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月八與四月八 2월 8일인지 4월 8일인지
釋迦生辰紛紛說 부처님 생신 날짜에 학설도 많구나.
細考不止一周昭 자세히 살펴보면 주나라 소왕에 그치질 않고
上溯武乙並夏桀 위로 무을과 하걸 때까지 올라가지.
夜明還是莊王時 ‘야명’이란 도리어 초장왕의 시대거니
春秋元不差月日 춘추에는 본래 월일의 차이가 없었지.
不知周昭更何據 모르겠네, 주소왕 때는 또 무엇을 근거했는지
穆王平王復相聒 목왕이네 평왕이네 하며 서로 요란하구나.
却將壬子爲甲寅 또는 임자년을 가져다 갑인년이라고도 하니
蘇繇刻石何怳惚 소유의 각석은 어찌 그리 어지러운가.
五日七日且無定 5일이네 7일이네 그도 또한 일정치 않으니
古鏡長曆各藤葛 고경이랑 장력에도 각각 뒤엉켜 있어라.
此云入道非生辰 이는 도를 깨친 날짜지 생신은 아니라고
阿那含不本起別 아나함은 본래 따로 말한 적이 없었네.
鷲靈聖賢法印傳 축령산의 성현이 법인을 전수해 왔으니
石柱文字玄機洩 석주에 새긴 문자는 현기를 누설했구나.
聲聞依俙滯方隅 소문도 가물가물한데 우리나라에 그대로 굳혀져
離迦翻轉恣譌脫 가섭(迦葉)이 떠나자 와전되어 잘못 전해진 것이지.
妙吉祥原曼殊利 묘길상은 원래 이름은 만수리인데
無盡意乃阿差末 무진장(無盡藏)하다는 뜻은 바로 아차말이 되겠구나.
千漚尋月摠幻相 천 개 물거품에서 달 찾으니 모두 다 환상이요
衆盲喩象難究詰 맹인들 앞에 상(象)을 말하니 이해하기 어렵구나.
化胡經又沒巴鼻 화호경에도 역시 근거라곤 전혀 없어
此訟漫漫無時畢 이 송사 길고 길어 끝날 날을 모르겠구나.
尼丘聖辰亦異詞 공자님 생신도 역시 다른 말이 있으니
劫前隱現疇能悉 영겁 전에 숨었다 나타남을 누가 능히 다 알겠나.
百千燈攝一牟尼 백천의 등불이 모니주(牟尼珠)로 통일되니
四月不害作二月 4월도 해롭지 않고 2월인들 어떠리오.
然而我佛元無生 그러나 우리 부처님 원래 낢이 없었으니
出門一笑空江闊 문을 나와 텅 빈 강물 보며 한 번 크게 웃노라.

-김정희의 <초의 선사를 대신하여 ‘이월팔일작불신’에 답하다(答二月八日作佛辰 代艸衲)>에서

옛 스님들의 시를 읽다보면 문득 이런 궁금증이 일 때가 있다. 즉 ‘선시’는 스님들만의 전유물이었을까? 어쩌면 지극한 우문일 수도 있지만, 수행자의 신분이었던 스님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실천하고 익혔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부대중들도 스님들 못지않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고 본받고자 노력했다. 그런 불자들에게도 스님들의 선시에 버금가는 좋은 시들이 있지 않을까?

그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하자면, 스님들의 시만 아니라 불자들의 시에서도 선적 깨달음이나 그들만의 고민, 대안 등이 펼쳐진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선시 감상도 스님들의 작품에서 벗어나 유가(儒家) 지식인들의 불교와 관련된 작품들까지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인물로 조선 후기에 활동한 학자이자 서화가(書畵家), 금석학자(金石學者)였던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불교시를 살펴보자.

김정희는 조선 후기를 풍미했다고 알려진 실학파의 일원이었지만, 이용후생(利用厚生)이나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주장했던 여느 학파와는 달리 학문사의 방법론과 예술적인 실천을 통해 이 이념을 실현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시서화(詩書畵) 방면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과 성과를 보여주었고, 문화재의 고증이나 전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이런 점 때문에 김정희는 특정 시대라는 범위를 뛰어넘어 인문주의자로서 그 가치를 다시 평가 받아 마땅할 것이다.

김정희에게는 지금의 ‘부처님 오신 날’, 즉 부처의 탄신일에 대한 논란을 주제로 한 장시가 있어 흥미를 끈다. 더구나 당대의 시인이었던 신위(申緯)의 문제 제기에 대해 답하는 형식이라, 유가를 대표하는 두 시인이 불교 문제를 가지고 입론한 것이 더욱 관심을 유발한다. 물론 본격적인 교리 문답은 아니지만, 이전의 유불 관계보다는 진일보한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서 따로 살펴볼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날짜가 확정되었지만, 이전부터 부처의 탄생일이 정확하게 언제인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졌었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쓰는 것과 동남아시아에서 쓰는 날짜는 지금도 여전히 차이가 난다. 김정희 시대에도 이 문제, 특히 음력 2월 8일인지 4월 8일인지에 대해 견해차가 있었던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 신위가 의문을 제기하자 초의(草衣) 스님은 민감한 문제인지라 승려로서 직접 대응하기가 주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인 김정희의 손을 빌리고 있다. 김정희는 초의의 부탁을 받아들여 신위의 원작품을 읽어보고 이에 화운(和韻)하여 질문에 답한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완당전집󰡕에도 실려 있고, 초의의 󰡔일지암시고(一枝庵詩稿)󰡕에도 전한다. 대신 쓴 것이지만, 원작자는 김정희니 󰡔완당전집󰡕에 실린 것은 당연하다. 또 김정희가 썼지만 초의를 위해 대신 써준 것이니 󰡔일지암시고󰡕에 실린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김정희는 부처의 탄신일을 정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라고 하면서 여러 전거를 끌어대어 설명을 추가한다. 그러면서 그 논란의 실체는 탄신일이 아니라 성도일(成道日)을 오해한 경우도 있음을 밝힌다. 특별히 언제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근거 없는 소문이 몰래몰래 퍼지더니 아예 와전되어 고정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헛된 환상이고, 맹인이 코끼리를 붙잡고 따지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유가의 성인이신 공자 역시 탄신일에 대해 설왕설래하니, 역시 오랜 과거의 일이라 다 알기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면서 일침을 가한다.

날짜가 무에 그리 중요한가. 부처의 마음을 제대로 꿰뚫어 그 묘체를 깨우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은가. 예부터 수많은 부처가 각기 진리의 등불을 들고 세상에 나왔지만, 결국 석가모니 부처의 등불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는가. 2월이라 해도 좋고 4월이라 해도 나쁠 것은 없다. 부처가 세상에 온 그 마음과 거룩한 서원을 계승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부처는 무생(無生)의 원리를 설파했는데, 그깟 태어난 날짜가 무슨 장애가 되겠냐고 기염을 토한다. 본질은 알려 하지 않고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망념에 빠진 이들을 경계하면서, 해탈을 한 부처에게 태어남이 있을 리 없는데 생각 짧은 인간들이 허튼 곳에 한눈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망념과 견식의 좁은 울타리에서 문을 박차고 나와 드넓은 진리의 강물을 바라보면서 한 번 크게 웃어보자고 권한다. 김정희의 학문적 조예가 상세한 고증과 함께 석연하게 다가온다. 이는 곧 김정희의 생각이면서 초의의 생각이기도 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범상치 않은 교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