통해서 초자아의 실재를 경험하고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원성을 부정하고 초자아를 설명하는 야즈냐발캬의 방법에 매료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까삘라와 샨딜리아는 이원성과 일원성의 문제를 놓고 여러 시간씩 논쟁을 벌이곤 했다.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
샨딜리아에 관한 소식은 머지않아 싯다르타에게도 전해졌다. 까삘라로부터 샨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싯다르타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신혼인 그의 입장으로 당장 만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까삘라가 샨딜리아와 함께 싯다르타를 찾아왔다. 그들이 숫도다나의 궁전에 도착했을 때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가장 반가워할 손님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친구들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잠깐 사이에 싯다르타는 샨딜리아에 매료됐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줄 아는 매우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특히 싯다르타는 샨딜리아가 이야기하는 요가수행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요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요가 수련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무엇에 관하여 명상하며 또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싯다르타의 잇따른 질문에 샨딜리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첫째,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수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은 역시 숲 속이 제일입니다.”
싯다르타는 바라문 전통의 권위나 정당성에 대해 동감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바라문들의 주장에는 상당부분 명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상수행을 위해 반드시 숲 속에 은거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가정생활과 명상수행을 병행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경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숲속 암자는 수준 높은 명상을 하는데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거기에서는 사회와 가족과 관련된 이런저런 장애들과 얽힐 필요가 없습니다. 세속에 머물다 보면 부득이하게 걸리는 게 많습니다. 관례와 전통을 따르고, 사회생활을 계속하는 한 거기서 자신을 격리시키고 남들의 뜻을 거스를 여유를 찾기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숲속 은둔처는 다릅니다. 숲은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기에 보다 쉽게 높은 경지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샨딜리아의 친절한 답변에도 싯다르타는 흔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문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4기설, 즉 베다를 배우고, 가장이 되며, 은둔생활을 하고, 모든 세속적 관심을 버리는 일종의 관행이 크샤트리야들의 참여로 인기를 얻고 있는 출가수행 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바라문 사제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고행승이나 방랑자들 같은 사문들도 바라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탐구하는 수행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수행을 위한 나이 제한 같은 것은 없었다. 이들 비(非)바라문 출신 고행승과 방랑자들이 구도행렬에 합류해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서 바라문들이 독점했던 권위도 잠식되기 시작했다.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바라문 사제들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인생의 4기설은 희생의식과 헌납의 가치를 강조하는 바라문교에 대한 출가 수행자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바라문 사제들이 고안해낸 고육지책이었다.
그들은 남녀 모두 가능한 한 오래 가정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들이 주재하는 종교의식을 행하도록 부추길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결국 사람들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영원히 가두려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다소나마 젊은 크샤트리야들이 이처럼 바라문 전통을 무시하고 그들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은 이들 진리를 추구하는 무리에 낄 수 없는 처지였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도 좀처럼 아기를 갖지 못했던 야소다라가 드디어 임신 중이었고, 싯다르타는 남편이자 뱃속 아기의 아버지로서 그 곁을 지켜야 했다.
명상수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샨딜리아는 왜 그런 수행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지와 무지는 빛과 어둠처럼 상반된 개념입니다. 어두운 곳은 빛이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무지 때문에 의혹에 빠집니다. 반면 지혜는 확신을 줍니다. 지혜는 불멸을 이루게 하지만, 무지는 죽음으로 이끕니다.”
“지와 무지 모두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부위가 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무지는 어디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싯다르타가 물었다.
“무지는 인간의 신체와 감각에 관련되어 있으며, 지는 성스러운 영혼, 혹은 자아(아트만)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생명은 곧 이 영혼의 호흡입니다. 지성은 영혼의 몸이며, 영혼의 형체는 빛입니다. 마음은 영혼의 눈이요, 영혼은 또한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주인입니다. 그것은 마치 외로운 백조와도 같습니다. 잠자는 동안 그는 육체의 조롱을 떠나, 가고 싶은 대로 떠돌며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다가 잠이 다했을 때 다시 육체의 제약 속으로 돌아옵니다.”
“그건 마치 우리가 꿈꾸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신령스런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꿈을 꾸는 동안 영혼이 신체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꿈이 다 기쁘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분 좋은 꿈도 있지만 싫은 꿈도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꿈꾸는 상태가 영혼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그것은 다만 중간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진정한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언제입니까?”
