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박사 특별기고] 우리 차의 나아갈 길 ‘동다행’의 정신은!?
“초의차가 중국차의 아류? 차문화의 전승적 가치 정립 위한 결집 절실”

우리 전통차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한반도의 차나무 자생설, 또는 재래 차나무의 역사를 믿기 때문이다. 선사 이전부터 자생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의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삼국사기에 기록을 빌려 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대렴에 의해 차씨가 도입되어 이 땅에 차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7세기다. 선사이전부터 토종 차나무는 자생하고 있었을 것이며, 외래종은 이후 사람의 왕래에 따라 전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여 그 역사성이나 가치성은 어떤 전통문화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차문화를 단순한 음료문화로 보는 탓인지 현재까지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보호 받지 못했다.

우리 차문화는 정신, 예술, 신앙을 넘어 통과의례를 관장하며 정신문화의 큰 축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더군다나 전통이라고 하는 문화의 기저에는 늘 차가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물며 <茶賦>를 쓴 한재 이목(寒齋 李穆, 1471~1498)은 정신적․육체적 즐거움 즉 효용(效用), 공능(功能) 및 그 덕을 강조하였다. 해서 차의 공이 가장 높은데도 아직 칭송하는 이가 없었으니 이에 그 이름과 생산됨을 고찰하고 잘 살펴 그 물건의 상하와 품질을 가려 차 노래를 지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문화의 인식이 변방에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차문화․산업 진흥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의 통과는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이라 할 정도로 차계에서는 하나의 희소식이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차계가 마음을 모았던 것은 우리 차의 우수성이 새롭게 인식되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국회통과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 범국민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전통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차문화와 산업이 제도적·정책적으로 소외받아왔다는 한풀이였다. 차계의 결집력은 그간 전통문화로서 소외된 피해의식의 응집이었다. 그만큼 우리 차계의 바람이 절실했다 할 수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어진 "전통제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매우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차문화의 위상과 오롯한 정립을 위하여 보암직하다고 판단되는 이 지정(껀)이 저자거리에서 논란이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차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차계에서는 제다의 진정성, 전승성 또는 가치기준이나 지정의 타당성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산차(散茶)냐? 떡차(餠茶)냐? 전통이냐 아류냐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작금을 막론하고 “차는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차는 오히려 근·현대를 지나면서 국민에게 소외돼 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움직임도 타 예술분야보다 터무니없이 늦어진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동만으로 그 가치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그도 좋기만 한 일은 아니어서 제다 지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특정종목에 대한 가치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입장은 보유자(전수자)나 보유단체를 지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고 전문가 검토회의를 개최하여 그 결과를 보도하였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종목 명칭과 지정범위 그리고 지정가치가 주안이었고, 세부내용으로 종류나 제작공정이 거론되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향후 차문화 발전에 유익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앞선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 전통차는 사원차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회오리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 우리 차문화의 전승적 맥락에는 이 거대담론을 배제할 수 없는 불가분성이 내재하고 있다. 최근 '다맥은 없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의로 당쟁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진정한 다맥을 조사하고 또 그러한 전승이 있었다고 하면 겸허히 인정해 주는 아량과 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화려했던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에서의 차문화 지향, 그리고 근․현대로 이어지는 선대 차인들의 각고의 노력을 이렇게 물거품으로 일축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먼저 필자는 차문화 연구가로써 저자에서 회자되고 있는 논란거리들을 함께 풀어보자고 찻자리가 아닌 ‘차문화 발전방향 논의’라는 주제로 멍석을 깔고 싶은 마음이다. 난장토론장을 마련하여 중차대한 이 문제를 고매하신 학자들과 차인들을 모시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아무리 중국차 홍차 해도 우리 전통차의 활활한 맛과 효능을 뛰어넘지 못한다. 전통차의 법제는 초의(草衣 意恂, 1786~ 1866)로부터 발현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제다의 틀은 있었고 전승사도 인정된다. 그러나 '초의차'의 기록은 한국 전통제다의 기술을 섭렵하였다. 역사성의 가치가 기록으로 드러나고 인정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초의는 일상속에서 차를 통해 진리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차에 대한 자료는 중국의 다성 육우가 지은 다경을 위시하여 중국 다서가 전부였다. 그러나 초의선사는 이런 풍토에 의존하지 않고 조선 풍토에 맞는 다서를 직접 지었다. 이 땅의 차의 중흥과 보급의 살아있는 현장의 정점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초의차는 중국차의 아류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무슨 낭설인가!?

