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스님 기고] 분신(分身)과 화신(化身)의 문화를 생각한다
“법명에는 지어준 분의 기도가 들어 있다”
‘환생도량’을 표방하는 안성 도피안사에 주석하면서 ‘금강경환생대탑’ 세우기 불사원력을 세우고 있는 송암 스님이 법명(法名:佛名)과 법호(法號)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송암 스님은 은사 광덕 스님이 법명을 새로 지어달라고 한 우바이에게 “불자님, 법명에는 지어준 분의 기도가 들어 있어요.”라고 했던 말씀을 상기하면서 그 짧은 말씀 속에는 스님들 서로 간의 예의가 갖추어져 있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편집자
1. 분신(分身)문화와 화신(化身)문화
사람의 언행(言行)인 말과 행위는 당사자의 생각에서 나왔다. 해서, 사람의 말과 행위, 심지어 표정까지 모두 당사자의 마음 표현이고, 그대로 마음이다. 말[言語] 대신에 글로 대신할 수도 있고, 행위를 영상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마음의 다른 모습인 말과 행위는 적확(的確)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현실 가운데서 쓰고[用]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상대방에게 잘 전달해서 서로 감지하고 소통해야 해서다.
그러므로 은연중 서로의 약속이기도 한 말과 글, 행위와 표정은 적확(的確)해야 함에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언어의 적확성(的確性)에 그다지 뜻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개념에 대한 자기 정리를 수시로 하지 않고 살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허긴, 복잡한 세상에 꼬치꼬치 따지고 살려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고 골머리 아픈 일을 사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나 오늘날은 삶이 복잡다기(複雜多岐)해졌음 에랴.
그렇지만 일반대중은 그렇다 해도 각 분야의 지도자는 좀 달라야 한다고 본다. 언어가 정확해야 자신의 뜻이 남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언어문자와 행위동작은 개념(槪念:생각)에서 비롯되었기에―.
공동체 지도자의 생각이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공동체의 복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분신(分身)과 화신(化身)이 있다. 곰곰 살펴보면 얼핏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차이는 크다. 전혀 동떨어진 뜻을 지니고 있어서다.
말하자면 분신은 복제품이나 로봇 정도이다. 쉽게 말해 정해진 틀에 의해서 똑같이 찍어낸 거의 일정한 것, 개성이 없는 걸 뜻한다. 거기에 비해 화신은 직접적인 도움을 받되 내용적으로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어머니의 몸을 의지해 태어나는 자식과 같다. 비록 어머니로부터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받지만 태어난 이유, 삶의 뜻은 다르다는 거다. 만약, 부모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식을 자신의 판박이나 복제품인 분신이라고 착각한다면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고, 자식의 삶을 특정한 것으로 강요할 것이다.
필자는 서구문화, 중세에서 내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정 분야의 문화를 분신문화라고 본다. 특히, 서양인들이 이름을 짓는 걸 보면 조상 가운데서 저명한 이름을 따서 그 이름 뒤에 2세니 3세, 또는 4세 등으로 부쳐나간다. 그것을 거슬러 연원을 찾아 아득히 올라가보면 기독교[가톨릭＋개신교 등] 교리와 만난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자신과 똑 같은 형상을 진흙을 재료로 판박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복제품이라는 거다. 설령, 완전한 복제품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의도가 들어 있음을 본다.
초기의 교회가 로마에서 제도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교회의 성인들이 등장하고, 그 성인들의 이름을 따서 교황 2세, 3세 등으로 부쳐나갔고, 성직자인 신부나 일반 평신자들의 세례명도 거기에 따랐다고 본다. 물론,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의 풍속도 자연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실지로 세속의 왕도 일반 백성들도 그렇게 따라서 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교회의 영향이라는 거다.
거기에 비해 동양문화, 특히 불교문화는 화신문화라고 본다. 동양이나 불교에는 서양과 같은 따라하는 그런 전례가 없다. 가령 인도인이나 중앙아시아인이 중국에 와서 살면 겨우 어느 나라 출신인가 하는 표시만 했다. 역경가(譯經家) 안세고(安世高)라고 하면, 안식국에서 온 ‘세고’라는 식이다.
이건 물론, 교리상의 일이기도 하다. 불교는 시종 화신을 말했지 분신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수 천 년의 불교역사 속에서 성현들의 이름을 후대들이 그대로 쓴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설령, 과거의 인물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는 그이고 나는 나라는 거다. 어쩌면 다 잘났다는 거다. 아비보다 훌륭한 자식이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고, 아비보다 못한 자식들도 수두룩하지 않는가. 독자적이고 개성적이므로 누구의 복제 작품이 아니라는 거다.
