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영주지역 불교문화유산 답사기] 18 영주시 이산면 흑석사
국보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석조여래좌상 등 성보문화재 다수 소장

 

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사찰들이 존재했을까. 어떤 기록에는 8만4천 개가 있었다고도 한다. 그렇게 많은 사찰들이 존재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 이름조차 확인이 안 되는 옛 절터들이 부지기수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졌다가 다시 중창되었던 절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흑석사의 석불 보호각 전경. 흑석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18세기 중엽까지는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영주시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위치한 ‘흑석사(黑石寺)’다. 정확한 창건 연기가 없어 남아 있는 유물을 통해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또한 폐사시기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먼저 인터넷 등에 남겨진 자료를 보면 ‘신라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까지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재난을 당한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울어 겨우 명맥만 이어 왔다’고 전하며, 1945년 해방 후 중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중건 사실 외에는 앞선 창건 연기 등의 기록 출처가 불분명하다.

흑석사와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흑석사(黑石寺)는 군(영주) 남쪽 15리에 있다’고 하여, 16세기에는 사찰이 유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백암(栢巖) 김륵(金玏, 1540~1616)의 『백암선생문집(栢巖先生文集)』에는 1574년 그가 흑석사에서 공부를 했다고 밝히며, 절의 위치가 군(郡: 영주)동쪽 칠성산 북쪽 기슭에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이여빈(李汝馪: 1556~1631)의『취사집(炊沙集)』에는 그의 친구인 ‘민흥건(閔興建)’이 1581년 역병을 피해 흑석사에 있다가 사망하였다고 적고 있다.

영주 출신의 문인인 김시빈(金始鑌: 1684∼1729)의 『백남선생문집(白南先生文集)』에는 그가 1725년 즈음에 흑석사를 유람하고 남긴 ‘맏형을 모시고 흑석사에서 노닐다(陪伯兄遊黑石寺)’와 ‘흑석사에서의 겨울비(黑石寺冬雨)’라는 시가 전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8세기까지는 흑석사의 사세가 어느 정도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사찰전서』에서 인용한 『범우고(梵宇攷)』에서는 ‘지금은 폐사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서도 폐사를 언급하며 마애불과 석탑, 석불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마애불상의 높이는 7척, 폭은 3척7촌, 석탑은 높이 9촌, 폭 2척4촌, 석불은 가슴 아래가 모두 땅에 묻혀 있고 폭이 2척5촌의 좌상이라 하였다. 앞선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흑석사는 18세기 중엽 이후 어느 시기에 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흑석사는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 나타난 것처럼 석불좌상이 땅속에 반쯤 묻힌 상태로 남아 있는 빈 터로 있다가 1945년 이후 초암사 주지로 취임한 초암당 김상호(草庵堂 金祥鎬: 1895~1986) 스님에 의해 ‘영주포교원’으로 중창되었다.

일부 자료에는 1948년 즈음 소백산 일대에 출몰한 공비들로 인해 소백산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김상호 스님이 초암사의 목재를 가져와 흑석사를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중창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진홍섭 선생의 「신라북악 태백산 유적 조사보고」에 따르면, 1960년 3월 당시 흑석사를 중건하고 있던 한 노파의 말을 빌어  1953년 현몽을 받아 석불(보물 제681호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을 발굴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김상호 스님이 이때 흑석사 중창에 관여하여 훗날 영주포교원으로 명명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는 흑석사 내 상호 스님의 비문의 스님 이력과 1964년 제작된 흑석사 동종 고유문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흑석사의 중건은 1950년 전후로 추정할 수 있게 된다.

흑석사에는 현재 국보 제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보물 제681호 흑석사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로 마애삼존불 등의 성보문화재를 비롯하여 경내 곳곳에서 통일신라부터 그 이후의 기와편 등이 확인되고 있다.

 

①국보 제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왕실의 발원으로 조성되어 개성 법천사에 봉안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지난해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모습.

1993년 11월에 국보로 지정된 이 불상은 왕실에서 발원하여 1458년에 조성한 것으로 본래 정암산 법천사(井巖山 法泉寺)에 봉안되었다. 이후 불상이 흑석사로 이운된 사연에 대해서는 대체로 중창주인 상호 스님이 1950년 전후로 초암사에 모셔져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불상은 1980년대 후반 도난당했다가 회수되었고, 1999년에도 또 다시 도난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지금도 이 불상의 원 봉안처인 ‘정암산 법천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를 가장 유력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 절은 ‘명봉산 법천사’로 전해지고 있어 논란은 남아 있다.

또한 1930년대에 작성된 ‘고운사 본말사 귀중품 대장’ 중 ‘초암사 귀중품 대장’에 높이 150㎝ 가량의 목조 관음보살상이 등장하고 아미타여래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장의 작성 시점과 상호 스님의 초암사 중창 시기를 고려한다면, 불상은 상호 스님에 의해 초암사로 전래되었고 이후 흑석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호 스님은 어디서 이 불상을 이운해 온 것일까? 불상이 본래 봉안되었던 법천사와 관련해서는 당시 불상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불상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한 문제다. ‘정암산 법천사 당주미타삼존원성제연보권문(井巖山 法泉寺堂主彌陀三尊願成諸緣普勸文)’과 ‘불복장기(佛復藏記)’를 보면 보권문은 세조 3년(1457) 2월, 복장기는 세조 4년(1458) 10월에 각각 작성되었다.

