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영
<제2장> 2회
푸른 꽃다발 카페
면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대중목욕탕은 약국 맞은편 복지회관 안에 있었다. 일주일에 금요일과 토요일, 두 번만 문을 여는 목욕탕이었다. 장날이 아닌데도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만 되면 면소재지 거리는 목욕하려는 면민들이 삼삼오오 나타났다. 늙은 농부들은 소형 트럭이나 자전거를 타고 오지만 농가 여성들은 대중목욕탕까지 버스를 이용하거나 천천히 걸어서 왔다. 농가 여성들의 모습은 약속이나 한 듯 엇비슷했다. 수건과 샴푸, 비누 등이 든 붉고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한 개씩 들고 마치 무슨 엄숙한 의식을 치르려는 듯 묵묵히 걷고 있었다. 욕실이 없는 흙집과 비슷한 농가에 사는 여성들로서는 교인들이 주일예배를 보는 일요일처럼 금요일과 토요일은 서로가 마을을 나서는 날이었다.
복지회관 대중목욕탕은 농부들만 이용하는 곳은 아니었다. 서래사의 승려와 종무소 직원이나 천국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도 자주 찾았다. 그러니 승려와 목사가 목욕탕 안에서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선융은 한 달에 대여섯 번은 대중목욕탕을 가곤 했다. 자주 가는 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며칠 전에는 서래사 선원장스님과 진원스님을 몇 년 만에 만나고 말았다. 대중목욕탕 안에는 몇 사람 없었기 때문에 삭발한 두 스님은 바로 눈에 띄었다. 선원장스님은 가래떡처럼 길쭉한 남자의 뿌리를 덜렁거리며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목욕을 즐기고 있었고, 진원스님은 목욕탕 안쪽 수도꼭지 앞에서 면벽 수도하듯 바른 자세로 앉아 물을 끼얹고 있었다. 선융은 굳이 얼굴을 보지 않고도 자세만 보고서 진원스님인 줄 알았다. 참선에 익숙한 스님은 허리가 꼿꼿하기 마련이었다. 진원스님의 몸집은 의외로 단단하게 보였다. 마치 운동선수처럼 근육이 탄탄했다. 목욕탕에 들어온 사람들이 엄숙하게 목욕하는 진원스님 옆으로 가지 않았다. 물방울이라도 튀면 진원스님에게 야단을 맞을 것 같아서 그런지 멀찍이 떨어진 채 목욕을 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선방에서도 그랬지만 목욕탕 안에서도 진원스님의 근엄한 자세에는 범접하기 힘든 완강한 아우라가 있었다. 선융은 선원장스님에게 다가가 합장했다.
“스님, 접니다.”
“이 사람, 선융당 아닌가?”
선원장스님은 환속한 선융에게 호의적으로 ‘당’자를 붙여 불러주었다.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에 있는가요?”
“목욕을 자주 오는 편입니다.”
“그래요, 목욕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선원장스님이 개구쟁이처럼 온탕에서 첨벙첨벙 걸어 나왔다.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면소재지에서 산다는 말인가요?”
“예, 처가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서래사를 찾아왔던 그 교회보살하고 살림을 차렸구먼.”
“안적사 묘유스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습니다.”
“여기서 살고 있다면 서래사를 찾아와 인사를 해야지요. 진공스님께서 좋아하실 텐데.”
“절에 인사를 가기가 부담스럽고 쑥스럽습니다.”
선원장스님이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뜨더니 머리부터 끼얹으며 말했다.
“그럴 거 뭐 있어요. 요새는 다들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건데 말이오.”
“아시다시피 처가가 교회라서가 아닙니까. 한때 승려였던 제가 교회에서 살고 있다면 놀라는 스님도 계시겠지요.”
“그럴까요? 글쎄.”
선융은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원장스님이 머쓱해하면서 말했다.
“저기, 진원스님도 와 있으니 인사해요.”
“그러겠습니다.”
