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여의봉] 16 바자회 
 

바자회 참석요청 문자를 보내며

NGO에서 자선바자회를 하는데 부득이하게 문자를 보냅니다. 인사도 건네지만 참석해서 차 한 잔 마시고 가 달라는 문자입니다. 아무리 인사말로 가리지만 결국은 와서 사 달라는 말일 따름입니다. 문자를 보낼 때 물론 떳떳합니다.

수많은 분들은 답장조차 안 주시거나 답장을 해도 못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께는 사실 죄송할 따름입니다. 불편한 문자를 보냈는데도 일일이 답변해주시는 분께는 참으로 더 황송할 따름입니다. 오시든 안 오시든, 문자로 답을 주시든 안 주시든 그분들께 다 죄송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그런 문자 보내지 말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고 염려도 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불편했을 텐데도 그런 답을 아직 못 받았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인 듯합니다. 하지만 불편해도 말을 못했을 뿐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그러기에 저 역시 불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행사는 네팔 땅띵 히말라야 미란세컨더리학교 여학생들을 위한 바자회였습니다. 네팔 대지진 후에 금도 갔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수리할 엄두조차 못낸 화장실을 하나 새로 만들어 주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자선전람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시작했습니다. 뜻이야 다 좋고 떳떳하기도 하지만, 이건 제 마음일 따름일 수 있습니다. 문자를 받는 분들께 결국 성의를 보태달라는 말이 되니 못 도와주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렇게 지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야 하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답장 주시고, 찾아와주시고 어려운 가운데도 작품을 사주신 분들께 더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시하는 것이 곧 보살행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이런 불편한 상황과 고통(진흙) 위로 아이들의 꿈(연꽃)이 필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더욱 보살행은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공간.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항상 걱정도 큽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혹시 양에게 물을 먹인 것이 아니라 독사에게 물을 준 것은 아닌지 역시 조심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조심 해야 하나 봅니다.

겉모습은 항상 당당하고 떳떳해서 당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로 ‘안타푸르나 크레바스 위를 걷었던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추락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으니, 걷는 폼이라도 당당하게 그리고 재밌게 즐기며 살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크레바스 대신 ‘죽음’을 넣고 걸음을 ‘삶의 행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 깊은 일을 하는 우리들의 삶은 참으로 행복한 여정입니다.

참, 자선전람회에서 물품을 사면 좋은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남을 돕는 선행에 동참할 수 있어 좋습니다. 왜냐하면 수익금이 네팔 땅띵 학교 및 마을 돕기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냥 기부하는 것도 좋은 일인데 좋은 그림이나 공예품을 주기 때문에 더 기쁩니다. 부근 미술관에서 50만 원에 파는 판화를 반값보다 싼 20여 만 원을 기부하고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사장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습니다. 기부를 하러 오는 분들은 참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보살들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집에 작품을 두고 차를 한 잔하면서 감상을 해서 좋습니다. 그런 게 다 행복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허기와 무념무상

오랜만에 고생이란 게 뭔지 알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집에 왔는데 너무 허기져서 밥 한 공기를 뚝딱. 이제 겨우 정신이 드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젠 자야겠습니다. 근데 이것도 무념무상인가요?

선시와 답시

바람에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핀 꽃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찬 이슬 한 번도 맞지 않고 맺힌 열매는 또 어디 있겠는가!
보배로운 탑도 결국 언젠가는 다 티끌이 되리니,
(물욕 부리지 말고) 마음공부에 전념하며 바른 깨침을 이루어가세

無風天地無開花
無露天地無結實
寶塔畢竟化爲塵
一念淨心成正覺

이런 글을 접했습니다. 잠시 심심해서 답시를 지어봤습니다. 시의 운율은 잘 몰라서 그냥 대충 쓰고 나중에 맞추기로 했습니다.

바람에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핀 꽃이 이 세상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찬 이슬 한 번도 맞지 않고 맺힌 열매도 있는데 그대는 모르는가!
마음공부도 (실천을 안 하면) 필경 티끌과 다름없이 되리니,
(마음이나 말만 떠들지 말고) 오직 보리행을 행하여 보살도를 이루어가세

無風天地有開花
無露天地有結實
淨心畢竟亦爲塵
一行菩提成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