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 대통령이라고 한다. 하지만, 잘 보면 불교총독이 더 맞다고 한 재가불자는 전한다. 그 지위가 어떻든 그건 보는 사람의 평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 즉 석왕보다 높은 ‘불교제왕’이라고 보는 이도 있는 걸 보니 대단한 자리인 듯하다.
그런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선거제도는 ‘서의현복권소동’으로 이미 사장된 94년 개혁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돈 선거 등 폐단에도 불구하고 직접 민주주의 가치가 실현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하나, 자화자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94년 개혁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말법시대 야단법석’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견 지나친 발언 같지만, 쉽게 부정할 수도 없으니 불자로서 마음이 참 아파도 너무 아프다. 계속되는 불교계의 불상사에 ‘친구’라는 영화의 엔딩처럼 수십 번에 걸친 칼질에 ‘이제 됐다. 그만 찔러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될 정도라고 한 영화를 좋아하는 불자는 전한다.
얼마 전에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방법을 현행 선거제도가 아닌 ‘추천에 의한 추첨제’라는 기상천외한 법이 제안됐다. 법등이라는 출가승이 제안한 이 법은 일명 ‘염화미소법’이라고 한다.
염화미소란 “영취산에서 설법하실 때 부처님께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모인 사람들에게 보이자 제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어 보였기에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고도 한다. 그럼 부처님은 왜 꽃을 들어 보였고, 가섭은 왜 웃었을까?
우리 불교에는 중생심이 곧 불심이라고 한다. 민족종교 천도교에서는 인내천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다. 그리고 부처의 마음이다. 중생이 곧 부처이다.
중생들이 모두 깨끗한 선거를 통한 직선제를 원하는데 선불교인 종계종에서 정점 가까이에 있는 승려들이 이젠 불교의 정수인 ‘염화미소’마저 오염시키고 있다고 참선을 하는 한 재가불자가 전한다.
굳이 ‘염화미소’까지 들먹이면서까지 부처님의 마음인 중생들의 뜻은 애써 외면하고 거슬리려고 하는가?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애롭게 바라만 보는 자비로운 부처님 손에 든 꽃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긴 할까? 염화미소 빙자법을 내고 수락한 승려들을 보고 지옥의 염라대왕은 웃었을까?
※이 칼럼은 사부대중 모두가 맑고 밝은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 등 공익적 목적으로 전문가와 신도들의 염려와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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