선융이 돌아서자 진원스님은 얼굴을 홱 돌려버렸다. 그래도 선융은 진원스님 등 뒤로 가서 합장했다.
“스님, 선융입니다.”
“선융? 잘 만났군.”
진원스님이 등을 돌렸다. 진원스님의 가슴에는 흰 털이 검은 털 가운데 반달곰처럼 나 있었다. 특이한 체모였다.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선융은 겨우 참았다. 진원스님은 뜻밖에도 선융을 만나고 싶어 했던 것처럼 관심을 보였다. 말투는 예나 지금이나 군더더기가 없고 무뚝뚝했다.
“목욕탕에서 만나다니 인연이 묘하군.”
“스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서래사를 떠나 죄송합니다.”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잘 만났어요.”
“아, 그러셨습니까?”
“뭐, 그렇다는 것이지 큰 의미는 없어요.”
진원스님은 선융에게 인간으로서 예의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다. 서래사를 왜 도망치듯 떠났는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편지라도 하지 어째서 못했는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것이 선융으로서는 편했다. 그런데 진원스님이 자신에게 알고 싶은 것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원장스님이 말했다.
“면소재지에 카페가 하나 생겼어요. 오늘은 내가 커피를 사겠소.”
“스님, 감사합니다. 저는 카페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진원스님은 다시 등을 돌린 채 면벽의 자세로 돌아갔고, 선원장스님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드나들었다. 선융이 선원장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등을 밀어드릴까요?”
“좋지요, 좋아요.”
선융은 수건에 비누거품을 만들어 선원장스님의 등을 밀었다. 선원장스님의 등은 연체동물처럼 부드러웠다. 가슴에 붙어 있는 갈비뼈마저 선융의 손이 닿을 때마다 휘어지는 듯했다. 선융이 온수와 냉수를 섞어 물을 끼얹자 선원장스님이 ‘어, 시원하다!’를 반복했다. 뜨겁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는 사람 같이 탄성을 질렀다. 선융은 진원스님에게도 다가가 물었다.
“스님, 등을 밀어드리겠습니다.”
“한 번 해봐요.”
진원스님은 마지못해 선융에게 등을 내밀었다. 선융은 정성스럽게 진원스님의 등을 씻은 뒤 물을 끼얹었다. 진원스님의 등은 선원장스님과 달리 경직돼 있었다. 힘이 들어간 어깨는 나무토막처럼 딱딱했다. 선융은 진원스님이 여전히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밀어드릴까요?”
“됐어요.”
진원스님의 말투는 여전히 그 특유의 완고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선융은 그만의 오래 된 고집을 어떤 때는 매력으로 느꼈다. ‘선승은 저래야지.’하는 일관성에 탄복했다. 타협을 모르는 고집도 때로는 수행자의 덕목일 수 있었다. 선융은 진원스님에게 더 권유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서둘러 목욕을 끝냈다.
“선원장스님, 카페에 먼저 가 있겠습니다.”
“그래요.”
‘푸른 꽃다발’이란 간판을 내건 카페는 면사무소 앞에 있었다. 면소재지 인구가 5백여 명밖에 안 되는데 카페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술집이 사라진 자리에 카페가 들어선 것이었다. 부부 사이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카페 안에서 선융을 맞았다. 카페의 공간은 열댓 명 앉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작은 공간 때문인지 구수한 커피 향기가 진동했다. 커피 향기는 선융의 기억을 자극했다. 두리번거리는 선융에게 젊은 여자가 말했다.
“처음 오셨나 보죠? 개업한 지 반 년 됐어요.”
“시골에서도 되는 모양이네요.”
“우리 커피 맛을 알고 진주에서도 오는 분이 있어요.”
카페 내부 장식은 구식 다방과는 전혀 달랐다. 도회지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세련된 장식이었다. 탁자와 의자가 젊은이용으로 높았다. 벽면 구석 쪽에는 기타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커피를 나르는 젊은 여자가 기타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오시면 기타 연주도 들을 수 있어요.”
“기타를 치십니까?”
