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영
<제6장> 4회
니르바나
로렌과 시몬은 졸업논문을 제출하고 난 뒤부터는 고향으로 갈 날만을 기다렸다. 로렌의 논문 제목은 ‘산스크리트어의 <반야심경>과 한역(漢譯)의 <반야심경> 연구’였고, 시몬의 논문 제목은 ‘붓다의 언어, 산스크리트어’였다. 두 사람 모두 논문지도 교수인 굽타의 조언을 받았지만 선융의 도움도 크게 받았다. 특히 한역 <반야심경>은 선융이 영역을 해주지 않았다면 로렌의 논문 작성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아무튼 두 학생 모두 졸업논문이 통과되고 나면 가을 졸업식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자신들의 나라로 떠날 것이 틀림없었다.
두 유학생이 졸업논문을 제출한 지 한 달쯤 지난 일요일이었다. 로렌과 시몬은 굽타와 선융을 네팔과 인도 국경지역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그곳까지 가야만 호텔이 운영하는 격조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있었다. 출입국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나울리(Sonauli) 거리는 인도이고, 벨라히야(Belahiya)는 네팔 땅이었다.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가는 물품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1km쯤 길게 늘어 서 있고, 버스와 승용차들이 울리는 경적소리로 거리는 소란스러웠지만 거리 안쪽의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은 의외로 조용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굽타가 선융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렌과 시몬의 논문이 아주 뛰어나요. 그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굽타 교수님, 제 논문은 선융스님의 것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로렌의 말에 시몬도 동조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융스님께서 영감을 주셨습니다. 2천 5백 년 전에 ‘눈을 뜬 이’가 붓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당시의 언어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들을 모아 논문을 썼으니까요.”
“선융스님이야말로 주빈으로 초대 받을 만합니다.”
“로렌과 시몬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지요. 말 한 마디도 허투루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창조해내는 능력이 있으니 뛰어난 것이지요.”
“스님 칭찬받으려고 모신 것이 아닙니다. 스님과 굽타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모신 것입니다.”
“굽타 교수님, 술을 시킬까요?”
“스님께서는 드시지 않을 테니까 시키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나는 상관없으니 축하와 수고의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세요.”
“스님께서 허락해 주시니 한두 잔만 하겠습니다.”
굽타가 선융의 제안을 얼른 받아들였다. 굽타의 주량은 룸비니불교대학 교수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로렌이 말했다.
“스님께서도 쉬바라스티에서는 드시지 못했으니 여기서 한 잔 하십시오.”
“술을 팔지 않는 날을 정한 나라는 인도뿐일 것 같은데, 힌두교도가 많은 나라나 이슬람국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굽타가 선융의 말을 받았다.
“술을 팔 수 있는 날에도 쉬바라스티에서는 밤 10시가 넘으면 팔지 않습니다. 낭만이 없는 삭막한 밤의 도시죠.”
“불교 성지라서 그런가요?”
“그 때문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여성들도 은근히 싫어할 겁니다. 요즘은 술맛을 알아버린 여성들도 많으니까요. 쉬바라스티에는 이슬람 모스크도 있습니다.
“술꾼들은 당연히 싫어하겠군요. 하하하.”
선융이 웃는 사이에 맥주잔이 하나씩 앞에 놓였고, 인도정식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융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별로 없었다. 입맛에 맞는 것은 생선스프와 짜파티, 야채 셀러드, 감자튀김 정도였다. 로렌과 시몬은 그동안 학내 기숙사에서 맛보지 못한 훈제한 양고기와 닭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선융은 할 수 없이 입가심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요리에 조금씩 들어간 향신료 냄새가 목울대를 타고 넘어올 것 같아서였다.
로렌과 시몬은 맥주를 물마시듯 찔끔찔끔 많이 마셨다. 맥주잔을 손에서 거의 놓지 않을 정도였다. 로렌이 취기가 약간 올랐을 때 술의 힘을 빌려 말했다.
