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조계종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던 설조 스님(전 불국사 주지, 법주사 금오문도회운영위원장)이 94년 당시 멸빈됐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사실상 복권 등 작금의 종단 현실과 관련하여 종단개혁불사에 동참했던 한 당사자로서 참담한 입장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설조 스님은 특히 이번에 사실상 복권을 결정한 조계종 재심호계위원들과 이를 치하한 종정, 적주원로 등을 지목해 비판한 뒤, 종정, 원로, 방장, 조실, 율사 등을 향해 몇 가지 공개질문을 던졌다. 설조스님의 기고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종정님, 원로님, 방장님, 조실님, 율사님들께
작금의 종단 사태는 보통의 종도들은 감내하기가 심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소위 94년 ‘개혁’이라는 불사가 이루어지기 까지는 ‘종단의 사유화, 세속화’를 막자는, 승가 다중의 충정과 뜻 있는 신도들의 열정과 이 나라가 맑아지기를 바라는 양심 인사들의 성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앙종회의원 3분의 2 이상을 장중에 넣고 총무원장 삼(三)임을 획책했던 현직 원장을 퇴출한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종단의 어른들은 오로지 종단의 장래를 걱정하시는 일념으로 개혁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장의 중진들은 자기들의 무욕으로 개혁이 다 되는 줄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6개월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종헌과 종법을 정비하고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여 종권을 인계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개혁을 실천해야 했던 새 집행부의 대표가, 다시 삼선을 획책한 탓으로 94년 보다 더 큰 파열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교단의 슬픈 모습이 생생하게 세계 각국으로 전파 되었던 법난이 98년 12월 하순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건 이후, 계승한 집행부들은 개혁회의에서 마련한 종헌에 의하여 외형상이라도 그 맥을 이어왔습니다.
그러함에도 오늘의 종단 현실은 개혁 이전 보다 오히려 속화되고 부패하여 비불교적으로 미끄러져 가서 일반 신도나 시민들이 종단을 외면하거나 걱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혹자들은 오늘의 타락상이 개혁에 참여했던 이들이 안목 없이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일반대중들은 교단의 상층부와 각 분야의 대표급 인사들이 과연 선악분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대표적이고 참담하기 그지없는 실증은, 영국의 유명한 모 주간지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종단이 ‘사기 협잡 집단’이다”라고 보도한 것이며, 이에 대해 종단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의 종단인데 종정님의 영향과 적주원로의 망발로 인하여 조계종 재심호계위원회에서 오역죄를 범하고, 기본 율장을 어기고, 탈종을 선언하고, 자기가 관리했던 사찰의 성보를 손댔던, 개혁을 유발한 멸빈자를 공권정지 3년이라는 실제적 사면에 상당하는 선고를 하였습니다.
불교정법을 오래도록 이 땅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친히 유훈하신 계율을 묵살하고, 종단 스스로 국가와 국민과 종단 구성원들에게 약속한 종헌 질서를 짓밟고 극히 무도한 짓을 저지른 재심 호계위원들을 찬탄한 종정님의 처사에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충격의 소분이라도 삭이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종정님과 원로님과 방장님과 조실님과 율사님들께 정중히 몇 말씀 올리오니 귀하들이 은처승이 아니시고, 보천교도가 아니시고, 타 교단에서 파견된 선교단원이 아니시면 교계 종이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몇 말씀>
1. 부처님께서 제바달다를 용서하여 받아드렸다는 말씀은 어느 경전에 근거하신 것인지?
증일아함경 제 47권 목우품과 법화경 제바달다품을 읽고서 그런 교시를 하셨는지?
순진을 빙자하였거나, 짐짓 알면서도 처지의 편의상 부득이하여 한 말씀이신지?
2. 수제나 존자와 종자비구의 일은 알고 계시는지?
3. ‘위계위사’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들어 보셨는지?
율장을 등지고도 정법으로 화합하여 종단이 오래도록 편안히 존립할 수 있는지?
4.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헛된 생각을 여읜다는 말씀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종정님, 원로님, 방장님, 조실님, 율사님들!
몽중에도 일여하셔서 현실을 무심히 넘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신대도 종단의 기본 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오늘에, 침묵과 방관만 하신다면 사기협잡 집단의 수괴의 다른 이름으로 종정자, 원로자, 방장자, 조실자, 율상들이라 하여도 부당하다고 항변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늘 청안하시고 귀하들의 자리가 자리인 만큼, 부처님 유훈을 등지지 않고, 국민과 국가와 종단 구성원들에 약속한 종헌 질서를 확립하여, 제 갈 길을 잃은 종단 관리자들을 바로 이끌어 종단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무 불타야
나무 달마야
나무 승가야
불기 2559년 6월 28일
속리산인 설조 삼가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