“꿈 없는 잠 속에서입니다. 꿈이 끝나고 나서부터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중간 상태입니다. 그때 영혼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망상과 두려움, 고통이 없는 상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완벽하고 평온하게 됩니다. 그것이 불이(不二), 즉 합일상태에 머뭅니다. 이러한 합일을 이룸으로써 영혼은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사유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제 목소리를 듣고, 제 향기를 맡으며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곧 영원불변하는 영적인 자아입니다.”
“죽음에 이르러 육체가 파괴되고 난 뒤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만약 영혼이 완전히 해탈하지 못했다면 죽은 뒤 다른 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꿈속에서 또는 꿈 없는 잠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봅시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영혼은 완전히 결박되어 몸속에 있습니다. 꿈꾸는 상태에서는 약간 자유롭게 되지만 아직 조잡한 물질적 존재의 복제판인 형상과 관계하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상태에서 잠시 진정한 본성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영혼은 아직도 신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꿈 없는 수면상태에 들어갔다가 깨어나면 영혼은 다시 속박으로 되돌아갑니다. 죽음은 마치 꿈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영혼은 육체로부터 벗어나 꿈속에서처럼 떠돌다가 다시 다른 육체에 자신을 정착시킵니다. 이와 같은 방황과 다른 육체에 재정착하는 사이에 꿈 없는 잠과 같은 상태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완전히 해탈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상태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은 만약 완전히 해탈한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육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 영혼은 다른 발판을 찾지 않습니다. 어떤 육체에도 집착함 없이 밝고 기쁨에 넘치는 경지에 머물게 됩니다. 영원불멸에 이른 것입니다. 그것은 무한하며 변화하지 않습니다. 바로 브라흐마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열띤 대화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싯다르타는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흥분해가고 있었다. 처음 야즈냐발캬의 가르침에 대해 들었을 때, 싯다르타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유물론자인 나라닷따를 통해 야즈냐발캬의 주장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샨딜리아의 설명에 따르면 야즈냐발캬의 사상은 기존의 사상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그리고 샨딜리아는 단순한 비평가나 사변적인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경험으로 실증해오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영혼을 완전한 해탈로 이끄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명상을 하는 목적입니다. 나는 명상을 위해 자주 숲으로 갑니다. 명상이야말로 해탈과 불멸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음은 감각에 의해 이리저리 흐트러집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감각은 멋대로 뛰어다니는 말과도 같습니다. 수행자는 훌륭한 마부처럼 감각을 풀어놓지 않고 제어해야 합니다. 마음은 꿈속에서처럼 그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단순한 형상의 세계에 우리를 묶어놓습니다. 수행자는 깊은 집중을 통해서 형상의 한계를 부수고 무형의 세계, 즉 무색계(無色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무색계에서 모든 한계가 파괴되고 완전한 평온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곧 선(善)과 악(惡), 정(正)과 사(邪)를 초월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무형의 영역을 끊임없이 늘려나감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우리 생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수행생활에 대한 샨딜리아의 설명에 매료되었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 수행과 영적인 생활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토론할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몹시 아쉬울 정도였다.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말들이 매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언젠가 샨딜리아의 숲 속 암자에 가 보아야겠다. 하지만, 야소다라의 허락이 있어야겠지.’
샨딜리아의 암자를 찾다
샨딜리아의 암자를 방문하는 날이 밝았다. 싯다르타는 까삘라와 함께 성 외곽의 숲 속에 있는 암자에 가기 위해 말에 올랐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그곳에 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아기까지 가진 자신을 버려두고 싯다르타가 출가생활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따라서 불안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싯다르타는 집을 나서며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일찍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야소다라는 발코니에 올라가 말을 몰아 달리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거실로 돌아와 안락의자에 앉아서 곧 낳게 될 아기가 입을 옷가지를 준비했다. 그녀는 작고 앙증맞은 아기의 옷가지를 사랑스러운 손길로 매만지며 싯다르타를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가정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크샤트리야의 신앙과 신뢰감을 이용하는 바라문 사제들의 수법이나, 주민들을 착취하는 크샤트리야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을 축적한 부유한 상인들에게 관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공예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재능과 기예를 이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골의 어린아이들과 도회지의 가난한 천민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싯다르타에게 그들은 숲 속의 아름다운 꽃과 같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각별한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진리와 정의에 관한 의문이 늘 그를 맴돌고 있다.’
