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차꾼들이 찻자리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7일 양일간 초의문화제가 진행되었다. 초의문화제는 올해로 스물 네 살이다. 벌써 과년한 나이로 접어들었다. 차문화의 성지 일지암을 가슴께에 안고 부처님 상호를 산정에 모신 대흥사에서 해마다 치러진다. 일지암(一枝庵)에서 초의선사(草衣 意恂, 1786~1866)는 39세 때인 1824년부터 1866년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 년간 주석했다. 독처지관하면서 우리나라 차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다. 여러 환란과 역경 속에서 쇠퇴일로에 있던 우리 차의 꺼져가는 명맥을 되살려 내고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선사로서 차와 선의 법맥을 이어 갔다. 그런 차살이에서 차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잉태하기도 했다. 시(詩)·서(書)·화(畵)·차(茶)에 뛰어나 사절(四絶)로 일지암을 중심으로 직접 차를 기르고 좋은 종자를 개발하는 데도 힘썼다. 더불어 뛰어난 시승(詩僧)으로 수많은 다시(茶詩)를 지어 다도의 이론적 확립을 모색했다. 그런 만큼 일지암은 차의 성지라는 별호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초의선사와 일지암은 다성과 성지라는 큰 이름으로 우리나라 차 문화사의 핵심 내용이다. 초의문화제는 이곳에서 초의선사의 업적과 차살이의 가르침을 높이 받들어 그 정신을 기리고 보존하고자 진행되고 있다.
유천수를 일지암에서 길어와 초의선사전에 찻물을 올리는 유천동들.
초의선사의 기일을 기준으로 행해지는 초의문화제는 초의선사가 늘 사용하였던 유천수를 길어 와 차를 우리고, 초의선사전에 헌다하는 순서로 탯줄을 자른다. 어찌 보면 이 행사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초의선사가 차살이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물이었다. 차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몸(茶者水之神 水者茶之體)이라 했다. 곧 좋은 물이 아니면 신(색향기미)이 나타나지 않고(非眞水莫顯其神), 잘 만들어진 차가 아니면 물의 본질을 엿볼 수 없다(非眞茶莫窺其體)고 했다. 그래서 품수(品水)에 능한 차꾼들이 많았고 명천(名泉)을 찾아 다녔다.
차를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고, 차를 저장하고, 보관할 때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며, 물을 끓여 차를 달일 때는 청결하여야 한다고 일침했다. 정성 들여 만드는 정(精), 차에 습기가 들지 않게 하는 조(燥), 차를 달여 마실 때 청결히 하는 결(潔)로 다도(茶道)는 완성된다[精 燥 潔 茶道盡矣 精巧, 乾燥, 精潔이 차의 지킬 바를 다 함이다]고 다신의 다위(茶衛)에도 잘 기록되어 있다.
물의 성질 중에 맑고 가벼움을 첫째로 여겼고 산정의 샘물이 그런 성질을 담고 있다 하여 가장 좋은 물이라 하였다. 차문화의 문헌 기록에서 물에 관한 기록만 따로 떼어내어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만큼 그 영역이 방대함은 물론 그것이 차에 미치는 영향 또한 대단히 크다. 차시에서 보면 가장 좋은 차의 맛을 녹유(綠乳), 백유(白乳), 운유(雲乳), 설화(雪花), 운화(雲花) 등으로 표현한다. 엄마젖을 비유하는 기대치일 것이다. 일지암의 유천수는 바로 그런 엄마젖과 흡사한 성분과 맛과 기와 품을 닮았다 한다. 그래서 최고의 찻물이다.
지금 남도의 차밭에는 차꽃향이 가득하다.
