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의 해탈을 넘어 세상을 건지고자 하노라
乃往過去久遠世 아아, 지나간 과거 오래고 먼 예전에
有一高士號法藏 한 고사가 있었으니 이름은 법장이라네.
初發無上菩提心 처음에 한량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어서
出俗入道破諸相 세상 떠나 도에 들어 뭇 형상을 부수었지.
雖知一心無二相 비록 한 마음에는 두 형상이 없음을 알았지만
而愍群生沒苦海 사바세계 중생이 가여워 고해에 몸을 던졌네.
起六八大超誓願 마흔여덟 크고 우뚝한 서원을 일으켜서
具修淨業離諸殃 맑은 업을 갖춰 닦아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게 했네.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미타증성가(彌陀證性歌)>
사진=장명확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찌들고 마음이 조각조각 무너질 때면 문득 맑은 곳이 그리워져 훌쩍 산사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시비의 따짐 대신 새소리가 나를 반기고, 시냇가의 반들반들한 바위는 따뜻해 누워 잠시 단잠에 들어도 좋다. 다람쥐가 물수제비 타듯 지나가고, 법어를 품은 바람이 맑게 귀를 씻어낸다. 햇살이 보살의 손길처럼 얼굴을 간질이고, 어디선가 달짝지근한 치차 꽃의 향내가 콧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럴 때면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절에 가면 모든 게 저절로 라서 ‘절로’란 말이 나왔나 보다. 경전을 펼치고 선정에 들지 않더라도 벌써 이승의 번뇌에서 한 걸음 물러선 듯하다.
자연의 호사는 이쯤에서 그치자. 그것도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니까. 다시 산사를 향한 발걸음을 다독인다. 대웅전이며, 명부전, 조사당과 산신각을 두루 돌아보고 넓은 뜰로 나온다. 언제 누가 이런 좋은 곳에 절을 세울 발원을 했을까? 이 고찰의 유래에도 흘낏 눈길을 준다.
그렇게 절의 해적이를 살필 때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팔도강산 어디를 가도 신라 때의 큰 스님 원효가 창건한 절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니? 이 분은 평생 절만 세우다 세상을 뜨셨나? 그 많은 저술을 남기고 숱한 설법을 하셨으면서 어느 겨를에 연사(蓮社)까지 일구었을까?
설마 그 많은 절을 스님 혼자의 원력으로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사람들은 기왕이면 우리 절도 원효 스님의 손길이 닿았기를 희구해 스님의 이름을 슬쩍 빌렸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 좀 훔쳤기로서니 팔 걷어붙이고 호통 칠 어른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우리 불교가 낳은 위대한 지성 원효를 모를 사람은 없으리라. 세상을 지탱할 기둥(支天柱)을 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요석공주와 동침해 설총(薛聰)을 낳은 얘기는 삼척동자도 안다. 깨달음을 담금질하려고 중국 유학을 떠나려다가 바닷가 바위굴에서 눈을 붙였는데, 밤에 갈증을 씻으려 마신 물이 썩은 해골 물인 줄 알아 삼계(三界)가 마음뿐이라는 부처의 말을 체득하고 “까짓 유학이야 옆 집 개에게나 줘라!”면서 걷어치운 일도 또 말 하면 입이 아플 뿐이다. 광대들이 두드리며 노는 큰 박을 보고 이를 빌려 무애(无碍)라 명명한 뒤 방방곡곡 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했던 일도 어제 일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그 상식을 깨는 무애행으로 일관했던 괴승(?)께서 남긴 말씀은 또 어쩌면 그렇게도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걸까? 목석도 고개를 끄덕일 진리와 실천은 이 땅의 불교가 억겁 세월 동안 금강저(金剛杵)로 삼을 만하다.
원효 스님이 남긴 몇 편 안 되는 노래가사 가운데 웅장한 울림이 없는 것이 없지만, 오늘 읽는 이 시만큼 자신을 잘 드러낸 작품도 드물다. 스스로를 아미타불에 견주었는데, 본성의 증명은 내남 없는 우리 모두가 축원하는 바다. 법장비구, 아미타불은 누구 한 사람의 응신(應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그림자인 셈이다.
깨달음은 나만의 것은 아니고, 나만의 것이어서도 안 된다. 진리를 향한 마음을 내어 모든 형상을 산산이 흩어버렸어도, 또 세상에는 아직 정각(正覺)을 이루지 못하고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을 두고 해탈의 문을 들어선들 마음이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냅다 사바세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 자비심은 법장비구의 마음 밭이었고, 원효 스님의 간절한 기구였으며, 세상 모든 수행자의 벗어날 길 없는 먹거리였다. 눈앞에 보이는 복지(福地)를 버리고 다시 고해로 몸을 던지는 마음은 우리 중생 모두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이다. 그러기에 부처도 “만물에게는 부처될 씨앗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원효 스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절간에 들면 이미 거기에는 원효 스님의 말씀과 숨결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온기를 느껴 부처될 마음을 일으킨다면, 원효 스님도 내 이름 마음껏 훔쳐가라고 고래고래 외칠 게 분명하다.
이끼가 서리고 서려 돌의 연륜을 가뭇없이 멀게 만드는 당간지주의 쌍둥이 얼굴을 만지노라면, 그 옛날 이 돌을 깃대로 만들려고 다듬던 석공의 주름진 얼굴이 떠오른다. 당간에 걸린 깃발을 보고 세상 번뇌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절간으로 오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석공은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그 웃음은 원효의 미소이자 석공의 미소이면서, 나의 것이고 중생 모두의 것으로 퍼져나간다.
산사를 떠나 산길을 걸으면서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서산 봉우리를 올려다본다. 오늘 참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간다. 원효 스님도 보았고, 산 다람쥐와 산새들도 만났다. 물소리며 바람소리에게도 인사를 나누었다. 기쁨은 가슴에 담았고, 번뇌는 절간에 내려놓았다. 증성의 노래를 슬며시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