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영주지역 불교문화유산 답사기’]5. 마애불 곳곳서 채색 흔적 확인
지난 연재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영주 봉화지역에는 신라불교사에 있어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석불들이 전해오고 있다. ①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불, ②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동 마애불, ③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불, ④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상 등으로 현재 학계에서는 7세기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7세기 후반은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676년 대동강 이남에서 당나라 군대를 모두 몰아내어 명실상부한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시기다. 특히 676년은 소백산 자락에 부석사가 의상스님에 의해 왕명으로 창건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전하고 있는 소백산 자락의 여러 사찰들 중에는 643년 두운조사에 의해 창건된 희방사를 비롯하여 이즈음에 비로사, 초암사 등의 사찰이 건립되었다.
따라서 의상스님의 소백산 정착은 당시 이 지역 불교계의 판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한 일일 것이다. 특히 송고승전에 전하는 부석사 창건 설화의 내용과 봉화 북지리 마애불 등에 전하는 구전 등을 종합해보면, 의상스님이 소백산에 정착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가진 불교세력이 있었음은 자명해진다. 특히 이러한 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앞서의 석불들은 그 제작시기가 부석사 창건 이전으로 추정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들 석불의 조성연대는 7세기 후반보다는 상당히 앞선 시기에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들 마애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①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석조반가상
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석조반가상의 전면에는 태백산맥이 남으로 이어지고 그 앞에는 낙동강의 상류 지류인 내성천이 흘러가고 있다. 두 불상은 남북으로 약800m 떨어진 곳에 이웃하고 있으며, 현재 마애불이 있는 곳에는 지림사라는 절이 있다.
마애불은 호거산 자락의 암벽에 새겨진 것으로 현재 높이는 약 4m에 달한다. 불상은 바위를 파서 조각하였는데 마치 석굴을 만들어 불상을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불상은 시무외여원인을 하였으며 본존 주변에는 화불(化佛)과 함께 화염문이 새겨진 광배가 남아 있고, 두광에는 화염문 안에 화불들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이 불상의 경우 마애불이지만 거의 환조에 가까울 정도로 조각하였는데 이는 영주 가흥동이나 신암리 마애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상이 조성된 지림사 경내에는 이외에도 북쪽의 암벽에 3구의 좌불과 목탑을 본뜬 3층 마애탑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중 삼존불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이러한 도상은 중국 북위시대에 조성된 운강석굴 등에서도 확인이 된다.
이 마애불의 경우 본래 삼존불로 봉안되어 있었는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영주 가흥동이나 신암리의 경우를 고려한다면 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마애불에서 남쪽으로 8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석조반가상은 현재 보물 제99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남아 있는 상의 높이는 1.6m에 달한다. 반가상은 머리와 광배를 고려한다면 그 높이는 2m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돼, 아마도 현존하는 석조반가상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반가상이 발견된 지점에서는 지금도 다량의 기와편들이 확인되고 있어 조성 당시 법당에 봉안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불
현재 지림사 대웅전 뒤편 암벽에 조성된 마애불과 마애탑.
②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동 마애불상군
‘한절 서편 큰길 옆에 암벽에 5,6구의 불상이 있는데 1608년 마을 사람들이 승도를 모아 여기에 불당을 중건했다. 광해군 초에 군수 이사손이 불당을 헐어버리고, 그 기와와 재목을 군수의 관사를 수리하는데 썼다’ 『영주지(榮州誌)』.
영주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서천가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동 마애불상군은 좌불인 본존불의 높이 3.2m, 입상의 좌우의 보살 높이 2~2.3m로 크기로 이곳에서 다소 높은 암벽의 단위에 조각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은 좌상으로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으며, 좌측의 보살상은 합장, 우측의 보살상은 오른손을 명치 끝에 두고 왼손은 어깨에 올려 뭔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 보살상은 두광 정상부에 화불이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본존의 두광에는 꽃과 화불이 표현되어 있으며, 원형 두광 주변은 물론 부처님 몸 전체에 화염문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이 있는 곳을 한절마을, 대사(大寺)터라고 부르고 있어, 봉화 북지리 마애불상과의 연계성이 보인다.