이어 야소다라는 그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싯다르타는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언젠가 싯다르타는 가정생활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아니 당분간은 그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당장 나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야소다라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시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거실로 들어왔다. 일찍이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결혼을 반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씩 야소다라에게 친근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싯다르타가 태평한 젊은이에서 책임감 있는 남편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거의 모든 시간을 야소다라와 함께 보내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가, 어떠냐? 건강은 좋으냐?”
“네, 아버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며 야소다라가 대답했다.
“아니다.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있거라. 그런데 싯다르타는 어디 있지?”
“까삘라와 함께 나갔어요. 친구가 명상하는 암자에 갔어요. 일찍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큰 염려는 마세요.”
순간 숫도다나 왕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놀란 얼굴은 이내 창백해졌다. 그는 마룻바닥에 깔린 아름다운 양탄자가 뚫어져라 바닥을 응시했다. 시아버지의 무거운 침묵에 야소다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숫도다나 왕이 몹시 흥분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잠시 후 숫도다나 왕이 물었다.
“태자가 암자에 간다는데도 그대로 두었다는 말이냐?”
“굳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아가야,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아버님, 어떤 경우에도 싯다르타가 저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저를 사랑하고 있고, 또 제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싯다르타가 한 평생을 저와 함께 지내리라고 기대하진 않아요. 언젠가 그는 진리를 찾아 가정생활을 버리게 되겠지만, 그 또한 바라문 사제들이 권하는 이상적인 삶이 아닌가요?”
숫도다나 왕은 며느리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종교 고문이 권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싯다르타가 크샤트리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정에 머물기를 바랐다.
“매일 악사와 무희들이 오는 것을 싯다르타가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싯다르타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 그들을 보내겠다. 그리 알거라.”
사끼야 왕국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을 춤추고 노래하게 함으로써 싯다르타의 태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 숫도다나 왕이 야소다라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만약 밤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싯다르타는 분명히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거예요. 그건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그네들이 공연을 끝낸 다음 완전히 취해 발가벗은 채 마룻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것을 염오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어요. 악사와 무희들을 부르는 것은 그를 화나게 만들 뿐이에요. 아버님, 제발 서둘러서 싯다르타를 쫓아내지 말아주세요. 제게서 그를 서둘러 떠나가게 할 일은 만들지 말아주세요.” 야소다라가 애원했다.
며느리의 간청을 듣고서야 숫도다나 왕은 자신의 생각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야소다라의 말이 옳다. 싯다르타는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야소다라는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알고 있다. 이제 그녀의 말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시 야소다라는 대단한 용기와 지혜를 가진 여자였구나.’
이날 이후 며느리에 대한 숫도다나 왕의 사랑과 신뢰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야소다라에게 다가가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야소다라, 부디 몸조심하거라.”
숫도다나 왕은 한 마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거실을 빠져 나갔다. 야소다라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숫도다나 왕이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의 뒤를 이어 사끼야 왕국의 통치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싯다르타가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된다면, 통치자로서 하지 않으면 안 될 모든 일들을 관대하게 다룰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싯다르타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이처럼 지극했고 세심했다. 싯다르타가 한 순간이라도 불행해지는 것을 그녀는 원하지 않았다. 싯다르타의 불행과 고통은 곧 그녀의 불행과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에는 싯다르타를 위해서 자신의 행복까지 희생할 각오가 자라나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야소다라는 이마에 따스한 입술이 닿고 있음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싯다르타를 발견한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돌아누워 한쪽 팔로 싯다르타의 목을 껴안고 바짝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적당한 은둔처를 찾으셨나요?”
“아니! 당분간 내 은둔처는 바로 여기요.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걸요.”
라훌라, 방해자!
야소다라의 출산일이 가까워지면서 싯다르타도 남편으로 담당해야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산일이 임박하자 숫도다나 왕에 의해 몇 명의 경험 많은 산파가 초대되었다. 산파들은 궁중에 머물며 곧 다가올 출산을 대비했다. 오래지 않아 야소다라의 산통이 시작되었다. 고통의 강도가 더해가면서 야소다라는 해산을 위해 마련된 방으로 옮겨졌다. 그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싯다르타에게는 시간이 흐름과 비례해 커지는 불안이 밀려왔다.
“아~악!”
