去年牧牛坡上坐 지난 해 소 먹이며 언덕 위에 앉았을 때
溪邊芳草雨霏霏 냇가에 풀은 향기롭고 부슬부슬 비 내렸지.
今年放牛坡上臥 올해엔 소 풀어 놓고 언덕 위에 누웠더니
綠楊陰下暑氣微 푸른 버들 그늘 아래 더운 기운도 스러졌네.
牛老不知東西牧 늙은 소를 어디에 풀어 먹일지 모르겠으니
放下繩頭閑唱無生歌一曲 고삐를 놓아버리고 한가로이 <무생가> 한 가락을 노래하노라.
回首遠山夕陽紅 고개 돌리니 먼 산에는 붉은 노을이 걸렸고
春盡山中處處落花風 봄 다한 산속에는 곳곳에 낙화 바람이 풀어온다.
-태고보우의 <소 먹이는 늙은이(息牧叟)>
사진=장명확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스님은 고려 말기 불교가 내적으로는 부패의 길을 걸으면서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외적으로는 성리학(性理學)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들로부터 극심한 비판을 받던 시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응하신 분이다. 그런 행동가적인 특징 때문에 스님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인 양상을 띠고 있지만, 고려 말기 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주목할 부분이 많다. 선종의 계통을 분명히 하고 많은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여 조선조 불교사의 흐름을 선도한 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일 것이다.
스님은 불경을 열람하면서 더욱 깊이 연구했지만, 불경 연구는 수단일 뿐 참된 수행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선수행(禪修行)에 몰두했다. 1333년 가을에는 감로암(甘露庵)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이레 동안 용맹정진했다. 그때 푸른 옷을 입은 두 아이가 나타나 더운 물을 권했는데, 받아 마셨더니 감로수였다. 이 일로 홀연히 깨친 바가 있었다고 한다.
1363년에는 신돈(辛旽)이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사부(師傅)로서 국정 개혁을 단행했는데, 스님은 이를 우려하면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려면 진승(眞僧)이 그 뜻을 얻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사승(邪僧)이 때를 만난다. 왕께서 이 사실을 잘 살피시고 그를 멀리하시면 국가의 큰 다행이겠다.”
스님이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 어떤 자세로 대응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스님은 불교사적인 업적만큼이나 문학에 있어서도 빛나는 결실을 거두었다. 고려의 스님으로 시를 못 짓는 분이 없긴 하지만, 스님의 문학에는 스님만의 개성과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문학상으로 볼 때 스님의 장기는 장편시에 있었다. 이미 충지 스님 같은 분도 장편시를 남기고 있지만, 충지 스님의 경우는 한시의 전통 아래 지어진 것인 반면 스님의 장편시는 다소 파격을 지향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격정과 깨침을 소리로 옮기자니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흥분을 이기지 못해 넋두리의 외침을 담은 것은 아니다. 파격 속에서도 스님의 시는 잘 정제된 균형미를 보여준다. 만행 속에서도 지계(持戒)를 잊지 않는 선승의 본분이 스님의 문학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시는 태고보우의 자화상이라고나 할 만한 작품이다. 스님은 여러 차례 화두를 들고 참구하여 깨달음의 순간마다 그 기쁨을 노래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니 오도송(悟道頌)이 여러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쩌면 그 과정을 모두 담은 총결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소[牛]는 불교에서 깨달음의 상징으로 쓰인다. 유명한 <심우도(尋牛圖)>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불교의 선종에서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畵)가 <심우도>다. 선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童子)에 비유하여 설명한 그림인데, 수행 단계를 열 단계로 나누고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부른다.
스님이 이 시를 지은 동기에도 그런 <심우도>의 자취가 완연히 엿보인다. 지난 해 소를 먹였다는 것은 심우도로 보면 다섯 번째 단계인 목우(牧牛)가 되겠다. 올해는 아예 풀어놓고 언덕에 누었으니 망우존인(忘牛存人)의 단계라 할 것이다. 소가 늙었다는 것은 깨달음의 수련 과정이 완전히 무르익어 인우구망(人牛俱忘)이 경지가 열린 것을 암시한다. 그러니 생사의 번뇌니 차별을 잊은 <무생가> 한 가락을 한가롭게 노래할 만하지 않은가?
이 시의 대단원은 마지막 두 구절이다.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번진 먼 산을 바라보면서 낙화를 흩날리는 바람을 맞고 있는 스님의 모습은 바로 입전수수(入廛垂手, 골목에 들어가 손을 내려놓음)의 경지를 대변한다. 자리행(自利行)의 수행 과정을 모두 마치고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이타교화(利他敎化)의 길을 나서는 행보를 알리는 장엄한 서곡과 같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