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경내에 있는 비각. 여기에는 원융국사비와 1970년대에 건립된 의상대사비가 있다.
그동안 부석사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부석사의 역사와 의상 스님과 관련된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사적기나 비문이 없어 이런 저런 자료를 통해 희미해져가는 사실들을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문헌 기록에서는 '부석사 사적기'와 의상 스님의 행적비, 즉 부석사본비(浮石寺本碑)가 있다고 했지만 그 실물을 본 이는 현재 이 세상에는 없다.
사적기와 관련해서는 박종의 ⟪청량산유록⟫에 경자년(1780, 정조4년) 8월의 일기에 '사지(寺誌)’를 살펴보니, 당(唐)나라 의봉(儀鳳) 원년(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 조사(義湘祖師)가 왕명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부석사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내용이 등장하여 1780년까지는 사적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의상 스님의 탑비와 관련하여 ⟪재향지(梓鄕誌⟫에서는 '조전 동쪽 골짜기에 동전(東殿)이 있고, 동전 뒤에 국사비(國師碑)가 있다'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신언(申漹)(1530~1598)이 1579년 여름에 남긴 ⟪소백산유람기(遊小白山記)⟫에서는 '절의 동쪽에 가시덤불 가운데 묻혀 있는 비석이 있는데, 파손된 지 오래되어 연대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하여 여기에 무리하게 적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문체를 보니 신라 때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 조선시대 기록에서 언급한 비석이 의상 스님의 비석인지 현재 남아 있는 원융 국사(圓融國師)의 비석인지는 알 길이 없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비석의 부재들.
⟪고려사⟫에서는 숙종(肅宗) 6년 8월에 원효 스님에게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靜國師)' 의상 스님에게는 대성원교국사(大聖圓敎國師)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그 행적을 담은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고, 실제 원효 스님의 경우 분황사에 그 비가 건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숙종이 두 스님의 행적을 담은 비석 건립을 하교하면서 "원효와 의상 스님은 동방의 성인인데 비기(碑記)와 시호가 없어 그 덕이 드러나지 않아 짐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고 하여 당시 원효 스님의 고선사 '서당화상비'와 '부석사본비'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거나 어떠한 이유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서당화상비의 경우 신라 애장왕(800~808) 재위기간에 건립되었음이 확인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나 유독 의상 스님의 비석만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 조에 '부석사본비(浮石寺本碑)'를 인용하여 스님의 출생연도와 당나라 유학 시기를 밝히고 있어 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 1270년경까지는 그 비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두 기록으로 볼 때 의상 스님의 비석을 원효 스님의 경우처럼 고선사와 분황사에 각각 그 편린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지만 '부석사본비'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의 비석은 어디에 세워졌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다만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스님의 출가사찰이었던 황복사에 세워졌을 가능성만 점쳐지고 있다.
이와 함께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의상 스님의 전기가 전하지만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이 지은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전기는 고려 의천(義天) 스님이 ⟪속장경(續藏經)⟫을 편찬할 때까지 남아 있어 그 목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후 인멸되어 그 소재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고 다만 그 단편이 ⟪삼국유사(三國遺事)⟫등에 언급되어 있다.
원융국사비
한편 경내 남아 있는 원융 국사 비문의 말미에 수비원(守碑院)을 두고 중대사(重大師)인 홍수(洪首), 현긴(賢緊) 스님, 대사(大師)인 대종(代宗) 스님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수비원'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석을 지키는 기구임을 알 수 있는데 수비원이 원융국사비와 의상 스님의 비를 지키는 사내 기구였는지 그 또한 명확하지 않다.
현재 원융국사 비각이 있는 곳에는 근자에 다시 세운 의상 스님의 행적비가 있지만 여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연화대석과 지붕돌 등의 부재들이 남아 있어 이곳 땅속에 비석의 일부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경내에서 '부석사본비' 혹은 '원교국사비'가 확인된다면 이는 의상 스님과 부석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시절인연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생전에 이 비석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비각 부근 절개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녹유벼루편. 이곳에서는 다수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