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스투파
인도 바이샬리에 있는 대림정사 터에는 아난다를 기리는 아난다 스투파가 있다. 이는 ‘아난다 반신탑(半身塔)’이라고도 불린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었고, 25년간 부처님의 시자(侍者)로 있었던 아난다 존자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부처님을 키워준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출가를 붓다가 거절하자 아난다는 물었다. “부처님, 여자가 비구니가 되어서 아라한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할 수 있다”고 답했고 아난다는 “그렇다면 부처님의 교단에서 여자가 비구니가 되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요청해서 이를 관철시켰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은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는 경전의 결집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부처님 사후 마하가섭을 이어 교단의 수장이 됐다. 이런 아난다를 아소카왕도 존경했다. 왕은 사리불과 목건련, 마하가섭의 부도에는 10만냥을 공양했으나 아난다에게는 100만냥을 공양했다고 한다.
부처님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하고 남은 뼈 즉 ‘사리’의 분배를 놓고 마가다국과 코살라국 등 국가 간 갈등이 있었다. 종교적 성자(聖者)로서의 부처님 사리를 갖고 있느냐 여부가 당시로서는 매우 현실적인 국가이익이었기 때문이다. 불멸 후 교단의 수장이 된 아난다의 사리도 마찬가지였다.
대림정사 터에 있는 아소카 석주는 드물게 온전한 형태로 파괴되지 않고 서 있다. 이 석주에는 글자가 없지만, 대림정사가 비구니의 출가를 받아들인 곳임을 감안할 때, 석주 옆의 탑은 아난다 존자탑으로 추정된다.
아난다를 기리는 탑을 ‘아난다 반신탑’이라고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마가다국에 있던 아난다가 열반을 위해서 비사리국(바이샬리)으로 가는 배 위에 있을 때,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이 “되돌아오라”고 하고 다른 쪽 강변에서는 비사리국 측에서 “어서 오라”라며 환영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 아난다는 갠지스강 위에서 열반했고 배 위에서 즉시 화장된 아난다의 사리는 마가다국과 비사리국 양쪽에 반씩 나뉘어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마가다국과 비사리국 양국의 불교 판도와 관련된 어떤 역사를 상징하는 신화다. 오늘날 비사리국 쪽에는 아난다존자의 ‘반신탑(半身塔)’이 남아있지만 마가다국 쪽의 반신탑은 그 자취가 없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아난다가 비사리국에서 열반했을 개연성을 말해 준다. 당시 인도 16대국을 마가다국이 통일했으므로 이 신화는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마가다국에 유리하게 윤색된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경전에는 부처님의 열반을 앞두고 아난다 존자가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왜 우느냐고 묻자 아난다는 “내가 아직 깨닫지 못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면 나는 어떡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너는 언제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위로를 겸한 예언을 하셨고 아난다는 그제서야 부처님의 열반을 서러워 했다고 한다. “이는 인도의 개인주의적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자현 스님은 설명했다.
그런데 지혜로운 아난다가 20년 넘게 부처님의 말씀을 하나도 소홀히하지 않고 들었는데 부처님 열반 직전까지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경전에는 전법 초기에 야사 비구와 그의 친구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하루만에 아라한이 됐다는 구절도 있고, 그렇게 부처님의 제자들이 ‘떼’로 아라한이 되어 초기에 이미 ‘1260 아라한’이 있었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난다는 불멸 후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는 회의 하루 전에야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경전에는 쓰여 있다. 이 순간을 원나 시리 스님은 소설 ‘아난 존자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마음도 놓아버리고 몸도 놓아버리고 누우려고 두 다리를 땅에서 들었다. 머리가 베개에 닿기 전, 발이 침대에 닿기 전, 막 누우려고 하기 직전에 내 일생에 가장 특별한 일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러한 상태를 행주좌와 중 어디에 넣어야 하는가? 걷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누운 상태도 아니었으니 그 네 가지 상태를 벗어난 짧은 순간에 나의 모든 탐심과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한 니르바나의 높은 법을 분명한 지혜로 깨달아 얻은 것이다. 그 아라한과의 행복이 어떠합니까, 라고 누가 물으면 ‘직접 체험하고 만나야 이해할 것이다’라고 해야 하리라.”
싯다르타가 보리수 밑에서 명상 끝에 얻은 깨달음, 그것은 ‘철학적 진리’였다. 당대의 브라만교는 “너의 몸 안에 우주와 통하는 너의 정신이 있으니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했다. 자이나교는 몸 안에 정신이 있고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서 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싯다르타는 이런 가르침들이 진실에 기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몸 안에 사람으로서의 핵심은 따로 없다. 사람이란 그저 그 사람의 삶이다. 있는 것은 현상으로서의 혹은 행위로서의 삶이며 그 주체로서의 사람이 삶과 분리되어 따로 있지 않다. 그러니 ‘내가 있다’는 망상을 버려라. 그리고 너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라.” 이것이 석가모니가 설한 ‘고(苦)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사람은 누가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할 때 화가 난다. 그 화에 휘둘리면 삶이 불행해진다. 남이 나를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다. 칭찬을 받은 나는 내가 대단한 인물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 생각이 나의 행위를 제약한다. 이것은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사랑이 사랑의 대상에 대한 소유욕으로, 그리움으로 발전하면 그 대상이 없어졌을 때 고가 찾아온다. 이것이 ‘애별리고(愛別離苦)’ 즉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고통이다. 미워하지만 만나야 하는 고통이 ‘원증회고(怨憎會苦)’이다.