개개인인 본래 면모가 부처, 개성적이라는 것이 화신이다. 이게 유구하게 흘러온 전통이고, 대대로 이어온 법의 정통이다. 그러므로 서양식 이름은 불교의 역사적인 문헌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글자의 발음은 같아도 뜻은 다르거나 설령 같은 이름을 썼어도 그런 이름이 있었던 걸 모르고 다만 뜻이 좋아서 쓴 사례에 불과하다. 해서, 불교에서는 누구를 닮으라는 닮겠다는 뜻을 지닌 분신쯤의 이름은 곤란하다. 관세음보살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떤 우바새를 ‘관세음 거사’라고 짓지 않는다. 불교의 성격상 모방이나 복제는 안 된다.
2. 작금, 서양식 이름의 도입
불교에는 양대 전승(傳承)이 있다. 범어(梵語) 전승과 팔리어 전승이다. 범어 전승은 주로 북방불교이고, 팔리어 전승은 남방불교다.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서로 다른 지리와 기후, 역사와 문화를 거쳐 오면서 핵심은 그대로이지만 환경에서는 적절하게 적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작금, 불교계 일각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고 있다. 불교의 화신문화를 저버리고 분신문화를 흉내 내거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남방전승의 상좌부 계통의 공부를 하고 온 일부 출가자들이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법명(法名:佛名)을 지어 주는데 빨리어 경전에 나오는 과거의 수행자들이나 성현의 이름을 똑 따서 그대로 붙여 주곤 한다.
다분히 서구에 대한 모방심리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심증이 인다. 2세, 3세들이라는 거고, 복제품이나 로봇 정도의 분신이라는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당사자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됐고, 은연중 그런 행위 속에 그런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걸 느끼는 건 필자만의 심정이 아닐 거다. 안타깝게도 분신과 화신의 차이를 모르거나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일거로 이해는 하지만 정신지도자로서는 아닌 것 같다.
언급한대로 북방 전승에는 일찍부터 그런 유례가 없었다. 중국 전래 초기에 출가자들이 속가의 성(姓)을 쓰니까 전진(前秦)의 도안 스님께서 이름 앞에 굳이 성을 쓰려면, 세속의 성을 쓰지 말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석(釋) 씨를 쓰자고 제안했다. 우린 모두 출가하여 부처님의 권속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았느냐 하는 자존감(自尊感)어린 생각이었던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자고로 문화는 독자적인 것이 없다. 사람의 생각이 쉼 없이 흐르듯 문화도 흐른다. 고급문화에서 저급문화로―,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화도 흐른다. 자연 거기에 따라 바뀔 건 바뀌고 변할 건 변하는 것이 정한 이치다. 더욱이나 현대는 더 긴밀한 ‘관계와 협력’의 국제화 시대다. 주고받는 영향 속에서 발전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어쩌면 앞장서서 선도해야 할 일이고, 뒤쳐져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정체성의 문제는 남는다. 사상적인 교류에 있어서 핵심을 비켜가거나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진리[法:가르침]를 생명으로 하는 불교에서는 잘 생각해야 할 일이다. 자칫 교리와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누구로부터 법명을 받나?
불교도(佛敎徒)가 되면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4부 모두가 법명을 받고 절에서나 법우들끼리는 법명으로 호칭한다. 물론,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수호해야 할 불문율의 전통이다. 그런데 어떤 절에서는 불교에 대한 소정의 기본교육을 마치게 한 뒤에 수계의 계단을 열고, 법명을 지어준다. 그런 절차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근본 뜻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불성을 지닌 존재이고, 하물며 삼귀의를 서원하고 오계를 다짐하면 즉시에 불자(佛子)다. 무얼 알고 모르고, 또는 입문한 연한이 본구(本具)의 불성(佛性)을 가로 막을 수 없다. 하물며 무슨 절차가 필요하랴? 물론, 계단(戒壇) 설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복잡한 단계를 둬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출가자들의 법명은 으레 스승이 짓지만 재가자들의 법명은 주로 출가자들이 짓는다. 따라서 발이 넓은 재가자들은 법명이 많다. 절마다 다니면서, 또는 여러 지인 출가자들에게 법명을 주렁주렁 받아서다. 또는 일부의 출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이미 있는 재가자의 법명을 쓱쓱 지우곤 새로 법명을 척― 지어주기도 한다. 자연 법명이 흔해졌고 고귀한 것과는 다소 멀어졌다.
