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영
<제5장> 1회
강가강의 밤
바라나시는 힌두교 성지 중에서 최고의 성지라고 굽타가 말했다. 순례일행은 숙소에서 한 나절 동안 휴식을 취했지만 감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음과 먼지가 난무하는 거리는 사람들과 짐승, 오토릭샤와 인력거로 넘쳐났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가지는 무질서하기 짝이 없었다. 진공스님과 상좌스님은 구경을 나갔다가 바라나시의 무질서에 질려버린 듯 금세 숙소 로비로 돌아와서 홍차를 마셨다. 굽타가 말했다.
“바라나시는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뜻입니다. 3천년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카시왕국의 수도였는데 부처님께서 싯다르타 태자시절에 입었던 비단옷은 모두 여기 카시에서 생산한 고급비단이었습니다. 지금도 카시 비단은 인도에서 최상품으로 치고 있습니다.”
로렌과 시몬은 귀찮을 정도로 선융을 따라다녔다. 서로 말이 통하는 데다 선융이 들려주는 한국불교의 선(禪)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여행사 직원이 저녁의 일정을 알렸다.
“저녁에는 강가강으로 나가 강변의 야경도 보고 배를 타고 강 건너 넓은 모래밭까지 다녀오겠습니다. 불경에 나오는 항하(恒河)가 강가강이고 항하사(恒河沙)가 강가강의 모래입니다.”
굽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오늘은 저녁식사를 숙소 식당에서 6시까지 각자 가볍게 하시고 6시 30분까지 숙소 로비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선원장스님과 원일스님이 마스크를 쓴 채 로비로 들어왔다.
“강변에 무슨 축제가 있는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어요.”
“해가 진 뒤에 날마다 치러지는 아르띠 뿌자에 참여하려고 가는 인파입니다.”
굽타의 설명에 의하면 아르띠 뿌자(Arti Pooja)란 힌두교 제사였다. 메인가트에서 강가강의 시바신에게 7명의 브라만 사제가 올리는 제사인데 현재는 브라만 출신의 건장한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집전한다고 말했다. 바라나시에 온 힌두교 신자들이 모두 모이므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에 순례일행은 아르띠 뿌자를 지낼 메인가트가 내려다보이는 카페로 올라가서 구경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말까지 공지했다. 여행사 직원도 말했다.
“인파에 밀려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반드시 단체 행동하셔야 합니다.”
선융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들어서기 전에 굽타에게 물었다.
“산스크리트어를 모르니 자꾸 묻게 되네요. 아르띠 뿌자란 뭣인가요?”
“아르띠는 불이고요 뿌자는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아르띠 뿌자는 불의 제사란 뜻입니다. 강가강 메인가트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365일 내내 불의 제사를 지냅니다. 불의 제사를 지내면 자기 죄가 소멸되고 영혼이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숙소 식당은 뷔페식이었다. 일행은 짜파티와 과일을 접시에 담아와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었다. 사과와 포도, 바나나, 석류 등의 당도는 아주 높았다. 짜파티는 네팔의 길거리에서 먹던 것보다 이미 구워진 탓에 딱딱하고 질겼다. 그렇다고 향신료가 뿌려진 볶은 밥이나 훈제 염소고기를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선융은 짜파티를 감자스프와 함께 먹고는 먼저 일어나 로비로 나갔다. 현관 앞에는 벌써 오토릭샤 4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굽타가 운전수들을 모아놓고 뭔가 지시하는 중이었다. 굽타가 부른 4대의 오토릭샤도 거리의 무질서에 가담하려고 대기 중인 셈이었다. 물론 오토릭샤는 무질서 속에서도 운전사가 능숙한 솜씨로 목적지까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갈 터였다.
이윽고 순례일행 모두가 오토릭샤에 승차했다. 운전사들은 웃으면서는 ‘나마스테!’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는 ‘노 프로브럼(No problem)!’을 외쳤다. 일행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고갯짓이었다. 선융은 또 다시 여행사 직원과 함께 동승했다. 여행사 직원이 귀띔해주었다.
“인도 사람들 인사법은 나마스테입니다.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 정도인데 당신께 귀의합니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인도 사람들에게 나마스테라고 말을 건네면 아주 좋아합니다.”
숙소를 출발하자마자 오토릭샤는 곡예를 하듯 달렸다. 앞에서 출발했던 진공스님이 탄 오토릭샤는 어느 새 보이지 않았고, 로렌과 시몬이 탄 오토릭샤는 맨 뒤로 처졌다. 로렌이 불안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오 마이 갓!”
