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天地間      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 태어날 때는
百骸九竅都相似  뼈마디며 구멍의 수자는 모두 서로 같다네.
或貧或富或貴賤  누군 가난하고 누군 부자며 또 귀천이 다른데다
或姸或醜緣何事  누군 예쁘고 누군 추하니 이 무슨 까닭일까?
曾聞造物本無私  일찍이 조물주는 공평하다고 들었는데
乃今知其虛語耳  오늘 비로소 헛말임을 알겠구나.
虎有爪兮不得翅  호랑이는 발톱이 있어도 날개는 없고
牛有角兮不得齒  소는 뿔이 있지만 이빨은 없는 법이네.
蚊蝱有何功      모기나 등에는 무슨 공덕이 있기에
旣翅而又嘴      날개를 가지고도 부리까지 가졌는가?
鶴脛長兮鳧脛短  학의 다리는 길지만 오리 다리는 짧고
鳥足二兮獸足四  새 다리는 둘이지만 짐승 다리는 넷이라네.
魚巧於水拙於陸  고기는 물속에선 날래도 뭍에 나오면 힘을 못 쓰는데
獺能於陸又能水  수달은 뭍에서나 물속에서나 다 날래구나.
龍蛇龜鶴壽千年  용과 뱀, 거북과 학은 수명이 천 년인데
蜉蝣朝生暮當死  하루살이는 아침에 났다가 저녁이면 죽는다네.
俱生一世中      모두 한 세상에 같이 태어났는데
胡乃千般萬般異  어찌하여 천 가지 만 가지로 이렇게 다른가?
不知然而然      그렇긴 해도 그런 까닭을 알 수 없으니
夫誰使之使      대체 누가 그렇게 되도록 시킨 것일까?
上以問於天      위로 저 하늘에 여쭤도 보고
下以難於地      아래로 이 땅에 힐난도 해 보았지.
天地黙不言      하늘과 땅이 모두 말이 없으니
與誰論此理      누구에게 이 이치를 따져야 하나.
胸中積孤憤      가슴 속에 쌓이는 답답한 울분이
日長月長消骨髓  날마다 달마다 자라 골수까지 녹이네.
頻向書窓啼不已  마냥 창가에 앉아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代天地答曰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내가 대답하리라.
萬別千差事      만 가지로 다르고 천 가지로 차이 나는 일들이란
皆從妄想生      모두 망령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로다.
若離此分別      만약 이 분별하는 마음을 떨쳐버린다면
何物不齊平      어떤 물건인들 고르고 평등하지 않겠는가!

                         - 고분가(孤憤歌),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 제2세로 활동한 스님이다. 스님이 살던 시대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기류가 뒤얽히던 시기였다. 이른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중국 땅에서는 여진족의 금(金)나라와 몽고족의 원(元)나라가 차례로 흥기하면서 혼란과 전쟁이 계속되었고, 국내에서는 1170년 무신의 난이 터지면서 무신들에 의한 권력 침탈과 대몽 항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난세를 살면서 혜심은 불교사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사,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무신의 난 이후 무신정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공세를 벌이던 교종이 철퇴를 맞아 세력이 약해졌다. 그 대안을 모색하던 무신 정권의 지지에 힘입어 선종이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미 문신 권력층과 결탁했던 교종은 종교로서 그 기능을 상실해 가던 중이었고, 불교 내에서도 이에 대처할 새로운 사상운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혜심은 이런 시기에 간화선수행(看話禪修行)을 강력하게 주찰하면서 선종 중심의 새로운 불교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를 위해 스님은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과 같은 저서를 쓰는가 하면 1125칙의 공안(公案, 話頭)를 모은 대저술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간행하기도 했다.

스님은 타고난 시인으로서 많은 선시(禪詩)를 남겼다. 그의 선시를 모은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은 스님의 시문학만을 모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집으로 기록된다. 이 시집에는 난세를 살면서 엄격하고 진중하게 삶을 살았던 스님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 있다. 간화선을 통한 선 수행으로 일탈과 혼란에 빠진 고려 사회를 바로잡고자 했던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웠던 것이다.

스님의 시는 전반적으로 인생과 깨달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일관되어 있다. 교종과 선종이 대립하고 선종 중심으로의 이행이 진행되던 시기를 살았던 만큼 한 치의 허술한 모습도 보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근기보다는 기질이 강한 무신 정권의 지도자들을 교화해야 했던 입장에 있었던 스님이었으니 음풍영월(吟風詠月)을 즐기는 일은 스스로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스님의 시에 그런 여유와 낭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진지함이 더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소개한 작품은 스님이 어렸을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인데, 제목은 <고분가>다. 세상에 용납되지 못해 홀로 분개하는 노래란 뜻이다. 아직 완숙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스님이 가야 할 길을 예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어렸을 때 이런 시를 지었다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함과 차이에 대해 일찍부터 깊은 고민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큰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선비로서의 길을 버리고 불문에 귀의했을 것이다.

이 세상 삼라만상은 모두 조물주의 손으로 빚어진 것인데, 얼핏 보면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덩치 큰 맹수가 있어 연약한 짐승을 잡아먹기도 하고, 힘없는 동물은 도망 다니며 목숨을 지키기에 바쁘다. 또 수명도 찬차만별이어서 천 년을 사는 놈도 있는가 하면 하루를 살지도 못하고 삶을 마치는 놈도 있다. 이런 불공평함을 보면서 스님은 조물주의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사로운 마음 없이 만물을 창조했다면 모두 다 오래 잘 살게 만들어야 했을 텐데 이렇게 처지가 다르다면 은혜의 후박(厚薄)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고민이나 의심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일 것이다. 특히 죽음을 접했을 때 그 번민은 훨씬 커진다. 그 때문에 불가에 귀의한 스님의 예도 종종 볼 수 있다. 스님은 이런 의문에 대해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그것이 바로 분별심(分別心)이라는 것이다. 천 년이나 하루나 수명으로 따지면 다 한 평생이고, 길고긴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모두 찰나(刹那)일 뿐이다.

뭇 짐승을 벌벌 떨게 만들던 호랑이도 죽으면 개미의 밥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개개로 보면 우열이 나뉘는 것 같지만, 우주의 순환으로 본다면 결국 같은 자리라는 사실을 스님은 깨달았던 것이다. 나와 남으로 구분하지 말고 우리라는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 동고동락하며 어우러지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소한 듯이 보이지만 스님은 어린 나이에도 이런 대승적 관점을 지녔다. 스님이 평생 치열한 구도자의 자세로 살았던 바탕이 어디 있는지 이 한 편의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