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인도성지순례기] 7- 불교 교화의 중심지 ‘사왓띠’ (3)
“이곳 사왓띠에서 전법의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면 제대로 순례한 것”
3. 방편과 기적
사왓띠는 부처님께서 그토록 경계했던 이적행(異蹟行)을 직접 보이신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이적행을 삼가도록 했다. 수행의 경지에 깊어지고 높아지면 이적을 행할 능력이야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런 능력을 남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교에서 이적행에 대한 언급이 거의 사라진 것은 부처님의 이런 엄격한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주 드물게 사왓띠에서 이적행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셨다. 이 때가 부처님께서 사왓띠로 오신 후 5년쯤 지나서였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이적행을 보이겠다는 결단을 내리셨을까? 그 배경은 ‘전법’이었다.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코살라 국은 자이나교와 그 계통인 아지비카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특히 자이나교는 그 시기에 불교와 비등한 교세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무섭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불교를 경계하고 폄훼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었다. 여인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모함을 하기도 하고, 여인을 기원정사에서 죽여 붓다의 제자들이 죽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천불화현터를 돌며 석가모니불 염불을 하고 있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성지순례객들.
사왓띠 기원정사터 향전의 모습.
부처님께서 머물렀던 장소인 향전은 전세계 모든 불자들이 찾아와 예배하는 곳이다.
<전차경(戰遮經)>에는 부처님의 명성이 사방을 압도하자 위기를 느낀 외도들이 부처님과 비구 승단의 명성을 깎아내릴 음모를 꾸민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 친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석가족 사문 때문에 자기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공양도 받지 못한다며 그녀를 회유하였다. 이후 사주를 받은 그녀는 아름다운 몸을 더욱 단장하고 기원정사 근처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기원정사에서 내려올 시간에 기원정사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올라갈 시간에 내려가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쯤 거듭하며 아침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원정사의 부처님 방에서 자고 나오는 길임을 은근히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이내 바가지를 달아매어 불룩해진 배를 빨간 옷으로 가리고는 ‘부처님의 아기를 뱄다’며 떠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산달이 가까워졌다고 생각될 무렵, 그녀는 기원정사에서 설법 중이던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 덕분에 이렇게 만삭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으면 맡아 기르십시오. 저를 실컷 희롱하였으니 모른 체 할수야 없겠지요?’ 그녀는 사나운 말로 부처님을 괴롭혔지만 부처님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대중들 속에서 부처님을 의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제석천은 스스로 네 마리의 흰쥐로 둔갑하여 그녀에게 달려가 바가지를 달아맨 노끈을 물어뜯었다. 바가지가 땅에 떨어지자 음모를 눈치 챈 대중들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불에 탈 죄인이로다. 가증스러운 것이 어찌 이런 나쁜 뜻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깨끗하고 위없으며 바르고 참된 이를 비방하는데 이 땅은 무심도 하구나. 이런 못된 물건을 용납하며 싣고 있다니.’ 그러자 곧 땅이 갈라지며 불꽃이 솟았고, 친차는 갈라진 땅 속에 떨어져 죽었다.“
부처님에 대한 외도들의 비방과 도전이 잇따르자 불심 깊은 코살라국의 왕 프라세나짓은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 한 가지 청을 내놓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보여 주시면 불교가 빨리 포교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보통의 사람들은 신통력이 뛰어난 성자를 최고로 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제자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외도의 도전이 거세졌다. 또한 이적행 대결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외도들도 있었다. 부처님은 프리세나짓 왕의 청을 받아들여 신통력 대결을 받아들였다.
부처님은 날짜를 정한 뒤, 그날 망고나무 숲(천불화현터千佛化現地)에서 이적행을 보이겠노라고 예고했다. 이윽고 신통 대결의 날이 돌아왔고, 많은 외도의 성자들이 신통력 대결을 위해 망고동산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프라세나짓 왕을 비롯해 사왓띠에 살고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망고동산을 메웠다.
