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拈花一笑來    한 번 꽃을 들고 한 번 미소 지은 이래로
東西相付一靈臺  동쪽과 서쪽이 한 마음으로 서로 붙었네.
密傳傳至三三後  비밀히 전해져 서른 세 조사까지 이르렀나니
一朶花中五葉開  한 떨기 꽃 속에 다섯 잎이 열렸구나.
卽心佛非心佛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니니
歷傳四家無別物  사가에까지 두루 전해졌어도 별 물건이 없었네.
或全提或全用    때로 온전히 들고 때로 온전히 쓰면서
傳至侗侗無別用  조심스레 전해져 왔어도 별 쓰임이 없었네.
或以機用能縱奪  때로 바탕과 쓰임으로 능히 풀었다 빼앗았다 하지만
棒喝交馳如雷怛  방망이와 고함이 서로 오가니 우레처럼 놀래키는구나.
或以敲唱應隨機  때로 두드리고 노래하며 근기에 따라 응하지만
雙明單說辨賢哲  쌍으로 밝히고 홑으로 설명하며 현철을 가렸네.
或以偏正巧施設  때로 치우치고 바르게 교묘히 방편을 베푸니
展手通玄獨超絶  손을 펴자 그윽한 이치를 통해 홀로 뛰어나셨네.
或以提掇一字關  때로 한 마디 말씀으로 중생을 끌어 헤아리시니
三句一句能擊發  삼구와 일구의 뜻을 능히 쳐 드러내셨네.
或以唯心啓盲聾  때로 유심으로써 장님과 귀머거리를 여셔서
致令得妙色聲中  빛깔과 소리 가운데 오묘한 이치를 얻게 하셨지.
莫謂諸家不同轍  여러 스님의 방편들이 같지 않다 말하지 말라
百千無水不朝東  세상의 모든 강물들은 모두 동으로 흘러가노라.

                              - 종풍가(宗風歌),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고려 왕조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 조선의 위정자들은 척불숭유를 내세우면서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전개한다. 단순한 종교적인 갈등 차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였기 때문에 이 정책은 오래 갔고, 대단히 집요했다. 결국 조선의 사대부들은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불교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불교의 운명은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불교의 종교성과 그 가르침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면서 조선 불교가 고사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 스님이 있었다. 그 분이 바로 함허득통 스님이다.

조선 초에 불교를 이론적으로 무익한 종교로 전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이 나왔다. 우리들도 잘 아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쓴 <불씨잡변(佛氏雜辯)>이란 책이다. 그는 불교의 중요한 교리와 역사적 사실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불교의 유해함을 강조했다. 정도전 자신은 사실 친불교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 조선의 건국이념을 강고하게 다지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썼다. 어쨌거나 불교는 고려 말기에 노출했던 극도의 부패한 모습으로 인해 현실과 이론 양면에서 격렬한 공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함허 스님은 바로 이 시기에 우리 곁을 찾아왔다. 스님은 원래 유가의 선비로 공부하다가 21살 되던 해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큰 의심이 생겨 불가의 귀의했다고 한다. 스님이 지은 <현정론(顯正論)>을 보면 인(仁)을 주장하는 유교가 살생(殺生)은 금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의심하던 중 불교의 자비(慈悲) 사상에 이끌려 불문에 들어왔다고도 한다. 이처럼 스님은 실천적인 측면에서나 이념적인 측면에서나 불교의 큰 재목이 될 소양을 타고 났던 것이다.

스님은 지공과 나옹, 무학(無學) 삼대 화상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나옹 스님의  제자답게 함허 스님 역시 치열하게 현실을 간파하면서 불교의 활성화에 노력했다. 나옹 스님이 민중에 다가가는 불교를 위해 가사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장편 가송을 남겼는데, 함허 스님 역시 장편 가송을 여러 편 남기고 있다. <어록>에 보면 <법왕가(法王歌)>를 비롯해 <반야가(般若歌)>, <종풍가(宗風歌)>, <책수음(策修吟)>, <자경음(自慶吟)> 등 다섯 편의 가송이 실려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스님은 불교의 역사와 가르침,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 등 여러 점에서 불교의 본질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 가운데 <종풍가>는 당시 불교를 백안시하고 폄훼하던 세태와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지어진 노래다. 선종의 핵심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살피면서, 여러 스님들의 교화 방편을 찬찬히 열거하고 있다. 아울러 불교가 무논리의 종교가 아니고 백성을 현혹하는 미신이 아님을 부각시키기 위해 불교가 가진 독특한 설법들을 부지런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무조건 수세적으로만 나가지도 않아, 이 모든 노력으로 귀먹고 눈먼 어리석은 사람들의 귀를 열게 하고 눈을 뜨게 했다고 불교의 효용과 가치를 자랑한다. 세상의 강물들이 모두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불교의 강물도 결국은 진리의 바다를 향해가는 거대한 움직임을 일깨운다.

함허 스님은 조선조의 불교가 낳은 첫 번째 거목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나마 조선조 불교가 법맥을 이어오고 이후 허응보우(虛應普雨) 스님이나 청허휴정(淸虛休靜), 사명유정(四溟惟政) 같은 고승들이 속속 배출될 수 있었던 울력도 함허 스님의 불퇴전의 용맹정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의 문학 속에는 불교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전등(傳燈)의 염원이 가득 어려 있다. <계속>