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來賢聖俱愛茶  예로부터 성현들이 모두 차를 아끼신 것은
茶如君子性無邪  차는 군자와 같아 성품이 삿되지 않기 때문.
人間艸茶差嘗盡  사람이 풀과 차를 가려 마시게 된 것은
遠入雪嶺採露芽  멀리 설산에 들어가 노아를 따면서부터라오.
法製從佗受題品  법식에 맞게 만들어 품질에 따라 나눈 뒤에
玉壜盛裹十樣錦  옥단지에 그득 담아 비단으로 거듭 감쌌습니다.
水尋黃河最上源  물이라면 황하에서도 가장 상류의 것이 으뜸인데
具含八德美更甚  여덟 가지 덕을 두루 갖춰 아름다움이 더욱 깊네요.
深汲輕軟一試來  깊이 길러 가볍고 부드러운 물을 한 번 맛보면
眞精適和體神開  참되고 정갈하며 조화로워 몸과 마음이 열릴 겁니다.
麤穢除盡精氣入  거칠고 더러움을 다 없애고 맑은 기운이 들어서니
大道得成何遠哉  대도를 얻어 이룸이 어찌 멀리 있겠습니까?
持歸靈山獻諸佛  지니고 영산으로 돌아가 부처님께 바치나니
煎點更細考梵律  달이는 법 더욱 따져 범율을 살폈지요.
閼伽眞體窮妙源  차의 참된 실체가 오묘한 근원을 다했으니
妙源無着波羅蜜  오묘한 근원이란 집착이 없는 바라밀입니다.
嗟我生浚三千年  아! 내 삼천 년 뒤에 태어나리니
潮音渺渺隔先天  아득한 법음이여 만물의 근원과 막혔습니다.
妙源欲問無所得  오묘한 근원 묻고자 해도 들을 곳 없으니
長恨不生泥洹前  부처님 열반 전에 나지 못한 게 못내 한스럽구려.
從來未能洗茶愛  항상 차 좋아하는 마음을 씻어내지 못했거늘
持歸東土笑自隘  이 땅에 가지고 돌아오니 속 좁음을 웃습니다.
錦纏玉壜解斜封  비단으로 묶은 옥단지 마개를 어서 풀어
先向知己修檀稅  먼저 이 벗에게도 선물로 보내시구려.

-<산천도인이 차를 보내줘 고맙다고 한 시에 차운하면서(奉和山泉道人謝茶之作)>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 스님은 오랜 동안 끊겼던, 이 땅의 차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지극정성을 보인 선승이자 선각자였다. 우리나라 차 문화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중국에서 들어와 다양하게 향수되었는데,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명전(茗戰)이라 하여 차를 두고 경쟁을 할 만큼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랬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오자 조금씩 쇠퇴해 초의 스님의 시대까지 오면 전통이나 명맥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자신이 있던 해남 대흥사에 차밭을 일구고, 산언덕에 일지암(一枝庵)이란 암자까지 지어 차를 만드는 제다(製茶) 방법에서 마시는 음다(飮茶)의 절차와 도구들을 고안하고 개량하는 데 힘썼다. 또 마침 유배를 와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과 교유하면서 더욱 차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선수행에서뿐만 아니라 유가 지식인들과 승려들, 일반인들까지 차를 일용할 수 있도록 매진했다. 그런 노력이 지금 결실을 거둬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차 문화가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스님에게는 차와 관한 많은 시들이 있으며, 차에 관한 저술인 <동다송(東茶頌>이나 <다신전(茶神傳)>까지 남기기에 이르렀다.

위 시는 스님이 당대의 수많은 시인묵객들과 교유할 때 그 매개가 차였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1850년 김명희(金命喜)에게 차를 보내줬더니 감사를 표하면서 쓴 시에 차운한 작품이다. 스님은 김명희의 형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지만, 동생과의 교분 역시 남달랐다. 그런 교분의 무게 때문인 듯, 이 작품은 제2의 <동다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스님의 차에 대한 논의는 넓어졌고 더욱 절실해졌다.

첫 구를 스님은 선언적 발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차는 군자와 같으니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뒤이어 차의 오묘한 근원은 ‘집착이 없는 바라밀’이라 했다. 피안(彼岸)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모든 수행을 일컫는 말이 바라밀이라면 ‘무착바라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낌없이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는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일 것이다. 무착, 곧 보시와 유가의 가르침인 사무사(思無邪)를 동격에 놓는 대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은 곧 사무사를 행하는 선비와 무착 보시에 전념하는 승려는 불이(不二)의 관계망 안에 놓여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선비와 승려를 동격으로 이어주는 매개는 무엇인가? 다름 아닌 차다.

차 달이는 일을 범율(梵律)에 따져 행한다고 해 제다와 음다의 행사가 선 수행의 일환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나는 차를 만들고 끓이고 마시면서 부처가 남긴 오묘한 근원을 깨쳤다고 스님은 은근히 자랑한다. 말로는 오묘한 근원을 부처에게 직접 듣지 못해 안타깝다 했지만 무착바라밀의 실천 주체인 차가 있음에 이 또한 엄살로 느껴진다.

이처럼 거침없이 당대 최고의 선비이자 학자에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발언을 하기란 조선 후기는 쉽지 않은, 아니 위험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그런 제약이나 억압에 마음을 두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토설해낸다. 세교(世交)가 아닌 심교(心交)를 허락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그런 무아와 망아(忘我)의 교유가 가능했던 것은 차가 베푸는 공존과 화해의 열린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도 여겨진다.

스님은 차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런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음다의 생활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본인 스스로 먼저 실천해야 가능할 것이다. 위에서 본 몇 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스님이 수행을 심화하고 교유를 확대하는 방편이자 도구로서 차를 활용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생활에 무젖은 음다는 스님을 무애(無碍)의 공간으로 이끌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