당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지암에서 정성을 다해 고유제를 지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 박 한 박 물을 길어 내려와 초의선사전에 헌다를 한다. 물을 길어 내려오는 일정은 지역 학생들이 동참하는데 이들을 유천동(乳泉童)이라 하여, 일지암에서 동국선원까지 다시 동국선원에서 초의선사전까지 물확을 짊어지고 이동하여 그 유천수로 차를 우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차문화 발전에 헌신하시다 타계하신 선고다인들에 대한 추모식도 함께 거행된다. 공양을 올리고 선고다인 헌다례가 행해진다. 사원차의 명징한 역사를 보여주는 다승(茶僧)을 비롯하여 초의상 수상자 선고다인, 해남다인회 선고다인들 108명, 그리고 역사 속에 묵묵히 차살이를 했던 선고다인들에게 차를 올린다. 정성스럽게 차를 올리고 선고다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차문화의 보급과 확산에 힘쓸 것을 다짐하고, 이념과 사상, 종교 철학을 초월하여 차의 정신을 받들 것을 맹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차정신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축제성 행사는 모두 배제되었다. 차의 전통이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키워드를 제외하고 초의문화제의 정신을 분산시키는 여타의 시끄럽고 난삽하고 요란한 코너(부스)는 허락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축제의 평가를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의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 부연에 더 적합할 것이다. 축제를 재는 잣대가 사람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초의문화제는 묵묵히 말한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축제의 무게중심을 싣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초의문화제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초의문화제의 헌무 공연 모습.
초의문화제는 하나의 패턴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초의선사의 차정신 만은 오롯이 지키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정서의 차문화, 그리고 그 문화로 인한 우리 삶의 격이나 품을 지켜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초의문화제는 차인들이, 차꾼들이 찾고, 어울리고, 지키고, 세우고 이루어야 한다. 초의문화제! 한 번의 참여도 없이 어찌 차꾼이라 할 수 있으랴!? 일반적인 시각을 무너뜨리고 오롯이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초의문화제의 활성화는 오로지 차꾼들의 몫이다. 왜색다도에서 그 외형만 들여와 형식과 치레에 집중하는 차꾼들이 아니라면 이런 행사에 귀 기울이고, 정신과 혼을 갖추고 집중해야 할 것이다.
초의문화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전국에서 차 학술 논문공모전이 유일한 행사이다. 차 인문고전과 자연과학의 깊이와 폭을 키워 나가는 데 지원하고 우수한 논문을 시상하는 일환으로 초의문화제 집행위원회는 매해 고민이 많다. 차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관심이 저조하고 논의의 다양성이 떨어져 심도 있는 연구 발굴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차문화의 발전 방향은 전통차의 활성화와 연구만이 미래라는 것을 일찍이 감지한 선견지명에서 얻은 덕이다.
차문화 보급과 확산을 위해 헌신한 이순희 선생과 초의문화제 사회를 맡은 필자.
필자 역시 2009년 2010년 차 학술 논문공모전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하고, 2009년 봄 ‘차와 고전문학의 만남’이라는 강의를 해남다인회에 개설하면서 해남다인회 식구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런 정신으로 지켜나가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초의문화제는 차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미있는 행사가 부족 하는 이유로 소외시한다는 것은 차꾼으로서의 기본 근성이 부족한 것이다. 다소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대중성에서 벗어난다는 충고도 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철학적 고뇌를 함께 하는 대의명분을 읽어주십사 하는 주문을 감히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이어가는데 열과 성을 다하여 천리 길도 마다 않고 매해 참여하는 차꾼들이 존경스럽다. 그 분들에게 차문화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해남의 차문화를 집필한 소설가 곽의진 선생은 초의선사를 일컬어 ‘이 시대에 부활해야 할 그리운 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초의문화제는 그녀가 표현한 바대로 ‘초의선사의 팔십 평생을 수백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의의 패턴과 규칙을 인식하고 이해하면 우리 차문화사는 다시 쓰일 것이다. 선고다인들이 그랬듯이 사상이나 이념, 종교나 철학을 초월하여 같이 어우러지는 차판,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땅 끝 해남에서 차문화의 희망이 다시 불 붙여지기를 기대해본다.
차 학술 논문공모전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수상자들.
정서경 박사는 고전민속학을 전공했다. 차고전과 차시(茶詩)를 통하여 우리 차문화사의 미결의 문제를 고민하고 전승의 주체와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차문화를 향유해 온 주체 연구는 집단이든 개인이든 그들에 의해 생산되고, 공유하고 향유와 확산을 통한 문화 전반의 패러다임이고 밑그림이다. 기록을 훑고 기억을 찾아가고, 차문화의 현장이 그녀의 연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