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영
<제2장> 3회
외출
바람이 통하지 않는 사택 뒷방은 몹시 더웠다. 그렇다고 창을 열면 배 밭의 고랑이나 웅덩이 등에 살던 모기나 날벌레들이 날아들었다. 창문에 방충망을 쳤지만 파리나 모기들은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잠입했다. 날벌레들은 머리를 무겁게 하는 잡념 같았다. 선융 부부는 더운 날씨 때문에 늦게 자는 날이 많았다.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어쨌든 자정을 넘기면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더위도 한풀 꺾이기 마련이었다. 바람이 저수지 쪽으로 살금살금 불어갔고, 배 밭에 내린 밤이슬이 달빛을 받아 형광체처럼 반짝였다. 선융은 자정을 넘긴 뒤에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주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두 사람이 더욱더 잠을 자지 못했다. 더위 탓만은 아니었다. 선융이 주혜에게 서래사 스님들을 대중목욕탕에서 만났는데 진공스님을 뵈러 갈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주혜는 진공스님에게 인사간다는 선융에게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문득 실패했던 첫 결혼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주혜는 선융이 판단할 문제라면서 자신이라면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묘한 감정에 빠진 사람은 선융이었다. 대학시절에 자신을 기꺼이 받아준 서래사 대중에게 빚을 졌는데 그것을 갚지 않고 떠나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서였다. 미안함의 대상을 좁히자면 서래사 주지 진공스님이었다. 진공스님은 선융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는데도 항상 무언가를 베풀고 있는 것 같은 스님이었다. 진공스님을 떠올릴 때마다 선융의 허전했던 가슴은 늘 비로소 충만해졌다. 그러나 충만해진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법당을 드나들면서 시나브로 옷에 밴 향기와 같은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그것은 선융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가와 선융의 가슴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없는 선융에게 생전의 아버지에게 아쉬웠던 무엇이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인사를 가세요. 무엇을 고민하세요.”
“서래사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죠.”
“환속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요?”
“그건 아니지요. 절대로. 내 의지로 환속했으니까요.”
주혜가 누웠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서 말했다.
“당신은 저와 달라요. 저는 저의 의지로 그 사람을 떠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주혜는 첫 남편과의 결혼을 불행이라고 단정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결혼했지만 하느님이 왜 하필이면 그런 남자를 만나게 해서 시련을 주었는지 억울해했다. 아버지인 신목사는 하느님이 더 큰 사랑과 은혜를 주기 위해서 그와 맺어준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주혜는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는 전도사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직업도 갖지 않고 오직 하루 종일 전도만 하고 다녔다. 다행히 그가 속한 대형교회에서 활동비가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신혼부부가 생활하기란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최상의 일이라며 전도하는 데만 전념했다. 주혜 역시 그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일이라고 여겼으므로 늘 동조하고 이해했다. 그가 전도할 지역을 돈 뒤 집에 들어오면 따뜻한 물로 물집이 생긴 발부터 씻어주었다. 주혜가 누군가에게 배웠거나 새로 창안한 족욕은 아니었다. 마산 바닷가에서 기도원을 운영하는 주혜의 어머니가 아버지 신목사에게 해주었던 발 씻어주기 겸 족욕이었다. 거룩하게 대속하신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존경과 남편을 향한 사랑에서 연유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주혜의 첫 남편은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부터 주혜를 껴안지 않고 이성으로서 거리를 유지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을 뿐 한 몸이 되지 못했다. 주혜는 남편 옆에서 물건처럼 놓여만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슬펐다. 자신만 성욕이 있는가 싶어 부끄러웠고,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가 싶어 우울했다.
신혼여행 둘째 날 밤이었다. 낮에 손을 잡고 갯바위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서귀포 바닷가 도로를 택시를 빌려서 드라이브도 했으므로 침대에서는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혜가 바싹 옆으로 파고들자 남편은 등을 돌려버렸다. 주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신혼여행을 다 보내지 않고 혼자서 돌아와 버렸다.
“목사님, 그는 자신이 성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요.”
천국교회로 온 주혜는 신목사에게 고백했다. 그러나 위로받기는커녕 신목사의 충고만 듣고 말았다. 하느님이 시련을 주고 있으니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가 운영하는 천국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주혜를 타일렀던 것이다.
“그가 반드시 기도원으로 찾아올 테니 그때 그를 받아준다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거야.”
