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정사는 불교 교단이 최초로 기증받은 절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렇다 할 유적이 없었다. 다른 유적지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거나, 지금은 없더라도 최소한 옛날에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큰 터 등의 자취가 있었다. 그러나 죽림정사에 있는 것이라고는 죽림(竹林)이라는 이름을 상기시키는 대나무와 후대에 지어졌을 소소한 건축물뿐이었다. 정사 한 켠에 모셔진 좌불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식 불상으로 보였다.

 

 

 

죽림정사는 당시 인도 최강국인 마가다 국왕이 기증한 절로 알려져 있다. 붓다의 교단은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라자가하)을 중심으로 신흥 종교의 바람을 일으켰다.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이 전통의 도시라면 갠지스강 유역에 위치한 왕사성은 상업이 발달하면서 일어난 신흥 도시였다.

 

자현 스님은 죽림정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죽림정사의 땅은 가란타 장자가 기증한 것이었다. 이 땅은 당시에 불교와 치열한 교세 확장 전쟁을 벌이던 자이나교에 주었던 땅이었는데, 가란타 장자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땅을 도로 빼앗아 불교에 기증했다. 빔비사라왕의 공헌은 다만 이 땅에 건물 60채를 지어준 것뿐이었다.” 

 

스님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절에는 뱀이 많았고 또한 뱀을 잡아먹고 사는 가란타 조(鳥)가 많이 살았다.” 스님은 “명상에 든 사람은 파동을 뿜어내기 때문에 3m 이내에 접근하면 뱀이 스스로 멈춘다”라며 “수행하기에는 좋은 절이었을 것”이라고 농담도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 신심 깊은 빔비사라왕이 왜 이 정도의 절밖에 기증하지 않은 것일까?”

고타마 싯다르타와 동시대인이었던 빔비사라(頻婆娑羅 기원전 558—기원전 491)는 마가다 제국 하리얀카 왕조의 왕(기원전 543년 즉위)이었다. 그는 벵골의 경계를 지배한 앙가를 병합하여, 그 수도였던 참파에 태자인 아자타삿투(阿闍世)를 보내 다스리게 하였다. 그는 또한 결혼동맹을 통해서 그의 지위를 강화하였다. 첫 아내인 코살라 데비는 코살라의 왕인 마하코살라의 딸이자 파세나디왕(波斯匿王)의 자매였다. 이 혼인을 통해 그 당시에는 작은 마을이었던 바라나시(카시)를 지참금 명목으로 확보하게 되었으며, 코살라와 적대관계를 끝내고 다른 나라들을 다룰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빔비사라의 두 번째 아내인 첼라나는 리치치하비국의 공주였으며 그의 세 번째 아내는 펀잡 지방 마드라 씨족 추장 딸이었다. 멀리 간다라 지방의 왕과도 우호를 맺은 빔비사라는 북동인도에서의 유력한 왕이 되었는데, 그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 王舍城)는 성곽을 두르고 사방 주위의 산악에 외벽을 쌓은 장대한 것이었다. 빔비사라는 행정 · 군사의 제도도 갖추어 고대 통일국가 형성의 터전을 만들었다.

 

빔비사라와 붓다의 인연은 불경에 많이 나오는 주제다. 빔비사라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접근해 정치를 권유하기도 했고 진리를 향한 그의 신념이 굳건한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면 나를 찾아달라”라고 청했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불교 교단에 무한한 호의를 보였다. 스님들에게는 왕궁 무단출입을 허용했다. ‘저 기둥을 깎아 발우를 만들면 참 좋은 발우가 되겠다’라는 한 스님의 말을 우연히 듣고 신축중인 궁전의 기둥을 깎아 발우를 만들어 주기도 할 정도였다.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도 신심이 깊었다고 하지만 빔비사라왕은 그에 비해도 훨씬 신심이 깊었고 붓다와 불교 교단을 사랑했다.

 

그런 빔비사라가 지어준 절이 왜 이것밖에는 안 되었을까? 혹시 브라만교나 자이나교 등 다른 종교의 눈치를 보고 ‘양다리’를 걸친 것은 아니었을까? 자현 스님은 “그럴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고 했다. 

 

빔비사라는 불교와 자이나교의 문헌에 모두 등장한다. 빔비사라 왕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자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불교 사문사과(沙門四果)의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須陀洹)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이나교 문헌에서도 빔비사라는 ‘라자그라하(王舍城)의 슈레니카 왕’으로 언급되며, 자이나교 신자로서 마하비라의 제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불교보다 조금 먼저 발생했고 불교와 교세 확장 대결을 했던 종교다. 2011년 현재 인도에서는 힌두교(79.80%), 이슬람교(14.23%)가 다수파이고 불교(0.70%)와 자이나교(0.37%)는 기독교(2.30%) 시크교(1.72%)보다도 뒤진다. 그러나 붓다가 활약하던 기원전 6~5세기 당시에 자이나교는 불교와 함께 브라만교(힌두교의 전신)를 위협했다. 당시에 ‘깨달은 자’를 가리키는 ‘붓다’라는 말은 불교에서, ‘위대한 자’를 가리키는 ‘대웅(大雄)’이란 말은 자이나교에서 주로 썼지만 양 교단 모두에서 혼용되기도 했다.

 

석가모니가 있는 ‘대웅전’을 볼 때면 나는 자이나교의 교주 마하비라가 생각나곤 한다. 마하가섭 등 붓다의 제자 중 일부가 교단 내에서 고행 수행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그들은 자이나교도가 아니었을까?”라는 상상도 한다. “영혼은 순수한데도 속된 물질의 업에 속박되어 비참한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고행을 통해 본래의 영혼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자이나교의 핵심 교리이다. 그런 까닭에 자이나교도의 삶은 불살생, 불간음, 무소유, 금욕과 고행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브라만교의 시대에는 브라만, 즉 사제 계급이 세상을 지배했다. 유능한 브라만의 사제(司祭)를 스승으로 모시는 왕의 모습이 브라만교의 경전에는 자주 보인다. 그러나 농경의 시대에서 상업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크샤트리아, 즉 왕족 혹은 무사 계급이 힘을 갖게 되고 불교와 자이나교가 생기는 등 정치-종교의 지형에 균열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의 국왕은 어느 종교의 수장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불교 혹은 자이나교 등 신흥 종교와 전통의 브라만교 중에서 어떤 종교가 세력을 갖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을 상황에서, 한 종교에 올인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운을 책임진 왕의 자세는 아니었을 것이다.

 

 

 

법화경 설법지로 알려진, 한국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는 그 유명한 영축산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영축산은 가볍게 등반하기 좋은 산이었다. 영축산 위에서 내려다본 왕사성은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와도 같았다. 이런 곳이라면 한 나라의 수도로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사성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 옆에 신왕사성을 새로 건설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축산 정상의 ‘여래향실’은 우리 순례단 40명이 들어서니 꽉 찰 정도였다. 초기에 이미 ‘1260대제아라한’이 있었으며 이후 세력을 더욱 불린 불교 교단의 대부대에게 법을 설할 장소로서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신흥 지역인 왕사성에서 불교 바람을 일으켰지만, 상황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붓다에게는 새로운 거점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라바스티의 거상(巨商) 수닷타 장자가 자신의 거점인 코살라국 수도 스라바스티 방문을 요청했을 때 붓다가 ‘거처’를 요구한 것은 아마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요구를 들어 수닷타가 마련해 준 것이 그 유명한 기원정사였다. 그곳은 브라만교나 자이나교의 세력이 탄탄한 곳으로, 붓다 교단은 여기서 그들과 진검승부를 벌인다.

 

글 · 사진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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