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회

 

                                 슬픈 노래                     

 

 결국 선융은 창원을 떠나기로 했다. 주혜를 받아들여달라고 몇 번이나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안적사 묘유스님이 법당에서 주례를 섰다고 통사정했지만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선융은 어머니가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할 것 같았으므로 결단을 내렸다. 어머니는 주혜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기독교 목사에게 당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융은 기독교 목사 집에 방을 한 칸 빌려 살던 중학교 사춘기시절을 분명히 기억했다. 어머니는 대대로 불교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분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의 어머니, 증조할머니의 어머니 등 모두가 절에 다니는 불교신자였던 것이다. 윗대로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논밭을 당대의 고승에게 시주해서 지은 원찰(願刹)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절에 가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살던 집마저 빚을 갚기 위해 팔고 셋방을 전전했다. 하필이면 목사 집으로 이사를 간 탓에 더욱 고생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목사 집안 식구들과 잘 지내보고자 초파일날 절에서 가져온 떡을 갖다 준 것이 화근이었다. 절에서 가져온 떡이라고 말하는 순간 목사 집안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머니가 등을 돌리자마자 떡과 과일은 목사 집 현관문 앞의 개밥 통에 버려졌다. 목사가 아들에게 ‘저건 사탄이 만들어서 사탄들끼리 먹는 것이니 우리가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따라서 쟁반에 떡을 들고 간 선융은 충격을 받았다. 중학생인 목사 딸과 마주친 선융은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목사인 아버지를 닮아가는 목사 딸이 무섭게 보였다. 목사처럼 눈과 입이 너무 컸으므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불균형한 그녀의 이목구비가 두렵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녀도 언젠가는 아버지 뒤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셋방으로 돌아와 부들부들 떨었다. 목사가 세놓은 방들은 마치 닭장을 연상시켰다. 목사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시멘트 블록을 직접 만든 뒤 똑같은 크기로 엉성하게 만든 방들이었다. 목사는 월세를 받은 자금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허가 방들이 두어 개씩 늘어났다. 동네사람들의 신고로 공무원들이 조사를 나왔지만 그때마다 모른 체했다. 목사만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는 측백나무 울타리에다 철조망까지 쳐서 동네 아이들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았다. 아버지는 목사라고 해서 별다른 사람은 아니니 참고 견디자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이사를 가자고 주장했다.
 눈이 펄펄 내리는 정월 보름 전날이었다. 목사 교회의 신도들이 선융 식구가 살고 있는 방 앞을 지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면서 지나갔다. 밤새 부르는 찬송가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란한 주의 빛 있으니 거기는 어두움 없도다 우리들 거기서 만날 때 기쁜 낯 서로가 대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선융은 한강, 압록강, 낙동강 등 우리나라의 강도 많은데 왜 하필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인데 어째서 남의 나라 강을 건너간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무엇에 홀린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기조차 했다. 선융이 요단강이 요르단 강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지리 시간이었다. 레바논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해 훌레 호수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갈릴리 호수로 접어드는데 강의 최종 종착지가 사해(死海)라는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출가하고 나서는 기독교 신도들이 요단강 건너편을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알았다. 불교 신도들이 항하(恒河, 강가강)를 건너야만 고통이 없는 피안(彼岸)의 극락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흡사했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나 불교 모두 강을 건너야만 천국이고 극락이었다.   
 아버지는 교인들에게 사탄이라는 저주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안절부절못했다. 풀이 죽은 아버지는 방을 빼달라고 할까봐 항의를 한 마디도 못했다. 이불을 둘러쓰고 눈물을 흘렸다. 수모를 당한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우는지, 목재사업에 실패한 당신의 신세가 처량해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보름날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이삿짐을 쌌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이부자리와 반닫이, 솥 대용으로 섰던 양은냄비와 그릇 몇 개였다.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간 곳은 외갓집이었다.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어머니와 선융이 뒤에서 밀었다. 리어카가 눈길에 자꾸 헛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외갓집은 외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외갓집 식구들은 머리에 눈을 뒤집어쓰고 온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선융이 불평하자 아버지가 ‘그럼, 환영한다고 현수막이라도 내걸 줄 알았느냐?’ 하면서 씩씩거리는 어머니와 달리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니는 외갓집에서 엄동설한만 보내고 봄이 되면 당장 이사 갈 집을 구하자는 태도였다. 선융은 어떤 곳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감탄하기보다는 의아했다. 어머니는 낙심했다가도 절을 다녀온 뒤에는 기력이 넘쳤다. 한숨을 푹푹 쉬다가도 절에 가서 기도한 뒤부터는 자신이 받는 수모와 고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전생에 지은 업이므로 그것만큼 업보를 받고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업보를 받는 것을 재앙이 아니라 희망으로 생각했다. 밤이 지나가야 새벽이 온다는 식의 사고였다. 아버지가 빚쟁이들을 피해 다닐 때도, 심지어 자살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선융이 지방대학을 가지 않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전생을 연관시키는 기묘한 논리로 허락했다. 때마침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가 회생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 주혜는 그때의 목사 딸이 아니예요.”
 “주혜가 뭔 죄가 있겠냐만 그 사람들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세상의 기독교 신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니까요.”
 “나는 내가 왜 우리 식구들이 그 사람들 눈에 사탄이 되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부처님은 누구나 다 부처라고 했다. 악마도 원래는 부처라고 했다. 나는 부처님 말씀을 믿는다.”
 어머니는 단호했다. 피해의식이 너무 컸던 어머니는 그때의 목사와 주혜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결국 선융은 어머니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지쳤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선융 씨가 병들겠어요. 우리 집으로 가요.”
 “할 수 없어요. 주혜 씨 집에서 살다가 취업이 되면 다른 곳으로 가서 삽시다. 부모님을 마냥 설득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아버님은 언제든지 오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나보다는 주혜 씨가 걱정돼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한 몸인데요 뭘.”
 선융은 취업이 될 때까지라고 조건을 달았지만 교회 사택으로 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출가했던 절이 같은 면에 있으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머니 목재회사에 사표를 내버린 선융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갈 곳은 주혜의 집, 천국교회 사택뿐이었다.
      