신목사의 말대로 남편이 천국기도원을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혜는 그를 용서하기로 하고 신혼살림을 차린 부산으로 나갔다. 남편은 다시 성실한 전도사가 되어 생활했다. 주혜는 남편이 귀가하면 족욕을 시켜주곤 했고, 그 대신 날마다 잠자리에서 그를 기다렸다. 하루는 그가 성불구자인가 싶어 확인해 보기도 했다. 수건을 갖다 주는 척하며 샤워하는 그를 훔쳐보았는데 그는 정상인이었던 것이다. 남자의 뿌리도 가을무처럼 크고 퉁퉁했다. 남편의 몸은 운동선수처럼 이두박근 등 근육질이 발달해 있었다. 남편은 금욕주의자일 뿐 성불구자는 아니었다. 하느님에 대한 남편의 복종심이 그 자신의 성욕을 억누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신성한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전도사로서 자신의 몸을 이성으로 더럽힐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남편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주혜 역시 깨끗한 몸으로서 하느님의 종이 되어 사역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혜는 하느님 안에서 살되 평범한 남편의 아내이기를 원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보통의 아내이기를 원했다. 주혜가 선융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나 역시 신부, 수녀처럼 살기를 바랐어요.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 생각이라면 결혼하지 말았어야지요. 자기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아닐까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느님 속에서만 온전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 정도의 믿음은 없었어요. 하느님에게 빼앗긴 그 사람을 돌아오게 할 능력도 없었고요. 그래서 그 사람 곁을 떠난 거예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 사람이 바란 대로였죠. 그러니까 내 의지라기보다는 쫓겨난 거지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지만 주혜 씨는 주혜 씨일 뿐이죠. 주혜 씨가 없다면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이니까요.”
“선융 씨 얘기를 한 것이 제 얘기를 하고 말았네요.”
“괜찮아요. 사실은 한 번쯤 듣고 싶었어요. 주혜 씨가 오죽 했으면 저수지를 찾아왔을까 싶었거든요.”
“저수지 물이 나를 살린 셈이에요. 나를 거듭나게 해주었으니까요. 물이란 참 묘해요.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어머니 같아요.”
“주혜 씨나 나나 원래는 어머니 자궁 안의 양수 속에 있었거든요. 물은 사람들의 고향 같은 것이죠.”
“그때 어머니가 계신 천국기도원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에게 왔는데 정말 잘했던 거 같아요. 어머니는 하느님의 시련을 이기려면 기도밖에 없다고 기도를 강요했던 분이거든요. 그랬다면 나는 숨이 막혀 죽어버렸을지도 모르죠.”
“이러다 날이 새겠어요. 어서 잡시다.”
선융은 일부러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주혜가 먼저 들었다. 선융은 주혜가 갓난아기처럼 쌕쌕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 선융은 문득 주혜가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주혜를 주혜답지 못하게 하는 그 전도사의 신앙심이야말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신앙에 구속되거나 억압받지 않고 꽃피듯 물 흐르듯 인간으로 살게끔 일깨워주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도 싶었다.
선융은 다시 주혜의 첫 결혼에 대한 고백을 듣기 전으로 돌아갔다. 서래사로 가서 진공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제자로서 예의라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이 사라졌다. 포행 시간에 우연히 주혜를 보았던 저수지도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서래사를 가겠다는 이유는 서래사 대중에 대한 미안함, 진공스님에 대한 예의, 정 들었던 저수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보다 더 내밀하게 선융을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었다.
서래사에는 분명 무엇인가가 있었다. 법당의 부처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는 선승들의 얼굴에 그것이 있는 것도 같았다. 선융이 의지하고 싶었던 상이 있다면 자기를 극복하고 이긴 부처이거나, 그렇게 살고자 정진하는 선승이었다. 특히 부처 옆에 선 가섭존자에게는 자살한 아버지에게 없던 꺾이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고집스런 자존감, 선융이 아버지에게서 보지 못했던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자부심 같은 모습이 있었다. 선융이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아쉬워했던 것은 자애로운 모성(母性)이 아니라 바윗덩이 같은 자존감이나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행동하는 호연지기 같은 태도였던 것이다.
선융은 아침 일찍 교회 사택을 나섰다. 주혜가 말했다.
“빨리 돌아오세요.”
“자고 오지는 않을 거요.”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요. 우산 챙기고요.”
주혜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자꾸 이것저것 간섭하듯 말을 걸었다.
“진공스님께 인사만 드리고 올 거니까 걱정 말아요.”
“선융 씨 지금 표정이 너무 밝아 보여요.”
“간밤에 잠을 설쳤으니 얼굴이 푸석푸석 할 텐데.”
“아니에요. 최근 들어 가장 좋아요.”
사실, 선융은 소풍 가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반면에 주혜는 선융과 달리 은근히 안절부절못했다. 선융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목사도 교인도 보이지 않았다. 선융은 주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제야 주혜의 얼굴에 드리웠던 불안한 그늘이 사라졌다.
“주혜 씨가 말했죠. 키스는 하느님 말씀보다 더 달콤할 때가 있다고.”
“설탕보다 더 달콤하죠. 사실은 하느님도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랄 거예요.”
선융은 우산을 들고 교회 사택을 나섰다. 최근 들어 방송의 일기 예보는 잘 맞았다. 비구름이 남풍과 함께 남쪽 하늘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장대비가 한바탕 쏟아질 기세였다. 선융은 잰걸음으로 서래사로 향했다.
장대비는 저수지 둑이 보일 때쯤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선융은 우산을 펴들고 저수지의 산림도로 쪽으로 올라갔다. 안거 때마다 포행 시간이 되면 산책했던 산림도로였다. 주혜를 만난 산림도로이기도 했다. 산림도로는 비포장도로였으므로 장대비가 쏟아지자 웅덩이에 흙탕물이 고였다. 산림도로 옆으로 난 고랑에는 산자락에서 내려온 빗물과 도로의 흙탕물이 섞여 콸콸 흘러넘쳤다.
