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무아연기(無我緣起)에 반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과학이론 중 (다윈의) 진화론은 가장 불교 무아연기에 맞는 이론이다. 생물체의 몸과 마음이 환경에 맞추어 변화를 한다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무아연기론이 어디 있는가? ‘설계자 없는 설계’, ‘경쟁자 없는 경쟁’으로서의 진화론은 정확히 무아연기이다. 그런데 ‘남 진제 북 송담’으로 유명한 진제 조계종 종정과 송담 스님은 진화론을 부인한다. ‘과학자들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누가 뭘 모르는지 모를 일이다.
진제 스님에 의하면 ‘개 소 말은 원래 개 소 말이었다’는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소위 종불변론(種不變論)이다. 송담 스님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는 법은 없지만 사람이 윤회를 해서 원숭이가 되는 법은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도가 높다는 게 무얼 일러 높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들이다.”
‘설계자 없는 설계’, ‘경쟁자 없는 경쟁’으로서의 진화론은 정확히 불교의 무아연기론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 불교는 “사람이 윤회해서 원숭이가 되는 일은 있지만,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다”라며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사진은 죽림정사에서 사는 원숭이.
내가 인도에 다녀온 지 한달 후인 2018년1월18일 ‘불교평론’ 세미나에서, 강봉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는 ‘한국 불교는 불교인가’라는 제하의 발제를 했다. 그는 “무아연기론과 진화론은 ‘쌍’을 이루는 이론이다. 무아연기론을 핵심으로 하는 불교는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학의 물결에 반하는 반지성주의가 불교 안에서 판을 치고 있다”라고 통탄했다. 청화스님의 스승인 금타화상이 “달은 지구보다 6배나 크다”라고 한 말, 무비 스님이 “절 뒷산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두 사람이 선암사 경내 두 그루 나무로 환생했다”고 한 주장, 탄허 스님이 “1977년에 김일성이 죽는다”, “2000년경에 포항에서 석유가 난다”라고 한 예언 등을 그는 ‘미신불교’의 예로 들었다. 강교수의 비판에서는 비교적 젊고 서구 문명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혜민 스님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무아이다. 단, 무아를 보는 그 놈은 무아가 아니다’라고 혜민 스님은 말한다. 이건 무아설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발언이며, 석가모니가 부정한 ‘아트만’론이다. 혜민 스님에 따르면 무아가 아닌 ‘그놈’은 이 세상이 있기 전에도 존재했고 이 세상이 없어진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오늘날 한국 불교는 무아연기론의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왜 스님과 학자들이 침묵하는가? 왜 비전문가인 내가 나서서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나?”라고 물었다. 그는 ‘무아론은 방편설’이라고 주장한 한자경 교수의 책 ‘불교의 무아론’이 2006년 출간되고 학술원에 의해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며 그 이후 9년이 지나는 동안에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았던 한국 불교의 현실을 개탄했다. 윤회론은 동물을 ‘과거에 죄지은 존재’로 설정하는, 무지막지한 생명계 카스트제도이고 무아연기론이나 진화론과는 정반대의 주장인데 한국 불교는 윤회론에 빠져있다. 그는 “부처님이 ‘아난아 너는 과거 500세 전에 브라만이었다’라고 하는 전생담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크로마뇽인이 브라만이었다는 말이냐”라고 경전을 글자 그대로 믿는 태도를 비판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왕생극락을 기원한다. 그러나 극락이란 것은 죽어서 가는 시공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월호 참극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이 우리들의 성찰로 이어져 이 나라를 안전한 생명의 세계로 꾸민다면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도 의미를 갖게 될 것이고, 그래야 세월호 희생자들이 우리의 앞날을 비쳐주는 호국영령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월호사건을 흐지부지 우리들의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면 그들의 왕생극락을 바란다고 해서 정말 그들이 극락으로 가서 행복해질까?
그는 인간의 영혼이 죽은 다음에 중음신이 되어 심판을 받는다는 과정에서 후손들이 좋은 재판을 받기 위해 드리는 천도재 ‘49재’도 비판했다. 그는 “부처님 재세시에 누가 49재를 했는가? 이는 중동에 연원이 있는 문화가 무비판적으로 들어온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제 프린트물에는 “사악한 성직자들은 신도들이 깨이는 걸 원치 않는다. 소 돼지처럼 우민으로 만들어놓고 부려먹고 뜯어먹고 잡아먹고 싶어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 토론은 매우 뜨거웠다. “불교는 다만 부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그 후에 덧붙여진 문화도 불교라고 봐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그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문화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진리로서의 불교’”라고 했다. “49재를 없애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이 세상에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울고, 저승에 가면 잔치를 벌이는 종족도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자체가 망상이다”라고 답했다. 강교수는 “병을 없애야지, 병을 놔두고 약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불교는 이 사회에 아무것도 공헌하지 않았나”라는 질문도 나왔다. 강교수의 힐난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진화론이 없었을 때, 윤회론이 ‘자비심’에 기여했다. 기독교는 투쟁적이지만 불교도는 아량이 있다”라고 답했다.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는 내가 갖고 있는 화두인데, 나는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교수는 이에 대한 답도 했다. “종교의 역사는 인격신에서 비인격신으로의 진화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는 가장 진화되고 개명된 종교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다신교가 생긴다. 다신교는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일신교로 진화한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인도인은 0의 개념을 발견했는데, 인도인 중 한명이었던 석가모니가 다신론과 일신론을 뛰어넘는 ‘영신론(零神論)’을 창안했다고 하겠다.
윤회론을 오늘날의 과학 언어로 말하면 DNA이론 혹은 문화 유전자로서의 ‘밈’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윤회론을 무아-연기의 시각에서 본 불교적 버전이다. 윤회론에는 윤회의 주체가 존재하지만 DNA나 ‘밈’ 이론에는 윤회의 주체가 없으며 다만 윤회의 작용만 있다.
“과학 문명이 극한으로 발전해 가는 시대, 불교는 미증유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불교는 개혁적인 얘기는 외면하면서 왜 시대에 뒤떨어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로 젊은이들을 배척하여 ‘불자 감소 시대’를 부르는 것인가.”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불교수행을 하면서 동서양 역사 ᆞ철학 종교 ᆞ과학 문헌을 섭렵한 한 수학자의 부르짖음이었다.
조계종 포교원에서는 2017년 초부터 '붓다로 살자'라는 신행혁신운동을 펴고 있다. 기존의 한국 불교는 ‘붓다 되기’가 목표였으나 붓다가 되는 것은 수많은 생을 거쳐서 수행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므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이 이렇게 현실성 있는 신행혁신 운동을 제시했으니 앞으로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아지겠는가. 나는 이런 질문을 하려다 그만뒀다. 강교수가 답할 질문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 · 사진 =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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