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던 방화수림대.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는 역할은 물론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아름다움도 선사한다.

절집을 얘기하면서 그 절이 가지고 있는 풍광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게 마치 만두소 없는 만두를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전통 사찰의 풍광을 말하면 대부분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고 혹은 웅장하고 장쾌하거나 산세가 빼어나고 산의 기상이 넘친다는 등등의 여러 수식어가 붙는 일이 다반사다.

부석사 또한 마찬가지이겠지만 절집의 풍광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경치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경 혹은 환경이라는 말로 대치될 수도 있는 사찰의 풍광은 단순한 시각적 의미 외에 산중 사찰이 어떻게 오랜 시간 이어올 수 있었느냐는 문제에 근본적인 답을 제시한다.

물론 전쟁과 화재, 혹은 자연재난 등으로 인해 많은 사찰들이 사라지거나 중건의 역사를 반복해왔지만 그래도 부석사의 경우처럼 700년 가까운 세월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을 법도 하다. 

1916년 일제에 의한 보수 공사 이후 맨 낯의 얼굴로 오늘에 이르는 무량수전과 수 백 년 성상을 지켜온 안양루, 범종루, 조사당 등의 목조 건축물들과 부석사 주변의 환경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우선 부석사의 원경(遠景)을 살펴보면, 현재는 부석사가 남북축선상에 위치한 상태로 일주문 서쪽 작은 동산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사과밭이 펼쳐져 있다. 이후 천왕문을 지나 무량수전까지는 주로 최근에 심은 조경수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으며, 주요 식목으로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밤나무, 산벚나무, 영산홍, 산수유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석사를 멀리서 보면 계절별로 식생대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범종각부터 무량수전 주변이다. 이곳은 활엽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참나무류와 밤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주종을 이룬다. 이후 봉황산 정상에 이르는 동서와 북쪽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서쪽 계곡에는 다양한 종류의 활엽수와 등나무와 다래 등과 같은 덩굴식물들이 숲에 가득한 채우고 있으며 곳곳에서 노각나무도 확인이 된다. 노각나무는 세계적으로 7종이 분포되어 있으나 우리나라 품종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로도 ‘코리언 스튜아티아(Korean stewartia)’로 부른다. 이 녹나무의 북방한계선이 소백산 남쪽이어서, 부석사 주변과 희방사계곡에 자생하고 있다.

경내에 둥지를 튼 노랑할미새가 둥지에 알을 낳았다.

무량수전 주변의 활엽수림은 근자에 인공적으로 조성했다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한 식생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참나무류의 상당수는 최소 100년 이상의 고목이다.

이러한 수목 식생을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라 하여 오래전부터 사찰의 화재피해를 막는데 사용한 조경방식이라고 한다. 이 방화수림대는 단순히 화재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계절별로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각종 열매를 내어주기 때문에 숲속의 동물들에게는 양식으로도 활용된다.

부석사 경내와 주변의 최상위 포식자로 긴점박이올빼미. 멸종위기종으로 저녁 무렵부터 경내와 인근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석사에는 이러한 식물들 외에도 여러 종의 동물들도 살고 있다. 먼저 조류를 살펴보면 박새류, 직박구리, 참새, 어치, 곤줄박이, 멧새, 까마귀, 산비둘기, 오색딱따구리, 소쩍새, 올빼미, 노랑할미새를 비롯하여 멸종위기종 긴점박이 올빼미, 까막딱따구리 등 희귀한 새들도 주변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들 새들은 부석사를 수호하는 첨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새들은 각종 곤충류들을 먹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목조 건축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들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 안양루 기둥에는 새들이 나무 속 벌레를 파먹은 흔적도 남아 있고 범종루 등의 공포에는 수시로 새들이 찾아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내 고목이나 썩은 나뭇가지 등에서 각종 벌레를 잡아먹어 숲을 건강하게 지키고 있는 오색딱따구리와 까막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부석사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이밖에 경내와 그 주변에는 족제비, 오소리, 고라니, 산토끼, 청설모, 등줄쥐와 같은 포유류와 구렁이, 살모사, 꽃뱀 등과 같은 파충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부석사를 참배 혹은 관람하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비온 다음 맑은 날에 숲이나 화단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뱀에게 물려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안양루의 기둥에 남은 새들이 기둥 속에 숨어 있는 벌레를 파먹은 흔적.

대한민국 곳곳의 산중 사찰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찰 주변의 환경이 마지막 생존의 보루 일지도 모른다. 겨울철 먹이가 부족하면 시식대 위에 오른 밥이며, 과일 등을 먹으며 절집과 한식구로 살아간다.

앞으로 부석사를 비롯한 대한민국 곳곳의 산사(山寺)를 찾는 이라면 조금은 더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연과 내가 함께 더불어 가는 세상이 바로 지금 이 세상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작은 벌레 하나 풀 한포기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은 곤충들을 먹이로 하는 장지도마뱀.

 

작은 곤충들을 먹이로 하는 장지도마뱀.

 

 

경내에는 다양한 종류의 뱀들이 서식한다. 사진은 구렁이.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경내 곳곳 풀숲 등에서 발견되는데 살모사와같은 독사도 있어 관람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