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는 “세존이 어느 때 아나타핀디카 사원에 계실 때”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팔리어 아나타핀디카(범어로는 수닷타) 사원은 한자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표기되는데, 이는 급고독장자가 사위성 성주 파사익왕의 아들  기타(祇陀)태자의 동산을 사서 지은 절’이라는 뜻으로,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로 표기되기도 한다. 수닷타 장자는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기 때문에 ‘급고독(給孤獨) 장자’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붓다의 최대 지원자였던 거상(巨商) 급고독장자는 “동산에 황금을 깔면 이 동산을 팔겠다”고 던진 기타 태자의 농담을 받아, 실제로 동산 부지를 황금으로 까는 정성을 보였고, 기타 태자도 이에 감복하여 절의 건립에 동참한다. 붓다의 수제자 사리불이 절 건립의 총감독 역할을 한 이 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7층 높이의 화려한 건물로, 붓다는 평생을 이 절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이 절은 후대에 증축된 부지를 다 합치면 200m x 500m, 즉 10만㎡(약 3만평)로 드러나고 있다.

 

 

 

급고독장자는 당시 코살라국 수도의 노른자위, 지금으로 치면 서울 강남에 해당하는 지역의 넓은 땅에 거대한 절을 지은 것이다. 붓다는 이로써 당시의 브라만교나 자이나교와 싸워 교세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최대 거점을 얻었다.

 

그런데 기수급고독원이라는 이름에서 급고독장자의 이름은 기타 태자의 뒤로 밀리고 있다. 붓다는 코살라국의 권력자인 기타 태자를 불교 교단으로 끌어들이려고 이렇게 했다. 게다가 ‘약칭’에 해당하는 ‘기원정사’에는, 제타 태자를 뜻하는 ‘기’만 남아있고 ‘급고독’은 빠졌다. 정사의 건축에 급고독장자의 기여가 기타 태자보다 훨씬 컸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 교단에 거액의 부를 기부한 급고독장자는 그 대가로 도대체 무엇을 얻었다는 말일까?

 

이는 내가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순례단원 중 한명인 최현석 선생과 토론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고 심장내과를 전공했으며 ‘내 몸의 생로병사’ 등을 출간한 저술가이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 기도나 염불 대열에서 이탈해 혼자 주위를 서성거리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모르는 불교 용어가 나오면 준비해온 사전을 찾아가면서 개념을 정리했다. 그가 던진 많은 질문들이 내게도 흥미로운 ‘도전’으로 다가왔고 탐구욕을 끌어올려 주었다.

 

다른 단원들은 대체로 질문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석가모니를 지극정성으로 염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불교의 핵심은 ‘철학’인데 왜 ‘기복신앙’으로 흐르는가”와 같은 질문이 환영 받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종교든 철학이든 질문이 빠지면 진정한 것이 못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선생과 나는 “급고독 장자가 붓다의 위신력에 의한 ‘복’을 얻은 것일까”를 논의하다가 “이재용도 ‘승마 지원’ 하면서 순수하게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뭔가를 바란 것이 아니겠는가” 등의 말까지 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속된 질문이었고, 급고독 장자의 신심이나 부처님에 대한 모독으로 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식사자리에 앉았던 이창재 구비누비문화답사회 회장은 “두 분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라며 자리를 옮겼다.

 

 

 

이회장과 나는 이 여행의 룸메이트였다. 여행 첫날 인천공항 검색대에서 나는 ‘비상식량’으로 챙겨 손가방에 넣었던 번데기 통조림을, 이회장은 생수를 각각 뺏겼다. 우리는 “밀폐된 용기에 담긴 액체가 금지된다면, 그걸 우리가 현장에서 먹어버리면 되지 않았을까?”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친해졌다. 말을 섞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인간 붓다 체취 느껴보기’라는 목표를 가진 것도 우리의 공통점이었다. 의기가 투합한 우리는 여행사측에 ‘룸메이트’로 묶어 달라고 요청했고, 이틀째 밤까지 신나게 토론했다. 이회장은 몇 살 위인 나를 ‘형님’으로 불러줬고 나는 그의 호를 따서 ‘석암’이라고 불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는 의형제를 맺었다”고 말했다. ‘의형제’ 운운하는 일은 내게는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석암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고 염불에도 능해서 스님의 포스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부터 나를 피했다. 그의 기본 관심은 세밀한 ‘불교 문화’였고 나의 관심은 ‘불교 철학’이었기 때문에 관심 분야에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불교에 대한 기본 태도에서도 우리는 달랐다.

