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菴東矗橘園西 연암은 동쪽에 우뚝하고 귤 정원은 서쪽에 펼쳤는데
九里松中一道溪 아홉 리 소나무 숲 속에 한 줄기 시냇물이 뻗었네.
習靜漸從羣鳥狎 고요함이 몸에 익어 새들과도 날로 친해졌고
居高自覺衆峰低 높은 곳에 살다보니 뭇 봉오리 낮은 것도 알겠구나.
千重業障休雕石 천 겹 무거운 업장 따위를 돌에 새겨서 무엇 하겠고
萬古形軀盡塑泥 만고의 형체 몸뚱어리도 진흙으로 빚어 다 없앴지.
人世本無煩惱事 인간 세상에는 본래 번뇌스런 일이란 없으니
飢來莫作小兒啼 배고파도 요란 떨며 동자승을 부르지 않는다네.
- 즐거운 선정(安禪), 철선혜즙(鐵船惠楫, 1791∼1858)
사진=장명확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 있다. 크게 주목을 끌지 않아 평소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막상 보이지 않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부담스럽지도 없고 귀찮지도 않으면서 늘 우리 주변을 담담하게 장식하는 사람은,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배경이 있음으로 해서 그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철선혜즙 스님이 그런 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스님은 조선 후기 때 해남 대흥사(大興寺)를 중심으로 전개된 ‘대흥시단(大興詩壇)’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 분이다. 스님의 일생은 그렇게 빛나는 주연의 위치에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료이자 선배였던 초의(草衣) 스님처럼 활발한 교제와 우람한 저작을 남기지도 않았고, 스승이 되는 아암(兒庵) 스님과 같은 불같은 정열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로지 일생을 차분히 사지(寺誌)를 정리하고 후학을 키워내는, 교육과 수행으로 일관한 분이었다. 남긴 저술 역시 10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는 철선소초(鐵船小艸) 한 권뿐이다.
그러나 스님의 존재는 마치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 같았다. 밝은 낮이야 거대한 화톳불이라고 해도 태양의 밝기만 못하다. 그러나 어두운 밤이라면 한 촉 촛불도 소중하다. 차분하면서 다소곳하게 일생을 사셨던 이 분의 모습은 마치 그런 등불을 연상시킨다. 그런 위상에 어울리게 스님의 시도 차분하고 잔잔하다. 그저 주어져 있는 형편에 맞게 자신을 조절할 줄 알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언행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포근한 저녁 햇살 같은 마음과 삶이 스님의 시에는 잘 녹아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스님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 이유는 별 게 아니고 법호 때문이었다. 철선(鐵船)이라니, 참 독특한 이름이 아닌가? 거북선이 생각나기도 하고, 해상을 호령하는 군함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록 얄팍한 문집 한 권밖에 잡히는 게 없었지만, 이 속에는 뭔가 묵직한 인생의 경륜과 지혜, 그리고 사자후와 같은 늠름한 육성이 녹아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스님의 시를 읽어보니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갔음을 알게 되었다. 스승의 인연은 속일 수 없는지 곡차(穀茶)를 즐기긴 했지만, 스님의 시에는 생각 밖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 때나 한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물리지 않고 솔직담백한 입김이 묻어나는 그런 인격의 소유자였다. 뭐랄까, 범상함 속의 비범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다.
사진=장명확
여기 소개한 작품을 읽으면 진지하게 선수행의 과정을 묘사한다거나 그 깨달음의 경지를 선취(禪趣)가 어린 묵직한 언어로 갈파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일상사를 노래하듯 말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게 진짜 깨달은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과장이나 겸손이란 어떤 면에서 보면 아직 설익은 과일일 수도 있다. 파릇파릇 보기에는 좋지만 한 입 베어 물면 비릿하고 신 맛이 가시지 않는다.
이 시를 읽으면 제목인 <안선>에 어울리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저 스님이 머물렀던 암자 주변의 풍경들을 소개하는 시 같기도 하다. 오른 편에는 암자가 있고, 왼편으로는 귤 밭이 펼쳐져 있다. 그 사이로 소나무 숲을 가르고 시냇물 한 줄기가 흘러간다. 고요함이 몸에 익다 보니 새들도 친구처럼 곁에 와서 놀고, 발밑으로는 자잘한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솟아 있다. 아, 그래서 자신이 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높이야말로 스님의 깨달음의 높이가 아닐까?
업장이 겹겹으로 쌓였다고 해서 돌에 새기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게 되고, 육신도 진흙으로 빚은 소상이 감정이 없듯이 잡념과 욕망을 다 씻어 없앴다. 세상을 고해(苦海)라 하지만 이것도 겉치장일 뿐이다. 번뇌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스님은 말한다. 배고프면 제 스스로 나가 공양을 준비해 먹는 것이지 시동을 불러 밥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에게 무엇을 의지하려는 생각 자체가 바로 문제를 밖에서 해결하려는 내면의 번뇌라는 말이겠다. 참선을 과업이나 숙원 따위로 여기지 않고 늘 먹는 공양처럼 여기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