오토릭샤와 트럭, 우마차, 흰 염소와 검은 소 등이 한데 엉켜 있으니 불안할 만도 했다.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라 ‘무질서의 방종’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싶었다. 무질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막무가내였다. 바라나시에서 질서의 가치는 무의미했다. 오히려 무질서가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차들은 차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큰 사고 없이 자기 몫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융은 문득 자신이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질서이건 무질서이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각이 들자 갑자기 바라나시의 무질서가 흥미로워졌다. 선융은 바라나시의 무질서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으로 자신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일종의 타의적인 공모관계였다. 바라나시의 특산물이 있다면 거리의 무질서가 아닐까도 싶었다. 선융은 무질서의 가치를 실감했다. 질서가 있다면 무질서가 있어야만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가치였다. 다른 두 가지의 공존은 자연의 섭리일 것도 같았다.
‘부처님은 두 가지의 가치를 이분법과 상대적인 잣대로 셈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가 설한 불이(不二)란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을 불이의 눈으로 보라고 설하셨던 것이다. 불이란 두 가지를 초월하라는 것도,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불이는 중도(中道)와 동의어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이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경험하는 통찰일 터였다. 선융은 무질서와 질서 속에서 부처가 설한 불이의 진리를 보았다.
‘불이야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증오하는 현대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특효약의 처방전이 아닐까.’
바라나시에서는 잠시 인도를 벗어나 차도로 걸어도 되었고, 아무 때나 강가강으로 나가 가트를 거닐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서가던 오토릭샤가 길가에 멈춰 있었다. 먼저 온 일행이 선융과 로렌, 시몬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는 어느 거리에서든 동쪽으로만 가면 강가강에 닿았다. 생명의 모든 핏줄이 심장으로 가 닿는 것처럼. 길 끝에 강가강이 언뜻 보였다. 로렌이 웃었다.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좀 전에는 불안해 보이던데?”
“이제는 무질서를 사랑하게 됐어요. 바라나시의 혼돈이 드라마틱해요.”
시몬도 한 마디 했다.
“마술에 걸린 듯해요. 제가 지금 이 상황을 즐길 줄 몰랐어요.”
질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아온 로렌과 시몬이 무질서를 사랑하게 됐다는 말투로 말했다. 선융은 그들을 이해했다. 메인가트에서는 벌써 아르띠 뿌자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곱 개의 무대 중에서 가운데 무대에 앉은 사람이 제사장인 듯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각 무대의 제기(祭器)마다 붉은 꽃과 향이 가득했다. 순례일행은 일몰이 되면 아르띠 뿌자를 관망할 수 있는 언덕 위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때까지 각자 가트를 산책하기로 했다. 선융은 로렌과 시몬을 데리고 화장터로 갔다. 선융은 네팔의 카트만두 바그마티강에서 화장하는 광경을 보았으므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로렌과 시몬은 눈을 감아버렸다. 머리끝과 두 발이 조금씩 드러난 채 흰 천으로 돌돌 말린 시신은 강가 강물에 두세 번 적셔진 후 장작불에 곧 화장이 되곤 했다.
로렌이 무표정한 선융를 보더니 말했다.
“놀랍지 않으세요?”
로렌은 화장터에서 시신이 타고 있는 광경을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았는데, 선융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고 또 다시 놀란 듯했다. 선융이 나직하게 말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고마워하고 있어요.”
“네?”
“그렇지 않아요? 로렌. 저 불타는 시신은 우리에게 한 인간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잊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 아닐까요?”
시몬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슬퍼요.”
“저는 저 죽음을 보면서 살아 있는 동안 더욱 절절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그래요!”
로렌의 눈에 푸른빛이 스쳤다.
“인도인들이 암송하는 <바가바드기타> 한 구절을 외워 볼까요?”
“좋아요. 들려주세요.”
“저기 가트로 내려가지요.”
선융은 강물이 출렁이는 강가로 내려갔다. 강가 가트에는 힌두교 신자들이 세수를 하거나 머리에 강물을 끼얹고 있었다. 강가강 강물로 몸을 씻으면 자신의 죄가 소멸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믿는 힌두교 남녀신자들이었다. 이윽고 선융이 강가강을 바라보면서 <바가바드기타> 한 구절을 영어로 외웠다.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자기는 죽지 않을 듯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일이다.
시몬이 선융에게 물었다.
“저도 강물에 들어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리석은 짓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선융은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보다 부처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석가모니 부처는 바라문 산가라바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낮 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강가강으로 나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바라문이여, 강가강에서 목욕한다고 해서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개구리나 거북이나 악어들도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부처는 바라문 산가라바에게 죄를 씻으려면 강가 강물이 아닌 선(禪))의 강물에 목욕하라고 일렀다.
“진정한 강은 선의 강이니 선의 맑고 깨끗한 물은 모든 사람을 자비롭게 씻어준다. 선의 물에 뛰어들어 목욕하는 법을 배우라.”
