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영
<제5장> 2회
싯다르타 고행
진공스님을 따르는 순례일행은 싯다르타가 보드가야로 가기 전에 잠깐 들렀던 둥게스와리(Dhunggeshwari, 前正覺山) 유영굴을 참배하고 네란자라강으로 가고 있었다. 유영굴에는 싯다르타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고 전해졌다. 실제로 싯다르타는 6년 고행을 끝내고 둥게스와리 공동묘지에서 천 조각을 구해 이곳에서 분소의를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유영굴을 내려온 순례일행은 천민들이 사는 마을과 바위고개를 넘어 들판 길을 걸었다. 강가강의 지류인 네란자라강은 물이 말라 모래밭이 더 커져 있었다. 여름철 우기가 되면 사라지는 모래밭이었다. 굽타는 모래밭인 강변에 이르자 일행에게 참선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강변 마을에 사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몰려와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가끔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 같은 미세한 모래가 날아와 눈을 따갑게 했다.
선융이 강가의 모래밭에서 가부좌를 틀자, 로렌과 시몬이 좌우에 앉았다. 힌두교 수행자가 나뭇가지에 거적만 씌운 움막에서 나와 선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선융은 그를 의식하지 않고 네란자라강과 모하니강이 만나 모래밭을 이룬 강 건너편의 우루벨라를 응시했다. 우루벨라(Uruvela)는 산스크리트어로 ‘큰 모래밭’이란 뜻이었다.
‘2천 5백년 전, 카필라성에서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로 떠났던 싯다르타도 이 모래밭까지 와서 가부좌를 틀었겠지. 그때 수행자 싯다르타는 가부좌를 튼 채 이렇게 자신과 약속하지 않았던가.’
로렌과 시몬은 스승처럼 받들고 싶은 듯 선융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선융은 수행자 싯다르타가 스스로 묻고 대답했을 법한 말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카필라성을 나와서 만났던 수행자들의 스승, 아라다 카라마와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도 내게 생사윤회를 끊는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선정삼매에 드는 것만으로는 생사윤회 하는 중생의 고통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수행자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두 스승에게서도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이제는 내가 스스로 깨닫는 방법밖에 없다.’
두 선인(仙人) 곁을 떠난 수행자 싯다르타의 모습은 비장했다.
‘위없는 깨달음은 남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그것은 내 스스로 얻을 수밖에 없으리라.’
싯다르타는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에서 수행자들이 고행촌(苦行村)이라고 부르는 우루벨라 쪽으로 찾아왔다.
‘두 선인에게 배운 선정삼매는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무념무상의 경지로 마음을 안내할 뿐 생사윤회를 끊게 하지는 못한다. 부처와 같은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제 내 스스로 고행하여 깨닫는 수밖에 없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수행할 장소를 찾아 네란자라강 언덕을 걸었다. 그때 한 무리의 수행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우루벨라에서 고행을 한 뒤 네란자라강으로 내려와 목욕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싯다르타가 물었다.
“대숲이 있는 우루벨라는 수행하기에 어떻습니까?”
“수행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입니다. 강이 있어 목욕하기에 좋고, 농가가 가까워 탁발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카필라성에서 온 싯다르타입니다. 깨달음을 얻어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고자 합니다.”
“싯다르타시여, 그것은 우리가 고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깨달음입니다. 우리와 같이 이곳에서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싯다르타는 대숲이 치솟은 그들이 안내하는 우루벨라로 가서 마른 풀을 깔고 앉았다. 얼마 후에는 싯다르타를 흠모하여 라자그리하에서부터 따라온 우드라카 라마푸트라 제자들이 왔다. 그들은 원래의 스승인 우드라카 라마푸트라 곁을 떠났을 정도로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기대하고 온 수행자들이었다.
‘싯다르타는 짧은 기간에 우드라카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가 아닌가. 그런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드라카를 뿌리치고 떠난 분이 아닌가. 우리는 우드라카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들었지만 스승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저 싯다르타는 우리와 다르다. 큰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 수행자임에 틀림없다.’
싯다르타는 우루벨라 수행자들의 고행을 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이라기보다 타성에 젖은 행동일 뿐 진정한 고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행자들 중에 몸과 마음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고행하는 이가 있다. 이는 마치 불을 얻고자 하면서 젖은 나무를 물속에서 마주 비비는 것과 같다. 이러면서 어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수행자들 중에 비록 몸으로는 탐욕을 끊었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아직 애착을 버리지 못한 이가 있다. 이 역시 불을 얻고자 하면서 젖은 나무를 물속에서 마주 비비는 것과 같다. 이러면서 어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수행자들 중에 바르게 닦아 몸과 마음의 탐욕을 버리고 조용한 곳에서 고행하는 이가 있다. 이는 불을 얻기 위해 잘 마른 나무를 마른 땅에서 마주 비비는 것과 같아 비로소 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심신이 맑고 고요한 상태에서 고행을 해야만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맑고 고요한 상태에 이르도록 편안하게 수행한 다음 고행을 시작했다. 우루벨라에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극한의 고행이었다. 결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먼저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자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몸 안에 가득 찼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더니 이마에서도 땀이 비 오듯 했다. 호흡을 막으니 양쪽 귀에서 커다란 공명이 생겨나 풀무질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귀와 코와 입으로 모든 호흡을 막아버리니 몸 안의 열기가 정수리로 올라가 충돌하면서 예리한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크나큰 고통이 왔다. 호흡을 계속 멈추니 몸 안의 바람이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사납게 불어닥치며 당장 몸이 풍비박산 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몸 안이 불길에 휩싸이는 듯했다.