“제가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죠.”
인구가 5백 명밖에 안 되는 거리이므로 도무지 손님이 없을 것 같은데 영업을 하고 기타 연주와 노래까지 부른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손님이 있나요?”
“퇴근한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와요. 커피 맛이 소문났거든요. 멀리 부산에서도 와요. 저녁에 한 번 와보세요.”
“낮에는 손님이 없겠군요.”
“맞아요. 시골 분들은 우리 집 커피 맛을 몰라요.”
여자는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기타가 놓인 곳으로 가더니 음을 조율했다. 그런 뒤 웃으며 말했다.
“오늘 첫 손님을 위해 노래 한 곡 선사하겠어요.”
“무슨 노래죠?”
“음, ‘푸른 꽃다발’이란 노랜데 슬픈 가사지만 노래는 흥겹죠. 이 노래를 좋아해서 카페 이름도 ‘푸른 꽃다발’이라고 지었죠.”
여자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페의 공간이 작았으므로 여자가 부르는 노랫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어깨를 구겨진 휴지처럼,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한숨을 폭폭 내쉬네. 바보 같으니, 바보 같으니, 바보 같으니, 바보 같으니
이젠 제발 그러지 좀 마. 눈물로 빚어 진 노래처럼, 목메어 부르는 희망처럼
사랑은 너의 가슴 속.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이젠 그럴 때도 됐잖아. 오늘밤 나 그대 줄게 있네,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요. 푸른 꽃다발, 푸른 꽃다발, 푸른 꽃다발, 푸른 꽃다발
지구라는 푸른 꽃다발. 푸른 별 하나, 푸른 별 하나, 푸른 별 하나, 푸른 별 하나
그대라는 푸른 별 하나.
기타를 치며 부르는 여자의 노래가 ‘이제 행복할 때가 됐잖아요.’라고 선융을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 맛과 더불어 여자의 노래 때문에 밤이 되면 도회지에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면소재지에 있는 ‘푸른 꽃다발’ 카페까지 오는지도 몰랐다.
“원곡자가 누구지요?”
“구자형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인데 60세가 넘은 분이죠.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서 잘 모르실 거예요. 이 가수의 노래를 부르다 보면 시를 낭송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때 선원장스님과 진원스님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선원장스님은 대중목욕탕에서 마음의 때까지 다 씻어버린 듯 아주 밝았고, 진원스님은 쉬운 일을 마친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선원장스님과 선융은 커피를 시켰다. 그러나 진원스님은 한참 동안 메뉴판을 보고 난 뒤에야 말했다.
“맹물만 마시고 싶지만 들어 왔으니 무언가 시켜야지.”
“스님, 주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진원스님, 오늘은 내가 낸다니까요. 아무 거라도 시켜요.”
선원장스님의 재촉에 진원스님이 주문했다.
“오렌지주스요.”
“감사합니다. 여보, 냉장고에 오렌지주스가 있을 거예요.”
잠시 후 커피와 오렌지주스가 나왔다. 선원장스님은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었다. 커피보다 단물을 좋아하는 듯했다. 진원스님은 오렌지주스를 두 번 나누어서 마셔버렸다. 카페에서 한가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태도였다. 선융이 커피 향을 맡고 있다가 말했다.
“스님,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까 목욕탕에서 내 등을 밀어주는 동안 묻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이제는 할 말이 없어진 게지.”
“그러신 줄도 모르고 저는 은근히 긴장했습니다.”
선원장스님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말했다.
“진원스님, 내가 대신 말해줄까요?”
“선원장스님께서도 궁금하셨던가요?”
“용기를 내어 출가하고 더구나 참선까지 체험한 선융당이 왜 한순간에 환속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내게 말했지요?”
“그랬었지요.”
“사실 나도 진원스님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은 있어요.”