얼핏 마애불상이 아닌 독립된 상으로 보일만큼 고부조의 조각이다. 불상의 남서쪽 하단에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남아 있다. 마애불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이 암벽은 지역사회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주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곳에는 마애삼존상외에도 2003년 6월 폭우로 마애삼존불 부근의 흙더미가 유실되면서 발견된 보물 제221-1호로 지정된 또 하나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현재 마애불상군 앞으로는 28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주변은 과거 서천변의 저습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 또한 봉화 북지리마애불상이 위치한 곳과 유사한 지형의 흐름을 보이고 있어 마애불을 조성할 당시 지형조건을 충분히 고려한 듯하다.
한편 이 마애불상군에서는 채색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본존의 광배와 좌우 협시 보살의 입, 그리고 새로 발견된 좌상의 얼굴에서도 붉은 색의 흔적이 역력하다.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동 마애불상군. 원안의 바위에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다.
2003년 폭우로 발견된 여래좌상. 얼굴 부위에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애불이 있는 암벽 왼쪽 하단에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있다.
한편 이 삼존불과 2003년 발견된 좌상과의 사이 바위에는 위아래로 작은 불상 2구가 별도로 조성돼 있어『영주지』에서 언급한 나머지 불상으로 추정된다.
③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불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가흥동 마애불상군과 마찬가지로 신암리 마애불상군도 내성천변에 자리 잡고 있다. 불상이 조각된 바위는 그 규모가 작아 북지리나 가흥동과는 비교가 된다.
사면마애불로 알려져 있는 이 석불은 실제 사면이 아닌 3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동남향의 정면에는 삼존불과 그 좌우의 각면에 좌불이 조각되어 있지만 훼손이 너무 심해 그 흔적만 겨우 확인된다.
삼존불의 본존은 좌상이며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본존상 좌측의 보살상은 가흥동과 마찬가지로 합장을 하고 있지만 우측의 보살상은 훼손이 심해 정확한 수인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삼존상 모두 두광은 화염문이 새겨진 보주형이며, 신광은 확인되지 않는다.
삼존상 좌측 면의 불상은 앞면이 심하게 훼손되어 구체적인 도상확인이 어렵지만 별도로 조성된 대좌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우측면의 불상은 좌측 불상과 마찬가지로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좌불을 조성하였지만 그 윤곽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바위의 북쪽 면에도 불상이 조각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이 불상군을 사면석붋=로 보았지만, 확인결과 불상을 새긴 흔적은 전혀 없으며, 또한 해당 면이 북쪽 경사지와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조각된 바위의 윗면에는 지붕과 같은 구조물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불. 삼존불로 조성된 남쪽 바위면. 본존의 가슴에는 전쟁의 상흔으로 보이는 총알구멍이 2개가 있다.
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불 동쪽면의 불상. 얕은 감실을 파서 불상을 새겼지만 그 흔적만 겨우 확인할 수 있다.
보물 제680호 영주 신암리 마애불의 서쪽 불상. 훼손이 심해 불상의 윤곽과 대좌부분만이 확인된다.
④보물 제997호 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상
현재 경북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반가상은 현존하는 반가상 중에 그 규모가 가장 큰 불상으로 복원 추정 높이가 2.5m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상이 있었던 곳은 1965년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오래전부터 마을에서는 이 불상을 ‘거북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1966년 이 지역에 대한 조사 결과 전면 3칸 측면 2칸의 원 건물과 함께 후대에 전면 5칸으로 확장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사에서는 ‘천덕(天德)3년(1151) 물야(勿也)’와 ‘대사(大寺)’, ‘금당와(金堂瓦)’ 등의 명문와편이 확인되었다.
현재 반가상이 출토된 곳에는 ‘반가사유상 발견지’라는 작은 표지석만이 남아 그 흔적을 겨우 확인시켜주고 있다.
보물 제997호 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상. 1966년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경북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조반가상이 출토된 봉화 북지리 현장. 반가상 출토지라는 작은 표지석만이 민묘 옆에 외로이 남아 있다.
이상의 영주지역 석불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인도나 중국의 여러 석굴 사원들처럼 하천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독 혹은 삼존불로 구성되는 통일신라기의 마애불과는 달리 불상군을 이룬 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따라서 이들 마애불들은 중국 등의 석굴사원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흥동의 예처럼 불상 전반에 걸쳐 붉은 채색을 한 것은 중국 북위시대에 조성된 운강석굴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에서도 이들 마애불의 조성연대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앞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