호흡을 멈추는 고행을 하면서도 단식을 병행했다. 식사의 양을 줄여 하루에 보리 한 톨만 장복하자, 몸은 여윌 때로 여위어 배와 등뼈가 달라붙었다. 다시 보리 한 톨에서 삼씨 한 톨로 줄이자 피부빛깔이 잿빛으로 변해 시체와 같아져 버렸다.
이와 같은 싯다르타의 고행은 6년 동안 반복적으로 지속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우드라카의 제자 다섯 명은 싯다르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훗날 마명(馬鳴, Asvaghosa)보살은 자신이 지은 <불소행찬(佛所行讚)>에 싯다르타가 고백하듯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에 최상의 고행자였다. 남들이 바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워 먹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서 시체와 해골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때 목동들은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들이 찾아 들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한 고독한 수행자였다. 나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낮은 땅에서 낮은 땅으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홀로 지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모든 생명을 가엾게 여기는 고행자였다.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조심하여 한 방울의 물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일지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에 대추 한 알로도 보냈고 맵쌀 한 톨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이레에 한 끼를 먹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몹시 여위었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붙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부터 곤두박질했다. 살갗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혀 나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 싯다르타는 이제 목숨을 다했구나.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선융은 일어나 네란자라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었다. 강물은 말라붙어 나룻배가 필요 없었다. 우루벨라는 모하니강과 네란자라강이 만나는 모래사장 옆의 대숲을 이룬 곳에 있었다. 그때 로렌이 선융의 손을 잡아당겼다.
“선융 씨는 화두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고 진공스님에게 들었습니다.”
“진공스님께서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군요.”
“선융 씨, 우리들을 지도해 줄 수 없습니까? 진공스님께서는 지도할 수 있는 분이라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한국에 온다면 내가 아니라도 진공스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겠지요.”
“아닙니다. 저와 시몬은 유학 중이므로 여기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럼, 저더러 여기 남으라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선융 씨가 네팔이나 인도에 머물 수 있는 경비는 시몬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좋은 제안이기는 합니다만.”
로렌이 선융의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좋은 제안이라고 하니 안심이 됩니다.”
“제가 여기 남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요.”
“룸비니불교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공스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몬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진공스님은 저의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상의 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선융 씨의 아내가 허락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아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진공스님이 로렌과 시몬에게 선융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두 사람의 유학생은 선융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선융이 걷기 시작하면 그들도 걷고, 선융이 걸음을 멈추면 그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네란자라강 강물은 발목까지만 찼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감촉은 아기살처럼 더없이 부드러웠다. 강 건너 모래언덕에 이르자 아이들이 뛰어와 순례일행을 뒤따랐다. 한 아이는 방죽에서 잡은 고기를 들고 자랑했다. 머리에 나무다발을 인 여인들은 유채꽃밭 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순례일행은 굽타를 따라서 우루벨라로 향했다. 우루벨라 초입 숲길에서 굽타가 손을 들었다. 하얀 힌두사원이 숲속 언덕에서 튀어나왔다. 일행이 힌두사원 안을 기웃거리자 아이들이 달려와 손으로 입을 가리켰다. 과자나 돈을 달라고 구걸했다. 선융은 싯다르타가 고행한 우루벨라에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지금은 농경지와 듬성듬성 나무만 남아 있을 뿐인데 눈앞에 싯다르타가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6년 고행을 마친 싯다르타는 수행방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행을 더 밀고 나간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겨우 한 가닥 목숨만 남은 상태에서 싯다르타는 고행이 최선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6년 동안 반복적으로 견디었던 고행보다 더한 고행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고행의 극단까지 가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문득 싯다르타는 카필라성 시절이 떠올랐다. 부왕과 함께 농경제에 참가했을 때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선정삼매에 든 기억이었다. 잠시 욕망의 세계를 벗어났던 그 경험은 고행 없이도 이루어진 삼매였던 것이다. 마침내 싯다르타는 선정을 방편 삼아 생사윤회를 끊는 깨달음에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고행을 지속한다는 것은 몸을 해칠 뿐이니 나를 위해서도, 세상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 선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을 추슬러야 한다.’
