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나가르
“부처님에게 돌을 던지면 맞을까?”
“……”
“부처님도 돌을 던지면 맞습니다. 다만 부처님, 즉 깨달은 사람은 돌 맞을 인연을 만들지 않는 거지. 우리들도 번개를 맞으면 죽는데, 번개 맞을 인연이 아직 없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열반당에 모셔진 부처님 열반상. 5세기 굽타왕조의 쿠마라굽타왕 때 조성됐으나 발굴 당시 심하게 훼손되어 19세기에 복원됐다.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자현 스님은 순례단의 보살-거사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또 질문했다. “돌아가신 부처님은 돌을 던지면 맞을까?”
돌아가신 부처님에게 돌을 던진다고 맞을 리가 없다. 그러니 돌아가심, 즉 열반은 깨달음의 완성이다. 서력기원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데 반해 불력기원, 즉 불기(佛紀)가 부처님의 열반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신이었으나, 부처님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됐다.
인도 사람들은 죽음을 중요시하고 내세관이 투철하다. 갠지스 강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하고 같이 섞여 사는 것이 좋지… 여러분은 죽을 사람들하고만 같이 사는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어요?” 스님은 “인도인들에게는 ‘나는 재활용될 거야’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보여준 언행은, 부처님이 죽음보다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을 웅변하고 있다. 부처님은 춘다가 ‘상한 돼지고기’ 공양을 자책하고 있음을 알고 “여래에게 올린 춘다의 마지막 공양은 수자타의 첫 공양처럼 큰 의미가 있다”라고 아난다를 시켜서 말해준다. 부처님은 또한 그를 찾아온 늙은 외도 수행자 수밧다라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자신의 마지막 제자로 삼는다. “부처님이 곧 열반하시는데도 나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라며 우는 아난다에게 “너는 머지않아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위로 섞인 예언을 한다. 이후 제자들에게 “내가 열반을 앞두고 있는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라”라고 한다. 질문이 없자 붓다는 “모든 생성된 것은 소멸한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라고 말한 뒤 열반에 든다.
부처님은 열반을 앞두고서도 산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설법했다. 당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설법할 만도 한데 부처님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브라만교에서는 “우주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또 어떻게 생겨났는가” “창조자가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 “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우리는 탄생 이전에도 존재하는가” 등이 주요한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희론’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침묵으로 대응했다.
불상 밑에 조각된 ‘고뇌하는 아난다’ 상. 아난다는 부처님의 입멸이 다가오자 “내가 아직 깨닫지 못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떡하나”라는 생각으로 우울해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는 어떻게 답하든 ‘지금, 여기’에서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않는, 무의미한 답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보다는 삶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생성된 것은 소멸하는 법이고 우리는 죽기 전까지 우리들의 삶을 가꾸어나가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 죽음이란 애초에 예정된 과정이 전개되는 것이므로 이를 슬퍼할 까닭이 애초에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런 부처님의 자세를 우리의 장례문화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장례식장에서는, 유족이 관을 부여잡고 통곡하다가 실신하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된다. 마치 망자(亡者)가 그의 육체 안에 있다는 듯이. 그러나 사람은 육체 안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타자와의 관계 안에 있다. 이것이 부처님이 주창한 ‘무아’의 사상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나를 보살펴주고 혹은 나를 혼낼 때, 그 순간에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육체 안에 ‘아버지’가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다시 우주 전체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연기법의 눈으로 보면, 살아있을 때도 사실은 ‘우주 전체’였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표현도 맞지 않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다만 이런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성찰하는 의식을 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 자극으로 느낄 수 없게 된, 나의 마음속에만 있는 아버지를 추억하고 아버지에게 말을 걸고 아버지가 내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 성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한국에서 행해지는 불교식 천도재는 망자가 49일 동안의 심판을 거쳐 다음 윤회지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여기서 후손이 해야 하는 일은 그 과정에서 후한 심판을 받게 해달라고 비는 것인가? 그러나 실체로서의 영혼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윤회를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나의 마음속에 있는데 아버지의 ‘영혼’을 내세워서 그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행사는 ‘진짜 아버지’와의 소통을 방해한다. 천도재는 스님이 하고 장례 행사의 주인공인 유족은 절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서 오히려 행사에서 소외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례 없이 자신들이 대사를 읊고 사랑을 고백하는 등의 새로운 결혼식을 하듯이 장례 행사도 유족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행가 가사에도 자주 나오는 “인생은 이슬 같은 것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며 무아 사상의 핵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붓다가 오랜 노력 끝에 찾아낸 진리이다. 중도니 연기법이니 공이니 하는 개념들이 표현하는 진리를 한마디로 응축한 말이 서산대사 같은 고승들이 말한 ‘구름과 같은 덧없는 인생’이다.