 

석암은 “형님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이미 나의 대학 시절에 다 결론 난 것들이에요”라며 토론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내게 “형님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정성이 부족하다”라고 고언했다. 순례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다른 순례단이라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며, 스님에게 더 지극히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버스 안이건 어디건 옆에서 들릴 만한 큰소리로 비판적인 토론을 하는 것이 그에게 거슬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을 언급했다. 이는 히브리어로 「무례함, 담대함, 저돌성」 등을 뜻하는 말로, 어려서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도전정신을 뜻한다. 석암은 내게 조선이 유교의 나라임을 상기시켰다.

 

나는 ‘노자’를 전공한 서강대학교 철학과의 최진석 교수가 주창하는 바 ‘경계에 서기’를 중시한다. 내가 불교인 혹은 불교 신자라 해도 고정된 교리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나의 믿음이나 철학이 무엇인지와 관련하여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질문을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태도가 붓다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붓다가 강조한 ‘중도’는 한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니 경계에 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석암이 말하는 바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정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의 인도 여행 목적은 기본적으로 ‘묻기’였다. 그 물음이 다소 오해를 부른다고 해도, 순례단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도 그걸 중단할 수는 없었다. 순례단이 전통의 한국 불교 신도들이기 때문에 나의 질문에 그들의 답이 매우 중요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한국 불교의 방향을 묻는 나의 질문이 스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급고독장자는 무엇을 얻었을까? 이는 “나와 같은 버스를 타며 순례를 하고 기도-염불-탑돌이를 하는 순례단의 보살님들이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라는 문제와도 닿아 있는 질문이라고 나는 느꼈다. 그런데 그들은 복을 빌었다. 스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빌어라”라고 주문했다. “어느 부처님이 대박을 터뜨릴지 알 수 없어”라고도 했다. 이 말은 농담인줄 알았는데, 정말로 스님은 불상을 만날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기도하고 염불하려 애썼다.

 

순례단은 기도가 힘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한 보살님은 “재수 삼수한 자녀 대학입시 기도 5년이 끝나니 홀가분하다”라며 “내가 우리 가족 문제를 기도로 다 해결했다. 친척들의 원(願)도 내 기돗발로 성취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이 재수를 하게 된 것이, 나의 ‘구체적 정성’이 부족해서였을까‘, 잠시 반성했다.

 

급고독장자는 우리 보살님들처럼 복도 빌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붓다를 친견하는 것 자체를 또한 영광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 보살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는 급고독장자가 ‘진리’를 얻은 내용에 대해서도 쓰여 있다.

 

그는 기원정사를 헌정하고도 한참 지난 시점에, 사리불로부터 세세한 불교 교리를 설명 듣고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린다. 석가모니의 교단에 그렇게 큰 공헌을 했지만, 설법은 주로 출가자들에게 집중됐고 재가자인 급고독장자에게는 설법을 충분히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 설법은 사성제와 팔정도의 설법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고(苦)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는 누구나 한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다.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익숙했던 당시 민중들에게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브라만교는 “너의 몸 안에 있는 너의 실체로서의 ‘그것’을 보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붓다는 그 ‘실체’라는 것이 원래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가르쳤다. 부처님은 ‘영원하지만 알 수 없으며 허구인 나’를 지향하느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나’를 하찮게 여기는 관행에 반대하고 지금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설한 것이다. 그런 진리의 발견자 부처님에 대한 존경의 염(念)은 급고독장자나 순례단 보살님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급고독장자는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부처님의 제자들을 만나는 외도들은 “당신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는가?”를 묻는다. 붓다의 제자들은 “스승님은 고와 그 원인을 설한다”라고 답한다. 오늘날이었다면 인터넷으로, 혹은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이므로 이런 질문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다. 또 불교 신도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다. 오늘의 문명은 붓다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발견한 진리 위에 기초해 있으므로 그 문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진리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붓다를 찾아 굳이 인도까지 간다고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명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도에 남아있는 것은, 붓다 사후에 붓다의 제자들이나 후손들이 남겨놓은 것인데 이것들 자체가 상당 부분 ‘비불교’적인 요인으로 물들고 있었고 왜곡이 진행되고 있었다. 

 

글 · 사진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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