부처님께서 이적행을 시작했다. 부처님은 망고나무에서 망고 하나를 따서 드신 다음 그 씨를 땅에 심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망고나무 씨를 심은 땅에서 싹이 트더니 이내 쑥쑥 자라 올라서 망고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부처님은 하늘을 덮을 만큼 큰 망고나무 아래에 연꽃을 피워놓고는 그 위에 사뿐히 서거나 앉는 등 무수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는 몸에서 물줄기와 불줄기를 뿜어내는 등의 이적행을 선보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부처님은 공중에 천 명이나 되는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부처님이 갑자기 천 분이 되어 하늘을 뒤덮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천불화현(千佛化現)의 이적행이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위력에 놀랐고, 이교도들은 혼비백산했다. 사람들이 부처님의 상상을 뛰어넘는 이적 능력을 칭송하며 다투어 귀의하고 있을 때, 부처님은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그대로 도리천으로 오르신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교도들이 부처님과 불교교단을 폄훼하거나 넘보는 일은 크게 줄어들었다. 당연히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교단의 위상은 확연하게 높아졌다.
부처님께서 이적행을 보이셨던 천불화현터.
10여년 전 찾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잘 정비가 되어있었다.
당시가 마침 우기가 시작되는 때였으므로 부처님은 어머니를 교화하기 위해 도리천으로 오르셨다. 사나운 빗줄기로 우안거를 보내야 하는 시기에 당신을 낳고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그립고 고마운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해 승천을 결행한 것이었다. 도리천 오르신 부처님은 어머니 마야 부인과 천신, 야마천과 도솔천, 타화자재천 등에 살고 있는 하늘 사람들에게 설법하시면서 90일 동안 보내고, 사왓띠가 아닌 인근 지역 산카샤로 내려오셨다. 신통력으로 부처님이 도리천에 머물고 계신 것을 알아낸 목갈라야나의 지시로 도리천까지 좇아온 아니룻다의 간청에 따라 산카샤로 하강한 것이다. 인도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하강한 날짜를 10월 11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망고동산에서 이적을 행한 날짜는 7월 10일 언저리가 된다.
아무려나. 부처님의 승천지와 하강지인 사왓띠와 산카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산카샤는 오직 부처님께서 하강하신 인연으로 팔대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산카샤는 모든 부처님께서 하강하시는 장소로 인도사람들은 믿고 있다.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룸비니로 하강하실 때 태자의 몸이었다면, 도리천에서 산카샤로 하강하실 때는 말 그대로 인천(人天)의 스승으로서의 모습이셨으니, 산카샤가 갖는 불교사적 의미는 유적의 크고 작고를 떠나 각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의 이적행을 목도한 사왓띠의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부처님과 부처님이 이끄는 승단에 귀의했다. 이처럼 부처님은 이적행을 아주 중요한 전법의 순간에 제한적으로 보여주셨다.
부처님께서 천상에 머무시는 동안 코삼비 국왕 우다야나는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찬다나(향나무) 나무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이 소문을 들은 코살라국의 프로세나짓도 찬다나로 불상을 조각하여 부처님께서 항상 머물렀던 향전에 안치해 두었다고 한다. 부처님께 귀의했던 두 왕에 의해 조성된 전단향불은 역사상 최초의 불상이 되는 셈이다.
오직 교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은 모든 불자들이 따라야할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하게 온 생을 전법에 바쳤던 교주 부처님을 닮은 제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불교에서는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포교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도 한국불교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조계사 턱밑 안국동 로터리에서는 개신교도들이 버젓이 노래를 부르며 선교행위를 하고 있다. 그들의 몰상식이나 교양 부재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지만 적극적인 선교의 열정만큼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교도는커녕 무종교인도 불법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는 한국불교의 사부대중들이 이곳 사왓띠에서 느끼고 배워야 할 것은, 전법에 대한 부처님의 열정과 의지일 것이다. 사왓띠에는 부처님의 전법과 관련한 이야기가 무수하게 많다. 앙굴리마라 교화 이야기, 가난한 여인의 등불 공양 공덕 이야기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이곳 순례하고 불제자로서 전법의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면 사왓띠를 제대로 순례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