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기획 인터뷰 ‘배희정이 만난 사람’을 통해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는 숨은 주역을 찾아 그들의 봉사나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 탁월한 단체 운영의 이야기 등을 담아낼 예정이다. 그 첫 주인공으로 환우의 목욕봉사에 팔을 걷어붙인 유인섭 씨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아픈 이들의 몸을 씻어줄 수 있어 감사해요. 기력이 닿는다면 여든까지 목욕 봉사하겠습니다.”
여기 만12년째 화요일마다 3시간씩 국립재활원에서 환자들의 몸을 씻기는 일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다. 목욕봉사팀 수신회((修身會)의 유인섭 팀장(73, 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인 1월 6일 국립재활원을 찾았다. 유 팀장의 목욕봉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본관 4층 샤워실 앞에 다다랐을 땐 이미 번호표가 올려진 대야가 줄 지어 있었다. 대야엔 하체․상체․전신 마비에 이른 남성 환자들의 목욕용품과 옷가지가 담겨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1번 표를 발급받은 환자가 보호자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샤워실로 왔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유인섭 팀장을 비롯한 수신회원 4명이 환자를 맞았다.
이내 유 팀장과 신한근 씨는 목욕침대로 환자를 옮겨 눕혔다. 수신회원들은 2인 1조로 환자의 옷을 벗긴 뒤 상체와 하체를 나눠 씻겼다. 환자를 옆으로 세워 등도 밀었다. 혈액순환을 위한 전신 마사지도 병행했다.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며 마무리했다. 수건 배달, 물기 닦기, 옷 전달, 옷 입히기에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한 환자에 15분 정도 소요됐다. 평소에도 이럴까 궁금했다.
“한 명당 평균 15~20분 걸리죠. 팀원 간 손발이 척척 맞아야 빨리 끝나요. 시간을 끌면 안 돼요. 한 명이라도 더 닦아야 하니까요. 물 한 잔도 마실 겨를이 없어요. 이렇게 하루 평균 8~10명 정도 씻겨요. 오늘 같이 매우 춥거나 더운 날은 사람이 적은 편이죠.”
1월 6일 오전 유인섭 수신회 팀장(왼쪽 두 번째)이 회원들과 함께 국립재활원 6평 남짓한 샤워실에서 환자의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하에 촬영됐습니다.)
실상 그의 고된 경험을 일반인들이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유 팀장은 “앉을 수 있는 환자면 그나마 낫다”며 “전신마비인 분들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옆으로 눕혀 손으로 머리를 들고 감긴다”고 알려줬다. 가끔 팔 다리를 들어올리면 아프다고 아우성인 환자도 있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바로 대소변 주머니와 기저귀를 차고 온 환자의 배변 문제다. 마사지 중 환자 자신도 모르게 배변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 팀장은 “매주 한 번씩은 몸이 굳은 환자분들의 대소변을 그대로 받아낸다”면서 “배변 받기는 제 담당”이라고 말했다.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히려 그는 담담했다. “오래 동안 해와 불편하지 않다”며 “환자가 편할 수 있게 편안한 마음으로 닦는다”고. 목욕이 끝난 뒤 대소변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오물을 닦아내고 다시 처음부터 목욕을 시킨다고.
남이 보기에 고생을 사서 하는 그는 원래부터 부처의 마음을 가졌을까? 유 팀장은 “처음엔 비위에 맞지 않아 봉사가 끝나면 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갈등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처음 국립재활원에 갔을 땐 상상도 못했죠. 처음엔 상당한 충격이었어요. 당시 선배들이 배설물 처리를 간단히 깔끔하게 하는 모습이 언젠간 제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6개월 후부터 배변 처리를 시작했어요.”
남편이 밖에서 남의 오물을 닦는 것을 그의 부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집안의 반대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유 팀장은 “애초에 그 얘길 꺼내지도 않았다”고 실토했다. 얘길 하면 못 다니게 할까봐란다. 2년이 지나서야 배설물 처리도 한다는 얘길 터놓자 아내는 이미 짐작했다면서 오히려 남편을 지지했다.
그는 종종 목욕침대에 눕혀진 청년들을 바라볼 때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의욕도 넘치고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에 자존심을 내던지고 모르는 이에게 몸을 맡긴 이들을 볼 때면 부모 마음으로 안타깝다면서 눈물짓기도 했다.
또 어려웠던 점은 없었을까. 봉사터에 가면 불교인보다 기독교인들이 많아 불편했던 점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담당 직원들이 기독교인을 기준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하더라”면서 “그것만은 용납이 안 됐다. 끌려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하자고 마음먹고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 직원들이 차츰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불자 봉사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웃었다.
남들 보기엔 사서 고생, 그것도 자그마치 12년째다. 왜 봉사를 계속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목욕 후 상쾌함으로 감사해하는 환자와 환희심” 때문이라면서 “병이 회복되면 가장 먼저 자원봉사자가 돼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환자들, 전국 재활병원을 10년 이상 다녔지만 목욕봉사를 처음 받아본다는 분들,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편지를 써 주는 이들을 만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루 봉사활동을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설 때 보이는 도봉산 인수봉은 아주 환해요. 그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아주 상쾌하고 기뻐요. 마음의 평온이 생기고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이에요. 남을 위해 ‘해 준다’는 마음보다 제 할 일을 통해 ‘받고 오는 것’이 더 많아요. 제가 더 고맙죠. 오히려 봉사를 안 하면 앓아누울지도 몰라요.”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지려고 봉사한다’는 말에 봉사 안 하면 어떻겠느냐니 삶 자체가 이상해질 것 같단다.