얼마 후,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의 숨 막힐 듯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의 모든 신경이 산방으로 집중됐다. 불안해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이리저리 방안을 좌우로 오갔다. 금세 피로감이 밀려와 자리로 돌아왔지만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앉았다가 일어나 서성대다가 다시 앉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순간, 싯다르타의 머릿속에 기억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를 낳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나의 어머니도 나를 낳으실 때 이런 고통을 겪으셨겠지!’
싯다르타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그에게는 그리움이자 미안함의 대상이었다. 그 어머니가, 지금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낳는 그 순간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끝없는 번민 가운데 하나였다. 갑자기 야소다라의 통증을 호소하는 소리가 멈춰지고 적막이 흘렀다. 싯다르타의 심장도 일순 고동을 멈췄다. 순간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으아 앙~.”
이윽고 원기 왕성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생명이 세상에 등장했음을 알리는 생명의 소리였다. 싯다르타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야소다라의 방에서 나와 싯다르타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고따미였다.
“태자, 네가 드디어 아주 잘생긴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구나. 축하한다.”
싯다르타는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이 모든 경험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는 한동안 고따미를 쳐다보다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따미는 그것이 억지웃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 이제 덕 높은 바라문 사제들과 상의해서 좋은 이름을 지어야겠지. 물론 상서로운 첫 자로 시작하는 이름으로.” 고따미가 말했다. 싯다르타도 고개를 끄떡여 동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향해 반문했다.
‘반드시 바라문을 불러 이름을 지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바라문 사제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속되어온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어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기들에게 상서로운 음절로 시작되는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기가 해를 입게 된다고 말한다. 어쩌다가 우리의 삶이 이런 근거 없는 미신과 관습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된 것인가. 언제나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문제로 고심하는 것보다 야소다라와 아기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었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을 보기위해 싯다르타는 저녁 무렵까지 기다려야 했다. 실로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찰나가 하루처럼 길었다.
‘야소다라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왜 그녀는 그런 고통과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아기를 낳기 위해 이토록 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아기를 낳는 기쁨을 위해 그만한 고통은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런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이 순간 야소다라를 위해,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에 좌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야소다라의 방에 들어선 싯다르타가 본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는 야소다라가 창백한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아기를 낳기 위해 여러 시간 동안 극심한 산고를 겪었다. 그러나 그녀의 침대로 다가갔을 때, 그는 야소다라의 얼굴과 눈빛이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밝게 피어나고 있었다. 싯다르타에게 이 모습은 낯선 풍경처럼 다가왔다. 아기는 그녀 곁에서 하얀 담요에 싸여 순결한 얼굴을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다. 싯다르타는 산모와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번갈아 들여다 본 뒤 침대를 돌아 야소다라의 오른쪽에 앉았다. 손가락으로 야소다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괜찮소? 고생이 많았지?”
“그럼요. 전 괜찮아요.” 야소다라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싯다르타는 내심 놀랐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고 말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내가 바로 옆방에서 당신의 비명소리를 들었는데…”
싯다르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야소다라에게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남의 고통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곤 했다. 시골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이나 부잣집에 딸려 있는 종들, 생존을 위해 견뎌야 하는 악사와 무희들이 당하는 고통과 불편들에 마치 자기가 고통을 받는 것처럼 반응했던 것이다. 하물며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당하는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갔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자신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그 비명이 앞으로 싯다르타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야소다라는 해산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해산 후에 다가오는 기쁨과 행복에 비하면 견뎌낼 만 한 것이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없어지는 걸요. 아기가 나오면서 곧바로 더 없는 안도감에 아무런 고통도 없었어요. 마치 폭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평화와 고요 같은 거예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팠던 기억조차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고통은 진즉에 사라졌고,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보다 당신이 더 아파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야소다라의 장황한 설명을 들은 싯다르타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소.”
“그런데 기쁨은 어디가고 불안감만 보이네요.”
“인생은 괴로움에 차 있는 거라고 생각하오.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아요.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한 거예요. 다만 이 행복이 가끔 작은 불행으로 방해받을 뿐이지요. 그러나 이 작은 불행은 행복을 늘려주기도 하죠.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세요?”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싯다르타를 바라보며 야소다라가 말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의 사랑스런 미소 속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대답 대신에 입을 다물었다.
