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귀한 인연을 기뻐한다. 그러기에 귀인이 더 귀한가 보다. 누구나 얼마 안 가 스쳐지나가거나 아주 멀어져 가는 인연에 대해서는 슬퍼하거나 아쉬워한다. 귀인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떠나가는 귀인은 우리가 ‘귀인’으로 귀하게 대접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인(성직자나 수행자를 가장한 사람)들은 귀한 인연은 아름답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왜곡한다. 자신에게 ‘액세서리’처럼 붙어서 일방적으로 잘해주는 사람을 귀인이라고 한다. 귀인인가 머슴인가?

속인들은 인연을 말할 때 모두들 마치 '도인'이 된 것처럼 “인연이란 이런 거다!”라며 잘도 떠들어 댄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지금 현재 도움이 되는 사람만이 귀한 인연이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도와준 사람이라도 지금 안도와주면 ‘귀인’이 아닌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속인들은 뜻도 모르고 '인연'과 '공덕'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혹세무민’을 한다. 말만 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다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당장 자기 눈앞의 이익에 상반되는 일이 벌어지거나, 자신의 무엇인가를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바로 귀한 인연이 아니라고 한다. 바로 그렇게 소중했던 귀한 인연을 바로 ‘이년’이나 ‘이놈’으로 변질시킨다.

속인들에게 인연은 무엇이고 귀인은 무엇일까? 자신을 높여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지 않을 사람만이 귀인이고 귀한 인연일까? 스스로 알고 있는 아니 아니라고 부인하는 열등한 자기 자신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존심의 언어들로 아무리 치장해도 귀인이 떠나간다면 우린 귀인이 아닌 속인이 된다. 그래서 일기일회(一期一會)이다. 우리가 만난 사람가운데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따름이다.

아무리 떠난 사람에 대한 욕설과 모욕과 비난으로 점철을 해도 스스로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는 없을 따름이다. 귀한 인연은 우리가 상대를 존귀하게 대접하며 그래서 상대에게서도 우리가 존귀해질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상대는 우리에게서 서로 귀인이 되기에 더욱 더 서로가 귀해지나 보다. 귀인을 만나고 싶다면 스스로 귀인이 되라. 아니더라도 귀인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귀인을 만나도 귀인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다 딱 자기 같은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르면 자본주의적이고 묵수적이고 지극히 개인 또는 집단주의적인 ‘발상’과 ‘상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공격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이나 욕구와 같으면 민주주의적인 다수라는 '객관성'을 가지고 ‘왕따’를 위한 임시 동맹을 맺는다. 그런 알량한 상식이 같다고 즐거워하는 이들은 속인을 넘어 소인에 불과하다.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이야말로 귀인이라는 것을 망각한 우를 범한다. 하지만 잠시만 지나가보면 아니 떨어져보면, 귀인이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불현듯 느낀다. 하지만 수긍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존심으로 인해 상대가 자기보다 잘 났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차별적이다. 그러기에 귀인을 될 사람과 이미 귀인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참회하고 수긍해서 개행을 하면 우린 모두 바로 귀하게 된다. 귀인들도 다 그렇게 성장해 온 이들이다. 중생이 부처고 부처가 중생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가 중생과 같지는 않고 또 다르지도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도사 산령각 옆에서 바라본 금강계단의 적막

귀인을 나보다 먼저 귀인의 자리로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은 매우 배려 깊은 언행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내가 귀인이 되고 싶다는 뜻도 포함된다. 맑고 밝은 욕심으로 이기(利己)가 이타(利他)가 되고 이타가 이기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겸손이고 하심(下心)하는 언행이고 귀인의 지위 여하에 따라 “멸사봉공(滅私奉公)”이나 “선공후사(先公後私)”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먼저 귀인이 되려고 한다. 스스로의 분수를 망각한다. 설사 스스로가 귀인이었다고 해도 내가 먼저 귀인이 되려는 순간에 이미 귀인이 아닌 게 된다는 기본적인 것도 모른다. 우리 모두 차별이 없는 세상을 원하지만 실제로 스스로가 서 있는 자리가 그리 높지 않다는 차별을 인정하고 나서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자기 발아래를 잘 살피라”는 뜻도 이러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품격이라는 ‘품’이 있다. 부처님이 에둘러 말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가 그것인가 보다. 말도 안 되는 신분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 말이 맞다. 다행스럽게 이 차이는 존재하지만 차별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기에 인내천(人乃天) 만민평등(萬民平等)이라고 말이나마 할 수 있어 기쁘다.

브라만(도인, 수행자, 성직자)의 사회에서 크샤트리아(통치계급)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바이샤(상공인, 재벌 포함)들의 시대가 되었다면 너무 시대역행적인 생각일까? 성직자와 정치가들이 타락해서 장사꾼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아니 금권주의의 특징은 아닐는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4차원’이나 ‘5차원’이라고 왕따 시키는 사람들 대부분 이야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브라만’인 경우가 많다.

지금은 하근기가 주인이 된 사회이다. 아니 하근기 일부 가운데 ‘돈’을 만지는 사람 아울러 상근기나 중근기이면서 ‘돈’의 유혹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들이 요즘 이 사회의 주인이 아닌가 싶다. 이들 가운데 상근기와 중근기가 해야 할 청렴하고 순수한 의무의 부담을 벗어던진 이들은 삶속에서 가슴 속 깊은 곳의 자리 잡은 뭔지 못할 원죄를 느낀다. 중근기와 하근기 역시 스스로의 강한 열등감을 무의식적인 상처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상근기인 ‘귀인’을 보면 자기보다 귀한 걸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바로 욱하여 '머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가짜 귀인이 요즘 많아졌다. 인연을 이야기하고 귀인을 이야기 하면서도 스스로가 하심하지 않은 이들을 속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귀인은 곧 하심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항상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지만 스스로의 ‘귀티’를 속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옆에 없는가 살피면 된다. 다다음 생에서라도 언젠가 귀인이 꼭 되고 싶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