진원스님이나 선원장스님은 여자에게 청혼을 받은 뒤 별다른 망설임 없이 환속해버린 선융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세속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출가한 사람이 여자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한 채 승복을 벗어버린 이유를 진원스님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더 궁금했다. 남녀의 사랑이란 원래부터 맹목적으로 뜨거운지, 선융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애욕으로 인한 결과인지, 여자의 강한 유혹 때문인지, 또 다른 원인에서 비롯됐는지 진원스님은 선융을 만나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선원장스님께서 이해가 가지 않은 면은 무엇인지요?”
“나는 선융당의 선택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승려가 환속할 때는 큰 고민과 갈등이 따를 것 같아요. 이곳에서 저 곳으로 가듯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오.”
“난 마음속으로 선융당을 크게 기대했어요. 진공스님께서 인가한 제자 중에 선융당처럼 빠르게 화두를 타파한 사람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선융당이 진공스님 제자 중에 무슨 사연인지 가장 빨리 환속해 버렸어요. 저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돼요.”
선융은 두 스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실제로 두 스님의 의문은 엉뚱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들 수 있는 의문이었다. 선융 자신도 그때, 그러니까 주혜가 청혼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왜 들어주었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스님들의 의문은 아주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가 있는가?”
진원스님이 마치 선융의 잘못을 심문하듯 말했다. 그러자 선원장스님이 선융의 입장에서 변호해주었다.
“혹시 저수지에서 자살하려고 했던 여자가 측은했던 것은 아니었던가요? 한 번 자살하려고 한 사람은 끝내 자살할 확률이 크대요.”
“스님, 그런 동정은 아니었습니다.”
진원스님이 이제까지와 달리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했다.
“선융당, 이러다가 우리 불교가 망할지도 몰라요. 출가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선융당 같은 인재는 나가버리니까 말이오.”
“스님, 저는 스님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선융당만큼 빠르게 화두를 타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오.”
“사실, 저에게 굳이 환속한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그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화두 타파와 환속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군.”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진공스님께서 깨달음이란 나와 남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바로 절을 떠나기로 결심했거든요. 세상과 한 몸이라는 것을 체험했는데 굳이 절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선원장스님이 선융과 진원스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선융을 위해 대변해주는 듯도 했다.
“깨달음이란 나와 우주가 하나 되는 체험이라는 말은 맞아요. 그러니 절 안에 있으나 절 밖에 있으나 마찬가진 거지요. 남녀가 떨어져 있는 것이나 함께 있는 것이나 깨달음의 바탕은 다르지 않겠지요. 백 년 전에 해인사 조실이셨던 경허스님께서 미친 여자를 절 안으로 불러들여 잠을 같이 잤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선원장스님, 선융당 같은 후배들이 남녀 문제로 고민을 말했을 때 선배로서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선융당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진원스님이 궁금해 하는 동기는 순수했다. 출가자들이 감소하는 현실 속에서 절을 지키고자 하는 동기에서 선융의 환속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갓 출가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이라도 수행자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각오에서 선융에게 묻고 있는 셈이었다. 선원장스님이 말했다.
“진원스님은 마치 부처님 계실 때 고행한 가섭존자 같다니까.”
“선원장스님, 큰일 날 말씀 마세요.”
“하하하. 선융당은 같은 면에 살고 있으면서 진공스님을 찾아뵙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에요. 그러니 시간을 내서 와요. 오늘 선융당을 만났다고 진공스님께 전해줄 테니까.”
선융은 곧 두 스님과 헤어졌다. 선융은 마음에 끼었던 구름장이 사라진 듯 개운했다. 두 스님이 자신의 환속에 대해서 물었지만 사실은 자신이 궁금해 했던 것을 두 스님이 대신 질문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갔지만 그래도 왜 주혜의 청혼을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안개처럼 모호했다. 당시 참선의 체험에서 깨달은 우주와의 일체감, 주혜에 대한 연민, 절을 떠나도 된다는 진공스님의 허락, 몸 깊숙이 숨어 있던 애욕 등등 모든 것이 이유일 것 같기도 했고, 그것들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 어쩔 수 없는 필연인 듯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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