“스님, 저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가셔야 합니다. 크렘스에는 스님께서 머무실 집이 있으니까요.”
“로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스님께서 졸업하시려면 3년이 더 남았어요.”
굽타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굽타 씨, 졸업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요. 승려가 무슨 졸업장이 필요합니까? 산스크리트어는 이제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 만큼 바탕을 다졌으니 언제라도 자퇴할 수 있지요.”
“로렌을 따라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
“결정한 바는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든, 로렌을 따라가든 이제는 결정해야겠지요. 그런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요.”
사실, 선융으로서는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였다. 로렌과 시몬이 떠난다면 선융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로렌은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뒤에도 선융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선융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빚을 지는 일이었다. 선융은 그들에게 계속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공양 받을 만한 사람은 부처나 아라한과를 얻은 이들뿐이었다. 그래서 부처에게 ‘마땅히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 하여 응공(應供)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터였다. 시몬이 말했다.
“스님, 한국에 있는 부인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내는 나에게 갈등을 주는 사람이 아니지요.”
“스님, 저에게 속시원하게 말씀해줄 수 없겠습니까?”
“숨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내는 스님으로 돌아가버린 나를 불편하게 할 사람은 아니에요. 아내는 무엇이 하느님의 사랑인지 알고 있는 여자이니까요. 아내는 나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아요. 우리는 하나이니까요. 이미 하나가 돼버렸는데 누가 누구를 소유하겠어요? 나는 아내의 마음속으로, 아내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있어요. 서로가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인 셈이지요.”
로렌이 말했다.
“스님 말씀은 따뜻하고도 슬퍼요. 과연 그런 관계가 있을까도 싶고요.”
“나는 아내를 믿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내의 큰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아내의 눈 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요. 사랑, 자비의 말씀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아내와 헤어져 있지만 헤어져 있는 것이 아니군요. 그런데 스님의 일방적인 생각은 아닐까요?”
“그래요, 로렌.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기는 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화두를 들고 수행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과 내가 하나라는 깨달음이 와요. 그 깨달음에 실체가 있다면 파괴될 수 없는 온전한 사랑과 자비겠지요.”
로렌과 시몬이 벌떡 일어나 선융 앞으로 가서 합장했다.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로렌과 시몬은 선융의 방으로 찾아와 요청했다.
“스님, 크렘스로 가요. 부인을 부르시면 되잖습니까? 저는 부인께서 오는 것을 대환영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거든요. 저는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하느님이 옆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하느님은 저와 늘 함께 하시는데도 제가 눈을 감고 있었던 거죠.”
“스님께서 크렘스로 가신다면 저도 스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스위스는 크렘스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거기라면 향수병에 걸릴 일도 없을 겁니다.”
주혜가 크렘스로 온다면 선융의 인간적인 걱정 하나는 줄어드는 셈이었다. 그런데 주혜의 처지에서는 교회 살림을 어머니 대신 지금까지 해왔으므로 고민의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아버지인 신목사가 목회의 일과 교회 살림을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을 주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혹서기로 접어들면서 한낮에는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로 기숙사 복도 끝에 지렁이들이 말라 죽어 있기도 했다. 진공스님과 주혜의 편지가 동시에 왔다. 물론 한국에서 편지를 부친 날은 차이가 많이 났지만 도착한 날은 같았다. 주혜는 속달 우편을 이용했고 진공스님은 일반 편지로 보냈던 것이다. 선융은 진공스님의 편지부터 읽었다.
