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체취를 느껴보기 위해서 인도 여행을 떠납니다”라고 했을 때, 원효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던 김선아 작가와 조계종화쟁위원장 도법스님은 “석가모니는 인도에 있지 않다”라고 했다.

 

 

 

과연 인도에는 석가모니가 없었다. 석가모니 탄생의 증거라고 모셔놓은 탄생석은 후세의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이걸 탄생석으로 하자”라고 합의한 돌조각일 뿐이었다. 그건 석가모니와 관련한 신화의 증거 조작에 불과했다. 7세기 현장 스님이 찾았다는 전정각산의 유영굴에도 석가모니는 없었다.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에 있는 붓다상들도 석가모니는 아니다. 심지어 이들 불상은 힌두교의 신상(神像)들 사이에 섞여 있어서 정체성 자체가 모호했다. 인도의 박물관에 있는 붓다상들은 다른 힌두교의 신들과 하등 차이가 없어서 그것이 붓다인지 아니면 힌두교의 아발로키테스바라인지 시바나 비슈누 혹은 인드라 신인지를 조각 밑에 쓰여진 설명을 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었다.

 

1203년, 불교는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생명을 다했었다. 불교는 힌두교에 평등사상을 가져와 힌두교를 개혁했지만 힌두교로 흡수됐다. 나는 인도에서 귀국한 날 불경한글풀이모임인 ‘불한당’에서 “불교가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채 타 종교에 흡수되고 타 종교에 의해 압도당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천주교도 불교의 철학을 도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불교가 다만 철학이어서 종교로서의 매력을 지니지 못해 비교우위를 상실하고 존재가 없어진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도법 스님은 “불교 철학이 다른 종교에 흡수된다면 그것을 ‘불교의 쇠락’이라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것은 불교의 외연 확대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들렸고, 그러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불교는 철학이면서 동시에 종교다. 그런데 종교를 ‘인격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종교성은 어디서 찾아질 것인가?

 

 

 

불교에서도 ‘믿음’을 강조한다. 불교 실천을 위해서 언급되는 신해행증(信解行證)에 대해서는 흔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뒤따른다. “먼저 진리의 法을 믿고[信], 그 法의 의미를 잘 요해하며[解], 그에 따른 실천 수행을 철저히 닦아 [行], 마침내 궁극의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證].”
여기서 “먼저 진리의 법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독교도가 하느님을 믿듯이 ‘믿기지 않아도’ 믿는 것인가?

 

신해행증에서의 ‘신’은 ‘세계관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무신론의 과학자들은 신앙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과학적 세계관과 실천론이 있다. 세계관은 “우주와 인간은 제한적이나마 과학적 언어로 설명될 수 있다”라는 것이며, 실천론은 “그 한계를 계속 넓혀가는 것에 나는 내 인생을 바친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믿기지 않지만, 믿기지 않으므로 믿는”것이 아니라 “암만 생각해도 이 세계관이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되니” 믿는 것이다. 불교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석가모니가 설한 연기법, “모든 것은 실체가 없으며 상호작용에 의해서 일어나고 스러진다”라는 세계관은 암만 생각해도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한다. 이는 또한 진화론이나 물리학 같은 현대과학의 지지를 받고 있다.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을 형성한다”는 진화론은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생기고, 저것이 없어짐으로 해서 이것이 없어진다”는 연기법과 일치한다. “전자는 파동이라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다가 외계와 접촉할 때 입자로 실체화한다”라는 양자물리학은 “존재는 내가 그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생성된다”라고 하는 의상대사 법성게의 철학과 일치한다.  

 

성철 스님은 “내가 스님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교가 진리를 궁구하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교보다 더 나은 가르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불교를 떠나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라고 하셨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불교의 이런 개방적인 태도에 정말 놀라며 감명 받는 모습들을 보인다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홍창성 교수는 전한다.

 

진짜 불교는 이처럼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하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그것을 믿으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에게 나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과학 이전 세계에서의, 힌두교 믿음과 섞인 믿음이 아직도 불교 안에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서의 불교는 과학이며 철학이고 종교다. 그것은 동시에 민주주의 정신이며 공동체정신이다. 서구의 자유와 평등, 즉 리버티(liberty)와 이퀄리티(equality)의 번역어는 불교에서 기원한다. 자유(自由)는 법구경에 나와 있는 바 ‘삶의 본질은 스스로에서 유래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임을 의미한다. 평등은 ‘만물(중생)은 똑같이 진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자아’를 환상이라고 하고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불교는 개인을 뛰어넘는 공동체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신과 원시, 반문명으로 점철된 불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불교인들은 2000년 이상 전에 쓰인 경전의 자구에 혹은 힌두교의 신화에 혹은 다른 잡 신앙에 붙들려 있지 말고 스스로 깨어나 불교를 오늘의 언어로 재발견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석가모니는 항상 재탄생하는 형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글 ∙ 사진 =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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