 선융은 천국교회 사택에서 한 달 동안 하는 일 없이 보냈다. 사택 뒷방은 조그만 창에 햇볕이 느리게 들어 늦잠을 자기에 좋았다. 아마도 주혜가 아버지인 목사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말라고 부탁한 듯했다. 선융은 새벽예배에도 나가지 않았다. 선융이 하는 일이란 낮에 교회 사택 옆에 있는 텃밭의 채소를 가꾸는 것뿐이었다. 채소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키우는 일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쁨을 주었다. 고달프게 보이는 농부들의 일하는 즐거움을 알만 했다. 고추와 가지 등의 채소는 모종으로 심었고, 쑥갓과 상추는 씨로 뿌렸다. 그리고 감자는 눈이 붙어 있는 씨감자를 칼로 조각을 내어 텃밭두둑에 묻었다. 감자 싹은 한 달이 지나서야 올라왔다. 텃밭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일도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노동의 정성을 일깨워주었다. 상추나 쑥갓에 물을 뿌릴 때면 선융 자신의 가슴도 충만감이 촉촉하게 들었다. 주혜는 선융이 천국교회로 들어와 잘 적응하자 내심 안도했다.
 “농사를 지어 봤어요?”
 “아니요, 처음이지요.”
 “호미질 하는 모습이 농부 같아요.”
 “김 집사님이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김 집사님은 천국교회 신자 중에서 농사를 많이 짓는 분은 아니에요. 외지에서 살다가 들어온 분인데, 남의 논밭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죠.”
 “그분 말씀이 은근히 재미있어요.”
 선융은 농부인 김 집사에게 들었던 얘기를 주혜에게 들려주었다. ‘제비와 승려는 온 날은 알아도 가는 날은 모른다.’ 제비는 농부들이 농사를 시작하는 삼짇날(3월 3일)에 왔다가 초가을 중양절(9월 9일) 무렵에 홀연히 사라지는데 승려도 그런다는 것이었다.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승려를 제비에 빗댄 표현인데 폄하하는 말은 아니었다. ‘햇볕 잘 드는 논의 쌀을 먹고 죽은 사람은 관도 무겁다.’ 좋은 논의 쌀을 먹고 산 사람은 시신도 다르다는 김 집사 식의 우스갯말이었다. 그런가 하면 도시에서 들어볼 수 없는 농사꾼만이 할 수 있는 소리도 했다. 가령  ‘고추는 30도 더위를 먹어야 매운 맛이 생긴다.’거나 ‘무는 햇볕을 먹고 자라고 배추는 달빛을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였다.
 선융에게 농사꾼인 김 집사의 말은 어느 스님의 설법보다 어떤 목사의 설교보다 실감이 났다. 선융은 어느 새 무료해지면 김 집사 집을 들락거렸다. 김 집사 역시 선융을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온 친동생처럼 좋아했다. 김 집사는 선융을 볼 때마다 반드시 마루에 앉도록 하고는 1회용 커피나 과자를 뚱뚱한 그의 부인에게 내오도록 시켰다. 그의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김 집사 집까지 갔다가 슬그머니 지나칠 때도 있었다. 김 집사는 교인이라기보다 농부라고 해야 옳았다. 사실 그는 교회를 계속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선융에게 다음과 같이 실토를 했다.
 “난 왜 십일조를 내는지 이해를 못하겠소. 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인데 가을이 되면 왜 십분의 일을 교회에 바치는지 불만이 많아요.”
 “성경에 나와 있으니 그러겠지요.”
 “성경 어디에도 하느님에게 곡식을 바치라는 구절은 없어요. 하느님은 그럴 분이 아니란 말이오. 십일조를 많이 내는 최 장로가 거드름을 피울 때마다 교회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사라진다니까요.”
 “십일조가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하하하.”
 “내 살림이 시원찮으니까 그런 면도 있겠지요.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돈에 인색한 사람이지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았어요. 하느님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어요.”
 김 집사는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교인은 아무도 없었는데 왜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교회에 빚진 것이 없는데 왜 자신이 땀 흘린 결과를 떼어줘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다. 김 집사의 생각은 하느님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고 교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자신은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떳떳하다는 식이었다. 
 “최 장로는 어떤 분이세요.”
 “소를 2백 마리나 키우는 부자지요. 마을 이장 나왔다가 투표를 해서 나한테 떨어졌지만 교회에서는 그 자가 이래라 저래라 이장 이상으로 행세를 해요. 목사님도 눈치를 봐요.”
 성격이 마냥 좋을 것 같은 김 집사에게도 고집은 있었다. 김 집사는 십일조를 많이 냈다고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최 장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융은 솔직히 김 집사가 최 장로와의 갈등을 고백할 때보다 산중에 살면서 얻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 더 흥미를 느꼈다.  
