這百衲最當然 이 누더기 옷이 내게 가장 어울리니
冬夏長被任自便    겨울 여름 때 없이 입어도 언제나 편리하다.
袒袒縫來千萬結 누덕누덕 꿰매어 천만 번을 맺었고
重重補處不後先    겹겹이 기워놓아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네.
或爲席或爲衣 앉을 때는 자리도 되고 입으면 옷도 되니
隨節隨時用不違    절기와 시간에 맞춰 써도 어김이 없구나.
從此上行知己足 이로부터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았거니
飮光遺跡在今時    가섭 존자가 끼친 자취가 지금까지 남았다.
一椀茶七斤衫 한 잔의 차와 일곱 근의 장삼으로
趙老徒勞擧再三    조주선사께서는 부질없이 화두를 드느라 힘만 쓰셨네.
縱有千般玄妙說 비록 천만 가지의 현묘한 말씀이 있다 해도
爭似吾家百衲衫    어찌 우리 집의 백랍 장삼만 하겠는가.
此衲衣甚多宜 이 누더기 옷은 편리한 점이 아주 많으니
披去披來事事宜    입고 가고 입고 올 때 일마다 어울린다.
醉眼看花誰敢着 취한 눈으로 꽃을 보면서 누가 감히 집착하랴
深居道者自能持    산중 깊이 사는 도인은 능히 스스로 지키노라.
知此衲幾春秋 이 누더기가 몇 년 세월을 지난 줄 아는가
一半風飛一半留    반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만 겨우 남았네.
獨坐茅菴霜月夜 서리치는 달밤 초암(草庵)에 홀로 앉았는데
莫分內外混蒙頭    안팎을 가릴 수 없어 모두가 어지럽네.
卽身貧道不窮 몸은 비록 가난해도 도는 다함이 없으니
妙用千般也不窮    천만 가지 묘한 작용도 또한 끝이 없어라.
莫笑繿縿癡呆漢 누더기 옷에 멍청이 같은 나를 비웃지 말게나,
曾參知識續眞風    일찍이 선지식 찾아 참된 선풍(禪風)을 이었다네.
一鶉衣一瘦笻 해어진 옷 한 벌에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天下橫行無不通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가지 못할 곳이 없었네.
歷徧江湖何所得 강호(江湖)를 돌아다니며 무엇을 얻었는가,
元來只是學貧窮    원래 배우고 싶었던 것은 빈궁함뿐이었지.
不求利不求名 이익도 구하지 않고 명예도 구하지 않으며
百衲懷空豈有情    백랍의 가슴은 비었으니 무슨 정(情)이 있겠는가.
一鉢生涯隨處足 한 바리로 사는 생애가 어딜 가나 만족하거니
只將一味過殘生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
生涯足更何求 생애가 만족스럽거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可笑癡人分外求    어리석은 이들이 분수 밖의 것을 구하니 우습구나.
不會福從前世作 전생에서 복락을 모아두지 못하고서
怨天怨地妄區區    하늘과 땅을 원망하며 망령되이 허덕거리네.
不記月不記年 달도 기억하지 않고 해도 기억하지 않으며
不誦經文不坐禪    경전 외기도 그만두었고 좌선도 하지 않노라.
土面灰頭癡呆呆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인 이 천치 바보야
唯將一衲度殘年    오직 한 벌 백랍 입은 채 여생을 마치리라.

                              -나옹혜근의 <백랍가(百衲歌)>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스님하면 먼저 떠오르는 유명한 노래 구절이다. 고려 말의 스님 나옹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노래 구절을 모르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람이 가진 욕심은 버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는 대로 부는 대로 살아가라고 스님은 권한다. 말은 하기 쉬워도 실천하기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 때문에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이치에 나를 맡겨 버리는 용기만 있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욕계(欲界)를 비껴가는 태도가 아니라 자연과 당당히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옹 스님은 아직 우리말은 있었지만 우리글은 없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스님은 누구보다 우리말을 잘 구사했고, 이를 아름다운 우리글로 옮기기도 했다. 스님은 우리 국문학사상 가장 정제된 장편 가요 형식인 가사(歌辭) 작품을 처음 쓴 분이다. 구어(口語)에 익숙해야만 가능한 가사 양식에 어울리는 내용과 문채를 스님은 능란하게 구사했다.

스님에게는 나옹삼가(懶翁三歌)로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우리말로 된 가사는 아니고 한시구로 된 작품이지만, 그 속에는 민중들 품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불교를 이해시키고자 했던 스님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완주가(翫珠歌)>와 <백랍가(百衲歌)>, <고루가(枯髏歌)>가 그것인데, 심각하게 구절을 꾸미거나 공연히 진지하기만 한 내용을 담은 작품 대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빌어 어려운 내용을 평이하지만 세심한 표현 속에 담아 놓았다. 그 가운데 <백랍가> 한 편을 읽어보자. 스님이 입는 누더기 가사(袈裟)를 들어 세속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의 마음을 비유한 작품이다. 이처럼 산중에서 무념무욕의 삶의 살아가는 선승의 일상생활과 그 정신세계를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청빈한 삶에 익숙해서 때로 아주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는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범부의 눈일 뿐이라고 스님은 질책한다. 진짜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그 상징적인 물건으로 백랍 가사를 든다. 얼마나 많이 기워 입었는지 누더기가 되어 버린 단벌 옷.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언제나 내 몸을 지켜주며 친구처럼 형제처럼 평생을 함께 한 가사 한 벌에 스님은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그러면서 부와 명예를 찾기에 눈이 먼 당시 불교계의 세태를 은근히 꼬집는다. 승려가 배워야 할 것은 오직 빈궁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부귀로 치장한 몸에는 도가 깃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익이니 명예니 하는 것은 승려의 본분으로 볼 때 분수에 넘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스님은 분명히 단정 짓는다. 그저 욕심 없이 살아가는 천치 바보 같은 사람이니 따로 경전을 읽고 좌선을 흉내나 내는 짓은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경전을 읽고 좌선을 하는 것이 무익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형식이 되고 자신을 얽매는 차꼬가 된다면 오히려 수도를 방해하는 장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참다운 수행자의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당시 많은 신도들이 스님에게 의지하고 존경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다. 꼭 스님이 살던 당시만 아니라 어느 시대라도 경종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