<선융당에게
그동안 산스크리트어 공부는 얼마나 익혔는지 궁금하네.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겠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서래사 살림이 늘 곤궁함을 면하지 못하니 이해하겠지만. 진원스님의 편지는 묘유스님 편에 받았겠지. 어쩌겠나. 진원스님이 자신의 생사를 그런 방식으로 선택한 것을. 자살이든 살생이든 모두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진원스님의 처지에서는 자신만의 절실함도 있었을 것이네. 진원스님이 남긴 것은 선융당에게 보낸 한시 한 수뿐이었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유서겠지. 좌선대에 남긴 한시 한 수 말고도 또 있군. 절벽 아래로 떨어진 진원스님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선융당이 선물로 보냈던 부엉이상(像)이었다네. 진원스님은 천진한 아이처럼 부엉이상을 무척 좋아했었어. 선승이 무슨 흔적을 남기고 죽겠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가 다 선승의 사리인 것을. 한시 한 수와 부엉이상 한 개면 그만이지. 그것마저 남기는 것도 결국 허망한 흔적이겠지만.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네. 몰종적(沒蹤迹),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공(空)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선승의 최후가 아니겠는가. 공이야말로 완전무결한 자유가 아닌가. 공이야말로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자유가 아닌가. 그것을 우리는 열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진원스님의 49재는 하안거 중에 끝났네. 이제 진원스님은 광대무변한 허공으로 사라졌네. 극락으로 갔는지 지옥으로 갔는지 나는 모르겠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고 진리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부처님 제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선융당에게 진원스님의 49재를 지냈다고 소식을 보내는 까닭은 헛걸음하지 말라는 것이네. 단 한 발짝이라도 헛걸음하면 죽은 뒤에 염라대왕이 신발값을 청구한다고 했어.
미래는 산중의 절이 점점 사라지고 재가불자들의 시대가 올 것이네. 선융당이 부처님 제자 노릇하는 시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에게 반납했던 선융당의 승복을 작년에 내가 인도에서 돌려주었던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네. 재가불자가 사는 집이 법당이 되는 시대가 오겠지. 진묵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세가 되면 진승(眞僧)은 하산하고 가승(假僧)은 입산한다고 했네. 진짜 중은 저잣거리 집에 살게 되고 산중 절에는 가짜 중이 넘쳐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서래사에서 진공 합장>
선융은 진공스님의 편지를 읽는 동안 다라니(呪文)를 외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맑아졌다. 진공스님이 퍼뜨리는 선(禪)의 향기에 취했다. 몸 전체가 눈이 돼버린 듯 진공스님의 편지에 흠뻑 빠져들었다. 진공스님의 편지를 읽는 동안에는 한 오라기의 실구름 같은 사념(思念)도 끼어들지 못했다. 허공처럼 투명해진 마음속으로 진공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스며들었다. 선융은 주혜가 보낸 열한 번째의 편지도 읽었다.
<사랑하는 선융스님께
당신의 모습이 그려져요. 진공스님께서 들려준 소식이지만 당신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려요. 구레나룻수염과 긴 머리카락은 저잣거리의 예술가 같을 것이고, 승복을 입은 당신은 지혜롭고 당당하기 짝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바로 당신의 진면(眞面)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 저는 당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지요. 당신의 멋들어진 모습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한 꽃도 꺾어서 소유하는 순간 생명을 잃기 시작하니까요.
진원스님의 슬픈 소식을 당신도 들었을 거예요.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에 한 분이었죠. 선방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스님이라고 했죠. 무엇이 스님을 죽음으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서래사 모든 스님들이 진원스님의 죽음을 슬퍼했어요. 진원스님이 수행자로서 잘 사셨다는 방증이 아니겠어요? 그래도 죽음이 삶을 증명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저에게 잘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요.
당신이 지난 달 편지에서 두 유학생이 어느 새 신심이 깊은 불자가 되었다고 했지요. 로렌과 시몬이라고 했던가요? 두 유학생 중에 저는 시몬이라는 이름이 더 사랑스러워요. 여고시절에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를 좋아했거든요. 특히 이 구절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그런데 당신은 로렌과 더 많이 소통하는 것 같아요. 사람 간의 일이니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작년에 당신은 로렌과 함께 도나우 강이 흐르는 크렘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왔다고 했지요. 당신은 크렘스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편지 곳곳에 그런 마음이 묻어 있어요. 당신의 아내가 사는 이곳이 당신의 천국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해요. 당신이 교회에서 쫓겨난 뒤 서래사 옆의 빈집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정했어요.