고는 인간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평가하고 평가받고 소통하는 모든 과정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 혹은 사물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하는 ‘실체주의의 오류’가 그 근본 원인이다. 이 오류를 부추기는 것은 언어다.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 + 서술어’로 구성되니 모든 현상(서술어)의 이면에는 그 주체가 따로 ‘있다’(주어)는 전제 하에 언어는 성립한다. 그렇다면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명 그 자체가 인간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니 인간은 분별심을 버려야 하고 언어도 쓰지 말아야 하며 문명을 등져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석가모니는 이런 자세를 결단코 반대했다. 석가모니만큼 언어와 논리를 중요시한 사람도 없었다. 브라만교적 신화가 만연한 그 시대에 석가모니가 구사한 명징한 논리는 경이로운 점이 있다. 그 논리는 현대 물리학의 성과가 뒷받침하고 있어서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석가모니는 전통의 농촌이 아니라 당시 신 교역로를 중심으로 한 신흥 문명권을 핵심 전도 대상으로 삼았다.
석가모니가 주창한 것은 분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고, 분별을 하되 다만 그 분별심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해 스님이 영화 산상수훈을 통해서 말한 바, “선악과는 필요하지만 선악과를 따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라면 그게 어려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님 말씀을 20여년 동안 꼼꼼히 들었던 아난다가 설마 이런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인가?
유적을 설명하는 현지 안내판. 여기에는 이 탑이 “원숭이 왕이 붓다에게 꿀을 바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석주가 세워졌다”라고 쓰여있다.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고를 만날 때, 예컨대 화가 날 때 이를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한다. “화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런 관념이 없는 사람에 비하면 훨씬 빨리 평상심을 찾는다. 자신이 화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을 잘 관찰하기만 하면 화는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화가 풀리지는 않는다. 화를 진정으로 푸는 길은, 내가 화를 내게 된 계기로서의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거나 부모에게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때 화가 난다. 그런데 이 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의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 자녀를 위한 마음이다. 그러니 화의 근원은 자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자비의 마음도 ‘집착’이 되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악의 원인은 다름 아닌 선에 있다. 그러니 “분노가 곧 자비”라는 이런 마음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자녀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이 잘되지 않을 때는, 나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아무 갈등이 없다. 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라고 한 말은 “내가 갖게 된 모든 생각이나 감정들이 모두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바로 알면 일체의 고통이 없다”라는 말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고(육체적 고가 아님)를 없애는 방법을 한마디로 요약한 매우 통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증득’은, 예컨대 화가 나는 그 순간 언제나 바로 그 화를 지켜볼 수 있으며 그래서 화가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런데 이런 경계는 재가자들의 삶에서도 드러날 때가 있다. ‘도마의 신’으로 불리는 체조 선수 양학선은 올림픽에서 도마에 도전하기 전의 경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긴장을 해서 긴장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긴장을 했는데 긴장하지 않은 것 같고, 오히려 차분해진 것 같고, 그런 긴장감이다. 그때 눈에는 딱 도마만 보인다.”
“눈에 딱 도마만 보이는” 이런 상황은 선승들이 늘상 말하는 ‘화두만이 성성한’ 상황이다. 도마란 몸통의 길이 1.6미터, 너비 35cm이며 높이 1.35미터인 올림픽 체조 경기용 도구이자 종목명으로, 선수는 10여미터를 달려와 도마를 짚고 뛰어올라 몸을 비틀고 돌리는 연기를 한다. 도움닫기로 달리기 시작해서 도마를 짚는 동작, 공중 동작과 착지 등을 다 합해도 6~7초면 끝나는 이 종목은 무엇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데에 집착하면 또 안 된다. 집중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이런 자세는 승부사들에게는 필수다.
부처님이 목욕하실 수 있도록 원숭이들이 파 놓았다는 연못.
이상화는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2014년1월 인터뷰에서 “(소치 올림픽에서)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문장의 논리만 갖고 따지면 이는 말이 안 된다. 얻을 것도 없다면 왜 훈련하는가? 그러나 인생의 깊은 진리, 우주의 깊은 진리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로 인해서 구원을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라고 하는 금강경 논리, 원(願)을 세우지만 그 원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그 논리의 변주(變奏)가 이상화의 입을 통해서 설파되고 있다.
이런 경계는 자신의 감정을 노래에 실어 전달하는 가수에게도 요청 된다. 박진영은 몇 년 동안 이어진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에서 “너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너를 잊고 청중과 하나 되라”라는, 이와 상반되는 듯이 들리는 말도 함께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낸 가수들은 예외 없이 이 두 가지 미션을 이루어낸 사람들이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승(僧)과 속(俗)은 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분노는 곧 자비이며, 삶과 죽음도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가 위대한 것은 그가 이런 이율배반의 논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명’의 챔피언이었으나 동시에 그 문명에 침몰하지 말아야 한다는 ‘탈문명’의 메시지를 함께 제시한다.
사실은 이런 메시지를 현대의 우리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을 왜 싫어할까? 문명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문명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내면적 성찰을 하는 것(이것이 ‘공부’인데)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붓다가 초기에 얻은 무아와 연기의 깨달음은 철학적 깨달음이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개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게 이룩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서원을 세우지만 그 서원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상반되지만 하나인’ 메시지를 나의 삶에 체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인간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있을지라도 그 때문에 번뇌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가 생활화된 상태, 그것이 초기의 ‘철학적 깨달음’ 이후에 생긴 ‘열반적 깨달음’의 개념이라고 미네소타대학 철학과 홍창성 교수는 정리한다. 그는 이어 “궁극적 깨달음은 철학적 깨달음과 열반적 깨달음을 모두 갖춘 상태”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문제는 “열반적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글 · 사진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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