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인도성지순례기] 1- ‘부처님의 나라를 4번째 찾은 까닭은’
“기자생활 갈무리하는 의미로 동참…‘가슴으로 하는 불교’ 느낀 값진 여정

한량없이 고마우신, 그저 고맙기만 한 분, 석가모니 부처님. 그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분의 숨결과 흔적을 온전하게 찾을 수 있을까.

인도와 네팔의 부처님 성지를 찾는 마음은 언제나 같았다. 이번으로 세 번째 순례 길이건만 그분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만 간다. 지난 두 차례의 성지순례에서 나는 그분의 숨결이 머물렀을, 발걸음이 오갔을,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천지를 진동시킬 큰 감동을 머금었을,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가 맴돌았던 곳을 최선을 다해 느꼈다. 아, 그 때의 감동이 얼마나 강렬한 지, 정말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의문은 8대 성지를 다녀온 후 줄곧 나의 염두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 해답을 완전하게 풀어지지 않았다. 부처님 성지를 다녀와 그 때의 감동을 되새기며 한 권의 책도 펴내고, 그 때 찍은 사진도 수십 번이나 반복해 들여다보았지만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부처님의 성지 순례를 하며 무엇이 모자라고 또 부족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지난 달, 13일 일정으로 다시 부처님 성지를 찾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바꾸는 기회를 일생에서 몇 차례 갖는다고 한다. 일생에 거쳐 세 번쯤 이런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 기회를 잘 살리면 성공한 삶이 되고 놓치면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바꿀만한 기회를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간절한 원력을 세우면 그런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을 바꿀 기회를 만날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다. 해마다 건기(11월~2월)가 되면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인도로 떠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들 가운데 진정 여법한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분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여법한 순례보다는 여행 쪽에 더 가까운 여정을 갖는 경우가 많다. 

“왜 성지순례를 할까? 업장소멸을 하기 위해서”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지를 다녀오는 것으로 업장소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자들에게 성지순례는 신구의 3업을 소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행방편으로 알려져 있다. 신구의(身口意) 3업을 맑히는 것에 대해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몸으로 지은 허물(身業)은 절로써 맑혀라(전체투지). 입으로 지은 허물(口業)은 염불이나 진언으로 맑혀라. 마음으로 지은 허물(意業)은 참선이나 간경으로 맑혀라.”

그런데 이 세 가지 업을 한꺼번에 맑힐 수 있는 최고의 수행은 바로 성지순례이다. 그러므로 성지순례는 철저한 자기낮춤과 간절한 원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기도와 정진의 순례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왔다면 그것이 성지순례를 통해 얻은 가피다.

"이번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는 여행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지난 12월, 목동큰절 법안정사의 신도 30여 명과 떠난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는 인솔법사 혜총 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 법안정사 주지)의 이 한 말씀으로 ‘기도의 여정’이 되었다. 혜총 스님의 일성은 순례단 모두에게, 특히 나에게는,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왔다. 평소 기도는 불교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내 마음속 모든 고정관념을 지워버리고 기도를 마음속으로 흔쾌하게 받아들이자. 간절한 기도로 이번 성지순례를 마쳐보자. 기왕이면 기도를 경원시하던 불자에서 기도하는 불자가 되는 기회로 삼아보자.”

내 개인적으로는 부처님 성지를 온전하게 순례하는 것이 세 번째이고, 또한 11년만의 여정이라 ‘얼마나 성지의 모습이 달라졌을까’라는 출발 당시 가졌던 피상적 궁금증은 간절한 기도로 일관된 성지순례의 여정이 시작되면서 주변으로 훌쩍 밀려났다.

이번까지 무려 13번째 부처님 8대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는 혜총 스님은 인도에 도착해 순례단에게 성지마다 간절한 기도와 발원의식을 봉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의 ‘노련한’ 인솔로 진행된 13일 동안의 부처님 8대성지 성지순례는 매 순간 순간이 뜨거운 감동 그 자체였다.

기자생활을 하다보면 취약하기 쉬운 것이 신심이고, 신행활동 역시 기도보다는 교학적 면에 치우치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나 또한 불교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 불교를 하는 불자에 속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 이번의 부처님 8대 성지순례는 기도가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내 입장에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평소 존경하는 김재영 법사도 그의 책 <인도 불교성지 순례기도문>에서 “인도로 가는 까닭은, 첫째 기도하기 위함입니다.‘라고 선언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기도하지 아니하는 성지순례, 그것은 거짓입니다. 붓다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쏟아내며 우리 삶의 고통과 문제들을 고백하지 아니하는 성지순례, 그것은 한갓 관광일 뿐입니다. 여러분 인도에 가거든 부디 기도하십시오. 잔디밭에 꿇어앉아 뜨거운 가슴으로 기도하십시오. 부처님은 그 기도 속에 오십니다.” -김재영 법사 <인도 불교성지 순례기도문> 서문 중에서

순례 내내 혜총 스님은 출가 후 오랜 기간 시봉을 했던 큰 스승 자운스님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혜총 스님은 자운스님께서 인도 부처님 성지를 포함해 해외의 불교성지를 꼭 순례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빼앗기는 일을 왜 하느냐는 생각에 내심 큰스님의 당부를 무시하면서 20년 동안이나 듣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다가 인연이 되어 인도 성지순례를 할 기회가 생겼고,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룬 성지 중의 성지 부다가야의 대보리사 금강보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자운스님의 뜻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크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때 혜총 스님은 이렇게 참회했다고 전했다.

"아, 부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큰 스승이신 자운스님께서 인도에 가보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굳이 돈과 시간 들여서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아만심으로 저는 이제껏 이곳에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 성스러운 자리에 와서 보니,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겠습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부처님 참회합니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야~"

당시 그 자리에서 혜총 스님은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굳게 약속을 드린 것이 있었다. 꼭 부처님의 8대 성지를 10번은 순례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와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후 혜총 스님은 실제로 이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0번째 순례를 마치고 난 후 조계종의 포교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 또한 순례의 공덕이 아닐까.

이번 순례의 첫 시작은 국립델리박물관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참배하고 나서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 그리고 산치대탑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8대성지를 둘러보는 순서로 순례일정이 짜여져 있다.  부처님을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 시작하는 성지순례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두 차례나 델리박물관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했더라도, 부처님의 유골을 다시금 친견하는 것은 불자 입장에서 가슴 떨리는 감동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성지순례는 당초 나의 불교기자 생활을 갈무리 하겠다는 의미로 준비됐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교기자의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시점에서 부처님 성지를 다시 한 번 친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난 30년간 부처님의 정법을 공부하고, 또한 널리 펴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돌이켜보니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는 자괴감, 불제자로서 여법한 삶을 경영해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이번 순례를 통해 부처님 성지를 찾아 부처님을 친견하면서 간절하게 참회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아무려나. 우리 순례일행이 인도 델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한 밤중이었다. 11월의 인도 날씨는 안개로 자욱했다. 안개인지 먼지인지 모를 퀴퀴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내가 지금 인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