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타 석굴은 장관이었다. 데칸 고원을 말발굽 모양으로 흐르는 와고라 강을 따라 자리잡은 석굴들이 한눈에 들어왔을 때는 숨이 멎는 듯했다. 가까이로 다가가니 깎아지른 듯한 절경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 뭄바이 동쪽에 자리한 아잔타 석굴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29개의 석굴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약 900년 동안 만들어진 유적지를 돌아보느라 우리는 한나절을 다 썼다.

 

단원들은 1.5km 길이에 늘어서 있는 석굴들의 불상마다 기도하고 염불하고 불전을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평균 연령 50대 후반이고 60대들도 꽤 있었는데, 스쿼시로 단련됐다고 자부했던 내 체력으로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불교 유적 답사’와 ‘신심’으로 무장된 그분들은 한명 낙오 없이 2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전날의 과한 음주로 한명이 영축산 등정에서 빠진 ‘예외’가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아잔타의 전기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약 400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이후 약 300년 동안은 휴식기였으며, 불교를 적극 장려했던 굽타 왕조 때 후기 석굴이 건설됐다고 한다. 후기 석굴들은 전기 석굴들에 비해 규모도 크고 벽화와 조각뿐만 아니라 석굴 자체도 한결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답사 당일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스님의 해설을 듣고 사진을 찍는 데에 급급했다. 석굴 안에 있는 탑과 불상의 관계 등에 대해 스님은 열심히 설명했고, 룸메이트인 이창재거사는 연신 탄복했지만 불교문화나 불교유적에 대해 까막눈인 나에게는 크게 재미없는 역사공부를 하는 느낌이었다. 초기 아잔타 벽화에는 불상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보리수 나무, 부처님의 족적 등의 표현만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런 표현 자체가 내 눈에는 띄지도 않았다. 지금은 단종된 사진기를 갖고 가 동굴 사진 찍는 모드에 맞추는 것도 잊고 그냥 찍었기 때문에 사진도 제대로 안 나왔다.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찍은 보살님들의 휴대폰 사진이 훨씬 선명한 것을 보고서야 나는 내가 구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많은 석굴들이 어떻게 조성됐을까?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석굴군이 인도 전역에 1200개가 있다. 이런 석굴들은 대부분 당시 교통의 요지, 무역로에 있다. 대상들은 일생을 건 대 사업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가세한 투자가 걸려 있다. 자칫 도적이라도 만나면 가문에 큰 누를 끼친다. 그러니 지푸라기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런데 어떤 석굴의 부처님이 용하다는 소문이 들린다. 거기에 가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서원을 세운다. ‘부처님, 이번 일만 잘되면 제가 이 옆에 좋은 석굴을 하나 세우겠습니다.’ 그 상인이 성공하면 그의 서원과 자본으로 석굴이 생기는 것이고, 그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석굴이 군(群)을 이루는 것이다. 석굴은 때로 국왕의 보시로 이루어졌고 스님들도 조성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은 상업 자본이 이룬 것이다.”

 

만약 인간이 완전하다면 종교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그래서 신을 찾는다. 아잔타 석굴군을 만든 사람들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세상을 위한 어떤 원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기원정사를 세운 급고독장자나 유적지를 찾아 ‘석가모니불’을 극진히 염하는 세계 각국 사람들, 그리고 우리 순례단의 보살님, 거사님들이 다 그럴 것이다.

 

 

 

소승불교가 부처를 인간의 형상으로 묘사해 내는 것을 꺼린 것은 그것이 성인(聖人)에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반면에 대승불교는 불상 및 불화의 조성을 장려했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불상으로 화현하자, 사람들은 그 불상을 경배했고 석가모니는 점차 인간에서 신으로 변화했다.

 

이것이 바로 불상 숭배의 딜레마다. 석가모니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 석가모니는 신화의 세계에서 신화의 꺼풀을 벗기고 우주의 진실을 보라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스스로 신이 되기를 거부했고 법등명자등명을 얘기했다. “진리를 등불로 삼고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라는 말이었다. 그는 여래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에게 “썩어질 이 몸이 무엇이 대단한가”라고 반문하며 위로했다.

 

석가모니가 신이 되는 것이 스님들의 이해, 혹은 신도들의 이해와도 맞는 측면이 있다. 석가모니가 신이라면, 그 신과의 접속을 담당할 스님들의 권위는 높아진다. 신도들로서도 중도니 연기법이니 하는 복잡해 보이는 논리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석가모니에게 빌면 다 이루어져”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매혹적으로 들릴 수 있다. 자녀의 대학입시 합격과 남편의 승진을 빈다는 보살님에게 “그렇다면 불교가 기독교와 무엇이 다른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사실 기독교가 때로 부럽다”라고 말했다. 불법은 그 이론이 매우 어려워서 가까이 가기가 쉽지 않은데 교회는, 옆에서 보기에 아주 쉽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자타카도 불상과 똑같은 딜레마를 품고 있다. 자타가는 오묘한 불교의 진리를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사람이란 응당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예시로서의 ‘문학 작품’이었을 것이다. 당시가 신화의 시대였으므로 문학은 그 시대의 언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최고의 신이 되어 다른 신을 거느리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부처님이 신이 되면 “네가 네 삶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네 삶을 개척해 나가라”라고 하는 부처님의 메시지를 희석시킨다. 그 우려는 이미 오래 전에 현실화됐다. 아잔타의  16번 석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위대한 승려들이 거주하는 이 석굴에 들어오는 이는 누구든 모든 죄가 사해지고 고요와 성스러움의 세계와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집착,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집착,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깨달음이란, “인간이 원래 자유의 존재여서, 깨달으려고 하거나 자유로와지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부처님을 만났으니 나는 이미 자유롭다”라는 믿음이 자유를 증진할 것이다. 실제로 순례단원 대부분은 분노나 증오의 감정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했고, 그들의 행동을 보아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자유로운 것으로 내게는 보였다. 그러니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결과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배치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불자의 주체성 상실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불교 신도들 중에도 “수행은 스님들이 하고 재가자들은 스님을 외호(外護)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많은 스님들이 붓다의 깨달음을 도달 불가능한 어떤  신비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나는 붓다가 이룬, 깨달음을 이루는 길을 가는 존재이다”라는 상을 세운다. 그러면서 ‘구부득고(求不得苦)’, 즉 “구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을 받으며 열등감에 빠진다. 동시에 스스로를 재가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스스로를 스승이라기보다는 도반이라고 생각하고, 자자와 포살 모임에서 “나에게 허물이 없었는가”라고 묻는 평등주의자 석가모니와는 다른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다. 또한 승속불이(僧俗不二)라고 하는 원효 스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글 · 사진 =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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