이때는 1456년 6월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처형되었으며, 이듬해인 1457년 6월에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후 10월에는 순흥에서 유리 안치되었던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또한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는 불상의 조성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상 조성에 참여한 시주자로는 태종의 후궁(後宮)인 의빈(懿嬪) 권 씨, 명빈(明嬪) 김 씨와 효령대군(孝寧大君) 등이 등장한다. 또한 세종의 딸인 정의공주(貞懿公主: ?~1477)의 남편 광덕대부 연창위 안맹담(光德大夫 筵昌尉 安孟聃: 1415~1462)도 시주자 명단에 올라 있다.

이 중 의빈(懿嬪) 권 씨는 태종이 승하하자 1422년 신녕 궁주(愼寧宮主) 신 씨(辛氏)와 함께 임금에게 허락도 없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에 후궁들이 서로 경쟁하여 머리를 깎고 염불하는 기구를 준비하여, 아침저녁으로 불법(佛法)을 행하였는데, 임금이 금하여도 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안맹담 또한 불교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세종 승하 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삼각산 문수사(文殊寺)를 중창하였으며, 그가 죽자 정의공주는 1469년 『지장보살본원경』을 비롯하여『수륙의문(水陸儀文)』·『결수문(結手文)』·『소미타참(小彌陀懺)』·『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간행하여 남편의 명복을 빌었으며, 이때 새긴 목판은 원찰(願刹)인 삼각산 도성암(道成庵)에 봉안하였다.

정암산 법천사(井巖山 法泉寺)와 관련하여 『세종실록』과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먼저 ‘정암산’은 『세종실록』에 1448년 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에서 강무장을 선정하는 과정에 적성현(積城縣 경기도 양주시 남면 과 파주시 적성면 일대)의 여러 산들 중 정암산(井嵒山)이 언급되어 있다. 『고려사』에서는 의종(毅宗: 1127~1173)이 1160년 4월 10일(음) 현화사(玄化寺)에 갔다가 4월 13일에 법천사에 행차했다고 한다.

또한 1164년 3월 16일(음)에도 현화사(玄化寺)로 거둥하였다가 3월 21일 궁궐로 돌아가던 중 법천사 주지 각예(覺倪)가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어가(御駕)를 달령원(獺嶺院)에서 맞이하였으며, 이날 술에 취한 왕이 귀법사로 갔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다. 『세종실록』과 『고려사』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정암산 법천사는 개성인근에 있던 사찰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상이 흑석사에 이안되었는가의 문제는 상호 스님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흑석사에 남아 있는 스님의 비문에 1924년 의성 고운사에서 수월 화상을 은사로 득도 수계하였으며 이후 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지리산 등지에서 한암 스님과 용성 스님, 효봉 스님, 경봉 스님, 묵담 스님과 교유(交遊)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945년 초암사를 중건할 즈음해서는 교유를 가졌던 인연 있는 스님들이나 사찰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 중 하나를 희사 받아 이운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례는 1955년 즈음에 부석사 경내에 있던 아미타 삼존상 중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강원도와 경북의 사찰에 각각 이안되어 지금도 봉안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로써 추정에 불과하지만 국보 제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개성 인근의 법천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이후 전란 등을 거치면서 다른 사찰로의 이안(移安)을 거듭했던 것으로 보인다.

②보물 제681호 흑석사 석조여래좌상

 

 

흑석사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남아 있는 이 석불은 현재 마애삼존불 앞에 봉안되어 있다. 과거의 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현재의 종각이 있는 곳에 불상이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된 것이다.

이곳 또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상을 출토되어 정확한 현상을 알 수 없지만 1960년 3월 조사에서 석조 광배와 석불 대좌, 석탑재 등이 확인된 바 있으며 현재 경내에 보관 중이다.

석불은 기본적으로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지만 왼손 위에 약함이 조성돼 있어 약사여래불로 보인다. 이 약함은 부분적으로 새로 조성된 것이지만 1960년 조사 당시에도 약함의 흔적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약사여래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불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며, 과거 호분 등으로 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제거되었다.

 

③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 마애삼존불과 석조 유물들

 

 

흑석사 경내에 진입하면 커다란 암석에 붉은 채색이 남아 있는 거대한 마애삼존불과 마주하게 된다. 이 마애불은 본존이 높이 3.1m, 좌우 협시는 2.7m로 현재는 불단에 가려져 전체의 2/3만 그 모습이 드러나 있다.

마애불 전반에 걸쳐 붉은 채색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히 두광 부분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불상의 채색은 흑석사 뿐만 아니라 경북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조성 당시부터 채색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성 시기는 대체로 신라 말기 혹은 고려 초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내에는 석조 광배편과 불상 대좌, 석탑재 등이 남아 있어 과거 흑석사의 위상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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