여기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일이다. 지금 차계와 문화재청의 입장 그리고 작년부터 있었던 연구단체와 언론 등의 움직임, 모두 개인의 이익이나 야합의 뜻을 배제하고 있는가? 차문화의 전승적 가치를 바로 정립하기 위한 당당한 결집이 요구된다. 우리는 국가와 차계를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일들을 남겨놓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향후 차문화 전승에 대한 연구조사가 오롯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것만이 지금 브레이크가 걸린 차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키다. 모든 잣대를 내려놓고 문제의 핵심을 찬찬히 들여다 볼 일이다. 정부나 차 전문 연구가들이 마땅히, 바람직하게, 당연히, 또 오롯이, 그리고 반드시 ‘정의롭게 해야 할 일!’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구미에 맞게 전수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적코자 하는 안건의 정통한 전문가로 구성된 전수조사연구위원회를 발족하여 토론과 협의에 의한 진행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차만을 고집했던 학자나 차꾼들이 진흥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설치는 차판이 엊그제였다. 중국차 제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의 충분한 연구조사와 검토를 도모해야 한다. 차계 전체의 의견을 충분하게 천천히 반영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부는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차 장사꾼도 아닌, 어떤 협회의 소속도 아닌, 또 1개 대학도 아닌, 더불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할 여지가 명백히 없는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조사위원회 구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차문화 전승의 시대별, 계층별, 지역별 연구조사와 더불어 문헌과 현장을 중시한 체계화된 전수조사의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어떤 단체나 대학이나 지역에 의한 편협된 조사가 아니라 각 분야의 우리차 연구가들을 중심으로 연구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차문화 제다에서 가공, 유통, 전승맥락, 다풍의 전수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이 정부기관(문화재청)차원에서! 차계의 전문연구조사위원회 구성이 불가결한 이유이다. 

그래서 전통대상으로서 제다부분에 전형(원형)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종합적인 <제다부문 전수조사 학술보고서>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차계의 전수조사는 80년대 운학스님이 조사한 전통다도풍속조사가 전부다. 그것도 일부의 개략조사서에 불과하다. 이렇게 각자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져 제대로 된 연구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차와 차문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적확한 평가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틀과 얼이 바로 이어져야 정통한 전통의 계승’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형식과 내용, 그 바탕인 정신이 균형을 잃고 헝클어진 물색이 되고 만 것이다. 제발, 주판이나 계산기는 내려놓고 오롯이 우리 차문화계의 발전을 위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상호 야합하거나 하는 일들로 바른 정립과 아름다운 행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차문화의 오롯한 정립에 아무런 도움도 발전도 도모하지 못한다.

어느 판이나 반론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론이든 당쟁이든 밥그릇 싸움이든 모두 일을 잘 되게 하는 의합이어야 타당하고 당당한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반론들이 제기되는 현 차계의 입장들을 오롯이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이번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개인의 영달이나 호불호에 의해 정부에서 진행되는 공적인 지원 사업이 좌지우지 해석되는 경우는 배제되어야 한다. 다음은 초의의 제다법이 정립되어야 하는 당위성이다. 초의는 초의차라는 등식을 배제하더라도 우리 차의 길을 제시한 ‘동다행’을 남겼고, 우리 차의 갈 길을 설정한 한국의 다성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도 참 거시기하다. 범해(梵海禪師, 1820~1896)와 다송자 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의 차시에도 초의차의 기록은 전범이 되고 있다. 초의차는 초의의 차법을 계승한 범해선사를 찾아가 배운 다송자의 차시(茶詩)에도 그 표현에 그침이 없다.

한국차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 해답은 초의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통제다에 대한 정의마저 모호한 채 노출되어 있다. 중국에서 떠들썩하게 회자되고 있는 한국차의 정체성! 이것을 무엇으로 대변할 것인가의 고뇌 속에서 그 해결의 키를 제시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접변이나 문화습합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 전문가마저도 중국차의 아류라고 주장하는 이 땅에서 과연 우리차의 정체성은 지금 어디쯤에서 해찰하고 있는지 이 기나긴 당쟁의 끝은 어디인지? 차문화의 중심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 화려한 행다처럼 무지개로 떳다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차문화 연구는 지난 1970년대 초부터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제다와 차문화, 차산업의 발전 전략은 50년 넘게 늘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다하게 가닥이 정리되었거나 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의문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연구방향에 혼선만 생기고 복잡다단한 의문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논거의 제시나 논쟁을 통한 발전적 모색보다는 양적 증가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차문화가 학문으로서의 연구 역사가 장구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정통한 학자의 부재와 연구자의 윤리적 태도에도 그 책임이 있다.

차의 법제는 새잎과 늦은 잎 등 찻잎의 눈만성(嫩晩成), 잎의 함수율, 법제하는 날의 계산과 습도의 정도, 불다루기(火候)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고, 또 덖음의 횟수가 딱히 정해진 바는 아니지만 현미한 이치가 있고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경지가 녹아 있다. 정성스럽게 만드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최선의 덖음차가 생산된다고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과정이다. 오랜 기술과 경험, 그리고 육감이 열려야 가능한 일이다. 이 기술과 호흡이 제일 중요한 절차다. 차색, 차향은 덖는 기술에 달려 있다. “불을 균정하게 잘 다루면 차의 색과 향기가 모두 좋으나 현묘함이 숨겨져 있음을 헤아리지 아니하면 차의 신묘함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초의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종목지정으로 그 역사성과 가치를 저울질 할 수 없는 눈금이 숨어 있다. 이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전통차의 위상을 되찾는 일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우리 문화를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과, 수천 년 후에도 이 땅에 우리 차문화가 올곧게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한국전통차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