싯다르타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식사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수행자로서 최소한의 위의를 갖추어야 했다. 싯다르타는 옷을 구하기 위해 둥게스와리에 있는 공동묘지로 갔다. 공동묘지에는 시체를 쌌던 천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싯다르타는 천 조각들을 기워서 분소의를 만들어 입었다.
다음날.
싯다르타는 분소의를 걸치고 우루벨라 부근의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 우루벨라 땅 대부분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어느 장군의 소유지였다. 장군은 1천 마리가 넘는 소들을 가지고 있었고, 소젖을 짜는 어여쁜 딸 수자타가 있었다. 수자타는 새벽에 소젖을 짜 끓인 다음 쌀을 넣고 죽을 쑤어 아침마다 수행자들에게 보시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침이 다 지나가는데도 단 한 사람의 수행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자타는 조급한 마음에 시녀 웃타라를 밖으로 보내 수행자가 오는지 살펴보라고 시켰다. 이윽고 웃타라를 따라 들어온 싯다르타는 수자타가 만든 죽을 공양 받았다. 죽을 끓이는 동안 만(卍)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수자타에게 들은 싯다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죽으로 힘을 얻은 나는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고 말 것이다.’
싯다르타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나서는 감사의 표시로 합장을 했다. 싯다르타가 일어서 나가려 하자 수자타가 말했다.
“이 바리때를 드리겠사오니 가지고 가십시오.”
비로소 싯다르타는 수행자로서 한 벌의 옷과 한 개의 바리때가 갖추어진 셈이었다. 우루벨라 부근의 마을에서 나온 싯다르타는 수염을 깎고 몸을 씻기 위해 네란자라강에 몸을 적셨다. 그러한 싯다르타를 지켜 본 다섯 명의 수행자는 극도로 실망했다. 싯다르타가 고행을 극단으로 밀고 갈 때만 해도 깨달음이 가까워졌다고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싯다르타에게 속았다며 분하게 여겼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6년 동안이나 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먹는구나. 그러니 우리는 타락한 싯다르타의 시중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싯다르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는 스스로 알아서 수행하겠다며 바라나시 북동쪽에 있는 사르나트 녹야원으로 떠나버렸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우루벨라 마을 저편에 있는 보드가야 보리수를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보리수는 하루 종일 신선한 기운을 내뿜는 수행자들이 선호하는 나무였다. 싯다르타는 길을 가다가 풀베기하고 있던 농부 스바티카를 만나 풀을 얻었다. 풀의 이름은 쿠사(Kusa, 吉祥草)였다. 드디어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 쿠사를 깐 뒤에 동쪽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었다.
순례일행은 방치되다시피 한 수자타 스투파에서 탑돌이를 했다. 그런 뒤 조악한 수자타 부조물이 있는 수자타사원에 들러 참배했다. 수자타사원에서 나와 긴 다리 부근의 마을까지 걸어온 일행은 보드가야 숙소까지 승합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승합차는 대탑이 있는 마하보디사원을 2km쯤 남겨놓고 모차림(Mocarim) 마을에서 멈추었다. 석양빛이 떨어진 무찰린다 (Muchalida) 연못에 연꽃이 피고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찰린다 연못은 수행자 싯다르타가 고행 중에 힘없이 쓰러졌던 곳이기도 했다. 석양빛이 따뜻하게 스민 연꽃은 찬란하기도 했지만 어딘지 그늘지고 슬프게 보였다. 선융은 중얼거렸다.
저 연꽃에는 따뜻함과 슬픔이 배어 있구나
피어남과 시듦이 빛과 그림자 같이 함께 하는구나
저 연꽃도 윤회의 고통으로 진저리치고 있구나.
피어남은 시듦을, 시듦은 피어남을 기약하고
지는 석양처럼 만남과 이별이 한데 엉켜 있구나
어찌하여 연꽃은 또 피어나 미망의 향기를 퍼뜨리는가.
그날 밤, 선융은 진공스님의 방으로 들어가 로렌과 시몬의 요청을 말했다.
“스님, 유학생들이 제가 여기 남기를 원합니다.”
“나도 얘기를 들었어. 유학생들이 선융당을 스승 삼아 참선을 하고 싶어 해. 좋은 일이지. 한국불교도 알리고.”
“제가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화두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선승이나 다름없지.”
“그들을 지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는 이곳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해 부처님의 육성을 듣고 싶습니다.”
“선융당과 유학생들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구먼.”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몇 년 떨어져 사는 것뿐인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거든.”
진공스님이 묵는 객실을 나온 선융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굽타가 꼭두새벽에 마하대탑을 갈 것이니 일찍 잠들라고 공지했지만 눈을 붙이지 못했다. 주혜에게 어떤 말을 해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킬지 해답을 찾지 못해서였다. 선융은 자정을 넘겨서도 번민 때문에 뒤척거렸다. 숙소 밖에서 사람들의 수런거림, 오토릭샤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올 무렵에는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버렸다. 창은 벌써 검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선융은 여행가방 속에서 긴팔의 옷을 꺼내 입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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