서래사는 하안거가 지난 산철이었으므로 적막했다. 까치가 우짖듯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의 경쾌한 위세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산철에도 떠나지 않은 선승이 두어 명 있긴 했지만 그들은 선방에서 참선만 하기 때문에 경내를 오가는 일은 드물었다. 선방을 지키는 두어 명의 선승 중에는 반드시 진원스님도 끼어 있을 터였다. 진원스님은 안거 기간은 물론 산철에도 서래사 선방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화두를 타파하겠다는 진원스님의 집념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법당으로 들어가 석가모니불상 앞에서 삼배를 한 선융은 바로 주지 방으로 올라갔다.
“스님, 선융이 왔습니다.”
“선융이라고?”
주지 방문 한쪽이 활짝 열렸다. 진공스님은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옷고름을 추스르며 나와 말했다. 베개를 벤 한쪽 볼이 유난히 붉었다. 낮잠을 깊이 들었다가 깨어난 모습이었다.
“어서 들어와.”
진공스님이 하품을 하며 선융을 맞아들였다. 선융은 진공스님에게 큰절을 했다. 다탁 화병에는 방울토마토만한 작은 들꽃들이 꽂혀 있었고, 다관과 찻잔들은 옹기종기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진공스님을 시봉하는 상좌의 손길이 느껴졌다.
“스님 낮잠을 제가 방해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이제 깰 때가 됐어. 낮잠은 많이 자면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아.”
“얼마 전에 선원장스님을 목욕탕에서 뵀습니다.”
“전해 들었어. 여기 올 줄 알았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좀 늦었습니다.”
“교회 사택에 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지.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산다면 교회든 성당이든 그곳이 바로 절이지.”
선융은 진공스님의 걸림 없는 모습을 또 다시 느꼈다. 진공스님의 위의는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회통하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도 같았다.
“스님을 뵈니 비로소 고향집에 온 것 같습니다.”
“선융당은 서래사를 잊지 못할 거야. 불연(佛緣)을 맺은 곳이니까. 한번 불연을 맺으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도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사택에 살면서도 늘 서래사 쪽으로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걸 누가 막겠는가. 바람이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불어가는 이치인 것을.”
“아무리 환속했다고 하지만 교회 사택에 산다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서래사 대중들에게 면목 없는 일이고요.”
“걱정할 거 없어. 절 옆에 빈 집이 하나 있지. 원래는 암자였는데 예전에 살던 스님이 주민에게 팔았던 집이라고 해.”
빈 집의 주인은 도회지로 나가 큰 부자가 됐는데, 서래사에 기부하지 않고 빈 집을 수리해서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만 허락한 모양이었다.
“제가 와서 살아도 절에서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누가 싫어하겠는가. 절 식구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
“안사람과 상의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결혼했으니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선융은 주혜가 찬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혜는 진작부터 선융과 함께 도회지로 나가 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공스님이 창문을 열었다. 어느 새 장대비가 그치고 하늘이 파랗게 뚫려 있었다. 건너편 산자락도 무명천 같은 비구름이 물러나면서 푸른 산색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자고 갈 텐가?”
“아닙니다. 스님께 인사만 드리고 돌아갈 겁니다.”
“마침 비도 갰으니 진원스님도 만나보고 가는 게 좋겠어.”
“그럼요. 왔으니까 뵙고 가야죠.”
“그렇다면 차는 진원스님 방에서 마시게.”
“예, 그러겠습니다.”
진공스님이 선융더러 진원스님을 만나보라는 것은 스님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진원스님의 참선 방법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선융이 서래사를 떠난 뒤, 진공스님이 사제인 진원스님을 불러 화두를 바꾸어 보라고 충고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였다. 진원스님은 언젠가 자신이 화투를 타파하게 되면 ‘참나’를 깨달아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진공스님은 ‘참나’가 있다는 주장은 허깨비를 쫒는 것과 다름없다며 선융이 들었던 화두로 바꾸어 보라고 권했지만 그때마다 진원스님은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스님은 선융이 깨쳤다고 생각하십니까?”
“화두를 타파했으니 세상 사는데 걸림이 없어졌을 거네.”
“선융이 부처라도 됐다는 말입니까?”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허상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이 됐다는 것이네.”
두 스님은 물과 기름 같았다. 서로를 설득하거나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진공스님은 나라고 주장하는 허상만 있을 뿐, 실제의 나는 없기 때문에 세상과 내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도구가 화두라고 말했지만 진원스님은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인 영원불멸한 ‘참나’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원스님은 화두를 통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생불멸의 ‘참나’에 이를 수 있다며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게 정진했다. 정진력으로만 따진다면 서래사에서 진원스님보다 더 뛰어난 선승은 없었다. 진공스님은 답답했지만 진원스님에게 더 이상의 조언은 해줄 수 없었다. 다만, 진원스님이 선융을 만나 차담이라도 나눈다면 분명 무슨 변화가 있으리라는 예감은 들었다. 그가 선융을 만난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깨달았는지 확인해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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