구름이나 이슬은 다만 공기 중의 습기가 한 순간에 그런 형태를 띤 ‘현상’일 뿐이어서 바람이 불거나 햇볕을 쪼이면 스러지고 마는 것이다. 양 모양의 구름을 이루는 물 입자들이 흩어졌는데 조금 후에 다시 물고기 모양의 구름이 생겼다고 해서 양이 물고기로 환생했다고 한다면 이는 겉모양에 현혹된 판단일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안에 있는 영혼이 심판을 받아 지옥이나 극락으로 간다든지 혹은 사람이나 축생으로 환생한다는 것은 이와 똑같은 오류다.
각 나라에서 온 많은 순례단들이 황금색 이불을 들고 열반당 밖을 돌고 열반당 안 열반상에 이불을 덮어준 후 예배한다. 이불에 소원을 적고 이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윤회는 없다. 혹자는 윤회에 ‘무아’를 덧붙여서 ‘무아윤회’라는 조어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을 이어붙인 것이어서 현실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무아윤회’가 뜻하고자 하는 바는 ‘생태질서’라고 표현하면 오히려 간명하다.
경허 스님은 “삼천대천세계가 다 내 집”이라고 오도송을 읊었다. 삼천대천세계가 다 내 집이라면 나는 어디서 오는 것도,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영가(永嘉) 선사는 “꿈속에서는 윤회가 있었으나 깨어나보니 윤회가 없다”라고 했다. 윤회는 꿈속에서나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재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반하는 신화를 강화한다.
‘윤회’는 2600년 전, 과학적 지식이 없고 논리가 부족했던 인도인들이 가졌던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이 윤회론은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윤회론을 없애고 무아론을 더 풍부하게 일으키는 것이 불교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불교계의 엘리트들, 즉 스님과 학자들이 불교에서 윤회론을 지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면 나오는 일반적인 반응은, “그러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라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나 영화 ‘신과 함께’ 같은 이야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면 그런 세상은 낭만이 발붙일 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귀신이나 영혼 이야기들이 다만 신화임을 우리는 이미 안다. 과학 지식이 없을 때 신화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사기(詐欺)’가 아닐까? 우리는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진리에 기반한 새로운 이야기들, 그리고 새로운 의식(儀式)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 과거의 ‘거짓 이야기’ 속에서 안주한다면 이는 너무나 나태한 태도가 아닐까? 영화 ‘신과 함께’가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이지 49재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당. 양 옆에 있는 나무는 부처님이 그 사이에서 열반했다고 경전에 쓰여 있는 ‘사라 나무’다. 자현스님은 “부처님이 사라 쌍수 사이에 그물침대를 걸쳐놓고 거기에 누워 열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리에 기반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사실은 개발되고 있다. 나는 ‘터미네이터’ 같은 공상과학영화를 그 예로 들고 싶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우주는 4차원 시공연속체”라고 말한다. 이는 시간이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연관이 있는 것이며 속도와 연관된 것이어서 이론적으로만 말하자면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대중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사라지더라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으시죠? 그러나 물질이 없어지면 시간과 공간도 없어집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 실체가 아닌, 인간 직관의 형식으로 규정한다. 공간은 감각자료를 사물의 속성으로 볼 수 있게끔 사물과 연결시키는 형식으로서의 외적 직관이며 시간은 우리 자신의 상태에 대한 직관을 더한 직관, 즉 내적 직관인 동시에 외적 직관이라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남편이 전생에 나와 원수였던 모양”이라는 어떤 내담자에게 “나의 남편이 전생에 원수였기 때문에 이번 생에도 원수일까, 아니면 지금 원수니까 전생에 원수가 되는 것일까”라고 반문한다. 이는 기존의 상식적 시간 개념을 흔드는 불교적 통찰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미래에서 온 암살자’의 개념은 이와 같은 새로운 시간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의상대사 법성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이는 “끝없는 시간이 찰나의 생각과 닿아 있으니, 한 생각을 내는 순간이 곧 무한의 시간이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의 세계와 생각의 주체는 서로 맞닿아 있으되, 그 세계는 복잡하거나 어지럽지 않으며 질서있게 진행된다.”라는 뜻이다.
법성게는 화엄의 세계를 210자의 글자로 표현한 시(詩)다. 여기에는 “존재가 있어서 그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존재를 생성해 낸다”라는, 현대 물리학의 관찰 결과가 뒷받침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있다. 이와 같은 진짜 불교세계관에 어울리도록 장례 등의 불교 행사를 현대화 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의 창작, 그것이 미래 불교를 개척하는 길이 아닐까?
글 · 사진 =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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