 “멍청한 사람을 새머리라고 하지만 꿩 새끼도 영리해요. 상수리 잎을 물고 날다가 그 속에 몸을 숨기더라고요.”   
 선융이 교회 텃밭에 있는 자두나무 열매가 익기도 전에 새들이 날아와 따먹는 것을 보고 불평하자 김 집사가 말했다.
 “집 밖에 있는 열매는 바깥주인 것이니 섭섭해 하지 말아요.”
 김 집사는 산중의 새들을 바깥주인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콩밭에 콩을 심을 때도 한 개씩이 아니라 서너 개씩 묻는다고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바깥주인에게 두어 개 정도 주어야만 콩밭이 된다는 것이었다. 새들의 먹이가 부족해진 봄날에는 새들을 배려해서 콩알을 두어 개씩 더 묻어야 콩밭이 된다는 김 집사의 농사 요령이었다. 그러고 보면 산새들에게 먹이를 주어온 김 집사는 교인들의 평처럼 아주 인색한 농부는 아니었다. 다만, 어린 시절 초등학교마저 포기해야 할 정도로 그를 괴롭혔던 가난에 대한 방어심리만은 어쩔 수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전이었다. 교회당에서 낯익은 찬송가가 들려왔다. 최 장로의 부인이 소 사료를 경운기로 운반하다가 논두렁으로 추락해 뒤집힌 사고가 났던 것이다. 119 구급차를 불렀지만 사고현장에서 즉사해 읍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으로 바로 간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 중에 김 집사만 빠진 채 교인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선융도 가능하면 자신을 감추고 있었으므로 함께 하지 못했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이 같은 찬송가는 날마다 몇 번이나 더 교회당에서 울려 퍼졌다. 슬픈 선율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교인들끼리는 슬픔의 감정을 지워버리게 하는 찬송가 같았다. 요단강 이쪽에서 고달프게 살다가 이제는 천국으로 간다는 최면을 순식간에 걸어버리므로 어찌 들어보면 희망의 노래 같게도 들렸다. 그러나 선융은 중학생 사춘기시절에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불편했다. 예배를 보고 돌아온 주혜가 소처럼 일만 하다가 죽은 최 장로 부인이 불쌍하다고 동정했지만 선융은 귓등으로 흘렸다.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가사만 아니었어도 무심코 들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혜는 김 집사를 비난했다.
 “예배에 불참한 분은 김 집사님뿐이에요.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거예요.”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그런 것 같더군요.”
 “한 푼도 쓰지 않으려고 해요. 헌금을 내기 싫으니까 오지 않는 거죠.”
 “그래도 장점이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이장으로 뽑아 주었겠죠.”
 “손재주가 많은 분이에요. 담도 잘 쌓고 보일러 같은 기계도 잘 고치지요. 마을에서 필요한 분이라서 그래요.”
 “나도 비난을 받겠네요. 예배에 불참했으니까.”
 “최 장로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불평하더군요. 사택에 살면서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목사님이 이해하시니까요.”
 선융은 최 장로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말에 놀랐다. 혹시 서래사에서 한때 수행했던 승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서래사와 천국교회는 같은 면에 있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주혜 씨, 교인들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 지나간 일인데 안들 어쩌겠어요.”
 “그렇죠? 과거의 일을 가지고 비난할 사람은 없겠지요.”
 “상관하지 마세요. 승복을 벗었잖아요.”
 “하하하. 공연히 걱정했네요.”
 “도시로 나가기 전까지는 마음 편하게 지내자구요.”
 조그만 창인데도 달빛이 흠뻑 쏟아져 들어왔다. 사택 밖은 방 안보다 더 훤했다. 사택 뒷방 창밖으로는 배 밭이 펼쳐졌다. 두어 달 전에 피었다가 사라진 잔설 같은 배꽃이 아직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듯했다. 달빛이 너무 밝았으므로 잠시 일어난 환영(幻影)인지, 아니면 선융이 문득 그때의 몽환적인 풍경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혜가 커튼을 내리자 배꽃이 핀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캄캄한 사각형의 방에 선융과 주혜만 남았다. 그제야 선융의 뇌리 속으로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선율이 마치 어둔 세상의 노래처럼 반복해서 들려왔다. 선융의 눈가에 슬픔과 상관없는 원망의 눈물이 맺혔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 들춰내는 선율이 문득문득 야속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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