스승이신 광덕 스님께서는 노년에 시자보살을 두었다. 공부해야 할 출가자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서다. 시자보살은 부산에 살 때 일타 스님의 가르침을 받던 우바이였다. 그는 남편의 사업으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자, 서울에선 어느 절로 가면 좋겠습니까하고 일타 스님께 여쭸더니 잠실 불광사 광덕 스님께로 가라고 해서 온 신도였다.
그 우바이도 당시의 유행처럼 일타 스님이 지어준 법명[九品華]이 있었지만 광덕 스님께도 하나 더 받고 싶어 했다. 해서, 여러 번 청을 했다. 그 때마다 광덕 스님은 웃기만 하셨다. 광덕 스님의 진의를 모르던 우바이가 또 청하자 비로소 스님은 속뜻을 내비치셨다.
“불자님, 법명에는 지어준 분의 기도가 들어 있어요.” 우바이는 깜짝 놀랐다. 거기까지는 미처 자신의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광덕 스님께서 그 우바이에게 속마음을 다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필자가 옆에서 듣기에 그 짧은 말씀 속에는 스님들 서로 간의 예의가 갖추어져 있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특히, 오늘의 출가자들은 가슴을 여미고 깊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출가자 서로 간에 알든 모르든 친불친을 떠나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긍심 높은 출가자의 금도(襟度)라고 본다. 재가자의 작명 하나에서도 승가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4. 출가자들의 법호
출가자인 이른바 스님들은 평생을 절에서 공동체로 산다. 예전에는 동진출가가 많아서 동자승 때부터 노승에 이르기까지 하 많은 세월을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해서, 법명은 아이 때 부르는 이름이었고 햇수가 쌓이면 걸맞은 이름을 스승으로부터 새로 받는다. 이른바 법호(法號)다. 물론, 법을 이어 받는 하나의 증표로 법호를 내린다.
건당(建幢)의 당호(幢號)이기도 하고, 고승의 법호를 함부로 부르기가 어려워 집 이름으로 삼아 당호(堂號)로 부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누구가가 “송암당(松菴堂)!”하고 부를 때, 법호를 거처하는 집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필자가 불광사 법주(法主:光德) 스님의 회하(會下)에 있을 때, 외람되게도 스님[師]이신 법주 스님께 법호를 자청했다. 그 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광덕스님시봉일기』1권 126쪽에서 인용해 본다.
“호는 원래 법을 전하면서 지어주는 이름이다. 거기에 따라 전법게를 낭독하고 대중에 알리지만 내게는 그대들에게 줄만한 법이 없구나. 다만, 이제 너희들이 출가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서로 대접하여 어릴 때 부르던 이름보다 새로 지은 호를 썼으면 한다. 그러나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어도 좋고, 또는 호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좋다. 법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부득이 보리수 한 잎으로 호와 함께 각자에게 준다. 운운…”
스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못내 섭섭한 생각이 일었다. 어떻게 스승이 지어주신 호를 두고선 제자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따지겠나하는 생각이 앞서서였고, 그것은 상좌들을 온전히 다 믿지 못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족한 생각에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께서 미리 베푸신 자비(?)가 현실에 나타나고 말았으니까 지혜의 예견을 미리 전하신 것 같다.
예전에 스님들이 당호를 세울 때는 음력 칠월백중 날 절의 큰방에 호를 받을 스님들 숫자만큼 병풍을 둘러치고 병풍에 법호를 써서 걸고 그 안에 다과상을 차리고 의식을 갖췄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그런 격식을 번거롭다고 하여 생략하고 있지만 그 사람을 호칭하는, 법을 의미하는 이름, 법호는 언제나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 스님들께 일일이 공양을 올려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청했던 일이다.
오늘과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아득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출가자들은 스스로 따라야 할 법이 부족하면, 그 다음으로는 스승과 제자 간 도승(度僧)의 의리(義理)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런 누대의 법규나 덕풍은 간곳조차 없고 아랑곳 않는 세태다.
이제, 세간의 사표(師表)를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았던 그런 모습이 그런 정신이 오늘에는 왜 보이지 않을까? 출세간이 세간만도 못한 증표이기나 한 것처럼. 세(勢)를 떠나 진리를 찾아 나선 출가자가 되레 법이 아닌 세(勢)를 쫓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오호통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