싯다르타는 이직 품에 아기를 안아볼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작은 생명이 너무 가냘프게 보였다. 그는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혹시 아기가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면서도 아기를 바라볼수록 애틋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는 남편 싯다르타를 바라보는 야소다라의 눈빛에도 행복이 넘쳐났다. 그녀는 남편과 아기와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싯다르타는 방을 나왔다. 집안에서는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마시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깊은 고독을 느꼈다. 야소다라는 며칠 더 산실에 머물 것이었다. 친구들은 결혼하기 전처럼 자주 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찾아 궁궐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부터 야소다라에게 싯다르타 자신이 가장 필요할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 그리고 아기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온한 밤이었다.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잠 못 이루는 몇몇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적도 싯다르타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아침나절의 충격에서 회복되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궁궐 앞 오솔길을 거닐고 있었다.
‘세상의 번민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을까? 추구하는 행복보다 더 큰 것이 괴로움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땀을 흘린다. 부에 대한 탐욕은 늘 벌어들이는 것보다 크다. 부자들은 더 많은 부를 구하고자 온 정력을 쏟고는 또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근심한다. 어떤 자들은 재산으로 행복을 사고자 한다. 그들은 유흥을 위해 악사와 무희들을 고용하고, 자기들의 육체적 향락을 위해 매춘부를 찾는다.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언젠가 완전히 만족할 것을 기대하지만 끝내 채워질 수 없는 욕구는 똑같은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통치자가 되기도 한다.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분분하고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이 능력이 있건 없건, 적임자건 아니건 그 권력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한다. 사제들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려 한다. 그들은 자기네의 그런 사회적 역할이 범신(梵神), 즉 브라흐마로부터 부여된 것이라 여기며, 자기 자손들만이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계급에 속한 자로서는 그럴 능력이 있거나 훌륭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사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로 근심하며, 거의 모든 시도는 좌절과 실망으로 끝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실로 행복한 자가 있기는 한가? 어딘가에 이 괴로움, 불안, 좌절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는가?’
싯다르타는 까삘라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샨딜리아의 암자를 떠올렸다.
‘모든 안락과 감각적 쾌락, 물질적 행복을 포기해 버린 고행자들은 어떨까? 그들의 삶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는 다시 암자에 넘쳐나던 평화와 정적을 떠올렸다.
‘그 곳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고행자들은 자기들의 생활방법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들은 최소한의 음식, 의복, 거처로 연명해 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없으며 필수품도 최소한의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좌절에 빠질까?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결국 나는 크샤트리야다. 그렇다면 나도 ‘항복하느니 전쟁에서 죽는 것이 낫다’는 크샤트리야의 정신을 실현해야만 하는가? 이것이 내가 웨싸밋따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욕망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인간은 이와 같은 욕망에 틀어박혀야만 되는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이처럼 얽히고설킨 혼란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고따미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꿈꾸는 듯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싯다르타, 늦었구나. 잠자리에 들 시간이 아니냐?”
“네, 어머니.”
싯다르타는 천천히 집안으로 돌아왔다. 산실에 들어갔을 때, 야소다라는 왼쪽으로 돌아누워 오른팔로 자그만 아기를 싸안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싯다르타는 마치 동상처럼 서서 잠든 모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하루 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둘 모두 깊은 잠에 떨어질 만도 했다. 싯다르타의 가슴은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현재로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기와 아기의 엄마를 보살필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이 무거운 바윗돌처럼 짓눌려 다가왔다.
갓난아기를 바라볼수록 그에 대한 사랑은 점점 더해갔다. 그것은 수년 동안 심사숙고하고 있는 인간고의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아기의 얼굴, 균형 잡히지 않은 작은 팔과 다리는 다른 생각 모두를 덮어버리고,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욕망을 일깨웠다. 그것은 마치 일식(日蝕)이 일어나 그로 인해 일상의 틀이 갑자기 변화함으로써 인간과 동물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과도 같았다. 갓난아기는 실로 일식과 같았다. 이따금 태양을 삼켜버리는 ‘라후’처럼! 그는 실로 축소판 라후였다.
싯다르타는 시종을 향해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방을 나섰다. 인간 존재의 복잡함은 도저히 꿰뚫어볼 수 없는 안개 속, 짙은 암흑 저 먼 곳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것들에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어떻게 그 작은 갓난아기가 그토록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아, 라훌라(Rahula)), 방해자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