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里燈無主 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고
他方寶樹摧 타향에서 보물나무는 꺾이고 말았네.
神靈去何處 신성한 혼령은 그 어디로 갔는가,
玉貌已成灰 옥 같던 용모는 이미 재가 되었구나.
憶想哀情切 생각하니 가엾고 애절하여라,
悲君願不隨 그대 소원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섧구나.
孰知鄕國路 그 누가 고향 가는 길 알겠는가,
空見白雲歸 바라보니 흰 구름만 덧없이 떠돌아가네.

-혜초(慧超, 704-780) <신두고라국(新頭故羅國)에 있는 어느 사찰에서 입적한 스님을 애도하면서>

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동아시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면, 대충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618년 건국된 당나라가 한동안의 혼란을 극복하고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712년 즉위한 현종(玄宗)은 755년 터진 안사(安史)의 난 이전까지 이른바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태평성세를 구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역시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번영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성덕왕(聖德王, 703-737년 재위)의 통치 아래 전제 정치가 강화되면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문화적인 완숙기에 접어들어, 751년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8세기 초기의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난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파국의 조짐이 조금씩 고개를 들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특히 여행의 시대이기도 했다. 불교라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에서는 전법승(傳法僧)들이 동쪽으로 향했고, 중국에서는 구도승(求法僧)들이 서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수만 리 먼 길을 뭍길과 바닷길로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배우기 위해 미지의 땅을 향했던 위대한 탐험가들이 속출하던 시기였다. 더구나 그들은 정복의 칼날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붉은 마음, 평화와 자비의 사도로서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여행의 시대를 빛낸 한 사람의 신라인이 있었으니, 바로 혜초라고 하는 청년 스님이다. 스님은 20살이라는 나이에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 4년 동안 서역 일대를 샅샅이 탐방한 뒤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귀환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는 이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것이 바로 영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가치가 높은 저술이지만, 우리 시문학사에서 볼 때 다섯 편의 선시(禪詩)가 실려 있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여행기 속에 이렇게 주옥같은 시를 담아 놓은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산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유장한 매력과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정감이 잘 드러나 있어 이 여행기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5언율시의 형식으로 쓰인 혜초스님의 한시는 그의 문학적 역량과 이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 단편적인 보고서 같은 인상을 주는 본문의 한계와 아쉬움을 이 정감어린 시편들을 통해 털어버릴 수 있다. 그 중 여기에 소개한 시는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이 시는 혜초와 마찬가지로 인도에 와서 수행과 학업에 정진하다 귀향하지 못하고 이역 땅에서 생애를 접은 스님을 조문하는 시이다. 먼저 이 시를 짓게 된 계기가 되는 여행기의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산중에는 절이 또 하나 있는데, 이름은 나게라타나(那揭羅馱娜, Nagaradhana)라고 하며, 여기에 중국인 승려 한 분이 계셨다. 그는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그 절 대덕이 말하기를 스님은 중천축에서 왔으며 삼장(三藏)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환히 습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그만 천화(遷化, 입적)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그때 이 말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4운(韻)의 오언율시를 적어 그의 저승길을 슬퍼하였다.

서역을 향한 구법 여행 와중에 생사를 달리한 스님은 한두 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감당하기 어려운 인도 여행인데, 그 당시 그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여정이었으니, 생명의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직 부처님의 숨결을 체험하겠다는 열렬한 구도정신으로 이루어진 도정에서 고결한 생명을 바친 선현의 모습은, 한편으로 장중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만, 또 한 편으로는 끝없는 고뇌와 연민을 몰고 온다. 더구나 귀향을 앞두고 병이 들어 눈을 감은 스님의 일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쩌면 혜초 역시 구법 여행 중에 이곳에 살과 뼈를 묻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만 리 타향에서 생명을 다한 이름 모를 스님에 대한 조가(弔歌)는 더욱 구슬프게 들려온다.

그러나 불법(佛法)을 다 깨우치겠다는 거룩한 서원(誓願)을 이루지 못하고 꺾여버린 사실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육신의 죽음보다 윤회의 번뇌를 뚫고 해탈의 기쁨을 마무리하지 못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고향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영혼이라도 저 구름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시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구도자이기에 앞서 죽음 앞에 연약한 한 인간으로 돌아간 혜초의 절박한 심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이역의 쓸쓸한 낙조(落照)를 등지고 스님의 부도비 앞에 합장한 혜초스님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은 스님의 20대의 경험이 빚어낸 산물이다. 이 책을 저술한 시기는 가름할 수 없지만, 20대 청년의 건강하고 맑으며 깨끗한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또 그러면서도 그런 열정을 잘 제어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지향한 자세도 함께 읽혀진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 속에는 인간 혜초의 숨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