어느 새 메인가트에는 힌두교 신자들이 가득했다. 순례일행은 언덕 위에 있는 카페로 올라갔다. 그 사이에 아르띠 뿌자를 지내는 제단마다 불이 환하게 켜졌다. 특히 제단 위의 우산 모양의 천개(天蓋)에도 초록색과 푸른색, 노란색, 흰색의 네온불이 켜졌다. 잠시 후 뿌자를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바로 강가강을 향해 선 일곱 명의 브라만 사제들이 한 손으로는 코브라 모형이 달린 제기를 종소리와 힌두교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움직였다. 다른 손으로는 요령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사제들이 든 제기 속에서 불꽃이 일렁이다가 나중에는 흰 연기를 내뿜었다. 사제들은 흰 연기로 S자를 만들거나 둥근 원을 그리곤 했다. 시바신과 대화하는 동작이라고 굽타가 설명했다. 연기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그것은 인도 힌두교나 한국의 유교식 제사나 마찬가지였다. 진홍색 비단 상의와 흰 비단 하의를 입은 젊고 늘씬한 사제들은 종소리와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사제들의 동작에 따라서 힌두교 신자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사제들이 붉은 꽃잎을 한 움큼 허공에 던지자 바로 꽃비로 바뀌어 흩날렸다. 단조로운 사제들의 동작은 한 시간 동안이나 반복되었지만 선융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힌두교 신자들 일부는 아르띠 뿌자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또 다른 일부는 강가강으로 내려가 나룻배를 타려고 줄을 섰다. 무시무종(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강물에 디아(Dia, 꽃등)를 띄우려고 배를 기다렸다. 자신의 소망을 담아 꽃등을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으로 각자 아르띠 뿌자를 끝내는 것 같았다.
순례일행도 나룻배를 타기로 했다. 굽타가 강가강 맞은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드는 뱃삯을 흥정했다. 일행이 탄 나룻배 사공이 노를 젓자마자 꽃등을 파는 나룻배가 따라붙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꽃등을 팔았다. 아마도 노 젓는 사공의 딸인 듯했다. 일행 모두가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일행을 태운 배가 강가강 중심에 이르렀을 때에는 일행 모두가 꽃등을 하나씩 사서 강물에 띄웠다. 선융은 미처 소망을 생각하기도 전에 꽃등을 띄웠는데, 선융의 꽃등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띄운 꽃등들과 섞여버렸다.
선융은 자신이 띄운 꽃등을 찾는 대신 캄캄한 밤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별 하나를 보았다. 선융은 방금 자신과 마주친 별을 무슨 이름으로 부를까 하고 생각했다.
‘영(靈)이라고 한 음절로 부르기에는 어쩐지 죽은 이후의 존재 같군. 역시 혼(魂))이라고 부르기에도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존재 같아. 시공을 초월하여 내게 다가온 별이니 ‘깨어 있는 영혼’이라고 불러 볼까.’
‘깨어 있는 영혼’과 조우했다고 생각하니 광대무변한 우주의 전언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날개가 펴졌다. 석가모니 부처는 새벽의 샛별을 보고서 홀연히 위없는 깨달음의 관문을 넘어섰던 것이다.
‘깨달음의 눈을 뜬 부처님이 본 우주는 삼천대천세계라고 했지.’
단숨에 지상에 닿은 별빛은 없을 터였다. 몇 억 광년을 지나온 별빛들이 부지기수일 것이었다. 부처가 본 우주는 광대무변했다. 그래서 부처는 우주를 법계(法界))라고 했던 것이다.
‘소천세계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세계가 1천 개인 우주이고, 중천세계는 소천세계가 1천 개 모인 우주이고, 삼천대천세계는 중천세계가 1천 개가 모인 우주라고 하니 얼마나 광대무변한 우주인가. 1천억 개의 별무리를 은하라고 정의하는 과학자들의 우주보다 훨씬 크고 무한하지 않은가.’
별을 마주보고 있던 선융은 엉덩이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사공이 젓는 노에서 강물이 한두 방울씩 선융의 자리에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선융은 손수건을 꺼내 자리를 닦았다. 자리를 바꾼다면 누군가의 엉덩이도 젖어야 했다. 선융은 문득 김광섭이 남긴 <저녁에>라는 시를 중얼거렸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은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선융은 불가의 윤회와 인연을 담은 이처럼 소박하고 곡진한 시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부처에 이르지 못한 중생이라면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고 지우고 싶은 허물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미완의 인간이라도 자비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것은 무릇 아름다운 일이고, 그러한 인연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저녁에>인 것이었다.
‘깊은 그리움이야말로 사람을 크게 사랑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몇 억 광년을 지나온 별빛 같은 그리움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의 자비심일 터. 선융은 ‘부처님이야말로 중생들을 가장 그리워했던 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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