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이 유해진다. 특히 보이차가 그렇다. 차를 우리다 보면 ‘연유’와 같은 달콤한 ‘젖’맛이 난다. 특히 숙차나 노차가 더욱 그렇다. 젖을 먹는 아기처럼 사람들이 순해져간다. 그래서 차를 오래 마신 사람을 보면 순한 양 같은 마치 ‘초식동물’같은 느낌이 든다. 젖을 먹는 아기의 그 냄새는 ‘향’에 가깝다. 아기 내음처럼 차는 달콤한 밀향을 풍긴다. 아주 살며시.

아침 새벽에 새로 자라난 새순에 햇살 담은 감로수가 맺힌다. 이걸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을미년의 12간지 ‘양’들이 마시면 사람들도 건강하게 하는 ‘젖’이 된다고 한다. 사람이 아무리 독하다고 해도 ‘독사’는 아니다. 그러니 땅의 젖이라고 할 수 있는 지유(地乳) 보이차를 마시면 사람은 누구나 양처럼 달라질 수 있다.

버림받고 상처 입은 비행청소년에게 어머니가 따스한 손길을 다시 내민다. 어느덧 죄를 짓고 방황했던 청소년은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을 만나 다시 제 길로 돌아온다. 모습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순한 아기처럼 온순해져 간다. 보리심에서 비롯된 연민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듯이 보이차는 어느덧 사람을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간다. 고통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다시 동심(童心)으로 돌아가게 하나보다.
 

“아무리 차가 좋다고 해도 사람이 나쁘다면 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사람이지 독사가 아니다. 말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독사처럼 너무 나쁘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이나 그 원인이 되는 상처가 있을 뿐이다. 이미 차를 만난 사람은 ‘독사’이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이미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차를 받아들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미 스스로를 고쳐가고 바꿔가기를 원하고 있다. 이 사람에게도 시절인연이 온 것은 아닐까? 차는 그런 때에 만나는 상서로운 영물과 같은 존재이기까지 하다. 그런 계기가 저절로 그냥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이제 좀 차가웠던 사람도 인간다운 따스함을 마음속에서 잠시라도 내었나보다. 그래야만 차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차가운 찻잎이 불을 만나서 차가 되어간다. 그런 과정에서 모자라게 된 수분을 공기 속에서 다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발효가 진행되면서 더욱 차다워진다. 따스한 물을 만나 더욱 따스해진다.

도시에서 더 복잡해지고 차가워진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해 고통을 받는 것도 이와 같다. 비 온 후에 땅이 더 굳듯이 어려운 일을 통해 사람들은 성숙해져간다.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남의 장점 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성장하여 더욱 사람다워진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도반이 되고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를 자연스럽게 따스하게 만들어간다.

뭐든지 자연스럽게 해야지,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병차로 긴압된 차를 억지로 뜯으면 차도 다치고 사람도 다칠 수 있다. 바위를 뚫는 차나무의 뿌리처럼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훈제(燻製)하듯이 틈을 찾는다. 없으면 신중하게 만들어간다. 힘이 있다고 해도 억지로 되지도 않는다. 힘이 없지만 틈을 찾으며 끊임없는 대화를 한다. 굴하지 않는 불퇴전의 인내심을 가지고 차는 바위와 수많은 밤을 새운다. 바위가 허락하는 만큼 차는 바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찻잎이 암반을 치고 들어가면 몇 만 년 후에는 암반이 갈라질지도 모른다. 암반에게는 언젠가 흙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도 된다. 아니 찻잎을 먹을 동물과 인간에게 공헌할 기회를 바로는 주는 것이기도 하다. 차는 이런 바위의 정령들에게도 ‘홍익인간’의 뜻을 품게 해준다. 그렇게 주위에게 베풀 수 있는 보시를 가르쳐 주면서 바위를 흙으로 천도해 준다.

떡차로 불리는 병차 덩어리를 푼다[解塊]. 긴압한 병차를 잘 보면 틈이 보인다. 여기에 송곳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그 틈을 부드럽게 비집고 들어간다. 너무 강한 힘을 쓰면 차도 다치고 사람도 다친다. 송곳에 찔리면 쇠 맛이 그런 건지 매우 아리다. 아프다. 그렇게 차도 아플 것이다. 몸을 바쳐서 우리에게 선물을 하는 차를 굳이 스트레스를 주고 또 아프게 할 필요가 있을까?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마음만으로도 송곳은 길을 만든다. 들어 갈 수 있는 곳만큼만 들어가게 해서 가볍게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신선한 공기가 반가운 차는 몸을 연다. 더 열게끔 약간만 틀어준다. 그렇게 조금씩 해괴(解塊)해서 얇게 차편으로 나눈다.

병차가 나눠준 차편을 다시 찻잎처럼 만들게 하기 위해 손으로 조금씩 비틀 듯 파동을 일으켜 공기 틈을 만들어간다. 깨거나 부수지 않는다. 그러게 흩뜨려서 다시 산차(散茶)로 만든다. 가능한 만큼만 노력해 본다. 그리고는 찻물을 붓는다. 모든 찻잎에 물이 닿을 수 있게 살짝 저어 잘 풀어준다. 그렇게 차도 목욕재개를 하며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게 우리에게 온몸을 던져 희생해주는 차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다. 팽주의 몫이고 차포사 또는 차예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차를 통해서 사람의 고통, 배려, 대화를 다시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