그러나 당신에게 고백한 대로 당신의 마음속에 주혜가 있고, 주혜의 마음속에 당신이 있는데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목사님은 주혜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어요. 요즘은 저도 목사님의 말씀을 믿어요. 그러니 제가 외로울 거라고 위로하지 마세요. 외로움이 저를 더욱 하느님에게 다가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당신은 그리움이 자비심의 에너지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외로움이 사랑의 에너지예요. 그러고 보니 다 같은 말이네요. 당신의 자비나 나의 사랑이 색깔만 다를 뿐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끝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펜을 놓겠어요. 당신, 절대로 아프지 말아요. 병이 난다면 그곳이 크렘스라고 하더라도 저는 달려가 간병할 거예요. 교회 살림은 뒤죽박죽이 되겠죠. 그러니 아프지 말아요.
당신의 전부인 천국교회의 주혜>
아프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주혜의 부탁에 선융은 편지를 접고 일어섰다. 창가로 갔다. 기숙사에 처음 입실했을 때처럼 보리수 이파리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바람이 바나강가 강에서 불어와 보리수 이파리를 흔들고 있었다. 선융은 틸라우라코트 들판을 흐르는 바나강가 강으로 나가 더위를 피하곤 했는데, 밤이 되면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싯다르타 태자가 부왕 몰래 마부만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몸을 씻던 강이었다.
보리수 그루터기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수군수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선융은 그들의 등만 보고도 로렌과 시몬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바나강가 강쪽을 응시하면서 머잖아 돌아갈 고향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선융은 반팔 차림으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로렌과 시몬이군.”
“선융스님, 더워서 나왔어요. 여기는 시원해요.”
“그럼, 바나강가 강으로 나가 목욕이나 할까?”
“좋아요.”
룸비니불교대학에서 바나강가 강까지의 거리는 2km밖에 되지 않았다. 달빛이 밝았으므로 들판 길을 걷는 데는 불편이 없었다. 길가의 풀들이 웃자라 들판 길은 더욱 좁았다. 선융이 앞서고 로렌과 시몬이 뒤따랐다. 로렌이 말했다.
“선융스님, 방학 중에 한국으로 한 번 가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어요?”
“갈 일이 없어졌어요.”
진원스님의 49재를 지냈다고 하니 선융이 진원스님을 추모할 방법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기원정사에서 묘유스님을 위해 산스크리트어로 <반야심경>을 독경할 때 잠깐잠깐 진원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로렌, 걱정 말아요. 아내가 허락했어요. 크렘스로 가는 것을.”
“선융스님, 정말입니까?”
“아내가 크렘스에 가더라도 아프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 허락한 것이지요.”
로렌과 시몬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바나강가 강에 이르자 옷을 입은 채로 뛰어들었다. 고요하게 흐르던 강물이 첨벙첨벙 소스라치게 놀랐다. 선융도 옷을 입은 채로 강물에 몸을 맡겼다. 세 사람은 희열의 에너지를 숨기지 않고 토해냈다. 장미꽃이 향기를 숨기지 않듯 마음껏 감정을 발산했다. 모래밭으로 나와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았다. 그러면서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을 산스크리트어로 노래 부르듯 소리쳤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그들도 자유인이었다. 모두 하나가 돼버린 무아(無我)의 자유인이었다. 춤추는 동안의 순간순간은 영원이나 다름없었다. 비로소 세 사람은 고통의 불이 꺼져버린 니르바나(Nirvana)에 다다랐다. 그들 몸은, 살아 있는 세포들은 무아와 니르바나가 어떤 진리인지 기억하게 됐을 것이었다. 춤추었던 경험을 잊지 않는 씨앗이 되어 언젠가 열반의 꽃을 피울 터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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