그는 봉사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내성적이고, 남에게 표현을 잘 못하던 성격이 봉사를 하면서 어디 가서든 부끄러운 게 없고 당당해졌다고. 이어 환자를 보니 자신이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또 그분들 덕택에 용기 얻고 자신감 얻고 사니까 감사하단다.
그가 봉사활동을 어떻게 시작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말을 들으니 역시나 봉사의 근간은 불교였다. 유 팀장은 가난했던 유년기와 청년기 잠시 교회를 다녔다고 고백했다. 주일학교 강사와 성가대 활동 등 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뒤 개신교에 실망하는 일이 생기면서 교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결국 종교와의 고리를 끊었다. 잠시 무교로 공백기를 가진 그는 결혼 후 우연히 장적 스님(전 불교신문 주간)을 만나면서 불자가 됐다. 그렇게 불교에 귀의한 지 어느덧 24년째다.
하지만 그는 개종 후 한 차례 고비를 겪기도 했다. 일부 스님의 모습에 실망하며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그때 마음을 다 잡으며 향했던 곳이 바로 조계사 불교대학이다. 조계사 불교대학(불기 2544년 입학)을 2002년 졸업하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간병 교육을 듣고 나서 봉사를 결정했다.
왜 하필 목욕봉사였을까. 그는 “동기들은 포교사가 되기도 했지만 실제 활동은 미진한 편이었다”면서 “실질적 활동을 원해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6개월 동안 간병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수료 후 “가장 힘든 일을 시켜 달라”고 재단 측에 주문하고서 바로 목욕봉사 현장에 배치됐다.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봉사해야겠다고 결심해 선택한 봉사였어요. 당시 함께 배치된 팀원들이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고요. 팀원들이 처음 모였을 때 건강을 장담해 일흔까지 봉사하자 약속했는데 저를 포함한 2명이 70세를 넘겼네요. 그래서 다시 약속했어요. 여든까지 봉사하자고.(웃음)”
그는 수신회 회원들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6명이었던 수신회는 2005년과 2013년 각각 한 명씩 빠져 나갔어도 아직 다른 팀원 3명이 버팀목처럼 묵묵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네 명중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목욕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개인일을 마다하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들이다. 유 팀장은 그런 수신회원들을 매우 특별하게 여겼다.
“모두 복지재단에서 교육 받은 분들이에요. 각자 신심이 돈독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매우 강해요. 우리 팀은 한 명만 빠져도 빈자리가 굉장히 큰데, 자신의 일을 마다 않고 나오는 걸 보면 스스로 자존감도 매우 강한 분들 같아요.”
수신회의 평균 연령은 67세. 유 팀장은 “이제 봉사가 생활이 된 수신회는 ‘행’ 한다는 생각 없이 ‘하심’하며 ‘행’하려 더욱 노력하려 한다”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손발을 잘 맞춰주는, 가장 소중한 인연인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봉사팀 막내가 지금 10년차라는 점이다.
“후배들이 없는 게 고민이죠. 일반 봉사자들은 목욕봉사가 가장 힘들고, 지저분하단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가끔 후배가 들어오는데 한 달을 못 버티네요.”
목욕봉사는 봉사자들에게도 어려운 분야임에 틀림없었다. 그럼 봉사하는 이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 그는 “봉사는 한 마디로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면서 “자신이 기쁨을 받기 위해 해야지, 사심을 조금이라도 가지면 오래 못 한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려면 첫째 신심, 둘째 뚜렷한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땐 신심이나 원력으로 봉사하는 건 똑같은데 ‘힘들다’, ‘어렵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책임감을 갖고 오래 하라고 당부했다.
수신회 회원들이 목욕봉사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는 국립재활원 외에도 중앙보훈처에서 봉사를 해왔다. 발마사지와 환자들의 말벗이 돼 주는 일이 그의 몫이다. 이러기를 5년 이상 거듭해왔다. 다른 이들이 봉사에 빠지는 날엔 대신 봉사에 참여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유 팀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상, 강북구청장상, 재활원장상, 중앙보훈병원장상 등을 받았다.
그는 최근 들어 봉사 후 나른함이 느껴진다며 건강을 챙길 계획을 내보였다. 쉬는 날이면 공원이나 산에서 1~2시간 가량 체력 단련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또 마음 돌보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으로부터 불교대학 당시 받은 ‘정암(政巖)’이란 법명을 화두로 삼아 왔다. “제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 같다는 그는 ‘상을 내면 여래를 볼 수 없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뜻의 금강경 핵심 구절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다닌다고 부연했다. 상을 내며 하는 일을 남에게 보이려 하면 지치고 오래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이어 자신의 상을 깨기 위해 올해 동국대 평생교육원에서 명상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마음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다”면서 “자칫하면 변할 수 있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공부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인생을 반추했을 때 가장 잘한 게 불교와의 인연이라고 단언한 그는 “불교와 인연을 맺으며 스스로 계속 발전했다”면서 “어릴 때 가난해서 못 했던 공부, 불교 안에서 원 없이 해 감사하다”고 불교계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쓰러지기 전까지 교계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 따르면, 현재 국립재활원 담당자 사이에서 유인섭 팀장은 ‘소중한 자원봉사자’로 회자되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자 담당 이주미 과장은 “굉장히 고된 일임에도 10년 이상 남을 위해 애써줘 감사하다”면서 봉사자들이 목욕봉사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후배들과 함께 계속 이어나갈 유인섭 팀장과 수신회의 보살행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