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꽤 오래 전부터 우리옷(개량한복)을 입습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 우리 문화를 세계에 자랑한다고 한동안 토요일은 한복 입는 날로 정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부터이니 벌써 20년도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복을 입고 강단에 서는 것이 무척이나 멋쩍었지요. 또 그걸 입고 외출이라도 할양이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복 입는 것이 오히려 거북할 정도가 돼버렸으니 20년 세월이 무섭기는 합니다.
한복은 불자인 필자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옷입니다. 절하기에 편하고 참선할 때, 저린 발을 감추기도 좋고, 무엇보다 품새가 넉넉해서 차림에 마음 쓸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절에 가면 한복을 입은 불자들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재가불자의 법복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님의 옷처럼 먹물을 들인 무명으로 만든 바지와 동방(반두루마기)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법복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스님들에게 얻어 입기도 했지요. 대학시절에 해인사에서 열린 대불련 여름수련대회에 법복을 입은 몇몇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서울·대구·부산에나 승복집이 있었지 지방에서는 정말 승복 구하기가 어려웠지요. 그래서 스님들조차 장삼 마련이 어려워 재가의 회색이나 밤색 두루마기 위에 가사를 걸치는 분이 있었습니다.
옷이란 몸을 보호하는 본연의 기능 말고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학생·군인·경찰·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제복을 입는 것도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고, 스스로를 조신(操身)하기 위함입니다. 스님이나 불자들의 법복도 마찬가지로, 법복이 불자임을 나타내어 스스로 청정계행을 닦겠다는 실천의 의지를 천하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원래 수행자의 옷을 뜻하는 분소의(糞掃衣)는 ‘뒤를 닦고 버린 쓰레기로 만든 옷’이니까 이름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추한 옷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사람의 주검을 덮던 천 조각이나 넝마를 주어다 기워 입었다고 하니 그런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분소의의 다른 이름인 납의(衲衣)란 말도 ‘조각을 기워 만든 옷’이라는 뜻인데, 우리말에 ‘누비옷’이 여기서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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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염의(染衣)’라는 말은, 과거에 인도에서는 속인(俗人)들이 흰옷을 입는데 반하여, 수행자는 염색한 옷을 입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염색에도 정색(正色,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이 아니라 화려하지 않은 중간색인 부정색(不正色), 즉 정색이 무너졌다는 의미의 괴색(壞色)을 씁니다. 일반적으로 감색을 말하는 괴색은 나무껍질이나 과즙, 또는 쇠의 녹물에서 얻습니다. 스님들이 장삼위에 걸치는 가사(袈裟,kasaya)라는 말이 바로 괴색, 또는 염의라는 뜻의 범어(梵語)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옷감과 염색의 고급화로 승복이 기백만 원짜리가 있고, 재가자의 법복조차 디자인까지 가미되어 수십만 원을 웃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법복이 수행복이라는 본래의 성스러운 기능은 사라지고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예로부터 절에 갈 때는 수수한고 점잖은 차림새로 패물과 같은 장신구도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이 법도였는데.
그런데 지난 2004년에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조사한 ‘재가자 법복착용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의 스님들이 승복과 비슷한 법복을 재가가 착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근거로 종단 입장을 대변하는 교계의 한 신문이 ‘수행자의 위의(威儀)가 담긴 승복과 흡사한 회색 법복을 재가가 입는 것을 자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재가가 스님들의 법계를 드러내는 가사를 걸친 것도 아닌데 수행자의 색깔을 의미하는 괴색의 전통 옷을 입는 것을 두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스님들과 같은 색깔의 법복을 재가가 입는다고 스님들이 못마땅해 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모름지기 수행자의 옷은 검소하고 수행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스님의 가사는 헤져서 덧댄 천 조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몇 조 가사라고 해서 일부러 조각을 내어 품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천이나 색깔이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어야 하는 수행자의 옷이 지금은 권위를 상징하는 귀족의 옷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옷은 물론 옷의 색깔조차 허락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이 문제는 비단 옷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행자인 스님이 스스로를 브라만이나 목자(牧者)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삭발염의한 불제자에게 성직(聖職)이란 말이 얼토당토하지 않음에도 스스로를 성직자라고 합니다. 수행자를 성직이라 한다면 브라만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데도 성직자로 군림하려는 스님들이 70%나 되는 다수라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출가자만이 수행자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