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아주 좋은 차를 만났다. 재작년에 시험제다를 하고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죽통차다. 죽통차는 떡차를 만드는 방법과 거의 비슷한데 죽통을 이용해 발효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차에 죽향이 가미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차맛이 아주 부드럽고 차탕이 고운 것이 장점이다. 보이차 못지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차를 만나면 생각나는 분이 있어 하나를 더 챙겨 서울로 보냈다. 그런데 죽통차에 함께 묶여 간 홍보지를 참고하면 택배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차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라도를 내려오신다는 말씀에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차를 만드는 다원은 찾아가서 덕담도 해 드리고, 차 만드는 과정도 좀 여쭙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차를 만드는 손을 잡아보고도 싶으시다는 말씀이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제안인가! 순간 차꾼이라는 필자마저도 숨이 멎어버리는 폭풍환희를 느꼈다. 차문화를 연구하면서 고전과 다시(茶詩)를 탐독하다보면 이런 감동적인 장면은 가끔 접하게 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너무 정겨운 제안을 받아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문화를 넘어 차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차가 가진 기능만은 아니다. 좋은 물이 있어 생각나는 지인에게 물을 보내는 수체(水遞)풍속, 좋은 차를 만나 차를 보내고 또 사다(謝茶)한 흔적은 사장(謝狀)문학으로 남아 있다. 물과 샘이 달지 못하여 차맛을 손상시킬 수 있기에, 선인들은 늘 차품도 차품이려니와 먼저 수품을 논하였다.

“강물 길어 차를 끓이며(汲江煎茶)”라는 동파(東坡)의 시운을 따라 당시에는 빗물이나 눈 녹인 물을 다탕으로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묘미는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달렸다(妙不在茶唯在泉)”고 했다. 물은 차의 몸이라는 다신전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차는 물에 의해 차탕을 결정한다는 지혜를 알고 있기에 선인들은 좋은 물을 나눴다. 또 차는 물의 신(神)이라. 좋은 차를 만들어서 보내고 또 차가 떨어지면 차를 보내 달라 투정도 하고, 으름장도 놓으면서 좋은 차를 재촉하고 차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좋은 차가 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서 찻잎의 동정을 살폈고, 차를 잘 다스리는 차꾼을 찾아가 그 역사를 이야기하고 함께 품을 살폈다. 이런 풍속은 관료들이나 학자들의 다시(茶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지난 시대의 아취(雅趣)와 표일(飄逸)함을 이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멎음이었다.

 광주 송정리역으로 오신다는 말씀에 평소 연구를 함에 있어 교류가 잦은 전남대 나경수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부루다원으로 향했다. 정말 의미 있고 행복한 동행이었다. 거만한 여름 절정에서 찾아간 부루다원은 풀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들어가는 길섶 또랑가에 누리장나무는 피어 아름답고, 풀들의 잔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부루다원은 대차12호를 삽목하여 키워내느라 바빴다. 이 품종으로 차를 만들어 금훤황차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하고 있다. 금훤차는 대만 오룡중에 하나이다. 대차12호 품종으로 연지오룡 품종을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해충에 강하고 성장이 빠른 장점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차나무가 건강하다.

금훤차의 이 훤 자(字)는 원추리 훤(萱)자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꽃을 망우초(忘憂草)라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가장 사랑받는 음료를 칭할 때 술과 차라고 한다. 그런데 이 주다(酒茶)를 이름하여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군(忘憂君) 또는 번뇌를 없앤다(씻다, 빨다, 헹구다, 청소하다)는 척번자(滌煩子)라 하는데,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더 중요한 것은 부루다원에서 만든 죽통차가 중국 어느 보이차보다 낫다는 것이 제 소견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반응일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저렴하다. 극히 공정에만 들어간 소량의 찻잎 값과 아들 셋과 하늘빛 맑은 땅이 합심하여 저렴한 노동력을 포함한 것이 고작 이 차의 대가로 우리가 마실 수 있다. 특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건강한 차나무와 차를 만들기 위해 1년에 한 번만 차를 따고 있다. 고집과 지향은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또 새로운 혁신을 부른다.

죽통차 만드는 이야기, 다원의 1년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약 6시간 정도를 차를 마셨다. 이 다원에서 만들어지는 차는 거의 다 마셨다. 브랜드명도 참 재미있다. 녹차, 청차를 비롯하여 부루미인, 금훤황차, 죽통차 등등.. 다리가 저리는 것도 모르고 앉아 차를 마신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차밭으로 가 차나무의 생태환경을 살펴보았다. 건강한 차밭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만난 이 두 사람은 하늘빛, 맑은 땅으로 이름하고 함평 대동 호정리에 자리 잡은 후 부루, 부소, 부우 아들 셋을 낳고 다원을 일구며 아주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 부부다. 그런데 차를 만드는 기술만큼은 젊지 않았다. 아주 곰삭은, 노부부처럼 발효가 잘 된 익은 기술로 차를 만들고 차와 함께 하는 참살이의 지혜와 맑음이 있었다.

다원 관리는 1년에 한 번만 차를 따서 만든다. 우선 차나무를 힘들게 하지 않고 건강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이 이 다원 주인의 변이다. 그리고 건강한 찻잎으로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슬로건이다. 죽통차는 먼저 모차를 만든다. 모차는 발효정도는 제다인이 조절한다. 부루죽통차는 50% 정도 차에 열을 살짝 가한 후 대통에 넣는다. 차를 넣은 대통을 불에 구어 대의 즙을 찻잎에 스며들게 한다. 대나무를 반절로 쪼개 차덩어리를 빼내어 각각 구들방에 건조한다. 100g 정도 되는 차가 죽통 안에 들어 있다. 지금까지 10년 이상 찻값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좋은 차를 많이 공급하서 차인들에게 보급하고 우리차 문화의 확산을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차 산업의 미래 결코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필자 정서경 씨는 고전·민속학을 전공하고 ‘한국 차 문화의 주체와 차 문화 기능의 전승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목포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전통차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